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스릴러를 만났다. 얼마 전에 만난 <가토의 검>도 입맛이 쓰더니 이 작품도 마친가지다.

 

여자 셋을 죽여 연쇄살인이라는 죄를 지어 감옥에 복역 중인 전 프로파일러 강민수는 예전 애인 희진의 요청으로 자신을 유령이라 불러달라는 연쇄살인마와의 두뇌싸움을 시작한다. 유령은 자신의 첫 번째 살인이 이목을 끌지 않자 두 번째 살인을 저질렀고 황 기자에게 범행을 밝히고 그를 통해서만 대화를 한다. 그리고 암호화된 글로 ‘살인예고’까지 보내 홍대에서 범행을 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우리의 경찰들은 역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한 여자가 플래시몹을 하는 도중 칼에 찔려 죽게 된 것이다. 민수는 유령이 그동안 자행했던 살인의 현장과 황기자에게 메일을 보낸 암호들을 보고 숫자 5에 집착하는 그를 파악해간다. 상부의 지시에 의해 연쇄살인범의 미끼가 된 희진. 과연 민수와 유령과의 두뇌싸움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처음 전개는 아주 흥미로웠다. 전직 프로파일러. 그러나 연쇄 살인이라는 죄목으로 철창에 갇혀있는 그에게 예전 애인이자 동시에 현직 프로파일러로서 활동하고 있는 희진과의 면담을 통해 잔인한 연쇄 살인범을 추적하는 방식은 사뭇 새로웠다. 그다지 많은 추리소설을 읽지 않은 나이기에 프로파일러가 주인공으로 나왔다는 것 때문에 기대감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유령이라고 불러달라고 하며, 민수가 풀이하는 것에 따라 유령의 성향이 하나하나 파헤쳐져 가는 것에 신기함을 넘어 감탄이 나왔다.

 

하지만 뭔가 미진하다는 생각 또한 지울 수 없었다. 이유를 생각하니, 이 스릴러는 다빈치코드처럼 퀴즈를 풀어가는 형식인데 독자들에게 퀴즈를 풀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즉 단서를 먼저 제공하고 독자를 끌어들여 추리할 기회를 주고, 그것이 맞는지 답을 들으며 유추해 가야 함에도 그 과정이 없다. 단서는 민수가 퀴즈를 풀 때 보여지며 민수는 그 즉시 풀어버린다. 독자의 참여가 없이 앞으로 달려가기만 하는 작품. 우리들은 읽으면서 이건 뭐지, 뭔데 혼자 다 풀어?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배제된 채 민수 독자적으로 범인 찾기에만 골몰하는 걸 구경만 해야만 하는 입장으로서는 확실히 매력이 떨어지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 작품은 다양한 사람의 시점으로 쓰여져 다양한 사람들을 담고 있는 것에 반해, 뭔가 각 캐릭터가 갖는 이야기들이 마무리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연쇄살인의 죄를 지어 갇혀있는 민수가 왜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해도가 명쾌하지 않다. 더불어 그녀의 전 애인 희진 또한 결혼을 전제로 만났을 정도의 깊이 있는 만남이어서 세 번째 배신을 당했다고 했는데 민수와의 만남은 왠지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가 않았다. 너무 많은 것을 이 책에 담으려고 한 것인지, 그렇다면 조금 더 자세하게 쓸 필요가 있었다는 것과 그들이 나누는 대화도 겉도는 면도 많아서 특히 아쉬운 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령의 살인이 워낙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그의 행보가 남다른 만큼 흥미진진하게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특히 연쇄살인으로 복역 중인 전 프로파일러 민수는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정신과의사 한니발을 생각나게 하면서 그의 남다른 두뇌에 경외감을 갖게 한다. 감옥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더라,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같은 책을 열 번 이상 읽어야 했기에, 워낙에 똑똑한 그이지만 더욱 방대한 지식을 자랑한다.

 

결국 이 작품이 연쇄살인범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담고 있는 것은 사회문제이며 그중 두드러진 것이 가정 내 성폭력 문제였다. 왜 ‘유령’이란 이름을 따올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되었다. 여기에서는 외삼촌을 아버지로 두고 있는 김해영이 나오지만 얼마 전 티비에 심심찮에 등장하던 의사인 오빠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온 여인이 생각났다.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자신의 집에서 오빠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왔다는 그 여인. 그러나 사회의 시선은 그녀에게 자애롭지 못했다. 이번 작품 또한 김해영이 겪던 고통과 아픔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를 노출한다. 김해영이 비슷한 처지의 여인들을 살해하므로 고발하고자 했던 이런 유의 아픔, 그리고 법의 보호아래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닌, 오히려 쉬쉬하므로 도리어 피해자가 고통을 당하는 세상을 까발린다. 단 그가 알리는 방식은, 살인이라는 옳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말이다. 이런 류의 아픔이 계속되는 한, 또한 법체제가 보완되지 않는 한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류의 고발은 계속되지 않을까, 잠시 생각되었다.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기 때문에 안타깝고 입맛이 썼다.

