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어김없이 최고의 파티시에가 되고 싶어 하는 루루와 라라의 숲 속에 작은 과자 가게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매번 새로운 것들로 꾸며진 이야기들과 재료들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지난번에 컵케이크, 마시멜로, 초콜릿으로 우리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와 요리법을 소개해 주었는데 이번에는 과연 어떤 일들과 요리법으로 꾸며져 있을까 궁금했다. 한 단계 한 단계 새로운 재료들로 다양한 음식들을 만들다 보면 최고의 파티시에가 될 수 있겠지. 과자를 굽는 ‘파티시에’에 오늘로써 한걸음 더 바짝 다가간듯하다. 

 

이 작품에서는 이처럼 가슴 따듯한 숲 속 친구들과 루루와 라라의 이야기와 다양한 아이스크림 만드는 요리법이 소개되어 있었다. 책을 읽는 우리 어린 친구들도 아이스크림 만드는 방법이 의외로 어렵지 않아서 놀랄 것이고, 엄마와 같이 만들어 보기도 하면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곳 숲 속 친구들처럼 그동안 받았던 감사 인사를 전하는 계기 또한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도 만들어보고, 나누는 기쁨이 두 배, 세배 느끼게 되지 않을까.

앞으로 루루와 라라에게 또 어떤 멋지고 가슴 따듯한 일들이 일어날까. 다음 책이 기대된다.

종교인이라는 것은 그 이름만으로 많은 것들을 어깨에 짊어지게 된다. 종교의 이상만을 실천하다 보면 세상 속에서 살면서 세상의 것들을 외면하는 것이 과연 종교인인가 질타를 받고, 반면 세상의 것들과 동반자적 입장에서 같이 헤쳐가면, 종교인이 종교적 신념만 지킬 것이지 왜 세상 속에서 저리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댄다. 예전부터 왕의 신격화는 당연시되던 것이었으나,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정종분리(政宗分離)를 요구하게 되었고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 정치 지도자가 신의 목소리까지 대변할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섰다. 그 반대의 시각에서 종교인은 엄격히 신앙 안에서만 목소리 내는 것을 강요받고 있다. 만일 조금이라도 그 범주에서 벗어난다면 시민들의 불만은 커지고, 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회자나 신부, 스님들은 지탄을 받게 된다. 그렇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우리의 신념의 범위에 조금이라도 침해를 받게 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반면,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혹은 사회 이상이라는 큰 틀에서는 종교자들의 개입을 바라게 되는 이중성을 보여 왔다. 그 사이에서 명확히 선 분이 계시다. 바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시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생각할 때,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 그리고 당연하게도 약자 입장에서 대변자 역할을 자처했던, 또는 약자를 지키며 민중의 편에 서서 권력으로부터 방패막이 역할을 자처했던 종교 지도자라는 생각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있었던 명동성당은 1980년대에 접어들어 민주화 운동에 관련된 수배자들이 전두환 군부 쿠데타의 탄압을 피해 명동성당으로 모여들며,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소수의 다민족 국민들을 위해서 애쓰기도 하고, 경제적 기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철저하게 약자의 입장에 서서 자신의 소신대로 묵묵히 길을 걸어가신 분으로 인식된다. 

