독일은 우리나라 사람에게 다른 유럽의 나라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어렵던 시절 우리 부모님 세대들의 일부가

가난한 조국의 발전을 위해 광부와 간호사로

일해야 했던 땅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불과 20년전까지만 해도

우리와 함께 분단국가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독일이 통일이 되던 순간,

높다랗고 튼튼하게만 보였던 그 베를린 장벽이,

사람들이 장벽을 타고 넘고,

장벽의 일부를 깨부수고 떨어진 돌조각 들을 집어들고

환희의 눈물을 흘리고

서로 부둥껴 안으며 울고 웃던 장면들이,

비록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지만

TV 뉴스를 통해 보았던 그 장면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순간 만큼은 이념도, 상처도, 고통도 없이

그저 그 순간을 즐기며 행복해 하는 그들의 모습은

통일이나 분단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초등학생 꼬맹이의 마음까지도 감동시킬 정도로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때는 우리나라도 얼마지나지 않아

통일이 되지 않을까 막연하게나마 생각했었는데,

어느덧 벌써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 땅엔 완고한 철책선이 반도를 가로지르고 있고,

남북간의 관계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며,

가끔씩 남북간 팽팽한 긴장의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불과 얼마전엔 북한에서는 공식 논평을 통해

남한의 처사에 강한 불만을 터트리며

‘불바다가 될 것’이라는 섬뜩한 표현도 마다하지 않았다.

우리는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듯

국적도, 민족도 선택할 수 없다.

그저 주어진 조건으로 생각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행복을 찾아 살아가야 한다.

특히 이런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나라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훨씬 더 많은 제약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장벽너머 너에게]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카티야와 마르쿠스는

이념이나 이데올로기, 정치체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자기가 현재 속해 있는 정권을 전복하거나,

정권의 지도자를 타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국경을 지날 때 검색대에 줄이 길고,

세세한 것까지 검사받아야 한다는 현실이 다소 불편하고,

여행할 수 있는 국가가 각각 한정되어 있어 아쉬울 뿐이다.

그런 그들도 서로 보고 싶을 때 만날 수 없다.

그들의 마음과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세상은 그렇게 온통 이해할 수 없는 제약과 통제로 가득차 있다.

이 얼마나 답답한 현실인가!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주변과 환경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건

어쩌면 커다란 축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는 누구나 가능성을 믿고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굴림'">-비록, 그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고 할지라도-

꿈을 꿀 수 있으며,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꿈을 이뤄가는 과정으로 채워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말의 가능성마저도 차단된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껴야 하는 좌절과 절망은

그것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다.

서로에 대한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그것을 아름답게 가꿔나가고 싶다는,

너무나도 소박한,

누구나 가질 수 있고, 꿈꿀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원초적인 감정조차도

애초부터 박탈당해야 했던 카티야와 마르쿠스의 아픔과 고통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나 생생해서 아팠다.

희망조차 꿈꿀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름대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편지마다 무지개를 그려넣었던 그들의 작은 소망마저도

결국 너무나 완고한 장벽 앞에

힘없이 무너져내리는 광경을 속절없이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을

그 상처가 안타까웠다.

지금 이 땅에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혈육과 생이별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꿈에도 그리는 고향에 가 볼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말의 희망조차도 원천 거세된 채로

좌절과 상처 속에 살고 있을 것이다.

묵직한 주제인데,

카티야와 마르쿠스라는 풋풋한 10대 청소년들을 통해

가볍게, 그렇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게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우리의 자녀 세대들이 청소년이 될 때쯤이면

이땅도 통일이 되어 있을까?

통일이 되어 있든, 아니든,

훗날 나의 자녀들이 청소년이 되면

이 책을 꼭 권해주고 싶다.

 

마요네즈 - 전혜성

어머니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거의 같은 의미, 이미지로 다가간다.

숭고한 희생과 무한한 사랑,

인자함, 따스함, 포근함 등이 그것이다.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진 어머니가 행여라도 있다면,

그들은 친어머니가 아닌, 계모이다.

콩쥐팥쥐, 신데렐라, 백설공주, 헨델과 그레텔 등의

여러 동화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친어머니임에도 불구,

딸자식보다는 본인위주인 이기적인 엄마도 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기보다는 자기를 먼저 챙기려드는,

자식에게 먼저 무언가라도 내놓으려 하기 보다는

자기를 치장하고 자기 인생을 즐기기 바쁜.

전혜성님의 [마요네즈]의 엄마가 그렇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단지 덩치가 커 무겁다는 이유로

방에 쓰러져 있는 채로 하루이상 방치하고,

결국 거의 온몸을 움직이지 못한 상태로 누워있게 되자,

병원비 나온다며 퇴원시켜버리고

집에서도 간호는 커녕,

매일같이 얼른 죽어버리라고, 왜 안죽냐고 짜증이나 내고,

똥오줌 받는 일은 간병인에게 일임해버리고,

자신은 머리에 영양을 주기 위해 마요네즈를 범벅하고 있는...

