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관한 책 읽기는 언제나 즐겁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면서 그에 관한 글을 읽는 것은.

특히 이주헌님의 글들은 더욱 그렇다.

그림과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면면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하면서

감성적인 측면도 자극하는 그의 글쓰기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그림 자체에 자연스레 녹아들게 하기 때문이다.

｢화가와 모델｣도 그랬다.

화가와 그의 그림의 모델이 되었던 실존 인물들에 관한 얘기를

그림을 테마로 풀어간다.

화가와 모델의 관계는,

부부인 경우도 있고, 남들이 불륜이라 비난하는 관계도 있었고,

순수하게 화가와 모델의 관계인 경우도 있고,

프리다 칼로의 경우처럼 자기 자신인 경우도 있다.

다양한 화가의 다양한 그림을 볼 수 있어 좋고,

그 그림들은 화가와 모델간의 관계 속에서 그려진 것이라는

새로운 측면을 알게 되어 좋다.

미술사를 중심으로 쓰여지는 책들은 대부분,

미술사적으로 의미있는 화가와 그의 작품들만 다루고 있어,

유사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이주헌님의 책들은 특정 테마를 중심으로 쓰여 있어

-이를 테면, 본인이 좋아하는 그림, 미술관에서 본 그림 등 -

미술사 책에서 흔히 다뤄지지 않았던 화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어 좋다.

이 책도 그렇다.

화가와 모델을 테마로 잡았기 때문에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해서 그린 그림들만 소개된다.

그래서 유명 화가라도 그동안 잘 보지 못했던 그림들이

많이 소개된다.

이를테면 반 고흐의 작품들도 흔히 보았던 그림들 대신

룰랭 가족의 초상화들만 소개되고

(이 책에 소개된 고흐의 그림들은 전부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모네의 작품들도 풍경화나 수련연작 대신

그의 아내였던 카미유를 모델로 한 그림들만 소개된다.

그리고 번존스, 티솟, 로제티, 로트레크, 키르히너, 밀레이,

보나르, 벨라스케스, 레이턴, 실레, 칼로 등

미술책에서 몇 번 보지 못했거나, 거의 볼 수 없었던

다양한 화가들의 그림들이 소개된다.

지금까지 우리를 풍요롭게 해주는 아름다운 그림들은

물론 수많은 화가들의 천재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런 천재성을 이끌어내 아름다운 그림으로 형상화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수많은 모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는 것,

그리고 사람을 모델로 하여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정물화를 그리는 것과 달리

모델과 화가 간에 관계에 따라 그 분위기가 그림 속에 녹아든다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얼마전 [왕을 낳은 후궁들]을 재미있게 읽은 후에

이런 류의 역사소설에 관심이 부쩍 늘게 되어

어쩌다 보니 역사관련 책을 연달아 읽게 됐다.

 

학교에서 배웠던 '국사'는 언제나 왕과 왕조 중심의 정치사 중심으로 서술되고,

가르쳐졌고, 그래서 그렇게 배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장 방대한 사료들이

'조선왕조실록'이 대부분이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남아있는 기록을 연구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대부분

'조선왕조실록' 등 정사 위주로 연구하고,

야사 등은 다소 무시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기록이라고,

승자가 아닌, 민초들이나 승자를 보필하는 내시나 궁녀 등

신분이 미천한 자들에 대해서는 별로

기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그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던게 아닐런지.

이 책은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내시와 궁녀들에 대한 책이다.

내시와 궁녀들의 삶에 대해서 소개하고,

특정 내시들과 관련된 일화들을 소개한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보다는 학술적이어서

그렇게 재미있는 책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내시와 궁녀들의 삶에 대해서

대략적인 내용만을 보여주고,

별로 관심이 없는 그들의 묘와 묘비에 새겨진 문구들을

비교적 자세히 보여주고 있어,

이런 부분은 읽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대충 읽거나 건너뛰게 되었다.

특정 내시와 궁녀들의 일화를 다룰 때에도

좀더 드라마틱하게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운 맘도 들었다.

어쨌든 궁금했던 내시와 궁녀들의 삶의

일면을 볼수 있어 좋았다.

문학동네신인작가상 또는 문학동네작가상 등 수상작품집들은 대체로 재미있다.

그래서 작가나 작품을 잘 모르더라도

문학동네 수상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읽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도 단순히 문학동네 신인작가상 수상작이라는 이유로 선택해 읽어봤다.

몰론, 이 작품과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은 전무한채 말이다.

 

이 책은 느낌이 매우 독특했다.

제목도 너무 특이하고, 첫장부터 특이했다.

일단 시대적 배경이 1930년대 일본 식민치하이다.

최근 3~4년간 읽었던 소설중에 일본 식민치하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김영하의 [검은꽃]을 제외하곤 처음이었다.

 

요즘 소설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1930년대라는 것만으로는

이 작품을 그렇게까지 독특하게 느끼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진정한 독특함은 바로

시대적 배경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언어적 이질감에서 나온다.

시대적배경이 1930년대여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바탕으로 한 언어적 지평은 2000년대에 놓여 있다.

’이십세기모던이미지댄스구락부’,  카페 ’스타박스’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이런 현대적 언어 사용 외에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작가의 재기발랄함은

등장인물의 캐릭터,  다양한 상황들,  그리고 이야기 전개 등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그런 점들이 어떨땐 좀 뜬금없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좀 황당하기도 하면서도

꽤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특히 이해명이 그렇게 찾아다녔던

조난실의 남편 테러박의 존재를 알고나서는

정말 황당하기도 하면서도고,  나름 반전이어서 재미있기도 하고 그랬다.

 

31일까지 맞춰서 없는 시간 쪼개서 빨리빨리 읽느라,

다른 책들에 비해 좀 건성건성 읽은 감이 없지 않으나,

간만에 읽어본 재미&황당 소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