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표지로 관심을 가졌다. 카메라 프레임 안에 항구의 실루엣을 담았다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분명 미스테리 추리소설을 읽었는데 왠지 로맨스 소설도 같이 읽은 느낌이다. 와, 마음이 아프네.

 

사람 손을 타지 않는 폐허만을 피사체로 삼아, '방치'된 채 허물어져 가고 '낡음'에서 오히려 그 가치를 사진으로 담아내는 카메라맨이라는 직업에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다쓰미 쇼이치. 그의 직업이 주는 기쁨을 찾고자 오늘도 한적한 어촌 마을을 찾게 된다. 새벽녘 5년전 화재로 타버린 호텔, 다카하마의 실루엣을 카메라에 담지만 완벽한 작품을 담지 못했다는 생각에 다음을 기약하고, 호텔 내부를 탐방하던 중 여자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의 신원은 그 지역에서 나름대로 잘 알려진 저널리스트이자 다카하마 마을에 들어설 예정인 '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모임에서 중추적인 활동하고 있는 아이자와 다에코라는 여성으로 밝혀진다. 그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났다는 사람은 다쓰미가 연인관계로 발전하고 싶은 여자이면서 기자인 우에하라 후지코. 후지코를 통해 아이자와가 인터뷰 도중 누군가와 만날 약속을 했다는 힌트를 얻게 된다.

 

 

죽은 여성저널리스트 아이자와의 전 남편이자 신문기자인 안비루는 아내의 죽음에 주위 시선에는 아랑곳 않고 애달파하고,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여기저기 뛰어 다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쓰미는 자신이 한때, 주위의 오해로 카메라맨으로서 잠시 떠나 탐정사무소에서 일했던 경험과 또한 죽은 아이자와의 현 애인이자 화재로 폐허가 된 다카하마의 주인인 스에쓰구의 요청으로 경찰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안비루와 공조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알고 보면 누구네 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있으며 시시콜콜한 가정사까지 알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하고, 슬플 때 같이 위로를 나눌 수 있는 작고 폐쇄된 어촌마을. 이곳은 도로가 들어서기 전에는 그나마 사람들이 간혹 어패류를 사기도 하면서 왕래가 있었으나 도로가 들어섬으로 인해 그나마 뜸했던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긴 이력이 있다. 주민 합의 없이, 또한 태반이 반대하는 것에 아랑곳없이 진행되는 공항 건설에 어촌 주민들은 뒷돈과 이권으로 찬성하는 쪽과 자연파괴라는 측면과 도로개발로 가뜩이나 외면 받은 어촌마을이기에 공항건설로 더욱 악화일로를 걷는다며 반대하는 쪽으로 팽팽하게 맞선다.

 

 

무엇보다 다쓰미가 여자로써 바라보고 있는 후지코 역시 아이자와가 죽었던 호텔에서 추락하여 중상을 입게 되자 본격적으로 이 사건에 발 벗고 나서게 된다. 왜 아이자와 다에코는 죽어야 했으며, 누가 후지코를 해코지한 것일까. 그저 공항개발 이권만이 전부일까.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는 것 같은 다카하마 호텔의 화재가 이 사건들과 정말 관련이 있는 걸까.

 

 

표면적으로는 도로개발이라는 단맛을 맛본 공항찬성파와 자연파괴를 막자는 반대파의 대립으로 보인다. 찬성파가 원하는 것은 개발에 따른 이권과 뒷돈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끝까지 읽다보면 그것은 공항개발이라는 겉치레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독자들에게 의도한 대로 가노 료이치 작가의 한수에 완벽히 졌다고 할 수 있다. 작가의 길 안내대로 우리는 착실하게 쫓아가면서,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고 친근한 지역 주민이었던 그들이 어떻게 등을 돌리는지 또 어떻게 대립하는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반목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틈을 파고들려고 노력한다. 호텔 다카하마의 원 주인 이종원의 아들 스에쓰구가 어떻게 어촌마을을 지키고 행동하는지 날카롭게(?) 읽어나간다. 그러나 그 반대파와 일촉즉발의 대립은 점점 커져가고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듯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수면 아래에 있는 더 큰 진실을 감추고 혹은 차지하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을 때, 처음부터 자주 등장해서 뭔가 미심쩍었으나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름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게 된다. 사실, 나도 처음 이 작품을 시작했을 때 온전히 공항 이권에 관련된 것이라 단정했기 때문에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글이 종반을 달려가는데도 실체의 그림자조차 알 수 없었던 이유는 온전히 그것이리라.

