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윤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다. 읽고 난 후 느낀 소감은 작가만의 색깔도 진하고, 대중과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난해한 소설이라는 것이다. 색깔만 강조하다보니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것.

 

총 9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는데 처음 <초능력 소녀>를 읽었을 때에는 이 박정윤 작가가 페미니스트인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총 9편을 다 읽다보니 그렇진 않았지만 한 곳에 편중되고 파헤치고, 파헤치고, 또 파헤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소녀’를 통해 사회를 고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초능력 소녀>에서 등장하는 것이 결합쌍둥이, 즉 샴 쌍둥이다. 사이좋은 부부에게 뱃속에 애가 생기는데 결합쌍둥이 판정을 받는다. 17주차에 그들은 서로 분리되고 일란성 쌍둥이가 된다. 그렇게 엄마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닮은꼴로 수와 화가 태어나고, 엄마는 아이를 낳고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 버렸다며 일을 핑계로 밖으로 나돈다. 물론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아빠도 함께. 따라서 그 둘은 직접적이든, 감정적이든 서로를 의지하며 지낸다. 그날이 있기 전까지 말이다. 그날 쌍둥이 중 수가 밖에서 ‘매독’으로 추정되는 남자에게 유린당하고, 죽는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분리되었을 때 생긴 등의 상처를 맞닿아 있으면 서로 서로 모든 것이 전해지는 능력이다. 화는 수가 죽기 전 등을 맞닿게 하여 수가 가지고 있는 독을 넘겨받고, 수를 죽게 만든 남자를 찾아내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수는 수많은 남자와 관계를 맺는다.

 

<목공소녀>는 목공소에서 일하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사랑을 받으며 평범하고 사랑받으며 자랐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상어 같은 외삼촌에 의해 유린당하고 진이는 정신적 성장이 16살에 멈춰버렸기에 15년간 늘 16살이다. 재개발로 목공소를 넘기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상어는 자신에게 맡기라며 엄마를 협박하며 문서를 달라고 한다. 문서를 찾아 진이에게 로다시 향하자 목공소에 근무하는 불법 체류자자 달은 진이를 위해 상어를 헤친다.

 

뿐만 아니라 <트레일러 소녀>, <기차가 지나간다> 등 전부 주인공이 소녀 같지 않은 소녀다.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소녀들이 전부 상처받고 마음이나 정신, 그리고 육체적인 훼손을 당한 소녀라는 점이다. 엄마의 불륜과 자살로, 혹은 이모 조카 사이 같으면서 언니 동생사이라서, 끊임없이 죽으려고 애쓰는 동생을 돌보면서 죽음과 무덤놀이를 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주체적으로 초등학교 동창에게 약물을 팔거나, 유린당한 자신을 보았으면서, 알았으면서 보지 못한척 장님 놀이를 하는 엄마의 협압약과 당뇨약을 버리고, 목공소 집문서를 태우고, 남자들과 관계를 맺어 독을 퍼트리는 등 오히려 자신이 소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고 그것을 이용하는 식으로 말이다.

 

소녀이기에 아직은 순수를 간직해야 하고, 어른들도 그들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함에도 그것을 파괴하고, 외면하고, 방치하면서 소녀들은 소녀 속에 숨으면서 보통의 어른보다 더 파괴적이 되고, 더 은밀해지고, 더 치밀해지며, 더 우울해진다. 그리고 소녀의 가면을 유지한 채로 섬뜩하지만 또렷한 사고와 주체성과 자아를 가지고 모든 일들을 계획한다. 그것이 파국으로 향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전체적인 글의 분위기가 어둡고, 침체되고, 우울하기에 읽고선 한숨이 나온다. 이런 글을 읽으면 끝도 없이 침잠 되서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이처럼 ‘소녀’란 작고 연약해서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그들이기에, 그들의 연약함에 오는 고통을 기묘한 방법으로, 그러나 예리하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여성시대>라는 라디오 프로는 <싱글벙글 쇼>처럼 MBC 대표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아마 이 프로를 모르는 청취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여자라면 특히. 나도 차를 타고 가면 종종 듣게 되지만 인생사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같이 동참하게 되면서 박장대소하면서 깔깔대기도 하고, 울화통이 터지기도 하고,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기도 해서 곤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방송작가 30년에 <여성시대>작가만 22년째 맡고 있는 박금선씨가 책을 내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아마도, 이 책이 그동안 청취자들에게 받은 사연 중 인상 깊었던 것들을 엮어서 낸 것이 아닐까 했었다. 그래서 예전에 라디오를 통해 들었을 때처럼, 울 준비, 웃을 준비, 같이 화낼 준비를 했다. 하지만 이 책은 박금선 개인의 이야기였고, 삶이었고, 속살이더라.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더한 것도 뺀 것도 없는 50대는 되어야 바라볼 수 있는 세상에 대한 통찰, 자신의 지나온 길에 대한 격려, 사람에 대한 혹은 사람들 간의 이해가 잔잔히 녹아져 있었다. 그래서 글을 읽다보면 진한 육수처럼 인생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보다 잘 산다고, 나와 다르게 산다고, 나와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자라는 사실만으로 여자끼리는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 날이다'.(P. 27) 내 속엣 말을 친구들에게 해도 될까.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듯한데. 그러면서 내 자신이 먼저 벽을 쌓고 있지는 않을까. 박금선 작가가 겪은 우울증을 친구들에게 털어놓게 됨으로 서로 같은 부분을 공감하고 같이 토닥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문장이다.