 

결론이 약간 의아했으나 프로파일러의 기민하고 영특한 추리를 내세운 사회고발 스릴러, 흡인력 하나는 끝내준다.

 

조선말, 흥선대원군의 집권 시절 한 여인의 이야기와 그녀를 소리꾼으로 만들기 위해 ‘함께’ 해준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한국사 책에 한 줄을 당당히 자리하고 있었던 인물, 신재효. 판소리 6마당을 집대성해 더욱 유명한 그, 그리고 그녀의 여제자 진채선.

 

조선시대는 여자가 관직에 나가는 것은 금기시 되었던 것처럼 외부 활동 일체를 금했다. 그 어떤 활동이라도 말이다. 따라서 여인으로 태어난 이상 집에서 내조를 하거나, 바깥 활동을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성’을 판다는 것을 뜻했다. 그 시대의 여인으로 태어난 진채선은 어미의 손에 의해 기생집에 맡겨진다.

 

소리꾼이 갖추어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첫 번째, '인물치레' 외모와 기품인 얼굴이 아름다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호감을 주어야 하며 두 번째, '사설치레' 이야기를 알고 있어야 하며 세 번째, '너름새' 다양한 연기력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득음’. 목청이 좋아야 하는 것이다. (p. 18 ~ 25)

재효는 중인의 신분으로 태어나 출세를 향한 야망이 신분의 벽으로 넘지 못해 판소리로 눈을 돌리고 ‘동리정사’를 세워 소리꾼을 배출한다. 그를 보고 소리꾼이 되고자 하였으나 득음하지 못하면 그의 곁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채선은 혼신의 노력 끝에 득음에 성공하고 여성 소리꾼이 되었다.

 

흥선대원군이 고종의 수렴청정으로 실권을 장악했음에도 민초들의 삶은 더욱 곤궁해지지만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기 전부터 연이 닿았던 재효였기에 그는 대원군 이하응을 믿고 대원군이 판을 벌이는 낙성연에 참가한다. 채선이와 함께 말이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영화 한편을 보는 듯 한 작품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이 작품이 그랬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유려하게 그린다. 마음에 야망을 갖고 있으나 신분의 벽으로 넘지 못하는 것을 판소리를 통해, 흥선대원군을 통해 이루고자 하였던 신재효의 이야기나 그를 스승으로 존경하고 그 너른 등과 그의 주름과 그의 품성까지 마음에 품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소리꾼 진채선의 이야기는 ‘최초’라는 단어가 수반하는 고통을, 특히나 조선시대라는 성(性)적, 신분적 차별로 인해 험난했던 길을,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도전해 성취했던 삶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그때... 소리를 들었고... 울었고... 웃었습니다. 어미를 잃은지 채 얼마 되지 않아 말까지 까먹었던 어린 년은 그때 세상을 보았고, 소리를 보았습니다.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사람들한테... 엄마한테... 이년도 세상에 태어나 할 몫이 있었다는 걸... 그 추운 날 목숨 바쳐가며 나를 살린 보람이 있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p. 112)

 

이 둘은 신분이라는 장벽과 여성이라는 장벽으로 넘지 못할 산을 향한 욕망을 잘 알기 때문에 서로 공명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재효 자신이 자신의 욕망을 놓아야 된다는 것을 알지만, 놓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입신을 바라보는 자신의 처지를 채선에게서 투영했기에 그녀를 거둘 수 있었고 결국, 한 ‘인간’의 소리꾼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 채선이 스승을 향한 존경을 넘은 애정까지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채선이 조선말에 태어났기에 그나마 최초의 여성 소리꾼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시대적으로 혼란한 시기였기에 또한 서양문물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시기였기에 그 시기를 기점으로 역사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며 급변하는 시기였기에 그것이 채선이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되었고 여성 소리꾼으로 설 수 있지 않았을까. 그녀가 조선초나 중기에 태어났다면 아무리 날고 긴다는 스승을 만났다 하더라도 피기도 져버리는 한 송이 꽃에 불과했을지도 모르겠다.

