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사장의 신작 <시민의 교양>이 나왔다. 그의 첫 번째 도서 <지대얕>에서 보여준 인문학에 대한 것들을 이번 책에서는 좀 더 깊이 그리고 어김없이 이해 가능한 방법으로 독자들을 이끌고 있다. 채사장이 보는 한국 사람들의 인문학에 대한 이해도는 좀 남다르면서 정곡을 찌르고 있었는데, 우리는 인문학을 바라볼 때 교양의 개념이 아닌, 학자적인 시각에서 파고들어 공부해야만 깨우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따라서 인문학에 대해 알고 있다면 깊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폭은 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 또한 전공 분야가 인문학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에 대해 전무한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에 대한 갈급함이 일수밖에 없었고, 이것저것 잡식성처럼 읽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지대얕>을 통해 어느 정도 해갈을 할 수 있었지만, 좀 더 앍고 싶었던 마음이 크던 차에 <시민의 교양>은 내게 단비와 같았다.

 

어떤 나라나, 누구나 정치든 경제이든 또 교육의 문제이든 간에 한 가지 메커니즘만으로 설명하고 답을 도출해 내기는 힘들다. 또한 정답으로 알고 정책을 펴고 있지만 그로인한 반대급부는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있다.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어떤 선택을 할 때 최고의 가치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인가. 그리고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대다수에게 이익을 주며 만족을 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불만이 최소한으로 줄어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책은 그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는 책은 절대 아니다. 이 책에서는 주는 해결책이나 대안이 너무 큰 틀에서 이야기하고 있어서 인상일 찌푸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곁가지를 쳐 내고 큰 틀을 제공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알아야 할 것을 제대로 알 수 있었고 '생각해야 될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아니 아마도 경제학자나 교육학자 입장에서는 썩 만족할 만한 책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물론, 전공자한테도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전공을 원하지도 않을 뿐더러 학문적인 고찰을 원하지도 않기 때문에 나처럼 인문학에 갈증을 느끼고 있던 독자들이라면 환영할 만하다.

 

직접세와 간접세, 시장의 자유를 놓아둘 것인가, 정부가 개입할 것인가. 야경 국가와 복지 국가.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 그로 인한 파생문제, 직업의 4가지 종류, 진리를 어디에서 찾느냐는 관점에 따른 객관주의 인식론과 주관주의 인식론 등.

 

이 모든 것들을 따라가면, 어느 정도 갈증에 대한 해갈을 할 수가 있다. 특히나 정책 입안자들이 그토록 골머리를 썩고 있는지 이해가 될 정도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추구해야 할 이상향은 정해져 있지만 말이다. 나도 한번쯤 대통령이 되어서 정책을 결정하는 어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시민들 속에 암묵적으로 깔린 담론을 저격했다고 생각하는데 첫 번째, 참고 참으며 정부의 정책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던 사람들이 폭발하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두 번째, 더불어 부동의 시민으로 특정 계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을 막고자, 이제는 각자의 주도적인 생각으로 사회를 바꾸는데 일조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이 책이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뭐든, 주체적으로 바라보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좋은 거니까.

 

다음엔 어떤 것으로 시민들의 인문학을 깨치게 도와줄지 기대된다. <지대얕>과 <시민의 교양>을 읽었으면 이제 어느정도 교양을 쌓고 어느 누구와도 골고루 대화할 수 있게 된걸까.

 

 

존 번연의 고전 <천로역정>은 크리스찬이 성경을 읽고 천성문을 향해 가는 고단한 길을 그리는 작품으로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크리스찬이 아니더라도 초등학생이라면 한번 쯤 읽어봤을 법한 책이다. 이번에 접하게 된 <악인 씨의 삶과 죽음>은 천로역정과 완벽히 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악인씨의 삶을 그리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자신이 체험한 것만을 위주로 쓰려고 노력했다는 존 번연의 말처럼, 악인씨의 삶이, 그의 사고 방식이나 행동들이 현대인의 삶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그가 직접적인 살인 흉기를 들고 위협하는 아니지만 크리스찬의 시각에서 철저하게 악하므로 그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두명의 화자(현인씨, 경청씨)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악인 씨는 철저히 거짓과 악으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이다. 어렸을 적부터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하고, 다른사람을 저주했으며, 도둑질을 일삼았다. 그가 저지른 죄악이 또 무엇이 있는지 묻는다면, 너무 많기 때문에 그가 탐닉하지 않은 죄악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 나을 겁니다. (p. 59)라고 할 정도로 저지르지 않은 죄가 무엇인지, 선한 일을 한 것이 있는지 손에 꼽아보는 것이 오히려 나을 정도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를 되돌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워낙에 악 자체로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되돌릴 수 있는 그 무엇도 없다.