 

 

현재 고단한가. 늘 부족하게 생각되는가. '가난을, 빚을, 어려운 환경을 너무 원망하지는 말자. 부족함과 모자람이야말로 현재의 삶을 이끄는 원동력일 수 있으니까.' (P.35)자신의 처지에 대해 만족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되돌아보면 이렇게 집중하며 삶을 살아가게 되는 원동력 또한 결핍 때문일 수도 있다는 박금선 작가의 조심스런 이야기가, 세상을 달리 보게 만드는 말의 힘인 것 같다.

 

여자는 어느 누구에게나 예뻐 보이고 싶고, 남자는 10대든, 80대든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외모가 아닌 것을 안다. 옛말에, 얼굴 뜯어먹고 살 것도 아니라는 말이 있다. 얼굴보다도 열정이, 자존감이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어차피 쉰 살이 넘으면 주변의 내로라하는 미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니, 그저 인내심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면 그걸로 충분하다.' (P. 55) 무척 위안이 되는 말이다. 그런 건가보다. 50에는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니까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가는 얼굴이 된다니, 저절로 미인과 나는 같은 레벨이 되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 듣기 좋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직업을 고른다. 밥 벌어 먹고 살기 어렵다거나 내가 그만큼의 능력이 모자란다거나, 정작 내가 좋아하는 일은 뒤로 제껴 놓은 채다. 하지만 나도 이정도 나이 먹으니 알겠다. 못 이룬 꿈을 위해서 언젠가는 뛰쳐 나가게 된다는 것을. 나이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상관 없다. 언젠가 지금 있는 현실을 내버려 두고 앞뒤 구분 없이 달려가게 되더라. '인생에는 잘못해서 후회하는 일보다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이 더 많다고. 그러니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지금 바로 그 일을 시작하라고.'(P. 104) 나도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아니 어릴 때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게 놔둬라. 직업으로 삼기에는 힘들다는 말은 없다. 그냥 저질러라. 그래야 덜 후회하고 그래야 인생의 목표를 더 빨리 알게 될 테니까.

나이가 주는 이해의 폭이 달라서일까. 책을 읽다가 눈물이 핑 돈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에세이로 짧게 짧게 나와 있기 때문에 회사 다니면서 버스에 앉아서 읽기도 하고, 틈틈이 작은 시간이 주어질 때 읽었다. 특히 버스에서 읽을 때는 감정이 갑자기 변해서 당황하기도 했다. 나는 아직 박금선 작가나이가 아닌데도 왜 이다지도 이해되는 말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혹은 외면하려 했던 부분에 쓴 소리도 과감하게 하면서 말이다. 흑은 나만 쓴 소리로 느껴지는지도. 부담 없이 읽으려고 했으나 의도치 않게 내 마음을 건드려서 내겐 대박을 친 작품이 되었다.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많은 부분에 공감되고 또한 나를 어루만져준 작품. 이런 글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많은 민족 중에 역사의 질곡의 깊이가 남다른 민족을 꼽는다면 대부분 유대인을 꼽을 것이다. 몇 천 년 동안 유리방황한 것도 모자라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대량 학살을 당했으니 말이다. 히틀러의 광기는 인종 청소라는 명목 하에 수많은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에 가두고 홀로코스트를 단행하는 것으로 표출되었다. 그 곳에서 살아남았던 몇 안 되는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쉰들러의 명단에 올랐던 리언 레이슨 또한 <나무 위의 상자>에서 밝혔듯이 키를 속이고 꼭 필요한 사람으로 둔갑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증언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이 작품은 오펜바흐의 미발표곡 오페레타를 소재로 가져와 미스터리 스릴러로 만들었지만, 같은 독일인으로 나치가 자행했던 죄를 낱낱이 드러내면서 자신을 낳은 윗세대의 과오를 밝히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깔끔하고 단정한 삶을 살고 있는 70대 노인 호프만씨는 64년간 잊으려 애쓴 기억이 있다. 12살의 어느 날 저녁, 엄마는 자신들은 친척집에 가야된다는 이야기로 그를 이웃집에 맡긴다. 이웃집에서 본 한밤의 풍경은 엄마의 이야기와는 다른 것이었다. 제복 입은 사람이 부모를 끌고 가며 아버지를 총의 개머리판으로 내리치는 모습. 충격으로 오줌까지 지렸던 그 장면은 64년 내내 잊으려 했으나 잊지 못한 기억이었다.

