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쿤데라의 소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가장 주목을 받아야 할 작아이지만 그 명성만큼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현대 문학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기존의 소설의 형식을 파괴하는 현시대 가장 중요한 작가인것은 기존의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결코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필립로스나 코맥 맥카시등 미국 주류 문학작가들이나 프랑스등 유럽 문학작가들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많은 인지도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늘 의아하게 생각해 왔었다. 그래도 요근래 대형 문학출판사에서 <세계문학전집>, <밀란쿤데라 전집>등과 같이 다루어 내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만, 작가의 능력과 현대 문학에 끼친 '가장 현대적인' 소설에 비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듯 느껴지는건 어쩔수 없는 듯 싶다. (매년 노벨문학상에서 후보로 이름이 오르지 않는 부분도 이따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야말로 '소설을 쓴다는'것에 대한 비틂과 새로운 글쓰기 형식의 거대한 시도들은 오히려 현 시대에선 지나치게 낯설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 낯설음은 마치 1978년 여름, 구식라디오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산울림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의 전주를 들었을때 느껴지는 낯섦과 꼭 닮았다.) 감히 단언하건데 쿤데라는 '쿤데라 적인 소설', '쿤데라 적인 감성'등의 더이상의 수식어가 필요없을, 그 자체의 대명사로 후시대에 수 없이 인용 될 것이다.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등 수 없이 위대한 작품들 중에서 -지극히 개인적으로- 가장 탁월하다고 느끼는 쿤데라의 최고작은 바로 이 <생은 다른 곳에>이다. 주인공 야로밀의 탄생에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시인'이라는 가장 감수성이 짖고 정서적으로 순수한 특수성을 지닌 인물이 가지게 되는 어쩌면 인생사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로 내밀하게 포학해가며 따라간다. 일상적인 것들이 기형적으로 벗겨졌을때 느낄 수 있는 가장 내밀한 심리를 한발자국 뒤에서 정확하게 주인공의 같은 높이에서 바라본다. 어머니라는 가장 본질적으로 태동 된 감성이 서서히 시간이 밀려오면서 느껴지는 권태와 존재 자체에 대한 불만을 느낀다. 주인공 야로밀은 가장 본능적이면서도 충동적으로 자신 앞으로 밀려오는 일련의 물결들을 눈을 감고 받아드린다. 그 물결을 받아드림에 있어서 시대적 혁명과 모태로 부터의 혁명, '시인'으로서의 혁명까지, 안고 가야 할 짐들은 '시인의 삶'이라는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환상의 세계에서 뒤집어 해석해 간다. 그 해석들은 고로 삶 속에 스며들어 그들의 삶은 결국 '전혀 다른 곳에'서 그 소멸해 가는 삶을 관조한다. 

 야로밀은 쓸쓸하다. 자신의 거울을 드려다 볼때, 끝내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거울을 바라보는 야로밀을 바라보는 독자들은 그 뒷편에서 반사되어지는 거울을 바라보며 결국은 평소 인식하지 못하는 자신의 졸렬한 뒷통수를 바라보게 만든다. 우리들은 그 주인공의 주변에서 불어오는 본능, 어머니라는 본령, 섹스 그리고 역사의 가장자리에 놓인 인물이 느끼는 현기증들을 관조한다. 그 속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내면의 한계는 어김없이 드러나고 그것의 비례로 역사는 노곳하게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역사는 결코 무한하지 않다. 단지 우리는 삶의 다른 곳으로 쫓기듯 숨어서 각자의 거울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뿐이다. 현실의 남루함과 비루한 욕망의 한계, 왜곡들을 피해 환상의 삶으로 향하는 거울을 바라본다. 우리의 삶은 진정 다른 곳에서 이루어 지고 있었다. 

