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마 신화만을 읽다가 얼마 전에 북유럽신화까지 읽었다. 비슷한 듯하지만 내게는 신화 속 인물들이 더욱 매력적으로 자리매김한 계기가 되었다.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인간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것들로, 신화이기 때문에 가능하도록 펼쳐진다. 인간뿐만 아니라 신이나 반인반수, 반인반신, 이종(異類)까지 등장하며 상상의 세계를 자극한다. 따라서 신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판타지가 영역을 더욱 넓힐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번에 독특한 동양 판타지를 만나게 되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듯 했지만 이 작품은 사람과 신들이 공존하는 신화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장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이 작품은 세계수라는 거대한 세계(나무대륙)에 4개의 대륙(동, 서, 남, 북)에 해당하는 령이 있고, 각 령에 나라들이 존재한다. 이야기의 주된 무대는 동령에 있는 자그마한 나라 목국이다. 여기에 빛에서 난 옥, 심연에서 난 어둔은 나무대륙을 휘몰아치게 만드는 거대한 세력이 존재한다.

서미와 무화는 '이름 없는 산'에서 쌍둥이처럼 자란다. 목국의 녹옥공주가 반역을 꾀했다는 이유로 남편을 잃고 이 산에 유폐되었고, 그리고 낳게 된 반공주 서미. 그녀의 흉허물 없는 이야기꾼이자 빼어난 무술실력을 가진 시녀 무화. 닮은 듯한 둘은 어쩌면 친자매보다 더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 사이다. 녹옥공주가 복위되고 서미도 뒤따르려 하였으나 약제사의 손에 동녀로 홍등가에 팔려가 화재로 죽을 뻔 한다. 그 위기에서 둘은 마노의 손에 구출되어 노래하는 상단에서 7년간 지내게 된다. 목국의 부름을 받아 왕실로 향하는 중 서미는 고래등걸의 태산으로부터 청혼을 가장한 협박을 받기도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공주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던 서미에게는 지키고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고 결국 그 진실이 드러나게 되어 서미는 잠적하고 무화는 비로소 결코 유쾌하지 않은 공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궁을 향했을 때부터, 서미가 사랑하는 오만하며 절대 미의 존재감을 자랑하는 남자 반하를 비롯해서 북령의 전사왕 야르스, 아라킨, 카르파 등 다양한 인물들과 만나게 된다. 이들은 각 령에서 한자리하는 인물들이다. 여자를 재산쯤으로 여기는 목국에서 결혼의 속박을 떨친 무화는 일개 무사로 무투장에서 생활하지만 운명의 실타래는 그녀를 가만히 놔주지 않는다. 옥인 마노가 자신을 희생하며 구해주었고, 무화의 왼팔에 기생하게 된 어둔은 어스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바가 의미하듯 무화는 인간이되, 옥이며 어둔이다. 한편 궁을 나온 서미는 아라킨의 꾀임에 빠지고 '세상의 씨앗'을 삼켜 심연의 심장이 된다.

이 작품은 세계수를 중심으로 나뉜 4대륙에 그곳을 지키는 왕보다 더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국방을 수호하고 있는 전사왕 대공들, 용(으로 변이하는 자들), 옥인들까지 대륙을 삼키려는 어둔이라는 세력에 대항하며 세상의 마지막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그들을 지킬 수 있는 열쇠로써 강력한 여전사이자 키인 무화를 내세우고 있다. 또한 평범한 여자이기를 바라마지않으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전히 사랑받고 싶어 자신만의 길을 나서는 서미를 무화의 짝으로 내어주고 있다. 4대륙에서 소품이나 도구정도로 밖에 취급받지 못하는 여자들의 삶을 뛰어 넘는, '일개 성(性)'을 넘어선 '존재'가 되기 위해, 또는 서미와는 가치론적 측면에서 상반되게 무화는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간다. 그것이 한낱 무투장의 전사일지언정. 결국 운명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었으나 무화는 기꺼이 자신만의 선택한다. 이상향이 완벽히 다른 상충의 관계이지만 결국 서로를 택할 수밖에 없는 영혼의 합일의 관계도 되기 때문이다.

 

 

균열을 일으켜 세상을 삼키려는 어둔은 혈옥공주(녹옥공주)가 지금까지 받았던 억눌린 세상에 대해, 남성 중심의 세계를 뒤엎어버리기 위해 재앙의 씨앗을 심고, 오히려 옥인의 예언을 역이용해 세상을 멸망을 앞당겼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절대 악은 존재하지 않다는 듯 그늘과 어둠이란 곳곳에, 도처에 인간과 같이 공존하며 '어둔'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이렇듯 남성만을 위해 살아 온 세상에 반기를 들고 살아남기 위한 녹옥공주, 그리고 그녀를 비롯해 그동안 이유 없이 죽어야했던 목국 공주들의 눈물의 한숨이 멸망의 씨앗으로 변모했는지도 모르겠다.

