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문학가 헤세를 말하자면 데미안을 빼 놓을 수가 없다. 싱클레어가 주인공이지만 제목은 데미안을 삼았을 정도로 작품 속에서 싱클레어가 갇혀 있던 세계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인물이자 싱클레어보다 사고의 폭이나 그 영향력이 대단했던 사람이다. 자신이 갇혔던 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려면 지금 것을 깰 수밖에 없다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라는 문장은 유명하다. 청소년기이거나 혹은 청소년기를 거친 사람이라면 그 문구가 미치는 파급력에 주목했을 것이고 응당 인생의 화두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내게도 역시 나를 감싸고 있던 유리가 깨져버리는 듯한 느낌과 새로운 세상에 대해 고민하던 나날을 던져주었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헤세의 문학은 <수레바퀴 밑에서>에서, <싯다르타> 등을 읽으며 그의 세계관을 더 깊이 탐독하려고 애쓰기도 했었다. <헤세를 읽는 아침>은 작가 헤세의 인생이 살아온 길처럼, 혹은 그의 세계관이 담겨있던 작품처럼 글의 전반부에서 나타나는 자신의 신념과 인생관이 뚜렷이 나타난다.

이 책을 읽다보면 행복의 추구도, 자아 탐구도, 세상을 바꾸는 것도 모두 자기 신뢰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이뤄낸 것에 대해서는 나만의 잣대로 재야한다.' (p. 2) '그저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를 좇아 나의 길을 걸어라.' (p. 8) '나를 사랑한다는 건, 나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사랑하고 더 나아가 내 운명까지도 사랑하는 것이다.' (p. 9) '당신 눈으로 직접 봐야만 보이는 답이, 바로 당신을 위한 답이다.'(p. 46) 에머슨의 <자기 신뢰>에서처럼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으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내가 옳다고 생각한 바를 외면한 채 살아간다면 빈껍데기 인생일 뿐이라고 말이다. 자신을 믿고 신념대로 걸어가라고 말한다.

'내가 순순히 따르는 것은 내면으로부터 우러나는 도덕, 개인적 내면의 소리인 윤리 도덕이다.' (p. 52)그렇다. 우리는 사람 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며 흔들릴 때도 많고 내 자신의 목소리는 이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주위의 시선과 분위기에 휩쓸려 갈 가 적잖다. 세상의 도덕적 잣대에 자신을 끼어 맞추며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행복추구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 현대인의 삶이다. 오죽하면 교육까지도 큰 틀에서 표준화로 묶어버렸을까. 헤세는 이런 것들에서 훌훌 털어버리라고, 계속된다면 사회가 어긋나며 붕괴될 것이라고 말한다. '교사는 아이를 틀에 맞춰 교정하려 애쓴다. 중략 그런 단순주의 교육이 계속될수록 사회 여러 방면에서 파탄이 날 수 있다.' (p. 122)

니체를 탐닉했던 헤세였기에 색다른 도덕률을 가질 수 있었고, '죽음은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깨닫게 되기까지 어머니를, 아버지를, 타인을,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 결국 모든 것에서 초탈하여 죽음마저도 사랑할 수 있었던 헤세. 그랬기에 온전히 자신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고 세계를 변화하기 위해 자신을 변화하고 글을 써내서 기어코 작품 속에 자신의 인생관을 심어놓으며 세상까지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그 파급력으로 인생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헤를 읽는 아침>은 헤세가 그동안 썼던 작품들이나 서간 속에서 문구들을 발췌해 엮은 것이다. 읽으면 느낄 수 있듯 주제는 일맥상통한다. 자아탐구, 고독한 삶, 자유로운 삶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에 이르는 길까지 진지하게 알려주고 있다. 헤세의 소설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글들을 이렇듯 정돈해서 읽게 되니 새삼 그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걸어간 고독한 길이 세상을 변화시킨 것처럼, 우리도 내면을 믿고 걸어가다 보면 작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렸을 때 언니랑 방을 같이 써야 해서 늘 불만이었다. 내 방을 갖게 된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꾸며야지 하는 로망이 있었던 것 같다. 결혼하기 전, 대학가 근처에서 잠시 독립해서 산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 방을 얻었을 때의 기쁨을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리고 내 성격대로 청결하게 꾸몄다. 결혼 후에도 정갈하던 살림살이는 꼬맹이가 태어난 후 어느새 난잡하게 바뀌었다. 침실을 제외한 모든 곳이 아기의 영역으로 바뀐 후 치워도 치워도 도로 제자리인 상태의 집안 풍경은 나를 좌절케 했다.

