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초 첫째를 가졌을 때 부른 배를 안고 수원에서 안국동 궁중요리연구원 궁중요리 6개월 정규과정을 수료한 적이 있다. 부산 살 때부터 눈여겨 두었는데 수원까지 와서 살게된 덕에 소망하던 강좌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땐 우리 요리의 기본과 정석이 궁중요리에 다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는데 아니었다. 정규과정 6개월로는 역시 맛보기로 알기에도 부족하였다. 세련된 요리는 있으나 내가 정작 알고 싶어했던 우리의 맛과는 뭔지 모르게 다름이 느껴졌다. 서민의 음식. 난 서민이니까. 잘 하진 못해도 음식에 대한 관심은 꾸준했다. 이번에 눈에 띈 책 "생명 한 그릇 자연 한 접시"의 카피와 수더분한 미소를 지닌 아저씨의 사진과 함께 <방랑 식객>이 눈에 들어왔다. 자유와 자연의 내음이 났다.

 

어느 토요일 아침, <방랑식객>의 책날개를 펼쳐 읽고 프롤로그를 읽다가 봉평을 향해 외출하였다. 밀리는 고속도로를 벗어나자니 네비가 양평을 거쳐 봉평으로 가는 길로 가족을 이끌었다. 양평이라 하는 순간 번쩍 떠오른건 책날개에서 본 저자가 운영한다는 한정식집 <산당>이었다. 책 표지로 보아 산채정식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점심을 산당에서 먹기로 결정하고 찾아갔다. 시간도 쉬어갈듯한 편안함이 있는 곳이었다. 음식은 생각과는 다른 비싼 한정식이었지만 요리 하나 하나에 그 요리를 창작한 이의 마음씀씀이가 배어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내 돈 주고 먹는 최고로 비싼 점심이었지만 나와 가족들은 최면에라도 걸린듯 가격보다 만족감에 가격을 잊고 있었다. 음식뿐 아니라 집과 주변 공간과 서빙 하시는 분들까지 모두 하나의 요리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긍정적인 마음을 갖은채 이 책의 본문을 접하였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보시(布施)는 그대로 돌려주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p9) 프롤로그에 있는 이 말이 저자의 인생관이자 요리관을 보여주는듯했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차라 더 마음에 와닿았나보다. 갈수록 저자에 대한 흥미가 생겨났다.

 

지리산, 제주도, 백두산과 조선족이 사는 중국, 일본을 다니며 만난 이들에게 그 땅에서, 그 집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이용해 만난 이들의 아픔과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또는 삶에 기운을 북돋아줄 수 있는 음식을 대접한 이야기이다. 갯벌, 오래된 가마 안의 흙, 낙엽까지도 그에겐 훌륭한 식재료가 되어주었다. 만화책에서나 나올만한 식재료라 생각되어 눈이 동그래졌다. 산천초목이 식재료가 될거라 생각을 하며 읽었지만 내 상상을 넘어서는 식재료는 오랜 학습과 노력에 의한 저자의 식견이 뛰어남을 말하는 것이겠지. 식견에 적극성과 용기와 더불어 창의력이 더해진듯하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맛을 그리는 능력이 있다했던가? 방랑식객에게서 맛을 그리는 능력이란 이런 것이로구나란 감탄이 절로 들게했다.

 

우리에게 음식이란 무엇인지 소제목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음식은 보은이다. 치유다. 미래다. 만남이다. 소통이다." 도시 삶에서 음식은 탐닉이고, 사치며, 병으로 찌들어 가는 것으로 다가와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도시인들에게 상쾌함을 주는 내용이 아닐까싶다. 음식이 주는 꿈. 비록 당장은 그렇게 해먹지 못하더라도. 이런 음식도 있다는 희망이라고 할까.

 

이 책을 읽고 양조간장과 조선간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요즘은 조선간장이라는 말도 모르고 '"아! 미역국에 넣는 간장요?"라고 말하는 이를 여러번 만난적이있다. 간혹 나물을 무치는데 사용해보지만 더 이상의 쓰임에 대해선 별다른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내 손으로 수고하지 않은 시판 조미료는 하나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밥상에 대한 유일한 자부심으로 알고 있었건만 양조간장에 대한 익숙함에 더 이상의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보다. 간혹은 익숙한 것도 다시 생각해봐야할 때가 있나보다.

 

저자가 살아온 녹녹치 않는 삶 이야기도 음식에 스며드니 맛깔난 조미료가 되는듯하다. 고생없이 얻는 것은 없나보다. 내 가진 것만 한탄하지 고생은 결코 선택하고 싶어하지 않는 나에게 요즘 만나는 책들은 삶의 길이란 그런게 아니라고 일침을 놓아준다.

 

비록 이 책에 있는 음식들을 접하지 못할지라도 읽음으로 자연으로 함께 떠난것같고 음식 대접을 받은 것 같은 따뜻함과 평안함이 있는 책이었다.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치유의 책을 찾는다면 읽어봄직하다. 음식문화를 재발견하고 싶은 분들께도 괜찮은 책이다.

 

 

 

 

 

 

 

 

사진 : 양평 한정식집 <산당>

 

 

9월 24일...몇 주 전부터 봉평을 가겠다고 가족들에게 선언을 했다.

남편이 갈 수 있든 없든 봉평을 가겠다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그렇다고 했고 그렇게 나섰다.

