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기 전에 제목을 보고 드는 생각은 ‘아주 유쾌하고 기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상상해 보라. 일반적으로 반려동물로 키우는 개나 고양이가 아닌 평범한 범주에서 한참 벗어난 펭귄이라니. 펭귄과 이 글의 저자인 톰 미첼의 좌충우돌 고군분투기라고 상상되면서 저자의 애로사항과 아기자기한 기쁨을 맛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내가 잘못 추측했다는 듯이 서문을 지나, 책의 도입부나 넘어가는데 좀처럼 유쾌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펭귄과의 생활을 그린 부분에서는 톰의 마음에 빙의되어 기특함에, 또한 뿌듯함에 입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지만. 펭귄의 외모적인 부분을 상상하는 것이 한몫 단단히 했으며 펭귄이 톰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인간들과 위화감 없이 지내는 모습들은 일순 대견하기까지 했다.(마젤란펭귄의 특성이 모두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런 부분도 없지 않았으나 왜 이 글이 처음부터 유쾌하게 시작하지 않는지, 글 전반에 깔린 어두운 기운은 무엇인지, 펭귄의 이야기와 사뭇 엇돌며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의아했었는데, 글을 끝까지 읽게 되니 작가 톰 미첼이 어떤 의도로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 

 

공수래공수거(空手來 空手去).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리고 태어났을 때와 죽을 때 자의로,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화려한 삶을 살든,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삶을 살든 죽음 앞에선 누구나 같다. 한번 태어난 인생, 언젠가 한번은 죽는다. 그것이 삶이고, 그렇게 끝난다. 그렇게 생(生)과 사(死)는 공평하다.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 정립하게 된 어른에 대한 가치관과 결혼에 대한 생각, 남자를 고르는 법, 자녀 양육, 죽음 등은 이미 그때 어느 정도 머릿속으로 그려놓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현재 불혹의 나이에, 철이 들고(아직 안들었다는 소리를 종종 듣지만)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일말의 미련도, 후회도, 남기는 것들에 대해 내 태도는 가차 없다. 내 삶에 대한 무게와 부모님에 대한 무게는 살짝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삶이 죽음으로 끝나고 죽음을 대하는 내 태도는 20년 넘게 바뀌지 않았다. 죽음은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생명 연장에 대한 투자는 의미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것은 살아 있고 또한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남은 사람들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차피 죽을 거면 생명 연장을 위한 어떤 조치도 필요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부모님께 죄송하고 내 자식에게는 미안한 부분이지만 말이다. 물론 남편에게도. 하지만 도통 내 생각은 변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자식 문제에 있어서는 같은 잣대를 들이대지 못하는 모순 덩어리이기도 하다.

 

<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 14일>은 리사 고이치라는 전직 스탠드업 코메디언이자 미국 라디오 진행자와 죽음을 목전에 앞둔 밀리 고이치 여사의 실제 이야기이다. 신장 투석을 하지 않고서는 삶을 이어갈 수 없었던 그녀의 어머니가 투석 중지 결정을 내리고,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14일간의 기록을 적은 '밀리 고이치 여사의 작별 여행'이었다.

 

책은 리사가 그녀의 어머니와 2주간 생활했던 기록을 페이스북에 남긴 만큼, 리사의 눈을 통해서만 바라보고 있다.그녀의 어머니 밀리 여사는 1남 2녀를 두고 있으며 리사는 그녀의 막내딸이다. 그것도 오빠가 대학 다닐 때 '실수'로 갖게 된 늦둥이 막내. 엄마의 껌딱지로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던 그녀는 엄마가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지만 남자에 있어서만큼은 배운바가 없노라고 투덜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한 추억들은 그녀가 바로 설 수 있었던 데에, 또한 그녀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떤 직업을 가지든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어느 엄마도 할 수 있지만, 모든 엄마가 하지 않는 바로 그 태도 말이다.

 

따라서 그녀의 어머니 밀리 고이치여사가 리사의 외할머니처럼 더 이상 생명 연장을 위해 투석을 하지 않을 것이며,죽음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에 리사 역시 전폭적으로 엄마의 입장에 설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엄마를 이해하고 죽음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을 수 있도록. 이것은 오빠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와 비교된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의료시술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것은 '자살'과 다름없다며 종교의 신념에도 반한다는 것이다. 오빠가 종교까지 들먹이며 반대할 수 있었던 근간에는 어머니를 쉽게 놓을 수 없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한다. 그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오래도록 어머니와 함께 하고픈 마음 때문에. 

