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린님의 글은 참 감성적이다.

여리디 여린 들꽃같은 느낌이랄까.

은희경, 공지영, 신경숙, 하성란, 권지예 등

여타의 여성작가들과 비교해 봐도

전경린님의 작품은 여성적이고 섬세하다.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이 그랬고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이 그랬고

[유리로 만든 배]가 그랬고

[황진이]가 그랬다.

물론 [열정의 습관]처럼

여림 속에 성에 대한 집착 등으로 표출된

강한 열정을 품고 있는 작품들도 있다.

어쨌든 그간의 전경린님의 작품들을 돌아볼때

이 [엄마의 집]이 갖는 느낌은 독특하다.

그간의 작품들로 쌓아온 그녀만의 독특한 느낌이

많이 퇴색된 느낌이랄까, 거세된 느낌이랄까.

전체적인 느낌은 공지영님 쪽에 좀더 가까운 듯하다.

물론 세세한 문장들을 들여다보면

전경린님 특유의 감성어린 문장들을 느낄 수 있긴 하지만,

그런 문장들도 많이 배제하고,

가능한한 건조하게, 스토리 텔링 위주로 쓰려고 노력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색다르고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이다.

내용은 이렇다.

이혼한 부모의 외동딸인 호은.

외가집에서 고2까지 지내다 고3때부터 엄마와 살게된다.

대학2학년이던 어느날

아빠가 갑자기 학교앞으로 찾아와서는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재혼한 여자의 딸 승지를

호은에게 맡기고 가버린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이로써 엄마와 호은과 승지,

이 세 여자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엄마의 집’에서 한 4개월간의 동거를 통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승지의 존재를 통해

호은과 엄마의 삶에 대한 태도가 조금씩 달라진다.

호은은 자신을 옭조이던 K와 화해하고, 그 기억에서 해방된다.

그리고 삶에 대해 진지한 희망을 찾게 된다.

엄마는 이성으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고,

‘타락’한 삶을 마치고 힘차게 그림을 시작한다.

갑자기 사라진 아빠로 인해 불가피하게 형성된

‘엄마의 집’에서의 불편한 동거.

어쩔 수 없이 페넬로페가 되어버린 세 여자,

그렇지만 신화속의 페넬로페처럼 그렇게

속절없이 오디세우스를 기다리기만 한게 아니라

스스로 삶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버린

당차고 강인한 여성들.

영화나 단막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분명 훈훈한 감동을 줄 여성을 위한 이야기가 아닐는지.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처럼.

살다보면 어느순간 갑갑해질 때가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행동반경에.

그럴때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지금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것들에서 자유롭고 싶어진다.

내가 서 있는 이 땅은 뭍이고, 널따란 대륙이다.

물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긴하지만

한쪽은 크나큰 대륙과 연결되어 있다.

즉, 갇혀 있지 않음에도 갇혀있다고 느끼게 될때가 있고,

그럴때면 갑갑해하고 자유롭고 싶어한다.

 

그런데 정말 사면이 바다 접하고 있는 섬에 갖혀 살고 있다면,

그것도 널따란 대륙에 살던 사람이

좋지 않은 일로 조그만 섬에 갇히게 되었다면,

그 갑갑함은 오죽이나 할까.

예전 드라마 [패션 70's]에서 맹골도에서 자란 더미가

뭍에서 온 남자 김동영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대접에 담긴 물이 찰랑거리는 것만 봐도 답답해진다고.

 

[흑산도 하늘길]은 정약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약용의 형으로,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물고기들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기술했다는

현산어보의 저자.

정약전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것은 그것 뿐이었다.

이 책을 통해 정약전 선생이 흑산도로 유배되어

그 곳에서 16년간 살아간 이야기들과

현산어보를 저술한 이야기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소설이다.

그런데 워낙 많은 사료들을 참고로 해서 쓰여진 것인지는 몰라도,

아님 한승원님의 원숙한 글쓰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치 정약전 선생의 삶이 한편의 기록영화처럼 펼쳐진다.

