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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시 76편을 모아놓은 모음시집이다. 모음 시집의 경우엔 시집 하나 하나를 읽지 않고도 꽤 괜찮은 시들을 뽑아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 시를 모은 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으로 어떤 주제에 맞게 보았는지 그 마음의 길을 따라가보는 것도 재미있다.

수록된 76편의 시는 한입에 맛이 착착 느껴지는 그런 시들이 아니었다. 시 맛을 음미하는 시간을 잠시 가져야지만 더 깊은 시 맛으로 다가오는 시들. 개인적으로 이런 시들이 책 한권으로 있다면 하루에 한 편 이상씩은 읽지 않지만 여러 시인들의 그들만의 개성이 녹아있는 시들이 섞여있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시 한 편 한 편이 새로운 맛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달자님은 그대들의 아침 식탁에 한 편의 시를 올려 놓고 싶다고 하셨다. 아침 햇살과 함께 식탁에 올려진 한 편의 시는 그 날 하루를 어떻게 열게 할까? 한 편 한 편의 시마다 신달자님의 시에 대한 감상이 짧게 적혀져있다. 그 감상 또한 또 한 편의 시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옆에 나의 조그마한 이야기를 덧붙여보고싶은 충동이 일게했다.

첫번째 시 박목월님의 <소곡小曲>의 첫 연 "불이 켜질 무렵 / 잠드는 바람같은 / 목마름" 첫 연에서부터 눈과 마음이 멈추어버렸다. 어떤 목마름일지 목마름의 의미를 찾아 읽고 또 읽어보고 되뇌여보았다. 신달자님의 "우리들 마음의 아득한 근원적 목마름"이라 말씀하고 계시구나....

이 책을 읽던 날 낮에 아이들과 오래 된 성냥으로 불장난을 했다. 향에 불을 붙였다가 초에 불을 붙였다가 다 타버린 향에 불을 붙였다가. 아이들이 태어난 후에 켤 수 있게 된 성냥불. ’자식이 뭔지...’를 아직도 연발하며 성냥불을 켜보지만 여전히 어설프다. 아이들은 엄마의 어설픔이 재미있다고 깔깔대고 나는 오래된 성냥 때문이라 핑계했다. ’요즘엔 어디서 이런 성냥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해보며. 그런데 저녁에 김남조님의 <성냥>이란 시를 만났다. 한 때 꽤 좋아했던 시인이었기에 한 두권의 시집은 읽은듯한데 그 때는 못보았던 시같은데, 어쩜 그 때엔 스쳐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평생 안하던 장난을 한 후라 그런지 시가 팍...안겨들었다.

성냥
김남조

성냥갑 속에서
너무 오래 불붙기를 기다리다
늙어버린 성냥개비들
유황 바른 머리를
화약지에 확 그어
일순간의 맞불 한 번
그 환희로
화형도 겁 없이 환하게 환하게
몸 사르고 싶었음을

김기택님의 시 <아줌마가 된 소녀를 위하여> 제목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가슴 설레이지 않은가? "마흔이 넘은 그녀는 / 아직도 나를 오빠라고 불렀다."로 첫 연이 시작된다. "삼십여 년 전의 얼굴을 채 익히기도 전에 / 엄마와 아내를 찾는 식구들이 쳐들어오자 / 소녀는 얼른 웃음을 거두고 중년의 얼굴로 돌아갔다 /... (중략).../ 다시 흔한 아줌마가 되어있었다." 시의 마지막 연의 일부이다. 지난 해 사오년만에 만난 오빠를 붙잡고 환하게 쫑알대던 기억이 난다. 오빠도 나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았을까? 담에 또 보면 물어봐야겠다. 정말 백배 공감의 시였다. 그 순간은 흘러간 세월 속의 나로 돌아갔으니까. 그리고 또 아이들을 찾아 돌아왔으니까. 왜? 나도 그 흔한 아줌마니까.

최하림의 시 <저녁 바람>에선 시인의 외로움과 고독함이 느껴졌다. 시인이라 느껴지는 시작(詩作)에 대한 외로움이나 고독감인지 시인의 삶에 대한 외로움과 고독감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휑휑함으로 다가왔다.

세상과 인간의 삶을 자신을 거름종이 삼아 한 번씩 거른 후에 새로운 언어로 시 한 편씩 뱉어낸 시인들의 시에 매료되는 시간이었다. ’무슨 뜻일까?’ 싶을 때는 신달자님의 한 편의 시같은 언어의 감상이 살짝 힌트가 될 때도 있었다. 두루두루 생각해보게 하는 시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시와 따옴표안의 내용들은 이 책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저작권을 출판사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