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러시아에 대하여 탐구한다기에 나도 이 참에 좀 알아둘까싶어서 만나게 된 책. 세 명의 저자가 함께 적었다는데 어디서 어디까지 세 명이 적었는지 모르겠다. 세 명의 글이란 느낌도 없이 읽을 수 있는 책. 어쩜 분량 자체를 나누어 쓴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세 사람의 러시아 경험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책. 러시아를 알아가기에 ’참 알차다’는 생각이 든다.

러시아의 역사 문화 예술 생활들을 경험을 토대로 생생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마치 다큐를 보고 있는듯이. "죽음을 각오하고 맞는 러시아의 겨울" 이야기를 접할 땐 예전 어떤 다큐에서 러시아 어느 여자 기숙사의 아가씨들이 냉동실에 넣어야할 것을 창 밖에 매달아 두는 것을 보았는데 냉동실보다 더 냉동이 잘 된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또 어떤 책에선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한 유모차를 밀고 산책을 한다고도 본듯하다. 일년 중 7개월이나 겨울이라니...언제쯤 기지개를 펼 수 있을까 싶다.

러시아인들은 ’니체보’라 즐겨말한다고 한다. ’괜찮아’라는 뜻으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나빠도 충분히 참을 수 있으며 참다보면 언젠가 좋은 결과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내포된 말이라고 한다. 잠시 혼란스러워진다. 우리도 ’괜찮아’에 그런 많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를 보는듯한 설명인듯하다. 러시아인들은 내일보다 오늘을 즐기려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내일을 위해 오늘 허리띠를 움켜쥐고 있는 우리네와 생각이 분명 많이 다를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겐 전혀 매력이 느껴지지 않던 성화. 꽤 밋밋해보이던 러시아의 성화를 ’이콘’이라 한다했다. 러시아의 이콘은 서구의 성화와는 달리 내적 세계, 정신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하늘을 향한 메시지보다 지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참뜻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설명을 들어도 사진으로 봐선 뚱하니 ’그렇구나’ 한 마디만 남긴채 다음으로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이콘’이란 말 하나는 기억해두려한다.

자녀 교육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무엇보다도 책 읽기를 따로 권장할 필요가 없는 나라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라는 분류를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문화가 되어있다고 한다.  추운 나라이니 술도 뗄래야 뗄 수 없는 듯했다. 보드카. 한 번 마셔본 적이 있는데 내게 매력적인 술은 아니었던 기억이다. 코와 입을 유혹하는 맛은 아니었던 것 같다.  교통수단과 특징들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이 있어서 방문하실 분들이라면 유용할듯했다.

'루스키'와 '루시스키'로 러시아 사람을 표현하는 나라. 정통 러시아인과 혼혈 러시아인을 나누어 부르는 말이었다.

한국인 4세 '빅토르 최'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언젠가 다큐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듯한 이름. 러시아 젊은이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전설적인 인물이라고 한다. 미국의 앨비스 프레슬리같은 인물일까? 적어도 내 생각보다는 훨씬 더 많이 중요한 사람인듯했다.

러시아의 역사와 유물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한 번도 관심 주어보지 않았던 러시아의 역사. 어느 나라 역사할 것 없이 민주화를 위한 진통이 없는 나라는 없었던 것 같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지금 그러하듯 민주화된 여러 나라들 또한 시기의 차이 일뿐 대부분 같은 길을 먼저 걸어오지 않았을까. 여러 명소와 관광지에 관한 안내로 책은 마무리 되었다. 적절한 사진들이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발행연도 때문에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내용만은 꽤 알찼다. 러시아의 어제와 오늘을 본듯한 기분이다.

