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感覺) : 눈, 코, 귀, 혀, 살갗을 통하여 바깥의 어떤 자극을 알아차림. (네이버국어사전)

 

감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즉각적인 생각은 촉각이 아닐까. 하지만 위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이야기한 대로, 감각이로 오감을 통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눈으로 보는 시각, 코로 느끼는 후각, 귀를 통한 청각, 혀로 맛보는 미각, 그리고 살갗을 통한 촉각. 하지만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 인간(사피엔스)에게만 있다는 공감각까지 다루고 있다.

 

<감각의 제국>에서는 이 감각들로 부재 혹은 넘침으로 겪는 각가지 고통들에 서술하고 있었는데, 읽어 나가면 나갈수록 건강한 삶이, 오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아픈 줄 모르는 선천성 무통각증과 무한증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아픔을 몰라 다리가 부러져도 계속 걷다가 못쓰게 되고, 그래서 팔을 쓰고 팔의 고장을 알아차리지 못해, 나중에는 팔까지 고장 나고, 여전히 모른 채 지내다가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살펴보니 온 몸이 성한 데가 없는 상태에 이른 사람이 있었다. 또 더우면 땀샘에서 땀이 분출되어 체온을 조절하게 되는데, 그것이 작동하지 않아 몸의 열이 치솟을 대로 치솟다가 죽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한증으로 인해서 말이다.

 

자폐 같은 증상에서 간혹 가다가 나타나는 서번트 증후군은 장애와 대조되는 곳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따라서 유난한 청각으로 인해 음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음악으로 받아들여 같은 소리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세탁기소리나 믹서기 소리는 끔찍할 정도로 싫어하지만 냇물소리나 지하철에서 소리만 듣고도 알아차리는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런 감각을 처리하고 느끼게 하는 것이 뇌로 인해서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몸이 성장하듯 뇌의 대부분이 완성되는 시점은 태어난 후라고 한다. 청소년기 즈음에 뇌의 임계기를 맞이하기까지 비약적으로 뇌는 성장한다. 그리고 '놀라운 뇌는 가소성이 있어서 감각하는 환경에 따라 기능과 구조를 변경할 수 있고'(p. 97), 임기응변도 강해 시각이 차단되면 그 차단된 뇌의 기능을 청각능력으로 확장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겪어온 경험을 토대로 우리가 가져온 정보가 기존 정보에 맞지 않으면 예측하여 임기응변으로 변형시키는 능력까지 있었다. 물론 이런 경우, 지각의 오류인 '완성착각'을 일으키긴 하지만.

 

여기에 덧붙여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감각인 공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었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반응하고 그 감정에 동화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데 전문가들은 공감을 크게 인지적 공감과 정서적 공감으로 나누어 설명한다.’(p. 197) 즉 다른 사람의 생각을 유추할 수 있는 능력인 지적 공감능력, 거의 무의식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성품과고 관련인 있는 정서적 공감능력으로 나뉠 수가 있다. 다양한 감정을 느낌으로 그것이 얼굴에 드러나 표정이 되고 그것으로 공감을 넘어 생존에 필요한 도구까지 된다는 것(p. 223)이다.

 

이처럼 인간의 모든 감각을 다루고 있는 <감각의 제국>은 건강하게 자라서 건강한 감각을 소유하고 건강한 공감까지 소유해서 인간이 사회생활 하는 인간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다루고 있었고 최소한 갖추어져 있어야 필수 생존 요소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파도 아픈 줄 모르는 무통각증, 시각장애로 힘들어하는 어셔 증후군, 자폐로 인한 서번트 증후군, 시력을 갑자기 잃은 사람에게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샤를보네 증후군, 르네 피보츠 실험에서 보여준 유아기 때의 발달 과정들을 통해서 말이다. 무엇보다 때를 놓친 후 아무리 언어를 알려주려고 했으나 실패한 사례로 보여준, 지니이야기(1970년 13세 소녀는 시각장애인 어머니와 정신질환자 아버지에 의해 침대에 묶인 채 제대로 된 언어습득을 할 수 없었음)는 뇌의 발달과정에서 임계기를 벗어났을 때, 아무리 뛰어난 교육이 뒤따르더라도 결코 회복되지 않는다는 서늘한 경고까지 주고 있었다.

