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작품을 읽고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요술램프의 지니처럼 요술을 가지고 있던 마신이 호리병에 갇혔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구해줄 이를 100년간 기다렸다. 자신을 구해주는 이가 나타난다면 값비싼 보석들을 해주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백년이 흘렀다. 마신은 마음에 좌절되기도 했으나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그래, 200년이 되면 자신을 구해주는 이가 나타날 거야. 그러면 그가 요구하는 소원이 뭐가 되었든 들어줄 수 있지. 아무렴. 그러나 200년이 지나도록 자신을 구해주는 이가 나타나지 않자, 그는 좀 더 많이 낙담되긴 했으나 여전히 희망은 놓지 않았다. 아니야, 500년 정도 기다린다면 분명코 나타날 거야. 그러면,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전부 들어주리라. 그래, 그래야지. 그러나 1000년이 되기까지 나타나지 않자 희망은 분노가 되었고, 그에게는 증오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긴 세월을 지니고 자신을 구해준 소중한 이를 마신은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렸다고 한다. 이걸 어디서 들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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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당당히 베스트셀러 1, 2위를 다투었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여러 현상들을 아들러의 심리학적 관점에서 설명해주고 있는데, 핵심은 첫째, 열등감 등으로 인간은 모두 인간관계로 괴로워한다. 타인과의 과제를 분리하므로 나의 문제에 집중할 때 인간관계로 힘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둘째, 트라우마와 같은 원인론을 단호하게 부정하며 내가 마음먹고 결단만 내리면 과거를 다르게 볼 수 있고 과거가 나를 지배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변화할 수 있고 또한 행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아들러의 심리학이 이토록 절박하게 다가오게 만든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내 심장을 향해 쏴라>를 통해서 말이다. 미 서부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책 제목은 책의 저자인 마이클 길모어의 가족 실화로 마이클이 자신의 형인 살인범 게리 길모어의 죽음을 서술함에 있어서 그의 부모와 조상, 그리고 어머니가 살았던 유타 주의 특성에서 발견되는 몰몬교의 '피의 속죄'가 의미하는 바, 그리고 그가 비교적 최근에도 보았다는 유령 등과 관련하여 다각적인 시각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적어 놓으며 자서전 형식을 빌어 넣은 한 가족의 대 서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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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은 후에도 이 이야기를 시작함에 있어서 나는 어디서부터 물꼬를 터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아마도 그건 마이클 길모어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가 그의 가족이 겪었던, 혈통이 끊긴(알고 보면 게리와 게일런의 자식이 있긴 하지만) 길모어 집안의 방대한 분량의 역사를 시작함에 있어서, 위에서 서술한 것들을 모두 담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지 않을까. 거기에 나이차 많은 길모어 부부, 아버지의 지칠 줄 모르는 폭력성과 방랑벽, 그리고 그 속에 가리워진 비밀. 어머니 역시 같은 방식의 맞대응, 어머니가 살았던 유타주, 그리고 유타주의 공식 종교라고 할 수 있는 몰몬교의 피의 보상 방식. 마지막으로 길모어 집안사람들이 모두 느꼈던 유령들까지도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이 길모어 집안의 4형제 중 두 명을 흉악한 범죄자로, 더 나아가 살인범으로 살아가게 한 것인지, 아니면 길모어 부부의 해결되지 않고 지지치 않는 싸움과 아빠가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폭력성이 원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느낀 것은 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제 구실을 하지 못했을 때 최악의 경우 사람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4형제의 아버지인 프랭크 1세 또한 그의 어머니로부터 방치된 채 자라왔으며, 그가 겪어온 삶이라는 것이 광고 사기와 폭력, 부도수표 발행, 뜨내기 같은 생활이었으며 이것을 부인 베시에게, 그리고 그의 자녀들에게 이것 밖에 유산으로 남겨준 것이 없으니, 그 불안감은 오죽할까.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오히려 범죄의 불쏘시개의 역할을 하는 곳이라니.