 

 

'빛이고 어둠이고 인간이었던 작은 발들이 다리를 걸었다. 아주 오래 끝도 없이 허무를 걷던 발들이 스러지자 발 디딘 모든 자리에서 초록이 돋았다. (중략) 눈 속에 섞여 있던 화룡의 비늘 하나가 못 박혀 해가 되고 다른 하나가 달이 되었다. (중략) 들판 가득 파란 보리가 자라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울타리 옆엔 새빨간 꿀풀이 피었다. 시냇물 너머로 버찌가 잔뜩 달린 가지를 든 소녀들이 뛰어다녔다. 철없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뭇잎들이 파드드 흔들렸다. 반짝반짝 무수하게 흔드는 손들 같았다. 그 틈새로 밤이 깊게 번졌다.' (P. 383, 384)

 

이렇듯 만들어진 두 세계의 충돌은, 그것이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릴지라도 서미와 무화 그 둘이 만나 공명하고 인간이되 옥이며, 어둔인 그녀들은 세상의 끝자락에서 오히려 세상을 평안하게 만드는 희망을 움트게 만드는 힘인 것이다. 나무가 존재 자체로 살아 있고, 그들이 '이름없는 산'에서 그들이 고른 보리와 서미초가 때론 요긴한 양식이 되고 때론 특별한 간식이듯 두루두루 귀하게 쓰이며 삶을 영위하는데 귀히 쓰인 것처럼 말이다.

 

연재 때부터도 그랬지만, 짧게 짧게 끊어 쓴 문장들은 다소 많은 부분을 생략했기에, 또한 글 전반에 걸쳐서 회상 장면과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기에, 마지막으로 글의 아름다운 표현들 사이로 독자가 알고자 하는 바를 모두 비껴가기에 이 작품은 보통의 책과는 많이 다른 느낌을 주었다. 글 처음부터 던져진 밑밥을 수거하는 과정이 길며, 결론에 닿는 부분이 힘겹고 명쾌하지 못한 것도 있다. 그렇지만 서양 판타지에 길들여져 있는 독자들에게 동양판타지를 소재로 이렇게 큰 스케일의 작품을 선사해 줬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서미라는 존재가 묻힐 수도 있었는데 섬세하게 살려냈고, 따라서 무화와 서미가 함께 할 수 있어 더욱 빛을 발한 듯하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은림 작가의 전작에도 관심이 가기도 했고 인터뷰를 통해 작가의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식물은 지구에서 가장 강한 존재라고(아마 지구를 뒤덮고 있는 생명체 중 가장 무겁기도 하고 가장 오래 살아남았기 때문이라고 추측되는데.) 이야기하며 식물들은 자신들만의 적극적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어 수동적이지 않다. 식물을 불이해하면서 여성을 식물로 투사한다."라고 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것은 이 작품뿐만 아니라 모든 작품에서 여성 스스로가 수동태가 아닌 능동태로 사는 삶을 그리는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서미는 서미의 방식대로, 무화는 무화의 방식대로, 그리고 녹옥은 녹옥의 방식대로 말이다. 그래서 더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지식의 최전선에 닿는 방법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세련된 정교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한 방에 몰아넣은 다음, 스스로에게 묻곤 했던 질문들을 서로 주고받게 하는 것이다. 그 방이 바로 엣지다."

오늘날 세상을 움직이는 석학들이 한데 모여 자유롭게 학문적 성과와 견해를 나누고 지적 탐색을 벌이는 비공식 모임인 엣지는 1996년 존 브록만 (John Brocman)에 의해 출범한 단체이다. 즉, 세계 석학들을 한데 모아 놓으면 도가 되든 모가 되든 학문적 성과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측면에서 부룩만이 세운 단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마음의 과학>, <컬처 쇼크>, <생각의 해부>에 이어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의 네 번째로 나온 <우주의 통찰>은 우주에 관한 개념들에 초점을 맞췄다고 하는데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중력파가 발견되어 노벨상을 점치고 있는 가운데 그와 관련한 21편의 최신 과학 동향의 글들이 실려 있다. 읽어보니 'Edge.org'에 실렸던, 무엇보다 논쟁이나 핫이슈의 글들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특히 우주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 빅뱅이론의 추가이론으로 잘 알려진 '급팽창이론'의 개척자 앨런 구스 교수와 '순환우주론'의 폴 스타인하르트와 닐 투룩의 경쟁하는 듯한 학문적 고찰은 아인슈타인 이후 스티븐 호킹 박사만 유일하게 알고 있는 나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 주었다.

