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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만해선 "엄마, 어머니, 아빠, 아버지"가 나오는 책은 비켜가고 있었다. 읽으면 마음이 너무나 아플 것 같아 피해가고 있는 중이다. 좀 더 나이 들어서 그 때나 읽어봐야지했었는데, 소복히 담긴 분홍색 꽃이 시선을 이끌고 제목 또한 이끌림이 있었다.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엄마가 다녀가셨다. 간만에 함께 일주일을 보내었는데 사흘 이상 지나면 맘 안맞아 투덜거리게 된다. 나의 한계가 사흘인가보다. 이번엔 그래도 좀 잘 지냈는데 결국 마지막 날 이틀 엄마 마음을 상하게 하고야 말았다. 계속 이 책 <엄마, 나 또 올게>가 눈 앞에서 밟히고 있었다.

아흔여섯의 어머니의 글과 일흔둘 딸의 글이지만 서른살씩 젊은 엄마와 딸이라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흔여섯 어머니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엄마도 그래서 그랬겠지.’ ’엄마도 그러겠지.’ ’엄마가 그래서 그랬구나.’ 계속 그러게된다. 결국 책을 읽다 엄마께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말로 하자니 그렇게까지 기운이 뻗히진 않고 겨우 문자로 보냈는데 자꾸 궁금해진다. 보셨을까? 못보고 넘어가는 문자가 거의 대부분이시기 때문이다. 엄마 뵈면 필요없는 문자 지워드리는 것이 내 일과 중 하나이니까. 보지도 않으신 문자가 수두룩하다. 제발 보셨으면....

아흔여섯의 어머니가 자녀에 대한 마음은 그리 다채롭지 않다. 너무나 간단하고 평범하다. 사소한 것에 서운하고 작은 것에 기뻐하고, 걱정과 위로가 있고...그렇게 반복되는 마음들이 오간다. 글 조차 늦게 깨우친 어머니의 표현들이 어찌 이렇게 좋을까 싶은 글도 참 많다. 글은 머리로 쓰는게 아니라 가슴으로 쓰는거라 그런가? 칠순이 넘은 딸이 어머니를 향한 부족한 마음을 이야기 하는거랑 내 마음이랑 별반 다름이 없는듯하다. 어떨 땐 안스럽고 애처럽다가도 고집 부리시면 내 성을 내가 이기지를 못하여 맘 상하게 해드리고, 감사한다 사랑한다 가슴 속에 말 담아두면서 막상 가면 꺼내놓지도 못하고....몰라서 서로가 서운한 것이 아니라 알아서 속상하고 마음 아프고 아니까 서운한 것이 더 많은듯하다.

일흔넘은 딸이 여행을 간다니 아흔 넘은 어머니께서 "젊을 때 많이 다녀라."라고 하시는 말씀에 빵~ 터져 웃었다.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한 것인가보다. 아흔 넘은 어머니께서 보시기엔 일흔 넘은 딸은 아직 젊다는 생각이시니...엄마랑 함께 쇼핑을 하는데 "젊은 애들은 저런게 낫지 않니?" 하시는 말씀에 "젊은?" 했더니 "너넨 아직 젊잖니..." 하셔서 그 때도 웃었는데...아흔 넘은 할머니에 비함 엄만 아직 젊은 축에도 못끼시는듯하다.

어머니의 속옷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살 날 얼마남지 않았는데 새 옷을 꺼내 입으면 뭘하나 하시는 말씀을 읽으며 외할머니의 팬티가 생각났다. 옛날 장 앞에 걸어두신 팬티. 누덕누덕 기워도 기워도 어찌 저렇게 기워입으실까 할 정도로 원래 천을 알 수 없는 팬티였다. 내가 뭐라 하려는 눈치를 채셨는지 새 속옷 많다고 말씀 하시던 외할머니. 엄마나 외숙모의 성격을 알기에 할머니가 원하셔서 저러는거로구나하고 와선 엄마께 말씀 드렸더니 안그래도 외숙모랑 답답해 죽겠다고 하신다. 아무리 사다드려도 새로 입지 않으시고 자꾸 그렇게 입으신다고. 외할머니께서도 곧 가야하는데 새것 왜 꺼내나 싶으신가보다. 외할머니께서도 아흔이 넘으셨으니까. 왜 지금 가진 것을 누리려 않으시고 그러시는지 아직은 나도 잘 모르겠다. 더한 욕심은 내지 않더라도 손에 쥔 것 정도는 누려도 되시건만....

내가 해 먹는 밥이 서러운 게 아니라, 아무도 마주하는 이 없는 밥상이 슬프다고 하셨다. 엄마도 그러시겠지. 전화통화를 즐기지 않는 울 모녀의 특성상 전화통화는 하루에 두세번 하지만 3분을 넘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아빠 돌아가시곤 전화통화가 길어졌다. 엄마의 말씀이 길어지시고 끊으려면 아쉬움이 묻어나는 것이 느껴지기에...아흔이 넘은 엄마나 예순이 넘은 엄마나 마흔을 넘긴 나나 엄마로써의 마음은 다르지 않나보다. 하지만 딸로써의 마음도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평균은 되는듯해서 좀 위안도 되었다고 할까?

"옛날에는 누가 무어라 하여도 아무 노여움이 없었다. 이제는 내 마음이 변했나. 누가 무어라 하지 않아도 노여움만 늘고, 허전한 생각이 들고, 울적하고 쓸쓸함을 느끼며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다. 그럴 때는 일에다 고독을 푼다. 누가 눈치만 달라도 가슴이 두근두근하며 마음을 의지할 곳이 없다. 나는 병적인지도 몰라, 마음이 항상 편하지 못하며 앉으나 서나 불안하고 초초하다. 이것이 내 성격인가 보다."(p122~123) 당신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 이 문장 아닐까 싶다. 나이 듦이란 것에서 느껴지는 불안감. 항상 주변을 생각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드는 공허함. "자식이 야속한 게 아니라, 내가 이제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나 보다 하는 생각에 살아있는 것이 괴롭고 슬펐다."(P130) 어른들의 자괴감도 이해할 수 있어야겠다.

어머니의 글을 발견하고 이 글들을 정리하며 자녀들이 얼마나 울었을까 생각해본다. 자녀를 위해 일생을 희생한 세상의 어머니들을 대변해서 주시는 글인듯하다. 그래도 이렇게 글로써라도 당신의 마음을 털어버렸으니 좀 났지 않았을까? 속에서 쌓인 것을 꺼낼 수 있는 그 어떤 도구가 있어야하는데 오늘도 엄마는 속으로만 삭히고 계시지 않을까? 엄마께 그림을 권해보았다. 옜날부터 엄마가 그림을 그린다면 참 잘 그리실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 한마디로 일축해버리셨다. 아쉽다.

"’엄마’란 아흔여섯의 할머니도 애타게 찾는 영원한 그리움이다." (p269) 이 문장을 적으면서도 눈물이 핑돈다. 딸이라 이 책 더 찡한 마음으로 읽지 않았을까싶다. 매번 나와 엄마가 함께 겪어가는 일들이라서. 글들은 잔잔했지만 결코 잔잔하게만 읽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