 

어느덧 꼬맹이가 자란 후 거실은 더 이상 지저분해지지 않았고, 맞벌이로 외부에 주로 나와 있지만 거실만큼은 항상 깨끗하게 정리정돈하고 살았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누구 말대로 자가 증식하는 듯한 책들이 거실에서 다락방으로, 옮겨진다해도 침실 여기저기를 차지하는 사태가 발생해 버렸다. 이제는 밑줄쳐가며 읽기 때문에 책은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주지 못할 정도로 지저분해졌고, 결국 온전한 나의 책으로 남게 되었다. 즉 내 침실은 책으로 포화상태가 되었다. 당연하게도 남편님께서는 한마디씩 하신다. 처분하라고. 그때마다 얼굴이 붉어져서 딴청을 피우지만, 버릴 수 없는 나의 소중한 책들을 어쩌란 말인가 고민이 되었다.

 

<성공을 부르는 방정리의 힘>을 보면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이 나온다. 바로 지금 현 상태를 날카롭게, 있는 그대로 체크해 점수를 매기는 것이다. 분위기, 청결도, 방치도, 통일감, 물건의 양과 수납 정도의 5가지 시점에 대해 종류별로 점수를 매기다 보면, 내가 기거하고 있는 공간이 어느 레벨인지 알 수 있다. 재생과 조화를 가져오는 고향 같은 '안심공간'인지, 한 걸음만 삐끗하면 불행이 찾아올 '실패 직전의 공간'인지, 불행과 실패를 끌어당기는 '최대 위험공간'인지, 성공이 눈앞에 있을 것 같은 '성공공간'인지, 마지막으로 방에 오는 것만으로도 행복과 행운을 만드는 '천사공간'인지 말이다.

 

나도 심각하게 체크리스트를 점검해 보았는데 다행히(?) 안심공간으로 나와서 마음을 쓸어내렸다. 실패직전의 공간이나 최대 위험공간은 그 의미만으로도 섬뜩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위하고 있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이 공간에 있는 사람의 미래는 좋든 나쁘든 안정된 상태일 것으로 예측된다. 작은 문제나 사건을 있을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나타나는 일은 좋은 일이 많을 것이다. 다만 안심감과 안정성은 있겠으나 커다란 변화, 진화, 발전, 번영은 기대할 수가 없다.' (p. 81) 이럴 때 성공공간으로 이동하려면, 마이너스의 씨앗을 제거하는 청소력 5가지인 환기, 버리기, 닦기, 정리정돈, 소금뿌리기 중 버리기와 닦기의 청소력을 시행해야 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책이라서, 침실에 있는 책을 박스를 구해와 차곡차곡 정리해서 다락방에 종류별로 분류해 놓았다. 그리고 닦고 청소를 마치니 집안이 훨씬 안정되어 보인다.

 

이 책에는 그 외에도 방 정리를 하므로써 사업운이 트이고, 금전운이 들어오며, 사람을 끌어당기는 사람운과 건강운, 가정의 화목을 결정하는 가정운, 학습의욕을 북돋우며 아이의 미래까지 예측하고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사소한 것을 바꿈으로 이 모든 운이 바뀔까, 하고 의심할 수도 있겠으나, 매일 매일의 생활공간을 바꾸므로 기분 좋은 가정생활을 영위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임은 틀림이 없다. 따라서 작은 변화가 미래까지 긍정적인 효과를 마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방정리의 길라잡이 <성공을 부르는 방정리의 힘>을 통해 이제, 조금은 건강하고 단정한 생활 영위를 통해 모든 것이 자신의 계획대로 이뤄갈 수 있는 기초가 되길 바래본다.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우정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달달한(?) 로맨스물을 읽었다. 홍수연 작가님의 작품인데, 그분의 작품을 사논지가 어언, 후. 워낙에 재미있다고 입소문을 타고 있어서 너무 기대했나보다. 마지막 장면이 마음이 아프다. 음, 나머지 두 음절의 작품을 모조리 사 놨는데 그건 또 언제 읽을지 미지수다.