 

먼저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영화 <인터스텔라>를 이야기해야할 것 같다. 인터스텔라에서 여러 가지 환경으로 황폐해진 지구에서 쿠퍼의 딸 방에서 중력 이상이 일어나고, 없어진 줄 알았던 NASA에서 웜홀로 들어가 인류를 번창시킬 행성을 찾는다는 이야기인데, 중요한건 거기서 여러 가지 나오는 이론(상대성 이론, 웜홀 이론, 초끈 이론 등) 순환 이론과 맞닿아 있는 초끈 이론이 나온다는 것이다.

 

고전적인 빅뱅이론은 그냥 우주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균일했다고 가정하고 시작할 수밖에 없는 학문이고(팽창에 대한 언급 없었음) 급팽창이론은 중력파를 일으킬 정도로 빠른 속도의 격렬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중력파 검출이 가능하다고 한다. 밀어내는 중력물질과 유사한 에너지인 암흑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이 암흑에너지의 영향 아래 오늘날의 우주는 팽창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밀도 변동이 바다의 수면에 생긴 물결처럼 무자위한 잡음과 비슷해서 모든 길이 척도에서 대략 비슷하게 발생한다고 예측한다는 것이다. 즉 이것은 급팽창이론이 시작을 다룬 학문이 우주가 급팽창 에너지로 가득 찬 상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급팽창이론'은 우주가 종래에 가정하던 것보다 훨씬 더 낮은 엔트로피 상태로 출발했다고 상정함으로써 우주가 지금처럼 진화한 이유를 설명한다.’ (p. 154)

 

이처럼 첫 장을 장식하는 '급팽창이론'의 제창가 앨런 구스는 '시작은 없지만 그 무엇이 우주를 팽창으로 이끌었는가'에 대한 설명으로, 지금은 이것이 거의 정답으로 확실시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순환우주론'을 제창한 스타인하르트 교수는 고대 힌두교가 순환우주를 바탕으로 한 대단히 정교하고 자세한 우주론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뿐만 아니라 에드거 엘런 포, 니체 등도 순환 모형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우주의 에너지가 대부분 물질도, 복사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주에서 시작이 있다고 상정하려면 애초에 그것이 왜 시작됐고, 어떤 조건에서 시작되었는지 설명해야 하는 과제가 생기는데 순환하는 우주는 영원하기 때문에 시작을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주가 뜨거웠다 차가워지며 밀도도 높았다가 낮아지며 텅 빈 우주로 진화하는 시기로 진화하는데 이것이 주기적으로, 순차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순환 모형은 각각의 뱅(BANG)이 다른 뱅의 뒤를 이어 나왔고 이런 과정이 영원히 되풀이 된다는 개념으로부터 등장했다. 우주 전체는 영원히 존재해 왔으며, 이런 뱅이 무한한 과거로부터 무한한 미래로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p. 125)

 

Bang : 주기 안에서 우주의 온도와 밀도가 최고점에 도달하는 지점

 

처음으로 돌아가서, 얼마 전에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중력파가 있다. 아인슈타인에 의해 예견만 되었지 밝히진 못했던 중력파. 이번에 발견된 중력파로 우주이론의 정당성을 '급팽창 이론'이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뿐만 아니라 코페르니쿠스 이후 우리가 공간이라는 개념과 우주 속에서 우리의 위치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이번 발견으로 블랙홀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게 되었으며, 빅뱅 직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추적이 가능하다는 예측이다. 이에 덧붙여 2012년 발견된 힉스 입자 또한 우주를 구성하는 소립자에 질량을 부여해 주고 우주의 기원을 알려주게 되었으며 새로운 장의 시작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 밖에도 책에서는 이론물리학자, 수학자, 응용수학자, 양자공학자 등이 나와서 각 분야에서 핵심 연구를 하고 있는 다양한 이론들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처럼 우주의 기원을 파헤치며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허심탄회하고 격식을 차리지 않는 대화를 통해 과학의 최신 동향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존 브록만이 추구한 대로 지의 최전선에 근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확실성이 아니다.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의 지식수준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사고방식을 찾아내는 것이다. 과학은 확실한 것이 아니라 대단히 신뢰할 만한 것이다. 사실 과학은 확실하지 않다. 확실성의 결여가 바로 과학의 토대다. 과학적 개념이 믿을만한 이유는 그것이 확실하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모든 비판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이 믿을 만한 이유는 모든 사람의 비판에서 공개적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p. 303) 

 

 