 

프랑스에서 소시민으로 평범하게 살고 있는 호프만은 생방송으로 발레리 여기자가 진행하는 프로에 출연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60년이 넘도록 밝히지 않았던 자신의 신분을 밝히게 되고 그것은 어느 노부인과 만남을 만든다. 노부인은 그에게 60년 동안 미개봉 된 의문의 서류봉투를 전하는데, 그 안에는 오펜바흐의 미발표 곡 오페레타의 친필 악보가 들어있었다. 이 또한 방송을 타면서 악보에 대해 빗발치는 문의와 저작권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달린다. 발레리는 이것이 크든 작든 호프만의 인생을 바꿔 놓을 것이라며 힘들어하는 호프만을 대신해 자신이 저작권을 협의하겠노라고 독일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만나기로 했던 마인강 선상 레스토랑에서 발레리는 사라지고 5명이 참혹하게 살해되었고 이 사건을 마탈러 형사가 추적하게 되면서 호프만과 발레리와 천문학적 가치의 악보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호프만은 그 악보로 인해 발레리가 납치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마음이 불편해지고, 자신의 부인과 다름없는 블랑슈와 함께 독일로 향한다. 미공개 악보의 가치로 살인사건이 일어난 줄 알았던 마탈러 형사는 악보 속의 암호를 풀게 되고 그것이 추악한 역사의 진실이며, 인류를 위한 업적일지 아니면 자신의 의사로서 이루고픈 소망일지 그게 뭐든, 결국 인간의 탐욕과 악행을 기록한 호프만 아버지의 일기에 고스란히 보여준다.

 

얀 제거스 작가는 독일인이라고 한다. 독일인이 같은 독일인을 고발하며 지난 과오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기에 작가는 자신의 특기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글을 풀어간다. 우리는 독일과 다른 피해자의 입장인 나라다. 유대인과 비슷하게 식민지를 겪었으며 마루타가 되기도 했고, 위안부로 팔려갔으며 조선인이란 이유로 떼죽음을 당해야 했다. 하지만 이를 자행한 나라는 자신의 잘못이 미온적이다. 그들은 오히려 거짓으로 유네스코에 하시마 섬을 등제시켰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독일의 정치인과 독일의 지식인들과 독일의 태도와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인다. 얼마 전에 읽은 <사과를 주세요>라는 단편을 읽은 기억이 난다. 경향신문에 실린 <사과의 딜레마>를 짧게 단편으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사과의 딜레마. 사과는 일회용 컵처럼 한번 툭 뱉어 버리면 피해자의 아픔은 거기서 끝나는 것인가라는 주제였는데, 이 것은 지금도 현재 진행 중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일본과 우리나라와 결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이번 작품 <한여름 밤의 비밀>처럼 자신들, 부모세대, 그 전세대의 잘못을 드러내며 고발하고 사죄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일본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얀 제거스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역사적 아픔을 드러내면서 여러 인물들을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사나 엮여있는 사람들과 관계 등을 보이면서 현재, 그들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같이 그리고 있다. 하지만 역시 스릴러답게 흥분과 의문을 선사하면서 독자들을 이끌고 있다. 다만 중반 부분까지는 좀 느슨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후반부에는 치고 달리면서 그 모든 것들이 한곳에 집중되었는데 전반부는 집중도가 다소 흐트러져 다소 아쉬웠다. 네이버에서 검색해도 안 나왔기 때문에 오벤바흐 문학상이 뭔지 모르겠지만 역시 작가의 명성답게 인물의 디테일한 묘사가 돋보였으며 추리소설의 쫀쫀함이 더불어 역사관이 잘 드러내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