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이었던가, 재작년이었던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오르한 파묵이 결정되었다는 얘기를 듣고서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읽었던 [내 이름은 빨강].
문학으로서는 처음 접하는
터키라는 다소 생소한 나라의 작가와 작품이라 그런지
일단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신선하고 독특했다.
물론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라
생소한 용어들이 많아 읽기가 그리 만만치는 않았지만
이야기가 워낙 탄탄하고 재미있어
꽤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각 장마다 서로 다른 주체의 시각으로 쓰여진
그 독특하고 신선한 구성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 주체라는 것도, 등장인물들에 국한된 게 아니라
때로는 나무로, 때로는 개로 시각이 바뀌는 형식은
독자로 하여금 중심 이야기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줬었다.
[내 이름은 빨강]을 통해 오르한 파묵을 알게된 후로
[하얀성]도 꼭 읽어보고 싶어졌었다.
그렇게 해서 읽었던 [하얀성].
역시 독특한 느낌의 특이한 이야기이다.
터키에 포로로 잡혀 노예로 팔려간 이탈리아인과
그에게서 서양의 지식을 배우고자 열망한 터키인,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면,
너무나 단순화한 것일까?
이성과 합리성, 지식으로 무장한 서양을 대표하는
이탈리아 사람인 ‘나’와
무지와 비합리성, 미개문명의 동양을 대표하는 터키에서
독특하게 지식과 합리성을 갈구하는 ‘호자’는
그 출신에서 극과 극의 대척점에 놓여있지만,
외모적으로는 서로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나’를 통해 서양의 앞선 지식들을 습득하면서 ‘호자’는
점차 출신을 뛰어넘어 외모 뿐 아니라 내면까지도
서양의 ‘나와 ’ 닮아가게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난후 ‘나’와 ‘호자’는
거의 아무런 차이도 나지 않는,
정말 쌍둥이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서양은 앞선 문명, 동양은 저개발, 미개발 등으로 구분하는,
오랜 편견에 대해서 일침을 가하는 듯한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작품 후반부 아예 두 사람의 입장이
정반대가 되어버리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한다.
그 전까지 호자는 그저 ‘나’의 지식을 갈구하고 배우기만 하는 존재이고,
‘나’는 지식을 서양의 지식을 가르치기만 하는 입장이었지만
점차 호자는 끊임없는 공부와 연구로 스스로 지식을 계속해서 개척해내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호자가 그리도 끔찍하게 여겼던
터키인들의 무지함을 순수함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이를 좋아하게 되어버린다.
그리곤 결국 서로의 신분을 바꾸어 버리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호자는 ‘나’의 행세를 하며 이탈리아로 도망가고,
‘나’는 호자의 행세를 하며 왕실 점성술사로까지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독특한 이야기를 통해
동양과 서양에 대한 오랜 편견에 대해 깊은 통찰로 그려내는 점이 인상적이긴 하지만,
이 작품의 제목인 ‘하얀성’의 의미를 깨닫지는 못했다.
작품 후반부에 ‘하얀성’의 존재가 등장하긴 하지만,
(하얀성은 호자와 ‘나’가 의기투합하여 개발한 무기로도 깨트릴 수 없는
절대 강자의 존재로 그려진다.)
이 작품의 주된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다.
다음번에 다시 읽을 때는 이해할 수 있으려나..?
이 작품은 인상적이고 나름 재미있기도 하지만
읽기에 그리 쉬운 작품은 아니다.
250여 페이지 되는 짤막한 소설임에도 불구,
이 책을 완독하는 데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 [내 이름은 빨강]과 마찬가지로
소장가치가 높은 책임에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