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3대왕 태종 이방원의 이야기를 담은 <육룡이 나르샤>라는 사극이 방영중이다. 드라마로 제작되다보니 팩트에 픽션을 넣어 재미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드라마도 그렇고 영화 또한 늘 논란거리를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역사가 전부인 우리들이기 때문에 티비나 영화에서 얻은, 특히 드마라를 통해 오랜동안 학습되어지는 역사의 지식들은 오히려 정확한 역사적 사실마저 몰아내는 폐단이 있다. 큰 틀 안에서 제작되었다곤 하지만 추측으로 이루어진 사소한 거짓 정보는 위험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돌이켜 보자면,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지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왕이 다스리는 전형적인 절대군주국가였다. 왕이 법 위에 서고, 종교 위에 서며 만민 위에 존재하고 통치하는 만인지상의 존재. 신분과 계급에 의해 사람의 등급이 나뉘기 때문에 왕이 재정을 확충한다는 명분으로 공명첩을 남발할 수 있었던 그래도 현대에서 가장 가까운 군주국가 조선.

 

따라서 조선이 그나마 역사적 사료가 많아서 잘 알려져 있음에도 어긋나고 뒤틀린 정보들, 또는 감춰진 진실들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책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 이번에 읽게 된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 조선 왕 이야기 - 하권>은 지난번 상권에 이은 조선왕에 대한 내용만을 엮은 것으로 15대 광해군 이혼에서 조선의 마지막 임금 27대 순종 이척까지 주요 성과와 더불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짚어내고 있거나 이의 제기를 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나에게 15대 임금 광해군 이혼은 안개 속에 있는 사람처럼 명확하지 않고 흐리멍텅하게 그려지는 조선 왕 중 한명이었다. 그도 그럴 밖에 없는 것이, 임진왜란 등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선조 대신 훌륭한 국정 수행능력을 보여주었고, 선조 사후 임금이 되어 조선을 다스렸는데도 다른 왕들은 다 받았던 묘호도 받지 못했으며 인조반정으로 역사의 한 귀퉁이로 쓸쓸하게 내몰렸기 때문이다. 그를 기억할만한 그 어떤 것도 남겨주지 않은 듯 우리는 왜란 당시 광해군만 기억할 뿐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선조에게서 적자인 대군이 태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대안으로 광해군은 최고로 명군의 자질이 뛰어난 인물로 자라난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왜란 때에 능력을 아낌없이 발휘한다. 조선조에서 이성계, 이방과 등을 제외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외적과 전면전에 나선 사례는 광해군이 유일하다니 광해군이 다시 보일 정도이다. 그의 형인 임해군이 갖은 악행을 일삼았고 적군에게 잡힌 것을 되찾아 오며, 외교적 수완까지 뛰어난 그의 활약은 이미 명장이었며, 성군의 모습이었다고 생각된다. 선조 스스로 겁쟁이로서의 면모를 아낌없이 보이는 상태에서 아들 광해군의 인기가 못마땅하다. 그러나 적통 영창대군이 뒤늦게 태어났기에 익선관은 당연한 수순처럼 광해군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광해군 스스로는 반대했다손 치더라도 대동법이라는 획기적인 법이 성공적으로 뿌리내리며 그동안 명군의 자질을 아낌없이 보여준 그는, 전쟁의 참상으로 나라 재정이 힘든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궁궐 재건사업을 벌였다. 그리고 일방적인 대북에 힘을 실어준 것과 수많은 옥사 등은 결과적으로 인조반정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았다. 전형적인 용두사미의 형세가 된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여성 편력이 심했던 조선의 헨리 8세라 칭하는 숙종을 읽다보면 무소불위의 권력자란 바로 숙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14세에 보위에 오르지만 2대째 적통이라는 명분에 또한 외척 또한 없는 상태에서 그의 뜻대로 되지 않을 바가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예송논쟁의 중심에 있던 송시열도 유배 후 사약까지 내리고 환국의 시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세 차례나 환국을 일으킨다. 무엇보다 숙종은 자신들이 거느린 여인들 즉, 인현왕후, 장희빈, 인원왕후, 숙빈 최씨까지 세자 교체 등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전략적인 면모를 갖춘 피도 눈물도 없는 위인이었다.

