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나에게 언제나 경외의 대상이다. 그도 그럴밖에 없는 것이 다양한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내는 것은 쉽지 않을게 분명한데, 작가가 되어 어쩌면 이다지도 아름답고 혹은 절제되고 미스터리하며 혹은 단단한 글들을 써 내려갈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로맨스 소설을 좋아해서 몇 년 동안 로맨스 소설에 홀릭했다가 근래 들어 다양한 도서를 만나고 있지만 어느 분야든 나는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자신만의 색깔이 두드러진 작가들은, 특히나 말이다. 로맨스, 미스터리 추리, 에세이, 인문, 경제경영, 자기계발서 등을 골고루 읽으며, 지금 나는 나와 맞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랄까, 뭐 그렇다. 그 중 역시 에세이를 통해 받는 느낌이 가장 강력한 것 같지만 말이다.

 

<국경의 도서관>은 워낙 유명한 에세이 <생각이 나서>의 황경신 작가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택하게 된 작품이다. <생각이 나서>를 읽었을 때 처음부터 공명했던 작품이었고, 소문난 잔칫상에 먹을 것 없다는 것을 뒤집어 버린 유명세만큼이나, 특히 내게는 그 가치가 빛났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이번 작품도 ‘역시’라는 말이 연신 나왔다. 짧은 단편들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처럼 짧은 생을 살면서 한번쯤 살짝살짝 흘리고 지나친 단상들을 작가 특유의 문체로, 여지없이 간결하게 담은 작품이었다고, 감히 평할 수 있겠다.

 

이미 세상을 달리한 예술가나 문학가와의 만남을 그린 단편들은 내 상상력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 듯 무척 반가웠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국경의 도서관에서 만난 슈베르트와 윌리엄 셰익스피어와의 만남은 작가의 상상력 만큼이나 우리의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채워주었나고나 할까. 특히나 미완성곡에 대해 ‘그 곡을 완성시킬 작정이었다면, 살아 있을 때 했을 거야.’(p. 68)라는 그의 답변은 늘 궁금해 하고 안타까워하던 것에 대한 완벽한 대답이었다. 또한 그 시대에는 읽을 책이 없어 도서관에서 거주하며 현 시대의 유명한 스테디 셀러를 읽으며 1년에 한번 씩 낭독회를 한다는 세익스피어의 모습에서는, 나는 눈빛이 반짝일 수밖에 없었다.

 

사물의 의인화에 대한 부분도 재미있었는데, 시인이 된 우체통은 늘상 같은 일상에 무료해 하지만, 어쩌다 한번 있었던 소녀의 정기적인 방문이 우체통을 더욱 시인으로 거듭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무수히 지나 지금은 방문하지 않는 그 소녀도 나이가 들고, 우체통도 그만큼의 통찰이 생겼기에, 우리가 우체통을 지나치기에는 그가 가진 의미가, 그가 가진 사연이 너무도 깊었다.

 

그 무엇도 살 수 있지만, 마음을 사는 것만큼은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프로그램에서 번호를 선택하며 자신이 원하는 마음을 사는 방식은 최종 결론만큼이나 내게 행복한 마음을 주었다. 그리고 따듯함을 느꼈다. 어쩌면 SF적인 요소를 넣은 듯 하지만,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어쨌든 인간은 선을 지향하며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깨웠다고나 할까. 역시 황경신 작가라고 해야 할까.

 

이밖에도 줄리엣의 유언이라던가 베르테르의 순정에 관한 로테의 입장 표명은 우리가 그동안 한쪽에만 너무 의존해서 간과했던 또 다른 그들의 모습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마지막으로 책의 처음을 장식한 바나나 리브즈. 여행을 방문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 대신 여행을 떠나는 직업을 그리고 있는데, ‘설마’라는 생각이 ‘혹시’라는 것을 바뀔 가능성을 내포하며 설득해 버린 짧은 로맨스라고나 할까. 의뢰인을 지키고, 의뢰를 요청한 사람을 직접 만나게 되는 그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아름다웠고 충분히 로맨틱했으며 충분히 설레였다. 상상력이라는 실마리가 가능성을 만들어 주어 확실한 임팩트를 주었기에 단편이 오히려 장편을 압도하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작가들의 상상력은 끝이 없다. 그들이 이런 자유자제의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어서 독자들은 마냥 행복하다. 특히 국경의 도서관은 그 제목만큼이나 제한이 없다. 너와 나. 나와 너. 그와 나. 나와 그. 그것과 나. 나와 그것. 이 모든 것들은 서로 넘실거리며 거리낌 없이 드나든다. 이런 작업들은 오직 작가이기에 가능한 일이며, 우리 독자들의 바람이 작가의 상상력과 만났을 때 공명하고 충만한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 입을 통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좋다’가 연신 들린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속에 해결되지 못하는 분노를 어느 정도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가족들과 혹은 주위 사람들과 조율되지 못하는 감정들이 조금씩 쌓여가며 어느 순간 그 분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물꼬가 트여버려 폭발하게 되는데 그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주위 시설물을 박살내거나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기도 하고 자해를 하기도 한다.