 

 

주인공 다쓰미 쇼이치의 가정사가 드러나는데, 그가 사람을 대할 때, 다가가지 못하며 관계를 맺는 것에 버거워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연인을 만들고 온전한 가정을 만드는데 걸림돌이 되는 근원적인 이유였다. 호텔에서 추락해 부상당한 후지코와 '발전적인'관계를 이어나갈 수 없었던 이유가 후지코의 마음의 상처가 이유이기는 했지만, 그의 가정사로 인한 감정적 정체와 불안도 한 몫 하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사건을 파헤치고 분석하며 한 발짝 떨어진 상태에서 사람을 관찰하며 진실을 규명하는데 도움은 되겠지만 깊이 있는 인간 관계를 맺는 데에는 방해요소가 되는 것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글의 흐름이 다소 잔잔하게 흘러가는 것 같은 기분은 그의 이런 태도와 관점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뛰어난 추리력으로 사건을 파헤치면서도 카메라맨을 고집하는 이유, 더군다나 아름다운 것들을 찍을 때보다 다 쓰러져가는, 이제는 사람의 자취가 끊어진 폐허만을 고집하며 대자연과 합일을 이루는 것을 담아내는 모습을 볼 때, 그가 자연과 동화되는 폐허를 보듯 자신도 사람들과 동화되어가며 살아가고픈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역시 끝까지 자신의 마음을 후지코에게 피력하지 못하는 다쓰미를 보며 안타까움에 한숨만 나왔다. 이 글을 읽는 재미가 하드보일드한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도 있겠지만, 더하기 다쓰미의 잔잔한 마음과 미력한 사랑이야기도 있으니까 말이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미스터리 소설이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가노 료이치 작가의 <창백한 잠>도 구성 면에서나 볼거리 면에서 다양하기도 하지만 주인공의 사랑 때문에 이렇게 가슴 아프기는 처음인 작품이었다.

 