절대 우위를 점하려는 그의 사고방식은 부인에게도 자식들에게도 폭력만으로 표현되었으니 이 모든 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가족들의 심리상태는 어땠을까. 더군다나 마이클은 자신의 어머니를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어린 자녀를 남편 못지않게 학대하는 엄마라니. 기본적으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어머니의 폐쇄적인 이웃과의 교류에서, 또한 아버지 프랭크 1세 못지않게 성격 드세고 지기 싫어하며, 자식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눈빛, 강도는 약하지만 남편과 마찬가지인 감정 섞인 체벌 등 남편과 동류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내세웠던 가정 규율들은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아 그에 따른 명분을 상실했기에, 프랭크 1세가 원했던 복종이 아닌, 자식들에게 분노와 증오만 쌓이는 결과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다. 숨 쉴 구멍 없이 사방이 막혀 있는 상태에서 동아줄이 내려오기를 소망했으나 그 긴 세월동안 자신에게 닿는 것은 법 보다 주먹. 자신의 핏줄이 아닌 것 같다는 이유로 사랑보다는 의심과 폭력, 폭력, 폭력.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의심이 나름대로 있었던 이유는 큰 형 프랭크의 신분으로 밝혀지기도 하지만.) 이것은 자신을 구해줄 사람을 기다리다 결국 은인을 찢어 죽인 마신과 너무 닮지 않았는가 말이다.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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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것 같지 않는 장서를 읽으면서 나도 두려움에 몸이 떨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나조차 막막함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제발 이 가정에게 늦지 않게 내미는 손길이 있기를 나는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모르겠다. 제발, 한 사람이라도 있기를 말이다. 그러나 실화이기 때문에 결과는 이미 알아버렸고, 그 한 사람이 있든 없든 사람에 대한 실망감과 안타까움은 누구를 향해서이든 들기 마련이기 때문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없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써내려가면서도 이런 리뷰 따위는 집어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계속 써내려가기가 너무 힘들다.
다시 처음으로. <미움받을 용기>에서 아들러라는 심리학자가 주장하는 바가 나온다. 트라우마는 극복할 수 있다고. 아들러의 심리학을 설명하며 청년을 설득한다. 인간인 이상 누구나 열등감을 갖고 있다고. 그리고 인간관계 즉 가족문제, 친구문제, 직장동료 문제로 인간은 괴로워한다고. '작은 용기' 하나로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고. 범죄를 저지를 핑계로 트라우마를 이용하지 말고, 현재 상황의 문제를 회피하지 말라고 직시하라고.
그렇다면, 이렇게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나도록, 범죄의 사슬을 끊어내도록, 현실을 바로 걸어갈 수 있도록 조언 받거나 그와 비슷한 경험이나, 희망의 손길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마이클은 워낙에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기에 배제한다손 치더라도, 게리와 게일런의 암흑에 쌓인 인생과 비교해서 마이클의 맏형 프랭크 2세 또한 도둑질로 범죄의 늪에 빠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위험에 빠질 뻔 했던 계기로, 잘못에 따른 타당한 노동과 훈계로 올바른 사고방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에 더 이상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삶을 선택'해서 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단 한 번의 온정의 손길조차 구경할 수 없었다면. 아니, 온정의 손길이라고 느꼈던 엄마의 손길이 어쩌면 범죄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면.
"널 죽이러 가던 중이었어. 갔다면 아마 그 일이 벌어졌겠지. 너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거야. 나도 그랬을 테고." (p. 602)
"그래도 아버지란 존재는 늘 남아 있겠지." (p. 608) 게리 길모어의 마지막 말.
이렇게 끝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형제마저 죽이고자 했던 게리. 죄악으로 쌓여있기는 해도 자신들과는 동 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존재 마이클. 그 마이클처럼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으나 사랑받지 못한 존재 게리, 그리고 게일런. 그리고 형들과 같이 동참하지 못해서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마이클. 끝까지 미안해하며 매일 악몽으로 도배하는 꿈을 꾸고, 살인자의 동생으로 살인자와 동급으로 취급받는 삶을 견디고 있는 프랭크 길모어의 막내아들 마이클의 자서전 겸 비참한 가족 역사서 <내 심장을 향해 쏴라>.
작품에서 마이클은 여전히 말한다. 유리방황하며 죄를 일삼았던 프랭크 길모어, 베시 길모어 부부. 그들을 배척했던 베시 부모님. 프랭크 1세를 방치했던 페이 할머니. 그리고 유타주의 꽉 막힌 환경과 피의 죄는 피로써 속죄 받을 수 있다는 몰몬교를, 그리고 여전히 보고 있는 유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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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분노와 파멸을 일으켜서 더 이상 가족들이 살아남을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갈 것 같은 두려움, 이미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죽은 자들을 그가 또다시 죽일 것만 같은 두려움이다. 그 모든 고통과 억울하게 흘린 피를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버지가 죽음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는 길뿐이라고 설득한다. 아버지, 누워 계세요. 다시 묻어드릴게요, 하고 우리는 말한다.'
(p. 16)
아흔이라는 나이에도 폭력을 휘두르며, 암에 걸려 죽어서도 자식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위세를 뻗쳤기에, 마이클의 아버지 프랭크 길모어 1세를 향한 두려움에 떨린 마이클 길모어의 절절한 고백이 담겨있어 나 역시 절박하고, 두려움 가득한 마음으로 읽었다. 그가 아프다. 힘든 길을 홀로 견디며 걸어가야 하는 마이클이 너무 아프고 힘겹다.
아, 이 작품이 실화이기에 리뷰 쓰기가 힘들다. 그에게 응원의 말을 건네고 싶지만 그마저 어설퍼 보인다. 내가 한 자녀의 부모란 사실이 이렇게 무겁게 다가올 수가 없다. 그저 무한 책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