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작가로 유명한 기욤 뮈소의 <지금 이 순간>을 읽었다. 그의 책들을 몇 권 소장하고 있지만 왜인지 그의 소설을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읽으면서 기욤 뮈소의 작품이 가지는 특징과 매력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놀란건, 이 작품이 액자소설이었다는 점이다.
 
아서 코스텔로라는 24살짜리 청년이 있다. 부모에게서 독립해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의사로 일하며 홀로 생활하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아버지가 찾아와 낚시 갈 것을 제안한다. 자신은 어머니의 일탈에 의해 태어났기에 아버지가 친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일정 거리를 두고 관계를 유지해 오던 것이 옛일마냥 도미 낚시를 가지고 제안하는 아버지가 의아스럽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를 따라나서고, 방향을 잡은 것은 늘 향하던 24방위 바람의 등대가 있는 코드 곶이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재산을 형과 누나에게 줄 것이며, 단 이 등대와 별장을 물려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단, 두 가지의 단서를 달고서. 첫째, 이 집을 절대 팔지 말 것. 둘째, 지하실의 금지된 문을 절대 열지 말 것. 아버지에게 항의하는 차원에서 결국 등대가 있는 별장을 받겠다며 서류에 사인하고, 이 모든 것이 실종된 할아버지와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자신의 소유가 되어 궁금함을 참지 못한 아서는 결국 망치를 이용해 쌓았던 벽돌을 부수고 문을 열게 된다. 벽돌문을 부수기 전에 보게 된 문구 'Postquam viginti quattuor venti flaverint, nihil jam erit.(24방위 바람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으리라.)' (p. 40) 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순간 서늘한 바람이 아서를 훑으며 다리가 꺼지는 느낌과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무력한 상태로 눈을 떠보니, 세인트 파트리크 성당 안이었고, 더군다나 자신의 모습은 등대에서 빨려 들어가기 전 옷차림 그대로의 반라의 차림이다. 이로써 구치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지만 겨우 빠져나오고, 그 후 24시간을 지낸 다음 다시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다시 깨어나면 역시 그로부터 1년 후이다. 매번 24 시간을 지낸 후 정신을 잃고 다른 장소에서 1년 후에 깨어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아서. 할아버지가 살아계시다는 것과 그 할아버지를 통해 등대 미스터리의 진실을 듣게 된다. 할아버지 역시 같은 일을 겪었으며 24년을 24일간 살았고, 할아버지처럼 아서 역시 그래야지만 이 저주에서 풀려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 저주의 끝은 24년간 어떤 일을 겪든, 인간관계를 만들어 오더라도 그 역시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도. 할아버지 역시 같은 경험을 했노라고. 그렇다면 아서는 이제 막 시작하게 된 리자와의 사랑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리자는 아서와의 사랑을 지켜낼 수 있을까.
 
작품을 시작할 때부터 몰입감이 너무 좋았다. 한번 손에 들었더니 끝날 때까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었으며, 심지어 밥 먹기조차 싫을 정도로 한시도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왠지 환상특급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 무엇보다 할아버지의 인생이 그러했듯 아서의 삶도 불을 보듯 뻔하게 흘러서 리자와의 24년간 지켜온 사랑이 그저 저주의 이름 아래 사라져 버릴까 걱정도 되었다. 그토록 절실했던 24시간을 24번을 지낸 후, 24년을 훌쩍 뛰어넘은 시간 속에서 아서는 과연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리자와의 사랑을, 인생의 전부가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그 사랑을 지킬 수 있을까 마음 졸여가며 글을 읽게 되었다.
 
사랑은 운명이라고 한다. 아서 또한 미로와 같은 시간 여행 속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언제나 리자 주변이었다. 그리고 그렇지 않더라도 아서는 끊임없이 리자를 찾아간다. 운명이 아니더라도 운명을 향해 돌진해 가듯이 말이다. 과연 나라면, 아서와 같은 입장에서 어떤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고민해본다. 기필코 없어질지도 모를 신기루와 같은 인생을 선택할 수 있을까. 사랑이기에 선택이란 것이 무용한 것인가. 그래서 더 운명이라고 이름 지어진 것일까.
 
