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납골당

 

                                                  문정희

 

건너편 아파트에 내 첫사랑 살고 있다
그의 아내가 유난히 예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베란다에 세워 둔 유모차도 보았지만
내가 딴 데 시집가서 아이가 열 명이 되더라도
나를 기다리겠다고 한 약속 잊지 않고 있다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이면
목소리 가다듬고 가끔 건너편 아파트를 쳐다본다
나 아직 아이가 둘뿐이라고 소리쳐 줄까
그러다가 멈칫 앞마당을 내려다본다
웬 여자가 아이 둘을 양손에 잡고
내 남편의 방 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창문을 드르륵 닫는다
밤바람이 사뭇 상큼하다

 

사랑이 식은 재가 칸칸이 담긴 탓일까
건너편 아파트 불빛이 납골당처럼 교교하다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한 잔의 커피가 생각나듯 삶의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면 문득하니 추억에 젖게 된다. '아이가 열 명이 되더라도 나를 기다리겠다고'한 남자의 약속을 기억하는데, 남자는 이미 잊은 듯 예쁜 가정을 꾸미고 있다. 그것이 당연한 것임을 알면서도 삶이 힘겨운 날이나 감성에 빠져드는 어느 날엔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고,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인은 남편 또한 남자임을 잊지 않은 것 같다. 첫사랑의 남자와 남편 그리고 세상의 모든 남자를 엘리베이터 안 삼면의 거울 속에 세워두었다. 그 자신도 무한 반복이 가능한 거울 앞에 선 듯 앞마당에 선 여인으로 스스로를 바라보았다. 삶은 관계와 관계의 연속, 내가 누군가의 첫사랑이듯이 남편 또한 누군가의 첫사랑일 수 있다. 세상의 남녀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고 첫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나는 창문을 드르륵 닫는다'에서 '드르륵'이 시 밖으로 튀어 나오는 것 같다. 조용히 닫을 수도 있을 텐데, 생각의 깨어남과 회귀 그리고 안전한 공간의 확보와 시인의 의지를 소리로 표현하였다. '밤바람이 사뭇 상큼하다'고 까지 표현했지만 '건너편 아파트 불빛'을 '납골당'에 비유한 것을 보면 그래도 남은 아쉬움이 있었을까? 아니면 이젠 '묻겠노라'는 결연한 의지로 '납골당'이라 표현하였을까? 교교한 것은 불빛이 아니라 시인의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졸지에 아파트는 '첫사랑의 납골당'이 되어버렸다. 제목이 입 안에서 자꾸 덜거덕 거리는 것을 보면 조금 과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시집 한 권을 평할 재주는 없어서 시집 중 시 한 편을 골라보았다. 읽기 어렵지 않지만 가볍지 않은 사유를 가진 매력적인 시들로 채워진 시집이었다.

 

책 제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표지는 그리 흔하지 않은 것 같다. "신경림", "다니카와 슌타로"의 이름만으로도 제목은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인지 제목의 크기는 작지만 그래도 꼭 먼저 읽어보고 책을 펼치면 좋을 것 같다.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 어떻게 내 몸에도 들어올까 기대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시와 시, 대담, 에세이까지 한 권에 다양한 글이 있어서 지루하지도 않고 또 한일 두 나라의 시에 대한 이야기도 접할 수 있다. 솔직히 난 일본의 시보다 두 분의 대담을 통해 한국의 시의 과거와 현재를 짧게 나마 돌이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둘이서 짓는 시를 일본에서는 '대시(對詩)'라고 부른다고 한다. 책의 말미에 보면 대시는 한국에 없는 형태의 시라고 하였는데, 시조에 수작(酬酌)이란 것이 있다는데 비슷하지 않을까하고 잠시 생각해보았다. 이 책의 첫 부분에 있는 만큼 대시가 눈에 띄였다.

 

 

 

사진은 대시 중에서 내 마음을 잡은 신경림 시인의 시 부분이다. 두 시인이 시나 느낌에 꽤 비슷한 것이 있었다. 그래서 두 분의 만남을 준비한 것은 아닐까 싶다.

 

시인 다나카와 슌타로의 시 <20억 광년의 고독> 제목을 보았을 때 '헉' 했다. 누구나 쉬 엄두를 낼 수 없는 크기의 제목이기 때문이다.  시의 마지막 연엔 "20억 광년의 고독에 / 나는 무심코 재채기를 했다"라 적혀있다. 20억 광년의 고독에 무심코 재채기를 할 수 있는 시인의 경지를 어떤 것일까?  <임사선>이란 시는 8페이지나 되는 긴 시이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현대의 난해한 산문시를 읽을 때는 당황스러움을 갖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신경림 시인의 시는 워낙 유명한 시들이라 눈에 익은 시들이었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갈대>, <숨 막히는 열차 속>에선 낯익은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하고 내가 내릴 정거장이 멀지 않음을 담담히 적은 시, <낙타>도 좋다.