 

EBS 창사특집 다큐프라임 <감각의 제국>은 철저하게 사람이기 때문에 겪는 여러 가지 고통을 인문학적 시각에서 써내려가고 있다.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감각 오류가 왔을 때, 혼자만의 공간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타계해가는 모습들은 건강한 나에게 안쓰러움과 경외심까지 갖게 만들었다. 나에게 건강한 육체를 허락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측은지심을 가지는 공감까지 허락한 그 모든 것 을 이끌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당연한 것들이고 사소하다고 치부해버렸던 감각들. 무언가에 찔리며 따갑고, 맛을 알고, 냄새도 맡을 수 있고, 소리를 분별해내며, 정확하게 언어로 구사하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맞장구쳐주며 혹은 같이 화낼 수 있는 이런 별거 아닌 것들이 감사하다. 단 하나만이라도 어긋났을 때의 고통이 너무나도 분명하므로.

 

 

 

 

소위 말하는 미미여사님의 신작이 나왔다. 미야베 미유키 작가님은 익히 알려진 바대로, 판타지면 판타지, 시대물이면 시대물, 미스터리면 미스터리 못쓰시는 게 없는 작가님이시다. 그리고 읽으면 바로 홈런, 홈런이 아니라도 9회말 주자는 3루까지는 너끈히 뛰도록 만들고 번트 하나 혹은 희생 플라이 하나라도 점수를 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작가님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믿고 보는 작가님이다.

 

이번 작품의 <음의 방정식>은 <솔로몬의 위증>에서 중학생 3학년 때에 발생한 학교 내 자살 사건에서 검사로 활약한 후지노 료코가 이번에는 변호사가 되어 등장하게 된 점이 이채롭다.

 

세이카 학원(초, 중, 고 교육이 통합된 과정)에서 중등부 3학년 학생이 학교에서 주최하는 ​재난 훈련의 일환인 ‘피난소 생활 체험캠프’ 중 일탈을 하게 되는데, 이유는 체험캠프 담당인 히노 선생님의 무리한 요구 때문이었고, 이것은 친구를 극한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주장으로 위기를 맞은 히노 선생님은 펄쩍 뛰며 그런 일 없노라고 항변하고, 사건의 진상을 알고 싶어 하는 한 학생 부모에게 이 사건을 의뢰받은 스기무라 사부로 탐정은 히노 선생님측 변호사로 있는 후지노 료코를 만나게 된다. 진상파악을 위해 하나하나 조사해 가던 그들은 서로 대립이 아닌 상부상조를 통해 뜻밖의 결과를, 아니 어쩌면 혹시나, 하고 애초에 가졌던 의심을 확정짓게 된다.

 

지난번 <솔로몬의 위증>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서도 부조리한 면을 꼬집고 있는데 학교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할 수밖에 없는 선생님이, 시쳇말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할 정도로 존경받으며 우러러 보았던 존재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이분법적 사고로 성적에 의해 사람들을 차별하고, 신체적 학대와 버금가는 아니 그보다 잔인한 언어폭력으로 ​차별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갈가리 찢어버린다면, 그 사람을 과연 스승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질문을 던진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절대 권력을 집 안에서 무차별하게 휘두르는 사람이 과연 어느 자리, 어느 위치라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폭력이 밖으로 행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밀하고 은밀한 폭력은 그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속은 곪아서 썩어 문드러질 지경에 이르고 도리어 무리들은 고양이를 물어버리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 작품은 중요한 이슈 하나를 더 던지고 있다. 옳은 것을 옳다고 외칠 때에 그 방법이 정당한가에 대한 고찰이다. 올바른 이상향을 만들고 깨끗한 물로 정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과정과 방법이 바르지 않다면. 과연 결과를 용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논하는 자리에서 팽팽하게 엇갈릴 수밖에 없는 이 논리는 계속 첨예하게 맞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결과가 옳으면 그 과정과 수단까지 용서와 용납이 가능한가, 라는. 그렇다면 이 사회에 적용되어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테두리인 법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오바마 대통령이 '이민개혁법안' 연설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새삼 생각난다. 연설 중에 있던 오바마에게 아시아인이 "당신의 힘으로 행정명령을 발동하라"고 소리쳤고 장내는 소란스러워졌다. 그의 끊임없는 요구에 보디가드가 끌어내려고 하였으나 오바마는 도리어 그들을 제지한다. 그리고 역설한다. "국회 입법 절차없이 그러면 좋겠지만, 우리는 법을 따라야한다. 그게 우리가 살아온 역사다." 그렇다. 그게 우리가 살아온 역사고 우리가 지켜 나갈 때 사회는 제대로 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기본이 무시되는 것이 허용될 때, 아주 작은 틈에서 댐이 무너지듯이 우리의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이처럼, 이번에 읽게 된 <음의 방정식>은 그 말대로 어느 숫자를 넣어도 이미 마이너스의 상황을 그리면서 우리에게 이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문제들을 던지며 우리들의 생각을 묻고 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고.​