얼마 전에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에서 리뷰 피드백단으로 활동했을 때, 북유럽 신화 서평을 읽게 되었다. 결론은 북유럽 신화는 꼭 읽어야 되는 책이구나, 깊은 깨우침을 얻었다는 것이다. 뭐지? 뭔데 이렇게 서평만으로도 재미있어? 정말 재밌잖아, 라는 감탄을 하면서 말이다. 물론,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고 또한 판타지 소설에서 차용하는 신화적인 스케일이나 캐릭터는 많기는 하다. 그래서 더 친근감 있게 다가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리스 로마신화>보다 더 역동적인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제대로 읽게 된 <북유럽 신화: 바이킹의 신들>은 기대감을 100%, 아니 200% 충족시켜주었다고 감히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다. 혹시 북유럽 신화도 읽어 보셨나요? 꼭 읽어보세요. 후회하지 않으실꺼에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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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 세계관 아니, 우주론을 보면 세계수를 중심으로 각자 종족들이 사는 영역(?) 혹은 세상이 나뉘어진다. 태초에 불타는 얼음과 살을 에는 듯 한 불꽃으로 생명이 시작된 것이 이미르, 서리 거인이다. 서리거인을 통해 한 남자와 여자가 자라기도 했지만 아우둠라라는 암소도 태어난다. 암소가 얼음을 핥으니 사람이 되고 또 자식을 낳고 그 자식 베스틀라가 세 아들을 낳았다는데 그들이 바로 오딘, 빌리, 베이다. 이들 3인방은 서리거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죽였다는 시크한 이유를 남발하면서 세상을 정리하고 만들어간다. 이리해서 에시르 신족이 사는 아스가르드를 중심으로 거인 족이 사는 세계, 난장이들이 사는 세계, 인간들이 사는 세계, 또한 로키가 외부에서 낳은 아이 3명 중 헬이 지배하는 세상과, 요르문간드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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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신화의 특징이라면 아무래도 신과 인간과의 깊이 있는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수시로 인간을 탐하는 제우스를 중심으로 12신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포진해 있지만, 북유럽 신화의 특징이라면 신들의 이야기와 거인들의 이야기가 많다는 점이다. 오딘을 제외하고 신들도 자유자제로 변신한다기 보다 변장 가면이 있어야만 가능할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특히나 로키가 장난치기 위해서 변장하기도 하지만, 또한 일을 잔뜩 벌려 놓고 수습하기 위해 다시 변장가면을 빌려서 수습하는 모습들을 보며 신들도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젊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둔의 청춘의 사과가 있어야만 가능했기 때문에, 이둔이 거인에게 납치되었을 당시에는 최고의 미를 자랑하는 프레이야까지 머리칼이 다 빠지고 쭈글쭈글해져 추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어서 결국, 로키에게 놀림감까지 되었다는 것이 새롭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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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북유럽 신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신이 오딘, 토르, 로키가 아닐까 한다. 로키는 위에도 잠시 언급한대로 장난과 짓궂음으로 똘똘 뭉친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 장난이 심해져 오히려 거인들보다 위험한 존재가 된다. 눈먼 호딘의 손에 겨우살이를 안겨주어 오딘의 아들 발더를 죽음으로 몰고가고, 그의 세 자녀등과 라그라로크를 발발하게 한 장본인이기에 더 말해 무엇할까. 어쩌면 북유럽 신화의 이야기 태반이 로키가 없으면 진행되지 않을 정도라고 생각된다.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존재, 로키가 내게는 굉장히 인상적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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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딘이야 워낙에 12신을 아우르는 인물이었고 지혜를 얻기 위해 눈까지 잃었다. 또한 태초부터 존재한 이그드라실 나무의 뿌리에 대해 알기위해 아흐레 동안 거꾸로 매달리는 댓가를 치르고서야 룬 문자에 대해 아는 유일한 신이 되었다. 오딘의 지혜와 시에 대한 사랑이 어찌나 큰지 어떤 험난한 과정이 오더라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또 빼앗겼던 것을 되찾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도 아끼지 않는 인물로 묘사된다. 최고의 집착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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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토르>를 보지 않아서 어떻게 그려지는지 모르겠지만 토르 역시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힘의 상징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단순하고 순진하고 좀, 아둔한 인물로 묘사되었다. 로키의 장난으로 토르의 아내 지프의 머리를 싹둑 잘랐을 때, 당연하겠지만 토르가 로키를 사정없이 집어던진다던지, 그의 상징인 망치를 도둑맞은 후 되찾기 위해 체면도 버리고 여장을 하기도 한다. 거인과 내기에서 졌다며 우울해하며 그들 곁을 떠나지만 실은 거인의 마법으로 힘을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듣고 화가나 화풀이를 하려고 하였으나 이 모든 것도 감쪽같이 속은 것이라는 장면에서 웃음이 나왔다. 풍요의 신이기도 해서 배가 고프면 데리고 다니는 염소를 잡아먹고 뼈만 잘 추스르면 다시 본래의 염소로 둔갑하는데, 어떤 배고픈 소녀 거인이 다리의 척수를 먹어서 그 염소 다리 하나가 못쓰게 되어 버럭 화를 낼 수밖에 없었던 토르. 그러나 또 애처로운 그들을 보자 쉽게 마음 풀어버리던 토르. 정말 단순하기 그지없는 귀여운 캐릭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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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세계가 창조되고 각 세계 속에서 다른 종족까지도 사랑하며, 자신들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사랑 앞에서는 무기력하기도 하고, 한번 약속한 바는 무조건 지켜야 하기 때문에 고민 많았던 그들의 모습들은 기존에 알고 있던 신화 속 인물들과는 다르게 다가왔기에 무척 재미있게 느껴졌다. 우리나라에도 신화가 있지만 좀 단순하기 때문에 다양한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로서는 심심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북유럽 신화 속 다양한 인물들을 만남으로 해소되지 못했던 판타지스러운 신화 이야기가 한꺼번에 해소되는 기분을 맛보게 될 것이다.

