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에 어울리는 약간은 나른한 듯 기지개를 펴고 싶은, 이 계절과 닮은 작품을 만났다. 4월, 이제 봄은 어느새 자리를 내어주며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중에 연노랑 표지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작품을 말이다.
 

전직 미용사인 다로는 이혼 후 재건축이 예정된 낡은 연립주택에 이사 와 혼자 몇 년째 지내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뷰 팰리스 III' 연립주택은 옛 방식처럼 각 호수마다 십이지신의 이름을 붙이는 옛 느낌 그대로의 집이다. 이미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사를 했고 다로 또한 이사를 해야겠지만 아직은 미루고 있는 형국에 연립 블록 너머의 물빛 집을 염탐하는 진(辰)호의 니시를 만나게 된다. 니시가 물빛 집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인지라 관심을 끊으려 해도, 그녀가 자꾸 앞에서 알짱거린다. 끊임없는 집작으로 담을 넘으려고 하고 다로는 니시가 왜 물빛 집에 과도한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된다. 물빛 집은 고등학교 시절 인기 있었던 사진집 '봄의 정원' 사진첩 속의 집으로 젊은 광고 감독과 여배우의 일상이 담겨 있었고, 니시는 '봄의 정원' 속 물빛 집을 가까이 보기 위해 이 연립으로 이사 온 것이다. 
 
물빛 널에 적갈색 기와지붕과 널찍한 툇마루, 정원에는 목백일홍, 산벚나무, 자그마한 석등, 그리고 황록색에서 녹색으로 그러데이션을 이루어 숲 같은 느낌의 욕실을 갖고 있는 물빛 집은 니시가 결혼과 사랑을 키워가도록 만든 꿈의 이상향이었다. 빈집이었던 그곳에 누군가 이사를 오게 되어 직접 들어가 볼 수 없다는 것이 더욱 애가 타게 되고 이처럼 도둑고양이처럼 살피고 있었던 니시였다. 그리고 귀찮음 속에서도 그녀를 도와 물빛 집의 그리움을 공유하게 되는 다로. 그렇게 일상은 흘러가고 다로의 하루하루도 흘러간다.
 

 

다로가, 니시가 만나는 에피소드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란 계절을 닮은 듯 참으로 오묘하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계절은 각기 각색의 위용을 자랑한다. 봄, 메마르고 외로워 보이던 나뭇가지와 대지에서는 꿈틀꿈틀 새싹이 돋아나고 내가 좋아하는 연둣빛들이 지천으로 깔린다. 그리고 노랑, 연분홍 등 꽃들까지 가세한다. 여름, 그 어떤 것이라도 태워버릴 듯한 태양 아래서도 대자연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나간다. 가을, 이제까지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미처 뽐내지 못한 것들까지 가세해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그리고 다시 봄을 향해 가면서 지난날 자신이 가졌던 그 모든 것을 털어내 버리는 겨울이 와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사계절이 지나듯 그렇게 우리들의 이야기도 하나하나 더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 어느 것 하나 동일함을 거부하지만 지나온 계절의 이야기들은 가지 속에, 계절 속에 고스란히 저장된다. 
 
'그때까지 나무는 도로나 공원, 아니면 먼 산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집에 계절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중략) 그냥 늙어갈 뿐인 물체가 아니라, 성장해서 꽃이 피고 겨울이면 말라죽은 것 같던 나뭇가지에 또다시 움이 트는 생명이 있다.' (p. 49)
 
겉에서 보면 다로의 일상이 네모 반듯한 아파트의 단조로운 삶처럼 보일지라도, 그 속에서도 계절은 어김없이 변하고 초침이 나아가듯 같은 모습들이란 하나도 없다. 소소하게 이루어지는 듯 우리네 단면 단면들이 만나 하나의 입체적인 모습을 만들고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사계절만큼이나 다양하고 뚜렷한 특색이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이다. 혹시라도 지진과 같은 사랑이, 토네이도 급 변화가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라르고처럼 느린듯하다가도 모데라토로 돌아가 우리의 삶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간다. 그럼에도 변화가 있고. 희망은 있고, 행복이 있고, 그리고 그 속에는 어김없이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발자취처럼 각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물건들은 우리들에게 기억과 사연이 된다. 니시로 인해 다로의 삶이 에피소드에 불과할지라도 그 작은 변화가 반갑고 그 속에서 과거의 이야기들을 담은 단편들을, 희망을, 기쁨과 꿈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다. 그렇게 추억이 담긴 그리움을 마음에 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네 삶이 잔잔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 