 

특히 티비에서 심심찮게 보게 되는 뉴스들은 현대인들이 가지는 분노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그대로 표출해서 심각한 사회문제까지 된 우리의 모습들을 말이다. 층간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위층 아래층 간의 말싸움이 도를 넘어 흉기 싸움으로 되다가 살인까지 이른다. 앞의 차가 깜박이도 켜지 않은 채로 아슬아슬하고 얄밉게 왔다 갔다 하는 통에, 견디지 못해 결국 따라잡아 멱살잡이를 하기도하고 아예 차를 들이 박기도 한다. 자신의 여자 친구가 말대꼬를 한 것에 열받아 폭행해 코를 부러트리고, 갈비뼈가 부러지게 만들기도 한다. 전직 상관에게 시달림 당한 것에 폭발해 오히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살인 등의 분풀이를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부인이나 자녀에게 욱하는 성질을 못 참아 폭행해서 가정내 폭력이 심각해지기도 한다.

 

이런 뉴스들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일어나는 것이며 결국 '분노조절장애' 진단을 받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인정하고 의사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드물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심각한 이때에 <욱하는 성질 죽이기>는 분노의 원인을 알려주고 다양한 분노의 종류 및 해결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모든 사람은 감정을 담는 그릇이 있다고 한다. 풍선과 가까운 이 감정을 담는 그릇은 화가 나지 않았을 때에는 수축하지만 화가 났을 때는 팽창한다. 사람마다 이 그릇의 팽창 정도가 다르게 태어나긴 했지만 대부분 잘 늘이지 못하는 감정 그릇을 갖고 있기 때문에 화가 켜켜이 쌓이면 언젠가는 터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분노이다.

 

분노의 원인이 되는 것은 다양하다. 어렸을 때 자신의 고집을 관철시키기 위한 생떼도 있지만 우리 뇌의 불완전성을 꼽는다. 뇌의 불완전성 중 첫 번째는 욱하는 성질이 있는 사람들은 집중하려 할 때 전전두엽의 활동이 줄어드는 현상이 있거나 두 번째는 너무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람, 마지막 세 번째는 좌측 측두엽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특징이 있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에 유전적 요인, 트라우마, 호르몬의 불균형도 원인이다.

 

분노는 그 분류에 따라 돌발성 분노, 잠재적 분노, 생존성 분노. 체념성 분노, 수치심에서 비롯된 분노, 버림받음에서 비롯된 분노로 나눌 수 있고 각 분노마다 자가 진단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질문을 통해 진단법을 보여주며 중요한 예방법도 따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총체적인 분노는 그 어떤 화나 분노보다 더욱 펄펄 뛰는 상황으로 몰아치는 분노의 폭풍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위협적인 분노이다. 모든 분노가 총체적 분노는 아니지만 이는 파괴를 일삼는 가장 강력한 분노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분노의 양상과 그에 맞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데, 내가 어느 부분에 속했을 때 분노를 이기지 못해 폭발하게 되는지 점검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데, 주로 현대인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돌발성 분노와 잠재적 분노 중에서 잠재적 분노를 해결하기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선택의 여지는 늘 있다. 잠재적 분노에 조종당하느냐 마느냐

2. 분노가 치솟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불평하기보다는 마음의 평화를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라.

3. 현재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이 잠재적 분노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장기적 분노가 될 가능성이 있는지 판단하라.

4. 반박 방법을 이용하여 잠재적 분노의 원인이 되는 분노에 반박을 해보라.

5. 분노를 악화시키기 위해 공감하는 법을 연습하라.