김 추기경이 선종한지 올해로 7주기를 맞는다. 그를 기억하는 각계 각 충의 사람들의 인터뷰로 진행된 영화 2014년 작 <그 사람 추기경>을 책으로 출간했다. 이 책에서는 주변 신부들과 지인들 그리고 조카 등의 기억이 담겨 있는 17편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허심탄회하게 밝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김 추기경의 젊은 시절의 모습과 인간적인 면면들, 뿐만 아니라 죽음을 목전에 둔 삶, 병원에서 선종 하기까지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전체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점 하나는 역시 우리가 기억한 대로 그는 약자의 편에 선 큰 분이었기 때문에, 일선에서 물러선 후 그와 관련된 단체들이 오히려 힘들었다는 것이다. "추기경님이 도와주시다가 은퇴하시고, 영향력도 없어지고, 또 당신이 의도적으로 일체 후임자들을 위해서 나서시지를 않았잖아요. 후임자들 활동하시라고 절대 안 나서시고 하니까 우리 쪽에서 보면, 그분이 계셨으면 여러 가지 해결되었을 일들이 참 많아요." - 김형태 변호사 편(p. 105) 이것들은 여전히 진행 중 아닐까 생각한다. 김수환 추기경이 한번 나서기만 하면 자연스럽고 원만하게 해결되었던 일들을, 그 빈틈을 메꾸기 위해 두 배, 세 배 정진해야 해결되고 혹은 그럼에도 여전히 답보상태에 놓인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당연하게도 남겨진 우리들은 신념과 이상을 위해 또 약자를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또 인터뷰를 읽은 후 김 추기경은 말씀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특히 가족에게 냉정한 분이었다는 점이다. "김동한 신부님도 그런 면은 없으셨죠. 그런데 우리가 조금 나이 들고, 시간이 지나서는 사랑스러워하고, (중략) 하지만 추기경님은 그런 면이 없으셨어요. 추기경이 되려고 그러셨는지, 공사 구분이 아주 분명했어요." - 조카 김병기 편 (p. 158) 그리고 김 추기경 최측근인 박신언 몬시뇰께도 마찬가지다.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고 김 추기경을 웃게 만들고, 가장 잘 이해하고 했었다지만 따로 충고나 조언으로 남겨주신 말씀도 없었다고 한다. "성서 신구약 합본을 사서 추기경님께 한 말씀 써달라고 하니까, 써 주셨죠. 뭐라고 쓰셨을 것 같아요? '서로 사랑하라.' 그 말씀이지요." - 박신언 몬시뇰 편 (p. 54) 박신언 몬시뇰의 인터뷰를 읽으며 나는 한두 번 웃음 지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위의 '서로 사랑하라'라고 쓰셨다는 김 추기경의 글귀를 읽으며 진하게 웃었더랬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김 추기경의 냉정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하고 생각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죽음으로 가시는 길의 모습은 머릿속에 계속 남는다. 한 차례 죽음의 위기를 겪고 살아나셨을 때 "추기경님 어떻게 거의 돌아가셨는데 깨어나셔가지고 눈을 번쩍 뜨시고 '수녀, 나 부활 했어' 하는데 그 모습은 평생 못 잊죠." - 김영균 박사편 (p. 229) 이렇게 농담을 던지실 줄도 아셨지만 식사 대부분을 힘들어했고, 또한 사시고자 의학의 힘을 빌리며 노력했으나, 노력의 힘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아시고 포기하셨다고 한다. "바닥을 받아들이는 단계, 바닥을 치고 거부하고 그런 과정을 다 겪으신 것 같아요. (중략) '정말로 하느님 없으신 것 같아. 배반하게 될 것 같아',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그런데 완전히 바닥까지 친 다음에, 다시 하느님께 의지하면서 돌아오시는 것 같았어요. (중략) 그렇지요. (예수님이)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셨다가 '다 이루었다', 하시지 않았어요? 그런 과정 겪으셨죠." - 고찬근 신부 편 (p. 145, 146) 죽음으로 가는 길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종교에 귀의한 분들을 보는 우리 범인들의 잣대는 한마디로 우스을 지경인데, 이렇게 신부님이나 목사님들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고소를 금치 못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들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예수님도 죽음을 두려워하셨다는 것이다. 그것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시고 위 고찬근 신부님 말씀처럼 '다 이루었다'고 고백 후 하늘나라로 올라가셨다는 것,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 절대자가 아닌 이상, 인간인 이상, 그렇게 좌절하고, 바닥을 치고, 또 바닥을 치고, 다 버린 후에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읽게 된 <그 사람 추기경>을 통해 완벽한 종교인보다는 어쩌면 사람 김수환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제목조차 '그 사람', <그 사람 추기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비록 고 김수환 추기경의 삶이 제2차 바티칸 공회의 뜻을 따랐기 때문에 세상 속에서 약자의 편에 섰다고 이해될지라도, 예수님처럼 가족마저도 냉정히 대한 외롭고 외로운 길을, 자신과의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걸어간 삶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 고독하지만 뜻있고 소신 있게 살아간, 예수님을 닮으려 사신 모습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기에 인간일 수밖에 없는 '사람' 김수환 추기경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를 일본과 합의한 것에 대해 공분을 산 일이 있다. 뉴스를 보면서, 현 정부에 대한 불신에 확증을 심어준 일이라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현존하고 있는 우리의 어르신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것임은 분명하다는 점이었다. 과연 박근혜 정부라고 할까. 합의된 어쭙잖은 돈으로 무엇을 할 요량인지 모르겠으나 이처럼 쉬운 결단을 그동안 내리지 않았던 전 대통령과 참모들, 국민들 생각에 완벽히 반하는 행동은 지금도 생각하면 불끈 화가 치밀 지경이다.