밀란쿤데라, 생은다른곳에, 삶은다른곳에, 불멸, 농담

 내가 어떤 책을 읽고 리뷰를 쓰게 된다면 가장 먼저 다루고 싶었던 책이 바로 이승옥의 <무진기행>이었다. 늘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었다. '한국 소설 사상 최고의 단편', '가장 아름답고 영롱한 문체의 단편'등과 같은 수많은 찬사들을 잠시 뒤로 제쳐두고라도 이 몇개의 단편들은 그 자체로 내게 가장 중요한 소설로 어린시절부터 자리하고 있었다. 현 시대를 대변하는데 소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사람의 내면에서 느껴지는 은밀한 자기 농담과 인간과 사회를 마주하는 요동치는 감정의 한계들을 어디까지 포착해 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슬픔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아름다운 글이란게 과연 얼마만큼 치유를 해줄 수 있는지. 무진에서 일어나는 슬픔들은 그 자체로 내게 치유로 다가왔었다.

 어린 감수성으로 성숙 된 자아를 발견하는 김승옥씨의 문장들은 말 그대로 현 시대의 청춘의 감수성을 그대로 간직한채 종이 위에 섬세하게 ？슷떳객？. 당대 문학의 새로운 지평이라고 생각 할 수 있을 정도의 새련된 문체와 간결하면서 감수성을 건들이는 솔직한 문장들은 "이 과연 1960년대 소설이 맞는지" 다시금 작가의 필로그래피를 살펴보게 만든다.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한 집필가로써의 고민과 사랑을 한다는것, 나이를 먹는다는 것 등의 누구나 공감하고 상념에 젖어 봤을 법한 이야기들을 특유의 재치있는 유머로 독자와 대화하듯 빠져들게 만든다. 

단편들 중 가장많이 단편집의 주 제목으로 쓰이고,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단편<무진기행>은 <서울 1964년 겨울>과 함께 중요한 작품으로 보여진다. 물론 다른 단편들도 훌륭하지만, 무진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기폭과 절제되고 함축된 감성적 글쓰기의 절정이 드러나는 단편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초반에 무진이라는 지역의 특성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표현되는 부분은 여러 출판사와 책 표지를 수도없이 달굴정도로 그 자체로 명진한 아름다운 글쓰기의 절정으로 불려진다. 가족들을 두고서 잠시 머무르기 위해 온 무진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각자의 미묘한 감정들과 왜곡된 삶을 바라보는 자세에 대해서, 그 공간적 배경은 이미 주인공의 내적 심리와 하나가 되어 짙은 안개처럼 습하게 독자들의 가슴을 스며든다.  시각적으로는 계속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듯 보이지만 내면의 감성은 아직 청춘에 머물러 있곤 했던. 삶을 살아 간다는 것에 대한 고뇌와 그 뜻을 이루고저 주인공의 팔깃을 붙잡는 무진의 그녀의 미묘한 감성은 따뜻한 커피 위의 옅은 거품처럼 흐릿하지만 분명하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들은 '시時'의 위로를 받아서 나를 치유하고 다시 본질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말은 그냥 아름다움으로 끝나지만, 슬픔을 위로하는 말은 그 자체로 잔인한 날선 손톱을 등 뒤로 감추고 있다고 말이다. 김승옥씨의 <무진기행>은 쓸쓸한 겨울의 입김같이 서늘하기도 하고, 방 구석에 누워 바라보는 천장의 한마리의 파리처럼 고독하고 건조하다. 내게 청춘이 그랬다. 내 청춘은 우뚝 쏟은 높은 빌딩에 기대고 있지만, 햇볕에 비친 그 푸른색 그림자에 내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내가 지난 나의 청춘에게 물었다."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 다섯 살 입니다."<서울 1964년 겨울, 286p>. -ozwonsuv

무진기행, 서울1964년겨울, 김승옥, 무진

 가끔 그리고 자주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극히 개인적인 상념에 빠져버린 기억이 있다. 어떤 것에 의해서인지, 어떻게 상념에 젖게 되었는지 늘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결국 그 상념은 삶의 회의에 대한 번뇌로 자라나 요 몇일간 고질병 처럼 어깨에 눌러 앉아 나를 짖누르곤 했었다. 누구나 이런 경험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고로 그런 생각들이 오히려 내 어깨를 더 짖누르게 하는, 그런 이해할 수 없는 고독에 빠지곤 했다. 나의 선택으로써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 것 부터 시작하는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불행으로 부터 이 <인간 실격>은 사람의 나약한 한계를 들추어 댄다. 

