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심오한 이 책은, 힐링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나 인문학을 바라는 독자 양쪽 모두에게 선뜻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아마 이 책을 스스로 집어 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거운 철학적 고민속에서 어떤 '해답'을 찾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중 하나였고요.
그렇다고 제목에서 제시한 질문에 대한 해답이 책 속에 있느냐? 제 대답은 '아니요'입니다. 먼저 말해두지만 이 책은 정답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저자가 '세상은 왜 무(無)가 아니라 유(有)인가?' 라는 한가지 질문을, 여러 분야의 석학들에게 던져 놓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궁극에 다가가고자 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앞서 책은 가장 첫 페이지의 프롤로그에서부터 제 머리속을 뒤집어 놓네요.
세상에 무가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아무런 법칙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법칙도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용될 것이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면, 무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무가 존재한다면, 무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무는 그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무엇인가가 존재해야 한다. 증명 끝. (프롤로그)
글쎄요? 전 이 증명에 동의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건 바로 '없다'와 '없다는 것이 존재한다'의 차이일 것입니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것, 혹은 무는 용납되지 않는 것도 무언가 있음으로 해서 존재하는 관념이기 때문이죠. 이런 생각에서 출발하여, 어떻게 좀 더 세련스럽게 반론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페이지를 넘기는 가운데, 다행인지 몰라도, 저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석학이 한 분 있었네요.
몇 년 전 내가 그(알렉스 빌렌킨 박사)와 잠시 이야기를 누나면서 알게 된 것은 빌렌킨이 우주가 '무'에서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할 때 그는 정말 그 말 그대로를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무는 무일 뿐입니다!" 그는 내게 강렬한 어투로 주장했다. "어떤 물질이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공간도 없고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죠." (267 페이지)
"빌렌킨은 아주 똑똑한 사람입니다. 그런 주장들은 아주 매력적인 추정이고요. 적어도 현재까지는 우리에게 무엇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관찰을 통한 자료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판단에 필요한 이론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287 페이지)
책에서 가장 많이 빌리고 있는 도구는 과학과 철학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과학적 이론이 철학적으로고 들여다 볼만한 것인가 하는 방식으로요. 그렇지만 종교, 심리, 윤리, 문학 등도 이런 심오한 질문을 다루는 데 있어 매우 깊은 통찰력을 제공해준다고도 볼 수 있는 만큼, 함께 다뤄지고 있고요. 많은 경우, 한 분야에 통달한 사람이 어떤 원리를 깨침으로서 다른 분야와도 금방 통하는 현상(특히 예술분야)을 볼 수 있는데,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그렇지 않나 봅니다. 어느 한쪽에 통달한다고 해서 볼 수 없는 방대한 물음이라는 뜻이겠죠. 이것이 이 책에서도 함부로 답을 낼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일 테고요.
결국은 정답보다는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로 끝나게 됩니다. 세상이 왜 존재하는가, 혹은 유(有)에 대한 질문은 세상에 대한 관심, 더 나아가 나의 자아와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수렴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가치관의 방향과 노력의 문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은왜존재하는가,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