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스터 소설을 즐기지 않는다. 아무래도 죽음이 만연하다는 것과 그들이 주장하는 명분이 나에게는 제대로 된 명분으로 와 닿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결말이 뻔 하다는 즉 죽음으로 막을 내릴 수밖에 없어서이기도 하다. 이미 마지막을 바라보며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듯이 주인공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작품을 시작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이번 갱스터 소설을 읽는 이유는 이 작품의 작가가 데니스 루헤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읽게 된 <무너진 세상에서>는 갱스터 소설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데니스 루헤인 작품이다. 그의 작품으로는 영화로도 제작된 이력이 있는 <살인자들의 섬>, <미스틱 리버>가 있고, 이번 작품이 속하게 되는 커글린 가문의 3부작 <운명의 날>과 <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가 있다. <운명의 날>은 1919년 미국 보스턴에서 벌어진 사상 최대의 경찰 파업을 배경으로 그리고 있으며, <리브 바이 나이트>는 금주법 시대를 배경 커글린가의 막내 아들인 조가 어둠의 세계인 갱 조직에 본격적으로 몸담고 보스가 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번 작품 <무너진 세상에서>는 그가 조직에서 은퇴 후 자문 역할을 수행하며 사업을 합법적으로 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의 입지는 더욱 커졌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날짜까지 지정해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배후를 캐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해결사로서 조의 입지는 누구보다 탄탄해 보이는데, 조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는데, 조를 통하면 풀리지 않을 듯 하던 매듭의 실마리가 풀린다는데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조를 겨냥한 살인예고가 왜 들어온 것일까. 권력의 정점에서, 누구도 조를 죽일 이유가 없다고 단언하는 상황에서도 시시각각 시간은 지나가고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에 아들, 토마스가 고아가 될 수도 있다는 절박감은 태평한 부자의 대화와는 상이한 긴장감을 유도하기도 한다.
‘길 밸런타인의 죽음은 세월이 흐르면서 그 메시지가 더욱 분명해졌다. 아주 단순한 메시지. 누구든 살해당할 수 있다. 언제든, 무슨 이유로든’ (p. 57)
이야기의 시작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일본과의 전쟁을 앞두고 조 커글린이 주최한 군비모금 무도회에서 시작한다. 보스턴 최고의 유력가가 주최한 무도회답게 화려하고 성황리에 치러지는 가운데 역시 조에게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그 와중에 언뜻 보게 되는 소년은 누구일까. 복역 중에 있던 살인청부업자 테레사를 통해 조 자신도 한 때 전설로 통했던 길 밸런타인과 같이 죽을 수 있다는 살인예고를 듣게 된다. 정확히 앞으로 8일 남은 재의 수요일에. 자신의 조직 내 입지 및 사회적 입지까지 고려해서라도 잘못된 정보라고 무시하려 하지만, 길 밸런타인이 죽은지 3년이 지난지금 그 이름을 완전히 머릿속에서 깡그리 잊어버렸듯이, 자신도 그렇게 될 가능성을 따지게 되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
배후를 찾아,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하는 자가 과연 누구일까 한 명, 한 명 따져가는 동안 군비모금 무도회에서 언뜻 보았던 소년은 줄기차게 자신을 쫓아다니고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하며 엉뚱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들은 가족을 존중했다.
하지만 진실은 그와 사뭇 달랐다. 물론 가족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건 사실이다. 다만 가족을 갈라놓을 뿐이었다.’ (p. 252)
형들이 떠남으로 인해 거의 고아로 자란 조에게 조직의 동료를 가족처럼 여기고 살았으며 또한 지켰다. 그들이 벌이는 매춘, 마약, 고리대금, 도박 등 불법적인 사업들과 서로를 믿으며 뒤에서 받치는 뒤처리들은 그들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으나 발만 살짝 삐끗해도,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상승을 향해 치고 오르려는 그들의 욕구가 있었기에 서로가 서로를 죽여 나만 살아남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단, 이들에게도 불문율은 존재한다. 가족은, 자식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이 바닥에 혼자라는 사실만으로... 이렇게 처절하게 혼자라는 이유만으로 의자에서 날아갈 것처럼 불안했다. 조는 일어나 가슴 속에 슬픔을 묻고 분노를 묻었다. 서른여섯, 법의 세상과 등을 진지 20년, 조는 그동안 한을 수없이 가슴에 묻고 쌓고 밀봉했다. 그 한이 일제히 터지면 그 때문에 죽을 수도 있을까? 그렇게 죽지 않으면 우주 밖으로 쫓겨나 공기 부족으로 질식해 죽겠지?’ (p. 380)
자신이 죽는다는 자체보다 아들 토마스가 혼자 남겨질 것이라는 두려움, 자신의 사업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앞으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것을 고려해서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을 알려주려 애썼다. 그리고 그와 생사고락을 같이한 친형제와 다름없는 조직원들이었고 가족이었으나 그럼에도 각자의 이기로 서로에게 총을 겨눌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결국 가족을 지키는 것이 아닌 고아로 내몰리게 만든다는 역설이 되었다.
'그렇게 슬픔과 애정과 권력과 카리스마는 물론, 악행의 가능성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람은 본적이 없다.' (p. 167)
임신 중이었던 사랑하는 부인을 잃었지만 아들과 함께 멋들어지게 향유하고 있었던 조의 인생에 휘몰아친 토네이도. 곤고했던 한 가문이 파멸되고 조직 내에 최 상위계층까지 올라갔으며, 누구보다 완벽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가족'이라는 주제로, 조 커클린 또한 자신의 아들을 고아로 만들지 않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불을 켜다 타인을 죽인다는 설정은 한 가정의 가장을 죽이거나, 자식을 죽여 다른 가족의 붕괴를 초래한다는 묵직하며 가슴 아픈 메시지를 전달하는 <무너진 세상에서>.
자신의 살인 배후를 알고 약간 허탈하기도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데니스 루헤인의 생략된 문체는 간결해서 군더더기 없이 읽게 된다. 그들의 일상과 생각들을 겉멋들이지 않고 미화 없이 그리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로 하여금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하며, 정도를 걷을 수 있게 중심을 잡아주고 있기까지 하다. 스티븐 킹이 <대부>이후 최고의 갱스터 소설이라 극찬하는 것이 이해될 정도의 빠른 스피드를 자랑하며, 이번 작품에서는 청부살인을 의뢰한 배후가 누구인지 찾아가는 추리소설의 재미까지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역시 미화되지 않은 작품이란 가슴 아프기 마련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애잔한 작품이라니.
2013년 에드거 최고상을 수상한 <리브 바이 나이트>도 2017년 봄 벤 애플릭 주연의 영화로 개봉 예정이라고 하는데 벌써부터 심장이 쫄깃해지며 기다려지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