 

숙종 이야기를 하자면 으레 따라오는 것이 바로 독도문제이다. 얼마 전에 <독도전쟁>에서 안용복과 짝을 이룬 박어둔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즉, 영토에 있어서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자존심을 지켰던 인물이었고 46년이라는 긴 재위기간 동안 상평통보를 발행하고, 현충사도 건립하는 등 그의 성품만큼이나 역사 속에 단단한 인물로 기록되었다. 숙종은 파면 팔수록 대단한 인물 같다.

 

존재감 없는 왕으로 치면 순종만한 왕이 있을까 싶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정통성 있는 군주임에는 분명하지만, 아버지 고종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퇴위되었기에 순종은 일본의 꼭두각시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즉위 후 정미 7조약이 체결되고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며,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설립되어 일본의 경제 침탈이 가속화되었다. 문제는 일본 귀족의 일족인 왕공족으로 격하된 뒤 이왕의 직위를 이어 받는 등 참담한 상황에서도 독립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그의 아버지 고종이 망국의 군주로서 할 수 있는 저항은 다 했기에 순종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1874년에서 1926년까지 52세를 살았던 그가 무슨 생각으로 우리나라의 존망을 바라보았을까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하다.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 조선 왕 이야기>는 이렇듯 우리가 잘 몰랐던 역사적 진실을 작게나마 알려주고 있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그 나라의 지존에게만 달려있지는 않겠지만, 숙종의 정치력 수완을 보건대 조선조의 절대 권력은 임금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그 나라의 운명을 거머쥐었다면 시야를 넓히고 자신의 보위에 한정하는 것이 아닌, 후대를 생각하며 좀 더 현명한 판단을 했어야 옳다. 만일 지금까지 고수해온 길이 시대와 역행한다면, 또한 세계의 흐름에 반한다면 과감하게 권력을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초대 임금부터 마지막 임금까지 그들의 업무 수행능력과 인사들을 다루는 것들을 보며 '용맹한 적은 무섭다. 무능한 지휘관은 용맹한 적보다 무섭다.'(오자병법) 라는 말이 떠오르는 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30대는 완전 아줌마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내 주위의 어른들은 전부 20대 중반에 결혼을 했었고, 내가 결혼할 적만 해도 30을 넘기지 말고 결혼해야지 30을 넘기면 노처녀 반열에 들어간다고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30은 넘기지 말고 결혼해야하는구나, 라고 막연히 결혼적령기를 정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의 구시대적 사고방식과는 다르게 내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30을 넘기고 결혼했다. 물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도 두어명 된다. 그녀들은 그녀들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는 것 같다. 가끔 부럽기도 하고.

 

이 작품은 한 집에서 동거하는 30대 초입의 우영과 구월이라는 두 여자 이야기인데 가볍게 터치하듯 술술 읽히는 장점이 있는 작품이다. 32살이라는 나이에 퇴사경력이 5번이라는 이력의 소유자인 우영은 현재 다니는 직장에서 6번째 퇴사를 심각하게 고려중이다. 그녀가 5번의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정당한' 것이었고 그 언젠가는 퇴사 후 직장을 새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워 펑펑 울었던 적도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닌, 타의가 아닌 자의로 회사를 그만둘 예정이다. 그만둔 후 카드 값이 걱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전 남친과 그가 새로 만든 여친을 직장에서 자꾸 봐야 되는 놀라운 일상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소설을 쓰기위해, 글쟁이로 몰두하며 살아가기 위해 사표를 내려는 것이다. 키 차이가 30센티 나는 현 남친 단오는 줄줄이 딸린 식구들을 뒷바라지 해야 된다는 이유로, 우영과 결혼하면 좋은 곳에서 시작하고 싶다며 현실적인 문제를 들어 청혼하지 않는다. 아, 일상이여.