경영과 마케팅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있다면 세스 고딘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책 <보랏빛 소가 온다>를 통해서 고만고만한 마케팅계에서 완벽한 차별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한차례 폭풍을 만들었었다. 그가 들판의 소떼들 속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보랏빛 소'라는 개념을 새로운 제품군에, 사람에, 판매 전략에까지 골고루 적용한다. 어떻게 보면 같은 제품군과 비슷한 광고 속에서, 즉 레드오션 속에서 '블루오션' 전략을 창조해 낸다는 그의 신마케팅 기법은 '실패할지라도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라는 패기와도 맞물린다. 따라서 그의 유명한 도서 <이카루스 이야기>는 당연한 수순처럼 따라오게 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아버지의 말을 거역한 오만한 이카루스'가 아닌 '너무 낮게 날지 말라'는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낮춰보며 현실에 만족하며 살지 말라는 삶의 진지한 조언이었으며 이번에 읽게 된 그의 책 <지금 당신의 차례가 온다면>에서 그가 주장하는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말고 잡아라' 즉, '지금 당장 기회에 올라타라(무경십서, 지용)'과 일맥상통해 보이기도 했다. 

이 책의 표지에서 나와 있지만 '고장 난 에스컬레이터 이론'을 통해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선택' 하는 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만일 엘리베이터에 문제가 생겨 멈추게 된다면 우리들은 과연 어떤 양상들을 띄는가에 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장 난 에스컬레이터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소리를 지르거나 주저앉아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이 위기에서 구해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이성적으로 살펴보면, 우리는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스스로' 걸어서 나올 수도 있지는데도 '간단한 선택의 자유'를 취하지 않고 '두려움'에 쌓여 있어 이성적인 힘을 발휘해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나를 방치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이 상황뿐만이 아니라 전 영역에서 같은 잣대로 확장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실패했을 때의 대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의 대가보다 적다.' (p. 29) 

세스 고딘은 이야기한다. 지금 어떤 상황인가요. 그 상황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건가요, 라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있음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잡는 것은 '용기'이니 그것을 가지라고, 실패할지도 모르는다는 '두려움'은 저만치 밀어 넣으라고. '고통(두려움)은 실제로 일어난 일 때문이 아니라 미리 설정해둔 기대 때문에 생긴다,' 라고. (p. 62) 그렇다. 기대로 인해서, 미래에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실패의 가능성 때문에 지레 겁먹고 움츠러들며, 아예 시도조차 안 하기보다는 차라리 그에 따르는 경우에 수에 맞추어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아들러 역시도 '죽음이나 미래'에 대해서 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현재의 나에게 집중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를 내세우지 않았던가. 

이 책의 저자인 세스 고딘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 구루 중 한 명으로 변화의 리더, 도전의 참 스승이다. 그는 기회란 언제 찾아올지도 모른다며, 선택해야만 하는 필연적인 자유를 역설하고 있었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컨퍼런스장에서 세스 고딘의 세미나를 보는 것처럼 '선택과 자유'라는 주제의 프레즌테이션(presentation)의 한 가운데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슬라이드를 하나하나 보여주는 듯 서술하는 색다른 방식의 이번 책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세스 고딘의 도전정신이 밑바탕에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들 역시 다른 방식의 책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던가. 이것이 결국 주저함 없는 그의 경영철학과도 맞물리면서 말이다. 

'당신의 차례가 됐을 때 그때가 바로 당신이 나설 차례다. 당신에겐 자격이 있다.' (p. 36) 
'Just Do It(오로지 한번 해봐)'- 나이키 슬로건 (p. 168) 

책에서 나오는 많은 사람들은 기회가 있을 때 잡았고, 두렵고 실패 가능성이 있었지만 도전한 사람들이다. 그들처럼 혹시 기회가 온다면, 아니 아주 작은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그것을 잡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며 결과적으로 그 어떤 것에도 뛰어들 수 있는 용기는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글은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사랑과 용기와 도전과 선택과 자유는 현재 상태에 머무르며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만족이라는 형태의 '겁쟁이'를, 그 선을 넘기 위해 내딛는 우리들의 작은 발걸음이라는 한 걸음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 중에 예전에 비해 애묘인이 많이 늘어나는 추세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대인들이 아파트 등 공동생활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짖어대는 강아지들의 소란스러움을 감당 못 해서 일수도 있겠지만, 워낙에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고양이에게 빠진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강아지만 키워 봤지 고양이를 키워보지는 못했지만 많은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통해 고양이의 매력에 여러 번 빠지기도 했다. 그 사랑스러움이란. 강아지와는 또 다른 행동거지들은 내게 그 매력을 한껏 어필하고도 남았다.
 

그에 맞춰서 본격적인 애묘 만화도 등장했으니, 그야말로 애묘천국이 맞나 보다. 단, <고양이 털갈이엔 브레이크가 없지>에서 작가가 겪었던 여러 가지 상황들을 보며, 집사로서 고양이와의 동거가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는 경고를 한 번쯤은 혹은 시시때때로 받기도 한다. 과연 이 책은 인간이 고양이를 키우며 겪은 전반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개도 오래 키우다 보면 영물이라고 일컫을 정도로 인간과의 교감이 늘어나기도 하는데, 하물며 고양이는 더하지 않나 싶다. 어쩔 때 보면 사람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게 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