일본 식민지가 시작된 지 30년이 지난 1940년, 세 소녀의 만남을 기점으로 이 작품은 시작되고 있다. 일본 주재소 순사를 때리고 만주로 도피한 아버지, 그를 찾아 떠난 어머니는 영실을 중학교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경성에 있는 이모네 집에 맡긴다. 그때는 몰랐었다. 중학교를 마칠 수 없다는 것을, 개성 강한 두 친구를 만나게 되리라는 것도, 그리고 경성을 떠나 일본으로 가게 되는 것조차 말이다. 경성에 있은 이모네 집에서 가끔 배달도 하고, 이모 아들 동수를 돌보며 하루하루를 버티다가 동갑내기 은화와 정인을 만나게 된다. 부모가 없는 은화는 화월각이라는 기생집에서 태선어미 손에서 자랐다. 비록 자신은 기생은 아니지만 태선어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기생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정인은 그의 아버지가 일본 앞잡이로 활동해 풍족하게 살고 있지만 그 사실이 편하지만은 않다. 

이렇듯 세 소녀는 같은 나이와 답답한 현실이라는 것에 동질감을 느끼고 개천 아래의 아지트에서 종종 만나서 우애를 다진다. 가끔 술을 숨겨와 먹기도 하고, 중학교에 가지 못하는 영실을 위해 아낌없이 책과 옷을 나눠주기도 하고, 그리고 중학생 소녀답게 앞으로 현모양처라던지, 작가라던지, 선생님이라는 자신들의 꿈을 이야기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한치 앞을 바라보지 못하는 어려운 시기에 평범한 소녀들의 작은 소망으로 이 작품은 시작되고 있었다.

계속될 것 같았던 그녀들의 일상은 강제징용과 위안부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바뀌기 시작한다. 정인의 아버지는 이런 것들을 피하기 위해 정인과 정인의 오빠를 불란서로 유학 보내 버리리고, 은화는 불안한 앞날을 견디다 못해 화월각을 뛰쳐나오는데 그것이 오히려 암흑의 길로 빠지는 결과는 낳게 되었다. 영실은 이모의 내연남인 나카무라의 소개로 일본 하카다의 화과자 집으로 보내져 일도 하면서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탄광에서 일하다 건강을 해친 그녀의 아버지와 병원에서 조우하게 된다.

'우리들 몸이 더러워진 것은 우리 뜻과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에요.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죠. 우리는 전쟁을 원한 적도 없고 전쟁에 미친 군인들을 위무할 생각도 없었어요. 그건 미친 바람이 지나간 자리일 뿐이에요. 바람은 곧 잠들 거예요.' (p. 243)

일본이 항복 선언한 해는 1945년. 이 작품의 시작은 1940년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일본이 패망하기 전 최후의 발악을 하던 시기라고 짐작된다. 따라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남자들은 전쟁터로 혹은 이름 모를 탄광으로 끌려갔으며, 여자들은 군인들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위안부로 끌려가던 시기였다. 작품을 읽다 보면 왜인지 모르게 무채색의 풍경과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무채색 속에서 소녀였던 우리 어른들은 포기란 것이 없었다. 아버지를 찾기 위한다던가 혹은 기다림을 놓지 않고 지칠 줄 모르는 영실의 모습에서, 다다미 방에서 나신으로 자신의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살시도까지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삶을 되찾고자 도망치는데 성공하며 삶을 이어간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조상들은 힘겹지만 삶을 놓지 않았다. 포기할 수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버릴 수 있었지만 버리지 않았다. 우리 어른들이 두렵고 힘들고 절망밖에 없는 벼랑 끝에서도 이렇듯 만신창이로 삶은 마감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았다는 삶의 숭고한 진리를 보여주고 있다. 작품 속에서 시조를 이용한 가투놀이로 한민족의 얼을 계승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끈질긴 생명력은 짓밟히더라도 살아날 것이다. 지난 역사에서 증명하듯이 앞으로도 꾸준히.

지난 역사는 돌이킬 수 없다. 그리고 지울 수도 없다. 우리의 조상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는 돈으로도 종이컵과 같은 일회용 사과로 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위안부 소재의 영화 '귀향'을 보았다면, 그리고 북폴리오에서 나온 이 작품 <몽화>를 박근혜 대통령이 읽었다면 역시 같은 방법으로 일본과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을까 의문이다. 그 시기를 살아오지 않은 사람이라면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는 것을 알 것이다. 우리 어른들도 이 작품에서처럼 꿈이 있는 소녀였을 것이고, 야망이 있는 청년들이었다. 꽃처럼 피었다가 허무하게 져버리는 사람들 속에서도 꿋꿋하게 생명을 지켜낸 그들을 숙연하게 바라봐야만 하며, 누구도 그들의 삶을 가벼이 바라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런 분들의 삶의 애환이 지금까지 깔려 있다. 그렇기에 박근혜 정부의 지난번 위안부 합의건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