내가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마, 중고등학생 때였을 적이었나. 토마스 불핀치가 쓴 단권짜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학창시절, 보았던 책들 중에 읽고 나서도 아쉽게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책으로 남게 되었다. 그래서 미술 작품에서나, 문학 작품에서 그리스 로마신화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작가가 이야기한 것이 내 감정에 닿지 않아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신화 중에서 유독 기억나는 것들은 판도라의 상자. 아폴론과 다프네, 프쉬케와 에로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나르시스, 올림푸스 12신 중 대장이자 바람둥이 제우스와 그의 아내 헤라의 질투 등이다.

 

신들은 인간들과 어우러져 살면서 무엇을 추구했을까. 영생을 만들어 준다는 암브로시아가 없었다면, 신들의 특별한 능력이 없다면.

 

그들은 신의 지휘와 영향력과 힘을 이용하고, 자신들의 무소불위의 능력을 휘두르며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과연 신으로서 자비심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오히려 다 읽은 후 내가 느낀 점은 이 신들이라 불리는 존재들이 그들의 능력을 제외하고는 인간하고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인간처럼 질투에 휩싸여 감정을 이기지 못하며 실수도 잦고 우리가 추구하는 '신'의 마인드와는 거리가 상당히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의 모습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리학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오류투성이를 신의 관점이 아닌,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가능케 하는 작품이다. 위에도 서술했지만 그저 인간에 비해 삶이 길고, 삼라만상의 변화를 주도하고, 인간위에 군림한다는 점.(쓰고 보니 절대적인 권력이로군) 그래도 그들의 삶이 감정에 휘둘리는 모습이 인간의 그것이라 동정심도 들고, 잦은 실수가 이해도 되고.

 

판도라에 대해 생각해 본적은 없다. 그저 그녀의 호기심이 남달랐다고 생각했을 뿐. 처음부터 그녀를 태초의 인간인 아담의 짝, 이브에 비유한 것도 그렇고 읽을수록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 이면에는 남성중심의 삶에서 여자의 불가해한 출산 등으로 복잡한 생명체에 대한 폄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인데, 특히나 기원전 700년경에 활약했던 시인 헤시오도스의 작품에 의해 세상에 두각을 나타나게 된 판도라의 입지는 아마도 남성우월주의에 편승하게 된 희생물이었다고 판단된다.

 

이 작품에 속에서 그 이면을 파헤치고 있는 작가는 사실은 질투 많은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에게 받은 수치를 앙갚음하기 위해, 인간에게 인기 많은 판도라 여신을 신의 반열에서 쫓아내고 프로메테우스까지 끝없는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트리며 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는 것이다. 사실이야 어쨌든 이처럼 색다른 시각은 기본적으로 신들의 우두머리인 제우스에 대한 내 안티한 생각에 안좋은 점 하나를 더 얹어주는 효과만 발휘하고 말았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그 명성이 자자한 오이디푸스의 심리학적 스토리도 흥미로웠다. 신화 속에서 그의 이야기만으로 볼 때, 결과적으로 그가 어머니와 혼인하고 자식까지 두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과 왕으로써 추대되는 과정은 마치 억지로 코뚜레에 꿰어 그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어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자신의 신탁을 격하게 거부코자 다른 길을 향하지만 결국 예언대로 집행되는 비극을 껴안아야 했던 근친의 아픔은 실은 오이디푸스의 아버지가 가정을 깨어버린 이력이 있기 때문에 그 결과물이 오이디푸스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가정을 지키는 신 헤라의 저주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에서와 마찬가지로 라이오스의 미소년 추행 및 가정 파괴, 라이오스 부부간의 의사소통 부재는 악순환의 고리가 된다. 가정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 파트였다.