 

오빠와의 의견 대립은 장례 의복에서 다시 붉어진다. 밀리여사는 평소 옷차림대로 츄리닝을 입고 싶어 했으나 오빠는 단정한 드레스를 주장한다. 이것을 제외하면 하루하루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한다고 할 수 있다. 밀리여사를 추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배웅을 받고, 또한 리사의 직장 동료의 도움까지 받으며 '건강하고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1학년, TV 앞 마룻바닥에서 키스 자국을 만들 때 어느 날 그 자리에서 나의 엄마가 누워 죽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p, 57)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는 첫째, 생명연장을 위한 어떤 의료적 행위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서약서에 사인도 하고 둘째, 의사를 통해 '일체의 의료행위는 없다'는 같은 말을 여러 번 듣기도 하고 셋째, 의료용 침대, 산소통, 사회 복지사, 간호사 등의 전문적 보살핌을 받는 것이다. 역시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혈압약, 당뇨약 등을 집에서 말끔히 치우며, 죽음으로 가는 길이 너무 힘들지만은 않도록 모르핀 등 진통제만 약상자에 채워진다.

 

그렇게 14일이 되어서 밀리여사는 어쩌면 죽음의 사자까지도 미리 만나 연습하며 아름답게 하늘나라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주체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고 가족들이 그 뜻에 반하지 않고 따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 아닐까 생각한다. 리사의 가족들처럼 다른 많은 가족들은 떠나려고 하는 사람의 의사를 백프로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이다. 또한 이처럼 리사와 남은 가족들도 2주간 어머니와 함께하면서 어머니를 죽음으로 보내며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나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리사의 어머니가 생명 연장을 위해 고통 속에서 의료시술을 받고 단 얼마간의 생명 연장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저 같이 있다는 위안에 그칠 뿐, 그 외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생각해봐야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내 시각과 뜻을 같이한다. 

 

떠나는 사람보다 남는 사람들의 고통이, 상실감이 더욱 크기에, 가망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병원의 한 병상을 차지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의료행위를 하며 생명을 연장시키고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 마음을 졸이다가, 마음의 준비도 못한 채 황망히 보내는 것보다 이렇게 모두 합심해서 행복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어떨까. 

 

죽음에 있어서는 결론 내리는 것이 쉽지 않다. 하물며 작은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도 늘 후회가 뒤따른다. 무엇보다 남겨진 사람들은, 떠날 사람과 조금이라도 이 세상에서 같이 있고 싶어 한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하지만 <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 14일>을 통해 행복한 죽음이란, 또한 아름다운 작별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

공과대학을 나오고 인문학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생활했기 때문에 철학과 인문학은 나에게 ‘머나먼 정글’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내 전공과 확연히 다르기도 하고, 사회생활하고 밥 벌어 먹는데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회피하려고 했었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어느 정도 차고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한지 몇 년 되지 않은 지금 오히려 인문학에 대한 갈급함이 늘게 되었다. 한국 사회가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표준화 교육으로 인문학을 등한시하는 풍토 또한 단단한 한 몫을 했으리라는 판단이다. 어쩌면 이것은 내 무지를 외부로 돌리기 위한 책임 유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 

따라서 21세기북스에서 인문학 서적이 나오면 너무 반갑다. 마치 나를 위해 계속 출간하는 듯하다. 이번에 만나게 된 <세계 1%의 철학 수업>은 미안하지만, 툭 터놓고 이야기해서 철학 책이 아니다. '글로벌 시대에 맞춰 살아가기 위한 일종의 적응 훈련 트레이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세계 1%가 되기 위한 트레이닝이다. 그도 그럴 밖에 없는 것이 저자 후쿠하라 마사히로는 전형적인 일본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게이오가주쿠대학을 졸업해 도쿄미쓰비시 은행에 입사, 그 후 프랑스로 건너가 유럽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에서 MBA를 취득, 파리경영대학원 그랑제콜 HEC(Grandes Ecoles HEC)를 졸업,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바클레이즈 글로벌 인베스터스(Barclays Global Investors)로 자리를 옮겨 5년 뒤 서른다섯의 나이에 최연소 임원에 오른 대단한 사람이었다.