 <생강> 제목이 참 뜻밖이란 생각을 했다. ’내가 아는 생강차의 생강?’ 생강이 제목이 된 이유가 은근 궁금해졌다. 천운영. ’처음 들어보는 작가구나. 하긴 내가 아는 작가가 별로 없긴하지.’ 그러며 첫 페이지를 넘겨 작가소개를 읽었다. ’여성작가구나.’ 큰 의미없이 뜻도 없이 그렇게 인지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첫 페이지도 다 읽지 않아서 다시 한 번 작가가 소개된 페이지를 펼쳤다. ’분명 여자분이 맞는데?’  어?어어?? 처음부터 단호하고 강했다. 정말 뭉떵거려 읽을 수 없고 한 단어 한 단어 배우처럼 연기하듯 힘주어 읽어야지만 될 것 같은 첫 페이지를 만났다.

고문기술자 자신의 기술에 대한 예술성이라도 설명하려는듯 자신에 찬 어조로 고문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외면할 수 없고 눈과 귀는 물론 그 말투까지 상상하게 하는 힘을 느끼며 책을 읽어갔다. 다른 팀에서 고문을 하다 누군가 죽게되고 그 사건이 공개되어 결국 고문기술자는 도피 생활을 시작하게된다. 빨갱이를 잡는 믿음직한 남편, 다정한 아빠로 가족에게 기억되어 있는 그가 도피 생활을 위해 숨어든 곳은 딸의 다락방이다. 딸의 은밀한 비밀들이 있는 특별한 의미의 공간이 아빠의 숨은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 상황에 맞게 가족들의 상태를 숨김없이 잘 표현하였다.

옛 이야기에 돼지를 자루에 넣어 울러메고선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살인을 했다고 숨겨달라는데 다들 거절하고 한 친구만 받아줘서 그 친구랑 그 돼지를 잡아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내와 딸의 반응...어쩌면 지극히 인간적이지 않았나 싶다.  일을 했을 뿐인 남자가 불쌍한가? 직장은 줄을 타고 가는데 끈 떨어진 줄...다시 잡지 못하는 줄...튼튼한 동아줄이라 알았다가 썩은 줄임을 알았을 때의 좌절. 무의미. 분노.....그 남자만의 일은 아니겠지. 이상하다. 동정도 비난도 생기지 않는다. 웅크리고 있는 큰 짐승 한 마리만 떠오른다.

딸 선이는 이적지 보지 못했던 알지 못했던 아빠의 모습을 보고 알아야했다. 내가 완벽하게 믿었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생각한 것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거라 믿었던 이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의 이야기가 나는 모르게 다른 사람들 간에 부탁으로 오갈 때....그럴 때 내 생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해준다. 세상사람들이 다 다른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진다.

아빠의 아버지, 조직, 고문 당했던 사람 이런사람들이 때론 짧게 스치듯이 또는 지속적으로 상처입은 어린 동물을 모습처럼 선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선이의 생활은 그 속에 있다. 아빠를 잃고 친구를 잃고 사랑도 잃고 사랑의 꿈도 잃고...다락방 속의 아빠와 그 지킴이처럼 그렇게 십년의 세월을 보내게된다. 그 세월동안 벌레보듯 미워했던 아빠. 그 아빠의 딸에 대한 사랑도 다른 이를 통해 어릴적 알았던 아빠의 사랑과는 또 다른 사랑을 알게되며 화해의 작은 물꼬를 터주게 되지 않을까싶다.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난 후지만..선이는 주저 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려는 희망을 보여주며 책은 마무리되었다.

책을 읽으며 접어 둔 페이지도 그어둔 줄도 있고 흥미롭게 읽었지만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 내가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든다. 굳이 의도엔 관심은 없지만 뭔가 잡힐듯 잡힐듯 잡히지 않는 안개 속의 뿌연 어떠한 말 한 마디를 지금 내가 찾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왜 김치를 먹다가 생강을 씹으면 싫어할까요?...김치 속에 든 생강 조각처럼 골라내고 싶어해요......" 
".....예뻐서 그래. 시샘해서 그러는거야. 김치에는 생강이 꼭 들어가야 해." (p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