6. 마음속에 남아 있는 분노와 증오를 해결하기 위한 네 가지 방법을 떠올려라.(전환, 감정적 무관심, 용서, 화해)

 

종종 약물이 분노의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약을 먹고 기분이 나빠지는지도 점검해야겠다. 그 반대로 분노를 삭이지 못해 폭발하여 기물 파손과 사람에게 상해까지 입힌다면 심각하게 분노를 치료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약물 요법으로 치료가 된다면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분노로 인해 해리가 생겨 자신의 행동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면 재고할 필요 없이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각박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여유란 찾아보기 힘들다. 사람들을 다그치고 자신이 우선하기 위해 배려는 어느새 저만치 날아가고 만다. 어떤 것이든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을 때 자신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이 같은 시대에 <욱하는 성질 죽이기>는 나를 다스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용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의 학창시절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 여전히 뛰는 가슴처럼 내가 만일 과거로 돌아간다면, 중학교나 고등학교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다. 공부만이 전부였던 그 시기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항상 같은 것을 지적을 한다. 죽어라 공부해야 되는데 왜? 하지만, 내가 그 시기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는 오로지 친구들과의 우정 때문이다. 내 자녀를 봐도 그렇지만 나조차 그 시기에는 친구가 전부였다. 친구들이 내 세상이었다. 공부는 항상 2순위다. 밤을 새우며 고민하는 건 친구이고, 버스를 타거나 길을 걷거나 지하철을 타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건 다 친구의 문제로 인해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남자친구가 없어서 다행이었던 걸까.

 

<고양이를 사랑하는 방법>에서 우리는 고1인 세 명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단짝인 듯 뭉쳐있는 세 명 소리, 은성, 이랑이다. 이 세명은 명작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소리의 이모 카페에서 동아리 활동도 하고, 오드리라는 고양이를 돌봄으로 인해서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시기가 그러하듯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와 자신만의 캐릭터를 자랑한다. 유명 드라마 작가를 엄마로 두고 있으며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이랑과 단짝이라고 믿고 있는 소리는 이랑과는 비밀이 없으며 앞으로도 비밀이란 존재하면 안 되는 것으로 안다. 단짝친구가 그러하듯 그녀에게 당연하게도 이랑이 첫 번째이다.

 

평범한 부모를 두고 있는 이랑은 앞으로 동화책에 들어갈 삽화를 그리고 싶어 하는 소녀로 친구 간에도 비밀이 존재할 수도 있으며, 만일 그렇다면 그 비밀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쿨하고 시크한 성격의 그녀는 많은 친구들에게 호감을 유지하고 있다. 비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그러한 만큼 현 남자친구 로마를 공개할 수가 없다. 특히나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한다고 믿는 소리에게는 더더욱.

 

전학 오기 전 학교에서 여왕노릇을 하다 오히려 친구들에게 역풍을 맞아 크게 데인 은성은 이번 친구들과는 잘 지내고 싶다. 있는 듯 없는듯 뿔테 안경까지 쓰면서 자신의 모습을 감춘다. 둘의 관계가 유독 친밀해 보이는 소리와 은성 사이에서 겉도는 것 같아 약간은 속상하다. 이랑에게 첫 번째 친구가 되고 싶지만 예전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각자 생각하는 바도 추구하는 바도 다르기 때문에 언젠간 서로 큰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의외로 문제는 금방 터진다. 워낙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니며 여자를 밥먹듯 갈아치우고, 별명이 카사로마인 것처럼 어느날은 하루에 두 세탕 뛰기도 하는 로마로 인해서 말이다. 또한 은성이 지난날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감췄다는 데 대한 배신감이 셋의 사이를 뒤틀리게 한다.

 

이들 셋의 모습을 보면 현재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듯해서 과연 고1이라고 어리다고 치부하며 방관자처럼 미소 지을 수 있을까 자문해본다. "그거 아니? 너희들은 오드리를 좋아하는 방식도 딱 성격 그대로야." (p. 270) 소리 고모의 날카로운 지적처럼, 이들 셋이 고양이인 오드리를 사랑하는 형태대로 사람에게조차 각자의 방법대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소리처럼 온 몸을 다 바쳐서, 누구는 이랑처럼 선은 지키면서, 또 누구는 은성처럼 잘 맞지는 않더라도 최선을 다하면서 그렇게 사랑하면서 말이다. 이들이 이성을 사랑하게 된다 해도 역시 같은 방식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싶다.

 

고양이 오드리를 돌봄으로 셋이 화해의 길을 걷지만, 여전히 그들의 방식은 우리네 어른들과도 다름없는 모습이기에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시행착오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내 친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러나 나와 다른 타인을 사랑하고 오래도록 더불어 함께 가는 존재가 되기 위한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아니면 다르기 때문에 영원히 풀어가야 할 숙제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박선희 작가의 '교복을 벗어버리고 무엇보다 재미있게' 쓰고자 했던 의도대로 나도 훌훌 털고 잠시 고1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고 재밌게 그 추억에 동참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