이 작품을 읽는 재미는 24년간 실제 일어난 세계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허무맹랑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 진지한 자세로 글을 정독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기욤 뮈소가 원하던 것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실제로 느끼면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아서와 리자가 느끼는 문제를 독자 또한 정면으로 부딪히게 하려고 말이다. 24년 후(미래)를 기약할 것인가, 지금 이 순간을 선택할 것인가 하고.

그래도 역시 액자 소설을 좋아하지 않아서, 만일 이 작품이 액자소설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읽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아 살짝 들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왜 기욤 뮈소의 작품에 열광하는지 여실히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신화를 심리학적 관점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심리학적으로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 흥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얼마 전에 읽었던 <심리학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는 내게 새로운 각도에서 심리학을 바라보게 한 첫 번째 계기였다. 다만, 우리나라 신화적 측면에서도 심리학적, 즉 정신 분석학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되는데, 왜 그런 책은 없을까 궁금해하던 차에 <심리학으로 만난 우리 신화>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마침 목이 말랐는데 숭늉 한 그릇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이 책을 통해 소위 신화로 알고 있던 우리나라 고대 시조 이야기 외에, 전래동화식으로 간간이 들어 알고 있던 이야기도 신화적 접근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이 새롭게 느껴졌다. 점점 깊이 있게 읽다 보니 이건 그냥 전래동화가 아니요, 심리학적 관점에서 다듬어져 이야기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철저하게 심리학적으로 접근할 때에만 그 속 깊은 이야기가 이해된다는 것이다.
 
다만 서양의 그리스신화에서 철저하게 부계 사회, 남성 중심의 사고를 중요시한 것과는 대비되게 우리나라의 신화 속에는 모계 중심이라, 남성은 힘을 그다지 발휘되지 못했으며, 생각 외로 여성의 힘이 높아 보인다는 점일 것이다. 전래동화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린 여자애들이 고난을 겪고 자아 성숙의 기회가 되고, 자립적으로 살아간다는 내용이 많다는 점과, 주몽의 탄생 배경이 해모수와 유화부인의 이야기에서 유화부인의 내용이 상당히 자세하게 기술된 점, 또한 주몽의 부인 소서노가 어떻게 해서 주몽과 결혼하고 또한 독립해서 두 아들과 분가했는지 과정 속에서 우리는 국가라는 개념이 들어서기 전에는 모계 중심의 사회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단군신화에 들어서서는 가부장적 면이 부각되기는 하지만.)
 
'아이를 엄마의 또 다른 나라고 생각하면 그 아이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p. 33)

책을 읽고 깨달은 이야기의 큰 틀은 그렇다. 첫 번째, 남자든 여자든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분리되어야 하기 때문에 수많은 고난들과 맞닥뜨리다 된다는 것이다. 혹은 버림을 받아서라도 반드시 부모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효와 다른 측면에서) 만일 그럼에도 부모를 버리지 못해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자손을 얻지 못하게 되어 자신의 대에서 가문이 끝난다. <당금애기 이야기>, <바리데기 이야기>, <유화부인 이야기>, <소서노와 비류, 온조 이야기>등에서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기본으로 깔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성성이나 남성성을 고착시켜서 "나는 여자니까" 혹은 "나는 남자니까"라는 생각이 나를 가두는 것이 아닐까.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편협한 사고와 행동이 고착되어버리면 그 누구도 진정한 영웅이 되기 힘들다.' (p. 95)

두 번째, 전래 동화나 신화 속에서 받는 고난과 고통은 나를 달금질해서 온전히 자아 성숙을 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원천강본 이야기>, <바리데기 이야기>도 그렇지만 <오늘이>, <우렁각시>, <주몽>에서 유리왕이 아버지를 찾아가는 과정 등은 모두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는 것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설령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별 볼일 없고 하찮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서로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왕자이고 공주일 수 있는 것이다.' (p. 266)

세 번째, 외롭고 하찮아 보이는 남자들을 영웅으로 이끌 수 있는 힘은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다. <우렁각시 이야기>,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 등은 자신의 관점에서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여인과 함께 하기 위한 최대의 목표이고,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이길 수 있는 에너지라는 점이다.