 

진채선이 비록 중인신분이긴 하지만 당대의 내노라 하는 신재효를 만났고 그의 날개에 거둬져 득음의 경지에 이룰 수 있었으며 그녀를 ‘웅장한 판소리 성음(聲音)을 내고 기량도 대단하였다.’고 평하며 백과사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그녀가 비록 흥선대원에게 10년간 매인 몸이 되고, 스승의 임종도 보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녀가 첫 번째 걸은 가시밭길이 있었기에 다른 여류 명창들이 배출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이 아마도 그 시대와 맞아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만일, 이 둘이 흥선대원군에 의해 갈라서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이 둘은 더 많은 후진 양성을 할 수 있었을까. 혹은 연모의 정이 결실을 이룰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것은 확실하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두 사람의 남다른 재능은 지금처럼 뚜렷한 족적을 남겼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어릴 적 동화를 읽었을 당시는 몰랐으나(혹은 작가의 의도적인 눈속임에 지나쳤거나) 나이가 들어 찬찬히 동화를 살펴보면 아이들이 읽기에는 잔혹한 동화도 있고,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내용들도 있다. 그 뿐인가. 동화에 나오는 그대로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에 소름이 돋기도 한다. 현실을 반영한 동화, 찾기 어렵지 않다. 그런 정확한 시선을 삐딱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동화를 통해 현실을 너무나 신랄하게 꼬집었다고 칭찬 한 묶음 던져봄직 하다.

 

 

 

<삐따카니>에 나오는 동화 성냥팔이 소녀를 보자면, 성냥을 팔듯 나를 팔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들의 젊은이들이 나온다. 나도, 저 시기를 지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은 더욱 냉혹해지는 것 같다. 취직하기 위해, 이력서에서 한 줄을 더 추가하기 위해, 심지어 스펙 쌓으러 유학까지 갔다 오지만, 그것은 학벌을 내세운 경쟁자 앞에 좌절되고 만다. 한 가지 목표만 바라보고 살아온 인생이기에, 말에게 안대를 씌우듯 자신에게는 옆길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취준생이 바라보는 것은 한가지 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꿈은 ‘불합격입니다’를 통보에 의해 무너지고 이리저리 차이는 삶이라니.

 

 

 

 

 

 

 

<아기돼지 삼형제>의 이야기는 현실과 맞지 않는 듯 한 면도 약간 있었다. 이제는 부동산 시세차익을 볼 수 있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나? 뭐, 여전히 땅값이 오르고 있는 제주도도 투자할 곳이 마땅찮아 보이던데 말이다. 아마 이 이야기는 부모세대에 어울릴 법한 이야기인 듯하다. 우리 부모 세대는 버러진 땅을 매입해 묵혀두었다가 부동산 갑부가 된 사람도 있겠으나 이제, 현실은 오를 대로 올라서 앞으로의 부동산에 대한 전망은 그다지 낙관적인 편은 않은것 같다. 그래도 다른 사업보다 전도유망하다고 하면 할말 없지만 말이다. 또한 옆 나라를 살펴보면, 홍콩에서는 평당 5억이 넘는 곳도 있다고 하니 앞으로 우리나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일까. 홍콩의 금융사업과 비교해 보면, 뭔가 우리나라만의 특화된 산업이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청개구리>는 내게 백이십프로 감동과 공감을 준 <삐딱한 시선>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본받으려 우리는 그의 자서전이나 전기를 본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 ‘다름’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깊이 공감하며 나도 그처럼 살아가고자 계획을 세워본다. 다르게, 다르게, 다르게. 내가 진정 원하는 바를 행해서. 그러나 우리네 삶은 변화가 있을까. 여전히 학생들은 학원에 가고, 회사에서 원하는 것을 맞추기 위해 ‘정해진 루틴’을 수행하고 있다. ‘다르게’는 머리의 한 구석에 박혀 있으며 내 삶에는 변화가 없다. 누가 청개구리인가. 무엇보다 우리는 자녀가 ‘다른’ 삶을 살아간다고 하면 허용할 수 있을 것인가.

 

<엄마 찾아 삼만 리>도 자식이 부모에게 잘하지 못하는 현 세대를 꼬집는 것이 아니라, 찾아는 뵙지만 목적 자체가 ‘아이를 잠시 맡기기’위해서 라는걸, 씁쓸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기견이 넘쳐나는 이유는 뭘까. 강아지일 때는 귀여워서 예뻐하다가 다 자라 ‘개’가 되면 그것을 못 견뎌 하다 버리는 요즘을 풍자한 <플란더스의 개>. 한참 유행하는 신상 액세서리, 립스틱, 명품 핸드백 등을 쫒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본의 논리’를 알려준 <피리 부는 사나이> 등 다양한 동화의 삐딱한 시선이 넘쳐난다. 두 딸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 이 책의 시작을 결심했다는 서정욱 작가의 남다른 시선은 분명, 동화가 현실인 듯 현실이 동화인 듯 현 세태를 정확한 비판과 풍자가 담겨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면 지금 살고 있는 내 모습을 진지하게 점검하게 된다. 돈의 논리에 의해 ‘진리’가 희석되어가는 이 시기에 어떤 것에 가치를 두며 살아야 되는지, 씁쓸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