 

같이 살고 있는 구월은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에 취미는 등산이요 완벽한 바디라인과 예쁘장한 얼굴 등 겉으로 보면 완벽해 보이는데, 백 번 넘게 소개팅을 했지만 또한 백번이 넘게 남자들에게 퇴짜를 맞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구월은 단점이라고 '굳이' 지적할 것도 없지만 또한 장점이라고 내세울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하달까. 그들은 처음에는 구월에 목매다가 어느 순간 잠적하고 그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버려 본의 아니게 구월은 '듀오'를 뛰어넘는 성혼률 메이커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결혼 약속 후 신랑이 예식장에 나타나지 않고 잠적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으니 말해 무엇 할까. 최근 또 애완견까지 맡길 정도의 친밀도를 자랑했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구월은 또 다른 소개팅을 하려고 한다. 과히 만렙토끼라 할만하다.

 

30대 여성들이 갖는 안정된 직장이나 결혼에 대한 압박을, 무겁다면 무거운 현실을, 답답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듯한 그런 일상임에도 오히려 20대같은 톡톡 튀는 느낌으로 서술하고 있다. '현실은 받아들이되 사는 것을 즐겁게'라는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 펑펑 울고 다시 에너지 백프로 충전되어 다시 링 위에 오르는 게임 속 캐릭터처럼 우영과 구월은 다시 시작하고 있다. 어쩌면 현실은 현실일 뿐 조금도 나아지지 않더라도, 우리가 바라는 로맨스는 작가의 상상에서만 가능하다는 듯이 무언가 속 시원한 해결책을 던지지도 않는다. 그저 둘은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을 뿐이다. 이들의 우정은 사회 속에서 무언가 이루었어야 하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야 하지만 아웃사이더로 밀려난, 청춘을 살짝 비켜난 30대일지라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남자들이건 여자들이건 서로의 마음을 토닥이며 의지할 수 있는 동지 같은 친구란 무척 든든한 것이 아닐른지.

 

‘너와 함께라면, 이라 덧붙일 뻔했다. 맙소사. 지난주에는 구월이 밖에서 얼큰히 취해 전화하더니 “깍두기가 너무 맛있어서 니 생각이 나”라고 했다.’ (p. 156)

 

잔잔한 듯 흘러가지만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나저나 나도 친구들과 한 족발이 하고 싶어진다.

 

작년에 가족들과 태국에 여행 다녀온 적이 있다. 잘 알려진바 대로, 태국은 트랜스젠더가 많은 나라답게 또한 제 3의성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나라답게 트랜스젠드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국의 하리수를 영웅시하는 나라. 패키지를 통한 여행이라 마침 그들의 공연을 볼 수 있었는데, 보면서 정말이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주요 부위만 가린 채 온통 노출한 그들의 몸은, 여자인 나로서도 탐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으며 그들이 엄청난 돈을 들여 자신의 성 정체성을 완전히 바꿔 살아야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 계기였다. 왜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의 성을 부정하고, 완벽히 정반대의 성을 갖기 위해 수입의 전부를 걸고, 또한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것일까.

캐롤이라는 영화로 영화 전문기자, 이모 기자가 네티즌들에게 항의를 받은 일이 있었다. 관심 가는 영화가 블로그에 올라올 때 간혹 방문하는데, 그가 내린 5점 만점의 5점이라는 점수도 눈에 띄었지만, 시네마톡에서 뱉은 말로 융단폭격을 맞은 이유가 '캐롤'이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는 동성애를 다루었음에도 후한 별점을 주었다는 것, 그리고 기자가 영화 설명 중에 내뱉은 어휘적 측면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노이즈 마케팅처럼 그래서 더 관심이 갔는지 모르겠다.