이처럼 <심리학이 만난 우리 신화> 속에는 전래동화나 신화 속가 가지고 있는 사소한 것들이 내포하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숫자에 관련된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수레가 가지는 의미들, 주인공들이 헤쳐가는 하나하나의 고난과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들은 결국 인생은 고진감래라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 속에서 신들이 거치는 과정들을 듣고 깨달으면서 우리 인간들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한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너무 방대한 내용을 다루었다는 점과, 따라서 신화나 전래동화를 거의 발표 형식으로 글을 써나가고 있어서 신문의 '정보'란을 읽는 듯한 딱딱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가짓수를 줄이고, 정보를 준다는 생각보다는 할머니가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관점에서 글을 써 내려갔으면 훨씬 재미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우리애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을 때, 특이한 아이를 만났다. ADHD(주의력 결핍 장애)라고 의심될 정도로 수업시간을 산만하게 만든다던가 시시때때로 책상 위에 올라간다던가 해서 수업을 방해했던 아이. 그 아이의 엄마는 지극히 평범하고 조용한 엄마였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그 아이의 엄마는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라고 가끔 생각될 정도로 무조건 아이의 의견을 수용해주었기 때문에 보통의 엄마와는 분명 거리가 있었으니 말이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큰 틀 아래 무조건, '그래'라는 말과 함께 다 들어주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어 신기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도 저런 엄마를 가졌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내 자녀는 너무 엄격하게 키우는 것은 아닐까 반성도 했더랬다.

여러 가지 감정이 들게 만드는 작품을 만났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엘사처럼 나이 어린 소녀가 주인공인 작품으로 예전에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읽은 후 몇 년 만인가. 이번 작품에서도 엘사를 통해 도전하며 꿈꾸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성장하게 되었다. 엘사에게 그런 할머니가 있었다는 것에 대해 부러움과 질투가 났다. 우리 애 초등학교 때 만난 그 아이의 엄마와는 다르지만 전적으로 엘사 편에 서서 자신의 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지지한 초특급 울트라 파워, 슈퍼 히어로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난 아직 정신적으로 덜 자랐나 보다.

'세상의 모든 일곱 살짜리에겐 슈퍼 히어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정신과에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p.11)

휴대폰을 잠시도 손에 놓을 줄 모르는 일중독 엄마와 레깅스 위에 반바지를 껴입는 새아빠 예오리와 같이 살고 있는 엘사는 어른들을 보는 관점이 색다르다. 그녀의 할머니를 살짝 '기능 장애가 있는' 슈퍼 히어로라고, 엄마를 완벽하고 빈틈없는 '정상적인' 슈퍼히어로라고 구분한다. 그녀의 부모가 이혼했을 때, 잠자리에 들기 겁이 났던 엘사에게 굳이 잠들기를 강요하지 않는 할머니가 옆에 있었다. 오히려 눈을 반쯤은 감고, 반쯤은 떠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깰락말락 나라의 미아마스 왕국에 대해 처음 이야기를 들은 터다. 그 후론 잠자리에 드는 것이 겁난 적이 없다. 할머니와 둘만의 암호로 이야기하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할머니, 전적으로 엘사 편에 서서 이야기하는 할머니, 특히 엘사가 틀렸을 때 더더욱 엘사편인 할머니, 일곱 살 답지 않은 일곱 살짜리 엘사에겐 일흔일곱 살 답지 않은 일흔일곱 살 먹은 할머니가 있다. 

그날, 선배들이 엘사의 보물 1호인 해리 포터의 그리핀도르 목도리를 찢어서 변기에 버려 엉망진창이 된 날, 할머니는 병원에서 탈출해서 동물원 습격사건을 벌렸다. 나쁜 기억이 좋은 기억으로 덮여버리도록, 사람들을 구하는 능력과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이중적인 초능력을 가진 할머니는 엘사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엘사는 이 세상 모든 지식이 있는 위키피디아를 통해 이미 다 알아버렸다. 죽음을 목전에 둔 할머니는 엘사에게 보물찾기 놀이와 같은 게임 형식으로 편지를 배달하라는 미션을 준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편지를 찾아 하나하나 전달하면서, 할머니의 지난날에 대해, 그리고 할머니가 구했다는 이웃 사람들에 대해, 엄마에 대해 알아가며 그들의 아픔을, 엄마의 아픔을 알게 된다. 더불어 지금 자신의 엄마처럼 할머니 역시 바쁜 나날로 엄마에게는 그다지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는 것도.