 

하나뿐인 적자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

슬픈 운명의 굴레를 한평생 떠안고 살아야 하는 서자를

둘이나 낳아 기르면서 느끼는 기쁨과 애달픔,

언제라도 뭍에서 사약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

하늘같은 아우 약용을 강진에 두고 만나보지 못하는 슬픔,

천주학쟁이라는 멍울 아래 천하디 천한 섬사람들에게 감시받으며

살아가면서 느낄 수 밖에 없는 고독함,

살을 맞대고 살면서도 진정으로 마음을 터놓을 수 없어

흑산도 아내 거무한테서도 느껴야 하는 외로움,

무엇보다 자신의 발을 묶어두고 있는 넓디넓은 바다와

그 안에, 작은 땅덩어리에 갖혀 있다는 갑갑함.

 

16년간 섬에 갖혀 살면서 정약전 선생이 감내해야 했던

삶의 고단함들은 비단 위에 열거한 것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글로는 쉽게 표현될지 모르나,

그런 감정을 하나하나 겪으며 매일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정말로 맨정신으로는 해내기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정약전 선생이 매일을 술로 보냈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는지 모른다.

 

마지막 임종 순간까지

거무와 두 아들을 애달파하며,

강진에 두고 16년간 만나지 못한 아우를 그리워하며

무엇보다, 자유로운 파랑새가 되길 바랬던

그 분의 모습이 너무나 먹먹해서

한참동안이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아..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란, 책이란

바로 이런게 아닐런지...

2007년 올해의 책 중의 하나로 꼽혔던 황석영님의 바리데기.

평단의 호평과 함께 대중의 사랑의 함께 받으며 2007년 최고의 소설로 평가되었었지.

그래서였을까.

왠지 읽기에 앞서 조심스러운 맘이 먼저 들었다.

삼포가는 길이 있는 소설집을 대학 다닐때 읽은 뒤로 그분의 소설은 왠지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나서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조금 편하게 생각하자고 다짐하며 펼쳐들었던 바리데기.

처음은 쉽지 않았다.

아니, 앞부분이 예상보다 편안해서 오히려 부담스러웠다고나 할까.

 

소설의 공간배경은 청진.

처음엔 한국전쟁 이전인건지, 일제시대인건지 감이 오질 않다가,

한참을 읽고나서야 한국전쟁이후 8~90년대의 함경도 청진이란걸 알았다.

16~17살때 밀레니엄을 맞이하는걸 보면 바리는 나보다 5~6살쯤 어린 소녀인것 같다.

청진에서 무산으로, 그리고 두만강 건너 백두산 줄기 자락에서

따옌에서 그리고 멀리 영국에 까지.

그렇게 시대적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서 인간사의 아픔과 고통들을 겪으며

물에 떠내려가듯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바리의 삶의 모습이

이 책을 읽고나서도 한참동안이나 먹먹했다.

 

왜 그렇게 고통받아야 하는지도 모른채 그저 고통과 아픔에 온몸을 내맡긴채

시간의 흐름만이 유일한 희망인듯

자그마한 몸으로 강인하게 견뎌내온 바리의 모습이 너무나 아렸다.

 

가족과의 헤어짐도, 그녀의 정신적 지주였던 할머니의 죽음도,

그녀의 분신이었던 칠성이의 죽음도,

믿었언 샹언니의 배신도,

돈과 탐욕에 눈이 먼 사채업자들과 짐승같은 선원들도,

그리고 훌리아 순이의 죽음도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생명수를 얻을 수 있게 될거라는

작은 희망같은 바리의 믿음을 흔들리게 할 수는 없었다.

 

소설에서는 바리가 생명수를 결국 찾았는지 명확하게 나오진 않지만

할머니가 얘기했던 생명수는 바로 바리 자신이 아니었을까.

소중했던 사람들의 죽음에도 바리의 꿈과 환상 속에서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바리에게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죽이고 싶을 만큼의 미움도

살아가면서 바리는 그런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니.

 

현실과 환상의 절묘한 교합, 북한의 기아에 대한 생생한 묘사,

중국 국경에서, 그리고 영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이야기.

이 소설이 2007년의 문제작으로 평가되었던 이유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이다.

가볍게 한번 읽는 것만으로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대가의 깊이라는 건 바로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