 다자이오사무의 극히 개인적인 수기들로 이루어진 <인간실격>은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며, 그 노력으로 부터 태생 된 가장 근복적인 불행들을 감성과 이성의 어딘가에서 집요하게 뱉어낸다. 일상 속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공간과 시간들을 통해서 주인공 요조가 느끼게 되는 회의적인 감정과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불편한 감정들을 건조하게 ？슷떳객？. 누구보다 순수하고 정식하다고 느껴지는 소년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세상의 위선과 비틀어 짐을 마주하게 될때 느끼는 냉혈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기존의 일상에서 타의적으로 짖눌려진 억제된 감정의 기폭들을 서서히 자극시킨다.가장 당연하다고 생각 되어지는 것들이 세상을 끝내 당연한 아늑함으로 일구어 내지 못했고, 그 개개인에게 느껴지는 역겨움의 트라우마는 당장 주인공의 아버지가 사주는 선물 꾸러미 속에, 동네의 주점에서 마시는 술잔의 표면 위에서 나를 마주하고 있다. 세상은 거기에서 부터 시작되었고, 모든 오류는 그곳에서 비롯 되었다.

 내게는 다자이오사무의 다른 소설들-그다지 많지는 않지만-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사상과 감정의 격정을 가장 예민하게 집어내어 단순성이 두드러지는 구어체로 담아내는 가장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요리조리 비꼬지 않고, 자신이 느끼는 구역질의 모든 세포기관과 마지막으로 느껴지는 쌉싸름함을 가장 일상적이고 단순하게 표현함으로써, 가장 순수해서 혹은 그렇기에 가장 고달플 수 없는 주인공의 내면을 잘 표현해 냈다. 세상에 빛대어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다자이오사무의 생각들은 바로 그 단순함의 극단을 이유로 누군가에겐 지극히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 중 주인공 요조는 다자이오사무의 관념을 그대로-완전히는 아니겠지만-투영했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 감정묘사에서 탁월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삶을 바라보는 철학은 염세주의와 실존주의의 색깔이 마치 쇼팽하우어와 야스퍼스의 느낌이 드러나기도 하며, 문학적으로는 알베르카뮈와 장 폴 사르트르의 느낌이 깊숙히 베어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인간 실격'이라는 극단적 단어로 삶을 좀 더 냉정한 각도에서 바라보는데 있어서, 이 소설을 지탱하는 구조는 그야말로 그 수준이 정점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남자의 사진에서 느껴지는 주인공의 표정을 설명하는 부분 말이다. 그런 모습들로 전체적인 맥락이 될 이야기들을 뒷받침하고 의아애 하는 독자들에게는 책을 다 덮었을때, 그것이 사진의 한 장면으로 표현되는 그 기록물의 차원으로 돌아봤을때, 그 주인공의 정지된 표정이 담아내고 있는 표정의 모든 것을 필연적으로 수혈받게 되는 것이다. 

 인생은 그렇게 수도없이 잘려나간 찰나의 순간들에 의해 기억된다. 하지만 내가 일상 속에서 그리워 지는 그림자를 일일이 뒤 돌아보기엔 당장 앞에 있는 거대한 사회라는 비틀어 짐이 그 행동 자체를 고통스럽게 한다. 모두가 앞을 향해 걸어간다. 각자 지루함에 가벼운 농담을 건네고, 그 농담들은 다른 농담들로, 그리곤 당연한 사회의 질서들은 농담의 뒷편에서 위선과 뒤틀림의 그림자를 하고 따라오고 있다. 어느 순간 거울에 비친 내 뒤에있는 그림자를 바라봤을때, 나는 이미 '인간 실격'이었다. -ozwonsuv

다자이오사무, 인간실격, 민음사, 실존주의, 일본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