영웅의 가족은, 슈퍼 히어로의 가족들은 역시 외로울 수밖에 없나 보다. 엉뚱하고 자신의 가치관이 맞지 않다면 '정치적으로 너무 옳아서' 문제가 있다며 My way를 외치며, 재난 사고 현장을 누비며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꿋꿋하고 소신 있게 걸어간 슈퍼 히어로는 늘 바쁘기 때문이다. 엘사의 할머니가 슈퍼 히어로이기 때문에 그 파급 효과로, 엘사의 엄마는 할머니가 떠난 빈 공간을 지키며 혼자 가정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외롭게 견디며 할머니와는 정 반대의 삶을 산다고 하지만, 어느덧 완벽주의자 엄마는 할머니와 다른 듯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엘사를 할머니에게 맡기면서.

‘할머니가 보기에 전적으로 사실이거나 전적으로 허구인 이야기는 없었다. 전부 다 모든 면에서 진짜 같으면서도 동시에 그렇지 않았다.’ (p. 258)

작품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할머니는 그동안 영웅으로 삶을 살면서 그녀가 구해낸 사람들을 엘사의 탄생으로 돌보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제일 미안한 사람은 할머니가 가장 사랑하는 손녀 엘사였으니, 깰날말락 나라의 사람들로 구성된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미안함을 전하면서 엘사를 부탁하게 된다. 그렇다. 사실은 할머니가 엘사에게 들려주는 깰락말락나라의 여섯 왕궁 속 이야기가 전부 사실이었으니.

편지 주인들에게 미안하다며, 너무도 사랑하는 손녀딸을 돌봐주라고 하지만 할머니가 내민것은 미안함이 담긴 관심을 놓지 않았다는 표현이었고 사랑의 연결이었다. 그리고 아파트 입주민들의 아픔을 엘사 또한 이해하게 되고, 세상으로 한걸음 내딛으며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삶을 살았던 할머니는 진정 슈퍼히어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사랑이 잠시 흔들리기도 했으나 할머니의 사랑이 오로지 자신에게로 향했다는 절대적 믿음을 가지고 엘사는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엘사는 그리핀도르 목도리로 두 사람의 코를 닦는다.
“세상에 완벽한 슈퍼 히어로는 없어요, 엄마. 괜찮아요.”’ (p.509) 

할머니가 제시한 보물 찾기를 통한 미션, 편지 배달을 통해 엄마 역시 할머니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할머니가 남긴 마지막 편지가 엄마의 편지가 되길 바랐지만 사실 첫 편지는 엄마에게 보낸 거였다. 할머니와 조금이라도 관계있던 사람들은 서로를 받아들이고 남아있던 앙금이 없어지길 바라면서. 그리고 엘사마저도 할머니와 엄마와 아빠, 그리고 엄마 뱃속에 있던 반쪽이로 인해  언제 가족에게 떨어져 나갈지 모를 원천적인 두려운 감정 역시 해소할 수 있었다.

처음 도입부부터 '우라지게'라는 욕을 수도 없이 들은 터라 그 말이 욕이 아닌 것처럼 들린다. 그저 친근한 애정표현처럼 말이다. 그리고 할머니의 한마디 한마디가 엘사와 죽이 맞아서 배꼽 잡고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특히 성숙하고 조숙한 엘사의 생각과는 반대로 7살짜리 어린애다운 행동들이 나올 때는 웃음이 귀에 걸려 내려올 생각을 안 했다. 가령 상처 난 얼굴 때문에 교장실에서 엄마와 교장선생님과 심각한 대화중임에도 엘사가 지구본을 끊임없이 만지작거리고, 휴지통을 발로 차기에는 거리가 있으니까 의자 깊숙이 몸을 묻고 다리를 뻗는 행동들 말이다. 정말 어린애다운 행동이지 뭔가.

‘우리는 할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더라도 얼마든지 오랫동안 할머니를 사랑할 수 있다.’ (p.127)

이렇게 절대적 힘을 가진 슈퍼히어로를 가진 엘사가 부럽다. 엘사를 향한 사랑이 정자체로 작성한 이름에서 확인되듯 정성 가득이다. 글씨가 생각을 따라가지 못해 늘 문법이 틀리는 할머니의 사랑이 마음 깊이 와 닿는다. 마지막에 이렇게 울릴 줄은 몰랐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한동안 먹먹해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도 언젠간 한 사람에게 절대적인, 틀렸을 때 더욱 지지해 줄 수 있는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