큰딸 아정이 책을 쓴다니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할 생각에

잘 해보라고 부추기며 격려하면서도,

그 일 때문에 집을 비우고 외출을 하면,

집안 살림과 아이들을 대신 맡아 주기는 커녕,

그 일 그만 두면 안되겠냐고,

아무리 책 쓰는 일이라도,

자긴 그렇게 딸의 살림을 대신 해주며,

하루종일 나대는 손주, 손녀를 봐주며는

더 이상 못하겠다며 생떼를 쓰는...

그런 엄마를 끔찍해 해고 증오하면서도,

엄마이기에 걱정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큰딸 아정의 마음이 너무나 생생하다.

그리고 자신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줄 알면서도

언제나 차갑게 자신을 대하는 큰딸을 보면서도

큰딸에게 기댈 수밖에 없고,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기적인 면모를 절대 고칠 수 없는

어머니의 캐릭터도 너무나 생생하다.

두 주요 인물의 캐릭터가 너무나 생생한 나머지

두 사람 사이에서 펼쳐지는 팽팽한 애증의 관계가

마치 드라마나 영화로 보듯이 생생하다.

다만, 아쉬운 점 몇가지는 눈에 띈다.

이 책 뒷부분에 담긴 심사평에도 누차 지적된 얘기이긴 하지만

(이 작품은 제2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 수상작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주변인물들이

너무나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혹은 뚜렷한 설명이 없어 그들은 그저

주변인물에서 한발자국도 더 못나간채로

오직 엄마와 아정을 위한 도구로밖에 등장하지 못한다.

특히 엄마의 이기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은 그저

홀홀단신 월남한 사람의 애환과 사무침의 발로라고

막연하게나마 추정할 수만 있을 뿐,

별다른 설명이나 묘사가 없어 좀 생뚱맞은 감도 있다.

아정의 두 여동생 아라와 아영에 대한 설명도

거의 생략되어 있음에도 불구,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끊임없이 자주 등장하고 있어

좀더 설명이나 묘사가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

이 소설은 어머니와 아정이라는 두 중심인물의

생생한 캐릭터의 발현을 통해,

애증의 관계를 너무나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고,

어머니라고 하는 전통적인,

혹은 거의 고정관념에 가까운 이미지를

완전히 반대로 뒤집는 신선한 설정을 통해

인상적인 소설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예전에 이 소설이 영화화되어

김혜자와 최진실이 출연한 걸로 알고 있는데,

언젠가 기회가 되면, 영화도 찾아봐야 겠다.

 

삼색공감 : 사람, 관계, 세상에 관한 단상들 - 정혜신

예전에 정혜신님이 쓰신 [남자 vs 남자]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 등에 대해서

정신과 의사로서의 지식과 상담경험 등을 바탕으로

분석하는 그녀의 글들이 너무나 신선했기 때문이었다.

또 어려운 얘기도 쉽게 풀어서 단순 명료하게 얘기하는 그녀의 글쓰기 방식은

정신의학적 지식이 전무한 나같은 독자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도 공정하면서도 객관적이고,

자신의 생각을 전개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그 논리정연함이란...!

그 책 한권으로 정혜신님의 팬이 되어 버렸었다.

 

그런 그녀가 사람, 관계, 세상에 대해 느꼈던 것들을 적은

글들을 모아 책을 냈다.

[삼색공감].

'사람, 관계, 세상에 대한 단상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최근에야 이런 책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당장에 부랴부랴 구해서 읽어 봤는데,

"역시 정혜신!"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책이었다.

정혜신님에 대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책.

 

이 책은 2006년 1월에 출간된 것으로,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정혜신님이 써두었던,

우리 사회에 있던 사건, 사고, 사람들에 대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그래서 2002년 대선과정, 참여정부 초기, 탄핵사태,

국정원 불법도청사건, 이상호기자 사건, 황우석교수 사건 등

그 시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들이 등장한다.

 

이렇게 일정정도 시간이 지난후에

몇 년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글을 읽고 있는 느낌은 참 묘하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러한 사건들을 바라보는 정혜신님 특유의 시각

-날카롭고, 인간적이면서도 정신과의사로서의 지식을 바탕으로 한 -

을 읽는 일은 그것이 언제라도 참 즐겁고 재미있다.

정혜신님의 분석으로 까발려진 사람들을 보면서

나에게는 그런 면면은 없는지 되돌아보게 되고,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이런 충고를 마음에 새겨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순간순간 내가 미친건 아닐까, 내가 이중인격자는 아닐까,

내가 우울증은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직접 정신과 의사를 찾지 않아도 괜찮은 정도라고 안심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사이에 나타날 수 있는 무수한 감정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가능성들,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한국인의 특성이나 인식 등에 대해서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것들을 정신의학적으로 명확하게 보여주어

그러한 요소들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사람과 관계와 세상을 인식하는 사고의 지평을 넓혀준다.

그녀의 글들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여러모로 유익하면서도 너무나 재미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