 

인영과 정우는 20년지기 친구사이다. 처음 언제 봤느냐, 이건 기억에 나지 않지만 아무튼 20년 동안 한결같이 친구로만 지내왔다. 20대의 아홉수. 그렇게 서강제철에 입사해 다른 과에서 근무하던 중 인영은 정우가 있는, 그 힘들다는 감사팀으로 부서이동에 성공한다. 대학 때 모델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을 정도로 잘생긴 외모에, 놀기 좋아하고 농담도 잘해서 인기 많은 정우. 단정하고 끝내주는 다리 라인을 갖고 있으며 운동장처럼 넒은 이마에, 배려심 많은 천생 범생 인영은. 그렇게 둘은 가까운 거리에서 이웃으로, 또한 친한 부모들끼리 잦은 왕래도 저녁도 서로 챙겨주고, 과외도 같이하며 긴 시간을 공유했다. 고등학교 때, 우연찮게 보게 된 인영의 목욕하는 모습으로 친구가 아닌 여자가 되었으나 인영의 말간 얼굴을 보고는 자신의 감정을 죽이며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친구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계속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 때, 과외 선생님이었던 상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처음부터 인영의 시점에서만 글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정우의 마음은 어떨까하는 마음에 조마조마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여자는 홀릭인데 남자가 마음에 없다면 너무 비참하니까. 나중에 사랑을 깨닫고 절절이 후회한다는 후회물은 내 체질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이 작품은 그러지 말길 바라기도 했다. 그런데 이걸 어쩌란 말인가. 오히려 정우가 인영에게 목매달고 있으나 인영을 배려해, 친구로 바라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때마다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누르며 인영이 그어놓은 선 밖에서 친구를 가장하며 농담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인영 또한 늘 바라보는 정우를 남자로 의식하고 있지만, 견고하게 쌓아올린 관계가 무너질까봐 두려워하던 인영이다. 좋아하지만 눈치만 보고 그어 놓은 선을 넘어가지 못하고 있을 때, 과외선생님이었던 상현의 등장은 더 이상 친구로만 남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둘은 감정을 확인하지만, 친구로 지내왔던 시절이 있는지라 쉽사리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밝히지 못한다.

 

"바다는 상현 선생님이랑 보러가야지, 왜 너랑 보러가겠어?"

"나는 왜 안돼지?"

"넌 친구잖아."

(p. 131,  132)

이런 과정들을 보면서, 역시 남녀 사이라는 것은 특히 친구라는 이름으로 묶여있는 관계란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게 되나보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사귀는 사이가 된건가, 아니면 이런 행동은 친구가 하는 평범한 행동인가. 이 말은 연인이라서 하는 말일까. 아니면 친구로서 하는 말일까 하는 것들. 그리고 그동안 친구인 채로 지낸 이유가, 연인이 되어 훗날 혹시라도 깨지게 된다면, 친구사이도 뭣도 아닌 관계가 되어 버리는 결과가 두렵기 때문에,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될 것이 두렵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되는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런 감정. 이런 것들이 이 작품에서 참 잘 표현되었다.

 

재미있게 본 부분은 역시 사내물이라 회사 생활하는 부분이 잠시 언급되는 것이었는데, 그들의 사랑 이야기 말고도 내게 읽는 재미를 한껏 던진 작품이었다. 사랑과 생활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고 할까. 역시 사내물은 이래서 재미있단 말이지.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그들이 오해를 없애고 결혼약속까지 한 상태에서 인영이 정우의 집에서 거의 매일 음식실습을 하는 장면이었다. 정우는 밤늦게 집에 오면서 인영이 자신이 좋아한다는 음식을 배우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말이나, 또 정우는 동료들과 회식하면서 인영을 홀로 떠미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뭐, 회사생활이란 그런 것이니 늦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살을 하나 더 붙였어야 이상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정우 자신의 부재 속에서 열심으로 예비시댁에 드나드는 인영을 위해 그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글이 훨씬 의미있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언제나 자신보다는 남에게 배려심 넘치게 행동하는 인영이니, 정우의 사소한 행동 하나가 더욱 빛을 발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가 마지막에 나와서 좀 슬펐다.

 

막역지우인 미혼의 남녀사이가 10년, 20년 그렇게 지속되는 것은 힘든 것인가 보다. 역시 누구든 한 쪽은 사랑을 누르고 있기에 가능한가보다. 설핏 아쉬운 마음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