 

그의 성품으로 당연히 주일을 견딜 수 없어했으며 적대시 했고, 악행들을 하는 것에 주저함도 없었고 그는 무엇보다도 온갖 죄를 짓는 것을 명예로운 배지로 여겼다. (p. 66)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게 악한 화에 미치는 것도 모자라 아버지에게 악한 화가 미쳐 빨리 죽기를 바라고, 아버지의 돈을 탐내 거짓으로 선한 아들인척 한다. 경건한 스승 밑에서 오히려 불량배들과 어울리고 여인에게 음란한 눈빛을 주고, 육신의 쾌락을 쫒는다. 경건한 아내를 얻기위해 위선으로 가장하고, 결혼 후에는 자신의 거짓 탈을 벗어 던짐으로 아내를 핍박한다. 그의 자녀들도 올바르게 자라지 못하고, 재혼으로 얻게된 아내는 그와 못지않은 악인의 삶을 걷는다. 그리하여 결국 온갖 질병에 걸려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악인씨의 삶에 대해 풀어가고 있는데, 현인씨와 경청씨라는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악인씨의 삶이 얼마나 악한지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악인씨의 삶 중간 중간 비슷한 삶을 펼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줌으로써 악인씨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도록 도와준다. '선'이란 무엇인지 모르고, 올바른 길은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니기 때문에 악인씨는 철저하게 나쁜 생각과 행동으로 '악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악인씨가 걸어가는 길은 현대인이 걸어가는 길과 사뭇 닮은 모습을 보인다. 다른 점이라면 한 사람이 악인씨의 모든 악행을 다 저지르지 않는다는 점일까.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조차 아깝지만, 악인씨의 재능(?)이라면 그 모든 것들을 그 혼자 저지르는 큰 배포의 사나이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면, 현대인 중에 거짓의 위선을 떨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드러나지 않지만,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술의 방탕함과 그 해악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 술에 빠져 살고 있는 크리스찬들이 얼마나 많은가.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혹은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내 거는 위선과 치기는 어느덧 '남자다움'으로 포장된지 오래다. 아버지의 돈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거짓으로 아버지를 대하고 심지어 위법을 저지르기까지 한다. 이처럼 악인씨의 악행을 통해 오히려 현재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천국을 '좁은문'이라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천로역정>의 크리스천이 천성문을 향해 가는 길을 결코 녹록한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악인씨처럼 주위의 유혹과 악에 빠져 어느새 그와 비슷한 삶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다만, 우리는 악인씨처럼 태어날 때부터 악으로 태어나지 않았고 또한 우리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제대로 인식하고 있으며 유혹에 굴하지 않으려 노력며고, 죄를 회개하며 산다는 점일 것이다. 그 길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좁은문'을 향해 한걸음 나아가면서 말이다.

 

<악인씨의 삶과 죽음>은 판타지가 아닌, 오히려 보통의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될 정도 우리와 닮은 악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그를 보면서 우리를 보게되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크리스찬이라면 한번쯤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나 자신은 굉장히 긍정적이고 밝아서 10년 후의 모습을 고민하며 양미간에 주름 잡는 사람은 아니다. 적어도 5년 후는 생각할 지라도. 후회를 하지만 번민으로 인해 밤을 지새우는 성격은 아니고.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진지한 사람이다. 상처 받을 줄 알면서 사람 말을 곧이 곧대로 믿기 때문에 유머스럽다는 이야기는 잘 듣지 못한다. 그냥 친근한 보통의 느낌을 가진 아줌마니까.