 

그리스로마신화 속에서 단연 많이 차지하는 부분이 사랑과 영웅담이 아닐까 한다. 장난 심한 에로스가 프시케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리자 그의 어머니 아프로디테가 프시케에게 사랑의 시련을 안겨주고 프시케가 사랑 찾아 삼만리하는 험난한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 하나. 뱀을 밟고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되찾았으나 하데스의 단 한가지의 요구를 지키지 못해, 다시 두 번이나 아내를 잃어버린 오르페우스의 사랑, 그리고 상실을 샤머니즘적 관점에서 그리고 있는 것 둘.

 

거의 대부분을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으나 유독 관심을 끈 것은 영웅담을 그리고 있는 헤라클래스와 테세우스의 이야기였다. 널리 알려진 헤라클래스의 이야기에 비해 다소 인지도가 떨어지는 테세우스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진지하게 읽을 수 있었다. 포세이돈의 미움을 산 결과 미노스왕의 아내 파시파에가 낳은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을 미궁에 가둬둔다. 하지만 9년마다 한 번씩 아테네의 처녀 총각들이 괴물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는 어렵게 얻은 테세우스를 미궁으로 보내게 되고, 그 결과 미노타우로스는 죽여 후한은 막았지만 테세우스가 애초의 약속대로 검은 돛을 흰 돛으로 바꿔달지 않아 아이게우스는 아들이 죽은 걸로 착각해 목숨을 끊는다.

 

아버지를 만나기 전, 테세우스는 아버지가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라는 것을 알고 아테네로 향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모험을 겪는다. 아버지가 남겨준 칼과 신발이라는 권력과 용맹함, 이성을 발판으로 다소 편했던 뱃길을 마다하고 산길 속에서 악당들과 마주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들을 해쳤던 그들을 물리치므로 남성적인 힘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고, 지나친 자기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겸손을 넘어 복종이라는 굴레에서 넘었으며, 아집과 독선에서도 탈피할 수 있었다. 아버지 아이게우스를 만나 다시 한 번 남자로서 발돋움해,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남성다움을 여성다움이라는 아니마로 극복한다. 그리고 롤 모델이었던 아버지를 무의식적으로 제거하는데 동조하므로 아테네의 유일무이한 왕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그 말로가 역시, 아버지와 같았다고 하더라도.

 

테세우스의 성장스토리를 심리학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사내아이가 태어나서 아버지라는 롤 모델을 만나고, 그와 비슷해지기 위해 치러야 하는 것들과 그것을 넘어섰을 때에 남자로서 자존감 있게 설 수 있다는 논리는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테세우스가 사내로서만(남성적인 것만) 우뚝 서려고 했기 때문에 아버지와 같은 말로를 가게 되었고, 이것은 아리아드네로 상징되는 좋은 아니마를 버려서 그에게 '왕좌'에 대한, 남성다움에 대한 부담을 극복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음과 양이 조화를 이뤄야 하듯이 지나친 남성다움보다는 여성다움 또한 적절하게 가미되어야 남자, 여자를 떠나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올바르게 설 수 있다는 것으로 읽혀져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뿐만 아니라 사내아이를 키워보지 못한 나에게 테세우스는 남자라는 성(性)을 이해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심리학으로 만난 그리스 신화>는 신화라서 멀리 환상 속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닌 오히려 너무나 인간적인 감정과 욕망을 지닌 존재들이기에 그들의 생활들을 통해 인간 내면에 흩뿌려져 있는 조각들을 주워 하나로 모을 수 있었고 인간을 이해하는 단초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건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바가 아닌, 그리스로마신화의 이면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이야기들을 끌어다 쓸 때에는 어디에서 가지고 온 것인지 출처를 밝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점이다. 그래도 역시 기대했던것 만큼 재미있게 읽어서, 다시한번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