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책을 받아들고 밤잠을 설쳐가며 또 하루 생활 틈틈이 읽어갔지만 계획했던 날짜보다 조금 더 걸렸다. 인터넷으로 제목을 처음 대하고 목차를 쭈욱 살펴 보았을 때 평소 읽거나 듣지 못했던 여걸들의 재미난 이야기가 듬뿍할 것이란 기대를 가졌었다. 두꺼은 책의 페이지 때문에 숱한 이야기가 들어 있을거란 기대가 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하지만 책의 첫 주인공 웅녀의 첫 글에 들어서자마자 ’아! 이거 아닌데..’란 마음이 들기 시작하며 600백여쪽의 책 읽기가 만만치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웅녀 이야기는 누구나 아는 호랑이와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백일간 굴에 있었는데 성질급한 호랑이는 이겨내지 못하고 곰은 이겨내어 아름다룬 여인 웅녀가 되었다는 이야기와 곰토템신앙을 가진 민족을 대표하는 여인이 아니었을까하는 그런 이야기정도 들어본 기억이 있었는데, 이 책에선 그 이전의 역사와 웅녀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시대적배경까지 넓게 시작하여 웅녀에게도 이야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그 시대에 대한 역사적인 사료도 별로 없겠지만 웅녀에 대한 정확한 자료역시 없었기에 그렇게 확인해야가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과 함께 이곳저곳에 있는 박물관을 다니며 삼국시대 이전이나 삼국,고려,조선을 제외한 고대국가에 대한 이해가 내게 너무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고조선 이전부터의 이야기에 더 흥미가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웅녀뿐 아니라 이 책의 모든 여인들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적인 자료가 별로 없었다. 큰 기대를 가지고 보았는데 그에 대한 것은 너무 아쉬웠다. 보통 남성인물이라면 행적이나 업적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누어지지만 역사 속의 여걸들에겐 그런게 없었다. 그녀들을 설명하기 위해선 당시의 역사와 주변 인물들을 살펴봄으로 그녀들의 존재와 행적을 그나마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책이 왜 "한국사 여걸열전"이어야만 하는지 그제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처음엔 한국사 속에 족적을 남긴 여걸들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이 책은 여걸들을 중심으로 고대사부터 조선말까지의 역사를 훑어보는 역사서가 아닌가 싶다. 역사를 이해해야지만 왜 이 인물들이 여걸로 작가에게 뽑혔는지도 알 수 있었다.

여걸...어쩜 이 글을 읽고 있는분이 생각하고 있을 현대적인 위인과는 참 많이 달랐다. 대부분이 당대에 요부나 요녀, 악녀 등등으로 긍정적이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는 이가 많았다. 나라를 망하게한 요사스런 인물들...가십거리로 넘어가버릴지도 모를 이들을 여걸로 우뚝 서게한 작가에게 못내 고맙다.

자신을 아유타국의 공주라 밝힌 가야의 허황옥,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지난 여름 김해박물관, 복천박물관 에서 아이들과 함께 가야를 접하면서 제대로 설명해줄 지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박물관에 안내되어 있는 글을 읽고 나누는 것이 고작이었다. 내 고향을 유유히 지나가고 있는 낙동강의 지명의 유래도 이 책에서야 알게 되었다. ’가락국의 동쪽을 흐르는 강’ 그 시대쯤 인도에 아유타국이 정말 있었다고 한다. 정말 거기서 왔을까...’2천년 전 국제 결혼을 통해 이 땅에 새로운 문화를 전파한 고대사의 여걸이요 가락국의 국모 허황옥 황후는 김수로대왕과 혼인을 하였다.’고 했다. 그녀가 이 땅에와서 한 일보다 우리의 역사 속에 그 먼 곳에서 온 이가 있을수도 있다는것이 게다가 국모였다는 것이 조금은 충격이었다.

제왕과 남편을 선택한 고구려의 여장부 우황후, 죽지 않고 살기위해 그렇게 버텨야했던 것 아닐까? 여자가 사람으로써의 대우를 받지 못할 때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스스로의 지위가 아닌 더불어 연결된 지위기에 더불었던 자가 죽음으로 상실될 삶을 악착같이 붙든 여걸. 그 또한 용기와 기지가 없다면 해 낼수 없는 일 아닌가...새로운 이름을 또 한 명 보았다.

미실궁주룰 통하여 지금으로써는 수긍하기 힘든 신라의 문화를 보게 되었다. 화랑도 우리가 늘 듣고 접해왔던 그런 이상적인 단체가 아니었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나할까. 경주에가면 지금 가치관으로 이상적인 화랑의 모습만 볼 수 있었는데 미색으로 서라벌을 울린 화랑들의 여왕 미실궁주를 통해서 또 다른 모습을 알게되었다. 그녀는 미색으로 화랑들의 여왕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려서부터 사내에게 교태 부리는 방법, 방중술의 비법, 시문과 가무 등 임금에게 색공, 즉 여색으로 봉사하는 궁주로서 갖추어야 할 절기를 배웠다고 했다. 여염집 아낙도 아니고 귀한 신분의 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색공으로 계획되고 준비된 인물이라는 것이 맘 저렸다.

선덕여왕, 진성여왕, 문명황후, 신명순성황후, 천추태후, 기황후, 문정왕후, 소현세자빈 강씨, 명성황후...사회적 위치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여걸들이다. 삶을 즐긴 여걸들이 아니라 남들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해 여걸이 되지 않았나 싶다.

’황진이의 묘에 술도 한잔 올리고 필자도 한잔 마시고, 취하면 그 앞에서 잠들어 꿈속에서 황진이를 만나고 싶기도하다.’ 작가의 글이다. 500여페이지를 너무도 진지하게 읽어내려오고 있었는데 작가의 이 글 한 줄이 웃음을 짓게했다. 대단한 여걸이로군. 후손까지도 만나고 싶고 그리게 하니까...나도 정말 어떤 여인인지 보고싶다.

이 책은 여인들의 이야기를 가십거리로 다룬 책이 아니라 여인들을 중심으로 읽혀주고 싶은 한국사책이었다. 힘겹게 살아간 이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준 책이 아닐까한다. 앞으로는 여걸을 다룰 때 여걸의 업적을 중심으로 역사를 쓸 수 있는 그런 멋진 여걸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흥미있게 생각했다가 긴장하게 했고 읽어가면서 많이 배우고 재미있게 읽었다.

한국사여걸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