​ 

그가 전형적인 일본인으로 일본 정통교육을 받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일본과 다른 방식의 교육으로 힘든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그것을 통해 ‘무엇이 일본 교육과 프랑스 교육이 다른가’를 사유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 1%의 철학수업>이 탄생된 배경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후쿠하라 마사히로의 이번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기존에 내가 생각하고 있던 부분과 교차하는 것이 많아서 반가웠다. 특히 한국과 일본이 비슷하게 가르치는 주입식 암기 시스템이 주요 문제인데, 이 폐단으로 인해 학생들이 생각이란 걸 해내서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는 심각하다고 생각되었다. 프랑스 초등학교 문제에서 나왔다는 ‘2차 세계대전에 대해 설명하시오’라는 문제를 보며 솔직히 나도 여전히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었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내 자녀 또한 이 문제를 보여줬을 때 암기식의 모법 답만 답할 가능성을 생각했을 때, 앞날이 어두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사실, 객관적인 정답이 있다손 치더라도 글로벌 시대에는 자신의 논리적인 생각을 펼치지 않으면 그 사람의 말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능력을 키우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하는 힘, 사유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방법론인 부분에서 저자는 ‘책 읽기’를 지향하고 있는데 아마 이것이 후쿠하라 마사히로의 핵심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경험 또한 중요하지만 모든 경험을 직접 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책 읽기야말로 죽은 철학자와 대화하는 방법이고, 철학적 사고를 통해 비소로 알게 되는 경지(지식 + 철학적 사고)에 이른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었다. 

​ 

그리고 중요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번째 부분은 교양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었다. ‘크리티컬 씽킹’ 즉, 비판적 사고도 철학적 사고의 중요한 요소로써 3가지를 체크해봐야 한다. 첫째 전제를 의심할 것, 둘째 자신의 해석을 통해 생각할 것, 셋째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것. 의심(질문)이야말로 철학적 사고의 기본으로 내 생각도 의심(질문)하고 생각도 철학적 사고로 의심(질문)해 봄으로써 교양에 이르는 최종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 이 책의 핵심은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었다. ‘문화적 관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글로벌 인재가 되느냐 안되느냐는 관용의 범위에 달려 있다.’(p. 141) 내가 자라온 나라와 타국이 다르다는 것을, 문화도 환경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인정 혹은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 이것이야 말로 글로벌 사회에 대한 자각의 첫 번째일 것이다. 

​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급속한 산업화로 동남아시아에 비해 우수한 경제력을 가진다. 이것은 흑백처럼 명암이 갈린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다. 후쿠하마 마사히로 교수가 바라보는 일본에 대한 시각도 나와 같은 것이었다. ‘내가 도쿄은행에 입사한 1990년대 초반 일본은 지식을 근간으로 하는 교육을 철저히 한 결과로서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들을 추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무렵부터 지식 위주의 교육으로는 더 이상 미래의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됐다.’ (p. 109) 

​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 반열에 발맞추기 위해서 표준화 교육으로 자녀들을 양육하며 같은 잣대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있다. 사람마다 ‘다름’을, ‘다양성’을 끄집어내지 않은 평준화, 표준화 교육. 이것이 교육의 최고 목표인 것 마냥 달려온 것이 현실이었고, 이제는 어느 정도 선진국과 비슷한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가슴 아프다. 리더가 아닌, 조직원의 일원으로만 만족해야 하는 현실이 된 것이다. 또한 조직의 일원으로 살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지 못해, 세계 시장에서 적응하지 못한 채 도태되어 도로 한국행을 택한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사람 하나하나는 각자 다르며, 다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 잃어버린 20년 아니 우리나라에게는 80년을 회복하며 더 나아가 훌륭한 리더를 많이 양산해 내는 선진국이 될 것이다. 

​ 

세계 속에 1%로 살아가기, 철학적 사고를 생활화하기, 정답 없는 질문에 나만의 생각을 담기, 다양성을 인정하기, 정답을 의심하기, 내가 영어를 잘 못하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기, 책 읽기, 질문하기.

​ 

세계에서 1%로 살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