 

시인 두분의 연세가 많아서 그런지 선택한 상대방의 시 또한 많은 날을 보낸 분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담에선 시인 다나카와 슌타로는 말의 아름다움에 중점을 두고 시를 써야 한다고 말하였고, 언어의 맛을 보여 주는 작품, 맛있는 음식 같은 작품을 독자에게 제공하고 싶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사회적 역사적 행동력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예술적인 완성도를 요구하는 시를 원하는 것 같다고 신경림 시인은 말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터넷에서 옮겨 다니는 시들을 보면 굳이 그런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인은 깊은 사유를 해야함은 맞는 것 같다. 은근히 한일 대표 시인으로써의 팽팽한 기가 느껴지는 대담이었다.

 

책을 읽으면 다른 사람이 내 생각과 비슷한 것을 이미 써 놓았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할까? 시나 글이 아니라도 세상엔 그런 일들이 많지 않은가? 답은 책에서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시인들이 시를 쓰기 위해 영감을 얻는 방법도 있다. 딱히 특히한 방법은 아니고 평범한데 시는 그렇지 않은 비결은 뭘까?

 

에세이는 누군가의 기억과 사유를 읽어가는 재미가 있는 장르인 듯 하다. 신경림 시인의 에세이는 길고, 시인 다나카와 슌타로의 에세이는 짧고 많다. 직접 읽는 즐거움이 있으시길....

 

 

 

 

 

 - 인터파크 도서 신간리뷰단으로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이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만 작성하였습니다. -

 

제목은 가구 만드는 남자이지만 배우 이천희씨는 그 외 꽤 많은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그 많은 취미를 가질 수 있을까 생각이 드는 것은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 때문은 아닐까 싶긴 하지만 타고난 부지런함과 도전정신 그리고 내 멋을 아는 배짱 덕분이 아닐까 ? 이 책에선 배우 이천희의 삶은 그리 언급되지 않고 있다. 책의 도입부에서 만난 문장 "어쨌든 나무는 나무다.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용도'는 달라지겠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문장의 의미를 또 한 번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목수가 된 이야기, 나만의 가구를 만들게 된 이야기 그리고 HIBROW를 운영하게 된 이야기가 넉넉한 사진과 함께 있으니 사람을 보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익숙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HIBROW가 지나치게 노출되니 본인에겐 의미있다고 하더라도 읽다가 조금씩 껄끄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저자의 여러가지 취미가 소개되며 목공, 캠핑, 서핑 그 취미에 필요한 기본적인 안내와 사진 메모들이 있다. 그 중에서 <용도에 맞는 기본 목재 알아보기>가 소비자의 입장의 내겐 좋은 정보였다.

 

자신의 흐름대로 사는 것이 가장 자신 다운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저자. 누구나 소망하는 것이지만 감히 그렇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 살아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텐데, 그런 행운을 찾아서 누리고 있는 것 같아보여 흐뭇하게 따라간다. 때론 생각을 멈추고 몸을 움직이는 데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인 처방인 것도 아는 지혜로움이 있다.

 

취미란 '하지 않으면 못 견딜 정도로, 하는 순간 즐겁고 행복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구나.'하고 난 심드렁해진다. 취미를 갖은 자와 갖지 못한 자의 대화라고 할까?

 

캠핑의 좋은 점 중에 하나를 평소에 눈여겨 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는 이야기엔 귀가 솔깃해진다. 그런 것을 발견하려면 그 순간엔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잊고 있었던 캠핑에 대한 것들. 요즘 캠핑은 장비와 캠핑 먹거리로 떠나보지 않는 나로써는 그렇게 인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한마디로 알지만 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환기를 불러주었다.

 

사진, 여행, 요리, 차, 커피와 담배, 맛집, 패션 등 그의 스타일도 이야기한다. 거창할 것 같지만 소박한 이야기들. 누구나 관심을 갖는 평범한 것들을 사진과 함께 글로 읽어보니 새롭다. 이 정도는 누구나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고 자신의 스타일을 적어볼 수 있을 것 같다. 한 번쯤 정리해보면 어떨까?

 

가족과 친구에 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외로움은 혼자여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고 말한다. 외롭지 않다면 넘어져도 일으켜 세워줄 손이 있고, 내가 나를 응원하고 믿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하는 그에게선 충만한 행복이 느껴진다.

 

오늘도 이렇게 나는 가보지 못한 길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만났다. 나로썬 열광 할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잊고 지냈던 것들을 한 번 환기해 보았다는데 의미가 있다. 지금 내겐 그 정도의 이야기이지만 어떤 누군가에겐 좀 더 많은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이천희씨보다 나이가 많은 탓이겠지. 보기 편하고 좋은 사진은 많았지만 무겁지 않은 책 또한 독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다.

 

 

 

 

- 인터파크도서 신간 평가단으로 제공받은 책으로 쓴 리뷰입니다만 독자의 입장에서만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