 

낮은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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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으로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고여들 네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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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벅 주고 싶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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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사랑은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내게 좋은 것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게 해가 되는 것이라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게 나의 자세를 낮추는 것이지요. (p.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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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단순한 논리, 그러나 쉽지 않은 마음. 내가 ​주었으니 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사람이기 때문에 생기는 마음이 아닐까 한다. 사물에 대한 애착도, 동물에 대한 사랑도 어떤 가치척도를 내세우지 않는다. 다만 사람에 대한 것만 예외사항일 뿐. 준 만큼 돌려받지 못한다고 애달파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도 낮은 곳에서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더이상 아파하지도 않을것 같다.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더욱 깊게 더욱 넓게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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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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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오래된 우물일수록

컴컴하고 어둡다.

그 우물 속에서,

어둠만 길어질 것 같던 거기서

맑고 깨끗한 물이 가득 올려질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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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맑은 물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뒤채고 있었다는 것이다.

남들이 보지 않아도 속으로

열심히 물을 갈아엎고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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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고여 있는 것 같아도 사실

우물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어쩌다 한 번뿐일지라도 우물은

늘 두레박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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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함도 습관이고 나태함도 습관이야.

오늘 할 일을 내일이나 모레로 미룬다면 그것은 나태함을 넘어 '삶의 직무 유기'인 셈이지. 나태함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나부터 당장 책장 속에 쳐박혀 있는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을 꺼내 읽어야 겠어.

"배에 오르면 난 결코 시중 받는 손님이나 선장은 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수고하는 선원으로 남을 것이다."(p.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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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가 우물 뒤의 부지런함을 눈치챌 수 있었을까. ​저 시커멓고 잔잔해 보이는 물속의 힘찬 발길질을. 내면을, 뒷 모습을 이해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단 한번도 우물의 깊이를, 힘참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에 일순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관점이 바뀌고 삶의 역동성이 살아 난다는 것을 이정하 시인은 짧은 싯구 하나로 알려준다. 그리고 삶을 단단하고 분명하게 걸어가라고 알려준다. 이봐, 직무유기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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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2

​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선뜻 그대에게 다가서지 않겠습니다.

내가 그대를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대를 너무나 사랑해서임을 알아주십시오.

​

오늘따라 저렇게 별빛이 유난스런 것은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참고 또 참는

내 아픈 마음임을 헤아려 주십시오.

​

이상한 일이다. 왜 자기가 갖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은 멀리에만 있는 것일까?(p. 199)​

 

사랑을 하면 가져야만 한다. 소유하고 내 곁에 두고 서로 아끼며 평생 같은 길을 걸어가고 싶은 것. 하지만 또 사랑하면 놓아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새는 가두는 것이 아니라며, 별은 멀리서 볼 때 더 찬란히 빛나는 것이라고.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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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사이 내 자신이 점점 냉정해지고 있다고 생각되어 감성이라는 두글자는 어느덧 내게서 멀리 떠나 버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러다가 내게 어릴적 순수하고 예쁜것을 예쁘다고, 좋은 것을 좋다고 눈을 빛내며 느끼던 감정들이 다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섬짓하곤 했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타인의 작은 배려에 온전히 기뻐할 수 있는 여유를 찾기 위해 더 책에 파고드는지 모르겠다. 결론은 버킹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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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이정하 시인을 좋아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한 이정하 시인의 시를 접했을 때, 그 감동을 잊지 못했다. 시란 축약되어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그 뜻을 심오하게 두 번, 세 번 곱씹을 때에만 의미가 파악된다는... 것은 아닌 줄 알고 있지만, 이렇듯 시 자체로 사랑과 이별을, 사람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저, 내 마음 한 자락을 엿본 듯한 그의 시들을 읊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 이처럼 내가 빠져버리듯 다수의 팬을 확보할 수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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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귀 하나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어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척박했던 내 마음 한 고랑, 한 고랑에 어느새 물이 고여기 시작해 온 마음 밭을 온전히 적시는 힘이라니. 그것이 이정하 시인의 시가 주는 마력이다. '감성 충만'이 뜻하는 바가 싯구 하나하나에 살아 있다. 뜬금 없게도 이정하 시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내 마음 구석구석을 다 알아버린 듯 한글로 유유히 써 내려간 그의 시가 여전히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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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새봄 이정하, 라는 사인에서처럼 매해가 새봄, 새여름, 새가을, 새 겨울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