테레즈는 19살의 세상을 조금은 우울하고 건조하게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녀가 부모로부터 받았던, 특히 엄마에게 거의 버려지다시피 해서 기숙사에서 자랐고, 물질의 부족으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직업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이 테레즈가 회색빛 필터를 덧씌운 듯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백화점 토이코너 직원인 테레즈는 크리스마스 즈음에도 여느 날과 같이 사람들의 요구에 맞게 판매하고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리처드가 있음에도, 그를 사랑할 수 없는 장벽을 느껴야 했던 그녀의 눈앞에 남편과 이혼 소송중인, 크리스마스 선물로 딸에게 줄 인형 가방을 사려는 캐롤과 만나게 된다. 단 한번 마주친 시선으로 캐롤이 자신에게 올 것임을, 자신도 캐롤에게 관심이 있음을 인정하면서 테레즈는 리처드에게는 하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았던 캐롤 해바라기가 된다.

순전히 테레즈의 관점에서만 쓰여진 이 소설을 읽으며, 트랜스젠더에게 품었던 의문 즉 왜 남자로 태어났는데 여성성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지, 또 이 작품에서처럼 여자임을 알지만 같은 여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성애자인 나로서는 평범한(?) 길을 놔두고 가시밭길을 가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고백한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 나오는 테레즈와 캐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테레즈가 아니고 캐롤이 아니듯 완벽히 그들의 사랑을 공감하지는 못하지만(이건 내가 아니면 누구든 완벽히 공감은 힘들다.) 이것 하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정체성) 내가 태어났을 때, 내 자의가 아닌 우리 엄마 아빠의 막내딸로 태어난 것처럼, 또는 태어나서 보니까 내 피부가 다른 사람보다 하얗고 유난히 검은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테레즈와 캐롤은 이성애자가 아닌, 자신만의 성 정체성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리처드는 테레즈보다 가진 것(물질적인 것, 부모 등)이 풍부하고 비빌 언덕이 있어서 테레즈에게 질투를 일으키는 인물이다. 19세의 테레즈가 자신이 겪은 일들로 인해 좀 더 관찰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을 꿰뚫을 수는 없다. 아무리 객관적인 판단을 내린다고 해도 리처드에 대한 결론들이 다 맞다고 할 수 있을까. 리처드가 캐롤의 남편 하지처럼 소유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테레즈를 향해 그저 평범한 보통의 남자의 행동 양식을 보이고 있었다. 조금 찌질하고, 테레즈를 붙잡으려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등. 리처드는 성별이 남자이나 동성 같은, 경쟁자로 인식되었고 <캐롤>은 그 점을 명확하게 그리고 있었다. 리처드는 테레즈에게 이미, 사랑할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만 보이고, 그 사람 생각만 나고, 그 사람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 관심을 보이면 안절부절 못하게 되고, 질투의 화신이 되며, 오로지 그 한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 사랑에 빠지면, 눈에 콩깍지가 씌어지고 이렇듯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은 제어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캐롤을 향한 테레즈의 마음은 성별과 상관없이, 그저 사랑이라는 것이다. 테레즈는 자신의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두려워하거나 낯설어하지도 않으며 앞만 보며 나아갈 뿐이다.

 

이 작품은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유명한 추리소설 <리플리 시리즈>의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이 출간되기 이전 미국 소설 속에 그려진 동성애자들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 대가를 치렀다. 이를테면, 손목을 긋거나 물속에 몸을 내던지기도 하고 이성애자로 돌아갔다(그렇게 묘사되기도 했다)' (p. 462)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진하게 베어져 있는 <캐롤>은 작가의 내면의 일상을, 사람들로부터 지탄받고 사회의 음지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들을 위해 탄생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현재도 여전히 선을 긋듯 방어벽을 철저하게 치고 있는 현 사회이니 말이다.

'눈동자는 회색으로 무채색이나 불꽃이 일듯 강렬했다. 눈동자에 붙들린 테레즈는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앞에 있는 손님이 재차 묻는 소리가 들렸지만 테레즈는 가만히 선 채 벙어리가 되었다.'(p. 55)

이성과 동성을 떠난 사람과 사람간의 사랑이야기, <캐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