점성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저 대략적으로 별자리에 대해 파악 후 그것을 이용해서 운이나 길흉 같은 점을 보는 걸로 알고 있다. 1860년대 즉 빅토리아 시대에는 점성술이 아주 믿을만한 것으로 작용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루머니스는 점성술에서 가장 빛나는 두 별인 태양과 달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이 작품은 1866년 골드 러시의 개발붐이 활기차게 일어나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아버지로 도덕적이지 못한 행위로 인한 파산으로 무디 또한 1866년 개발 붐에 편승해 일확천금을 노리며 갓스피드 호를 타고 뉴질랜드 호키티카 마을에서 내렸다. 배에서 목격한 사건이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을 점령하는 가운데 크라운 호텔에 숙소를 정한다. 호텔 내 허름한 흡연실에 들른 무디는 그 곳에서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가지고 모여 있는 12명과 조우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영역에 누구도 발을 들이지 못하게 막았다고 생각했으나 갑자기 끼어든 무디의 계략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하지만 무디의 신중하며 다른 사람의 비밀을 털어놓게 만드는 수완이 드러나며 도리어 그들이 오늘 모인 방향과 다르게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무디에게 털어놓게 된다.

 

이들은 젊은 갑부 에머리 스테인스의 실종사건과 창녀 안나 웨더렐의 자살 미수사건, 마지막으로 마을 외딴 오두막에 숨진 채로 발견된 크로스비 웰스라는 은둔자의 죽음, 이 모임에는 없지만 수완이 좋고 야심찬 정치인 로더백이 발견한 웰스이 집에서 발견한 금으로 서로 얽혀있는 사이기도 하다. 이들 12명 즉, 처음 말을 붙인 해운업자 발퍼, 그리고 법원서기 개스코인, 스테인스와 친한 사이인 사업가 딕 매너링, 은행원 프로스트, 중개상 닐슨, 약제사 조지프 프리처드, 조각가 타우웨어, 코웰 데블린 목사 등을12궁에 비유하고 있으며, 사건의 실마리를 의지를 가지고 명쾌하게 풀어가는 월터 무디를 주축으로 희대의 사기꾼 프랜시스 카버, 그와 짝을 이룬 루디아 웰스, 정치가 로더백, 창녀 안나 등 7명 등 행성에 비유하고 있으며, 이번 사건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인물들이다.

 

은둔자의 집에서 발견된 4천 파운드의 금은 국가로 귀속되기로 하는데 자칭 웰스부인이라는 여자가 나타나고, 또한 죽을 뻔한 안나의 드레스 속에도 상당량의 금이 숨겨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실종된 스테인스가 카버의 배에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이 사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또한 12명의 사람들조차 알게 모르게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작품에서 단연 악역으로 빛나는 프랜시스 카버와 동조자이자 콤비로써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리디아 웰스의 공모인데, 알리스테어 로더백을 속여서 그의 배 갓스피드 호를 갈취하며 계약서상에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계약을 한 이유가 밝혀지는 장면은 기가 막히기도 하고 재미있었던 장면 중 하나였다. 아마도 이 작품이 더욱 재미있고 감탄을 느끼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의지 강한 변호사 무디를 통해 주도적으로 이끌어 정돈하고 밝혀내고 안나의 무죄를 입증하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어서 어쩌면 그가 셜록홈즈 버금가지 않나 싶다.(비록 그녀 또한 서명을 위조하는 등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하더라도.)

 

이 작품은 위에도 잠시 언급한대로 점성술과 별자리를 도입해 글을 짜임새 있게 구성했다는 점에서, 특히 이런 부류의 글을 처음 접하는 나로서는 어렵지만 의미 있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12명에게 황소자리, 물고기자리, 전갈자리, 천칭자리 등 인물에 맞는 특성을 부여하며 이들의 성격 등을 이해시킨다. 무엇보다 이 별자리들 홀로 존재하지 않듯이 이들 12명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무엇보다 루미너리스를 향한 행성들의 긴박한 움직임, 즉 황금을 향해 타오르는 인간들의 욕망을 젊은 작가 앨리너 캐닌의 손아래에서 지휘되고 연출되었다는 점에서 작가의 역량에 놀라 감탄하게 되었다.

 

독자가 풀어가는 실마리를 거부하며 반전과 상상외의 답을 내어 놓는 이 작품은 사실 1권까지는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며 조금 지루하게 이어간다. 그러나 2권부터는 속도감을 느끼게 되면서 특히 후반부는 짧은 챕터로 빠르게 치고 가며 숨 가쁘게 흘러가는 것이, 양파를 까듯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내는 사건들 속에 숨겨진 내막이 파헤쳐지며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작품 속에 작가가 의도한 것이 어쩌면 12명의 별자리와 행성들의 조합이라는 모든 인간의 군상을 담아내고 그려냄으로,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여기에선 그것이 황금이란 매개체에 불과했으나) 우리의 모습들과도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며 그것을 경계해야 된다고 알려주는지도 모르겠다. 루미너리스는 잡을래야 잡을 수 없고 잡았다고 느낀 순간 그것은 허상이기 때문에.

 

2권을 덮으며 독자들은 왜 이 작품이 맨부커상을 거머쥘 수밖에 없었는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