 

여기 나와 사뭇 닮은 사람이 있다.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마케팅 심리학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유머 연구소 창립자인 피터 맥그로그가 학문으로, 과학으로 유머를 풀어보고자 노력한다. 아이러니한 것이 그는 ‘유머를 공부하고 체험하고 정진하고자 하는 학자’라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한사람, 기자로서 자신의 올바른 사명으로 외길을 걸어온 것에 대한 부담감으로 다른 기사거리를 찾아 보던 조엘 워너가 있다. 그는 피터의 연구에 호기심을 느껴 둘이 온 세계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유머란 어떤 때에 나오는지 과학적 토대나 이론 위에 쌓을 수 있는지 실험하며 고생한 수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놓은 것이 바로 <나는 세계일주로 유머를 배웠다>이다.

 

개그 프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티비에서 나오는 개그 프로가 어떤 게 있으며 최근 인지도를 자랑하는 개그맨이 누구인지도 잘 모른다. 단 하나 보는 것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전부라 그 부분에서는 매우 취약하다. 하지만 개그가, 유머가 자연스럽게 베어진 사람들과 그들의 리액션은 분명 실생활에 활력소가 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경우는 특히 대선 주자들의 대중연설만 들어보더라도 일단, 분위기를 돋울 겸 유머 하나를 날리고 시작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학자로서 피터 맥그로가 추구하는 유머에 대한 이해와 학문적 정리가 가능하다면 유머에 약한 일반인도 부단한 연습을 통해 어느 선까지는 능력을 고취시킬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가 학문적으로 내세운 '양성위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과감하게도 관객들의 반응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덴버의 스콰이어에서 마이크를 잡아 스탠드업 코메디를 펼쳤다. 자신의 이론을 확인하기 위한 무대였으나 결과는 가슴 아팠다. 양성화 위반 이론에 대한 설명을 읽을 때에는 나도 역시 고개를 끄덕였으나 문제는 모든 유머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왜 실패했을까. 자신의 이론을 실험하며 세계를 돌아다니며 유머 코드가 무엇인지 깨우치기 위해 찾아 나섰다.

 

 

 

이 둘은 각지를 돌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하고 우간다에서는 아슬아슬한 상황에 몰리기도 하고 배가 뒤집히는 등 죽을 뻔한 위기도 맞이하면서 어쩌면 온갖 고초를 겪는다. 그러다가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는 병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며, 코메디언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각 나라별로 유머를 주는 요소는 다르지만 양성위반론의 절반을 차지하는 위반이라는 개념을 전 세계에서 발견한다. 무엇보다 양성과 위반 사이에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사실 까지도. 유머를 주는 웃음은 병을, 암을 치료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치료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긍정적인 측면은 아주 중요한 것 까지도. 이러한 각고의 노력과 실험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세계 최대 코미디 축제인 몬트리올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Just fot Laughs)’ 무대에 감히 과학의 이름으로 오른다. 결과는? 역시 '양성위반 이론'에 더하기 타이밍이 부족했던 것일까. 하지만 고무적인 것은 "무대 위의 피트는 교수가 아니라 코미디언이었다니까요!"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고, 기자인 조엘에게는 웃음의 레파토리가 생겼고 '삶에 웃을 거리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닐까.

 

양성화 위반 이론으로 대처한다면 이들이 주장하는 대로 인생에서 제대로 된 펀치라인을 발견할 수 있겠지만 혹시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약간은 어그러진 상황을 유머를 가지고 승화할 수 있게 되며 삶을 웃음으로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인생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농담처럼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기 전 조금은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과 같은 것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노력이 가상한 과학자와 그와 동행하며 온갖 고난(?)을 겪은 기자의 수기였다. 하지만 읽은 후 나도 조엘이나 피터박사처럼 삶을 바라보는 데 여유가 생겼기에 좌충우돌 그들의 과학적 탐구, 그들의 도전기가 썩 마음에 든다. 그리고 언젠가 그에 대한 해법이 연구되어 ‘마술’처럼 김이 새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웃음을 통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고나 할까. 이들이 언젠가는 자신들의 과학적 이론으로 유머가 성공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