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 - 김언수
이 작품을 알게 된건 ‘문학동네’ 수상작이기 때문이었다.
늘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문학동네’ 수상작들.
그중에도 ‘캐비닛’이란 제목이 맘에 들어 선택한 책이다.
단순하면서도 뭔가 재미있는 것을 감추고 있을 것 같은 느낌.
평범하기 그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독자의 호기심을 잔뜩 유발하는 그런 묘한 제목.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신선하고 묘한 작품이다.
‘김언수’란 작가의 상상력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싶을 정도로
놀라운 상상력의 세계를 펼쳐 보여준다.
시작부터 비범하다.
소설 [폼페이]를 연상시키는 대 화산폭발.
그로 인해 모두가 죽지만 단 한사람,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중한 죄를 저지른 사람만이 갖힌다는
높은 첨탑에 위치한 감옥에 갖힌 죄수 한명만이 살아남아
그 지역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긴다.
그리고는 시작되는 캐비닛 이야기.
단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것만이
거의 유일한 업무인 ‘신이 내린 직장’에 다니는 주인공.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우연히 발견한 13번째 캐비닛에서
기이한 이야기들이 가득 적힌 서류들을 발견하고,
그 서류들을 탐독해 나간다.
거기엔 손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람
혀가 도마뱀인 사람,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오랜시간 잠을 자는 토퍼러들
어느날 갑자기 시간을 잃어버리는 타임스키퍼들
고양이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 등등
평범하고도 건전한 이성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
별 희안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다 캐비닛을 지키고 그 안의 것들을 연구하는
권박사를 만나, 그의 일을 돕게 되면서
기이한 증상을 가진 사람들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다.
너무나 신기하고 황당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심토머(symptomer) 라고 지칭하면서
현재의 인간과 새로 태어날 미래의 인간 사이의
중간지점에 잇는 사람들이라고 시치미를 뗀다.
그들이야말로 어쩌면 최후의 인간이거나, 또 어쩌면
최초의 인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담하고 발칙한 상상이 아닌가?
상상력의 나래를 무한히 펼친 나머지
이런 심토머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중간 이후에는 좀 지루해지는 감도 없지 않지만,
이 책의 미덕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뺨치는
놀라운 상상력과 그에 따른 신선함에 있다.
상상의 세계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