남편의 운전 습관이 못마땅한 난

어짜피 차가 막힐테니 내가 운전하겠다했다.

그날만큼은 투덜거리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전날 늦게 잠든 남편이 많이 피곤해했기에...

아니나 다를까 차가 출발하자마자 고속도로가 얼마나 막히는지부터 확인을 했다.

밀린다고 투덜거릴 목소리가 들리는듯하기에,

무엇보다도 6번국도로 가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기에

얼른 국도로 가자고 차를 돌렸다.

 

내 계획은 42번에서 6번으로 갈아탈 예정이었는데

네비양은 동서울을 지나 45번 도로를 지나 양평으로 우리를 이끌기에

'오! 하나님...'

내가 6번 도로로 가고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봉평을 가겠다고 한 후 "북&"에서

양평에서 강원도 쪽으로 달리는 6번 도로가 드라이브코스로

좋다는 것을 우연히 보았기때문이다.

하지만 지도를 확인했을 때 북쪽으로 올라갔다와야해서

양평으로 가는건 포기하고 42번을 타고 가다 6번을 만나면 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네비양이 우릴 양평으로 이끌다니....

이건 운명이었다.

 

더군다나 집을 나서기 직전 읽던 책의 저자가 양평에서 <산당>이란 음식점을 한다고 보았기에

주저없이 아이들 점심은 산당에서 먹기로 결정.

시간상으로도 양평까지 가면 출발 후 두시간이 지나

지루하기도 하고 배고프기도 할 시간에 어쩜 이렇게 안성맞춤일까?

 

<산당>에선 시간도 쉬어갈 것만 같았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쓰고 기다리는데,

평소 같음 백번도 더 찌푸리고 가자고 할 시간이었는데

남편도 아이들도 주변을 즐기고 휴식공간을 즐기면서

시간을 잘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내 분위기가 무거워 참아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순서가 와서 받아든 메뉴판...

'으악!'

가격이 장난 아니었다.

저녁으로도 쉽게 먹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가격...

하지만 용감하게 4인분을 시켰다.

'오늘은 모든 것이 인연이다.

내게 준비된 것이다'

그렇게 만난 음식들이 위의 음식들이다.

마지막 돌솥밥과 밑반찬 사진은 편집하기에 칸이 부족하여 빼버렸다.

 

요리사의 생각과 정성이 가득하였고

하나 하나 설명까지 곁들이고

맛까지도 온가족 입맛에 맞아 가족들이 너무 좋아했다.

조용하고 한갓진 그 곳에서 더 있다가고 싶다고들 했으니까..

 

서빙해주시는 분께 점심이 이렇게 비싸면 저녁은 얼마나 비싼지 살짝 여쭈었더니

같다고 하시면서

간혹은 이렇게 자신의 삶을 즐기며 살라고 살짝 조언해주신다.

아이들에게 너무 올인하지말고

다음엔 남편과 단 둘이 와서 데이트도 하면서

더 좋은 코스를 즐겨보라고 하셨다.

 

정말 정말 시간도 쉬어가고

자연이 들어와 있는 곳같은 조용하고 아늑한 느낌

너무다 몸도 입도 편안했다.

 

산당을 뒤로 하고

고속도로가 이젠 뚫린듯하다고 고속도로 네비양을 인도하던 남편에게

그냥 6번 국도로 가겠다고 했다.

내가 강력해보였는지 남편이 귀찮았는지

그냥 내버려두었다.

남편이랑 첫째는 잠들고

둘째랑 노래를 부르며 6번 도로를 달렸다.

드라이브 코스로 정말 짱이었다...

코스모스가 한들한들...넘 예쁘게 피어있고,

산도 오르락 내리락

 

 

태기산 정상에서 잠시 쉬었다.

운전중이라 좋은 경치를 담지 못한게 아쉬웠지만

그 길을 달리는 즐거움이 가득~~

단풍이 들면 더 예쁘겠지?

 

그렇게...봉평에 닿았다.

 

 

 

결국은 돌고 돌아 저녁무렵에야 닿았다.

원래 봉평에서 할 일이 딱히 있는건 아니었다.

6년 전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버린

여리고 귀한 인연과의 마지막 여행장소였기에

미리 한 번쯤은 왔어야했는데

아이들이 자라고

왜 가는지 이유를 알려 줄 수 있을 때

마침 토요일이고

그렇기에 나섰다.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

그 이유는 충분히 알지만

그런데 왜 가는지는 알지 못했다.

남편도 그런건지...

 

다 져가고 있는 메밀밭에 우두커니 서있다가

막국수를 먹고 돌아왔다.

내가 정한 금주의 날이었기에

막걸리는 사왔다.

자정을 넘기고 한 잔...

 

칠흙같은 어둠이란 소리에 아이들에게 하늘을 보라했더니

별이 너무 많다고 감탄을 했다.

아쉽지만 난 운전 중이라 볼 수가 없었다.

오는 길은 너무 피곤했다.

정말 멍...하게 고속도로를 달려왔다.

이젠 하루 종일 운전하기엔 체력이 딸리나보다.

 

 

정말 준비된 여행을 하듯

마음은 먹었으나 포기했던 것들이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요즘은

꽃을 생각하면 꽃이 생기고,

길을 생각하면 길이 열리고,

사람을 생각하면 연락이 온다.

노래를 생각하면 어디선가 그 노래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