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에서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라고 읽으며 첫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책을 덮으면서 '아마존은 옷을 입기 시작했다.' 란 생각을 했다. 더구나 이 책의 발간 연도가 2006년이면 벌써 5년전의 일이다. 아마존은 또 어떻게 얼마나 변하였을까?
아마존의 모습이나 생활 자체는 이미 새롭거나 신기한 이야기는 아니다. 많은 다큐프로그램 등을 통해 수렵 채집 활동 및 그들의 성인식, 축제 같은 것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방문객이 방문만 하면 늘 결혼식이 있고, 성인식을 하고 축제의 날인가 했었는데 역시 촬영을 위해 행해진 경우였나보다. 물론, 그럴거라 여기고 있었지만 확인하니 기운이 쭉 빠지는 느낌이다. 이 곳과는 또 다른 가치관과 문화의 세계이긴 하지만 동경하는 절대순수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실망인가보다. 어디서나 절대순수는 닿지 못할 이상향의 세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곳만큼은 이 때까지 지켜왔으니 계속 그랬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인가보다.
이 책을 읽어가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이라는 책이 자꾸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을까? 예비신들이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에 생명의 생성부터 인간의 타락과 극복까지 읽는 이 역시 창조주인듯 내려다보게 하였기 때문일까? 나같이 아마존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이가, 가볼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 이가 다큐와 이러한 책을 통해 마치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된듯이 그들이 어떻게 변해갈까하고 지켜보는 것만 같다. 변하지 않고 유지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만 안고서.
저자의 에피소드 중에서 내게도 강렬하고 스멀스멀하게 다가온 부족이 메이나꾸 부족이다. 아마존 깊은 곳의 부족이라 문명인의 발걸음이 오랜 세월동안 저자의 팀이 세번째뿐인 아직은 순수에 더 가까운 부족. 그 부족에게 문명인들이 남기고 간 바퀴벌레. 박멸을 할 방법이 없어서 그냥 어우러져 함께 살고 있는 참 미련한 부족이다. 저자의 글만 읽어도 책 속에서 까만 바퀴벌레 대군이 나와 지금의 세상을 점령해버릴 것만 같은 끔찍한 느낌. 하지만 그들은 문명인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바퀴벌레로 인해 특산물 물물교환도 못하게 되고 타부족간의 왕래도 뜸하게 되었지만, 아마존에 다른 피해를 줄까봐 이주도 않고 바퀴벨레를 안고 살고 있는 부족. 내 눈으로 봐선 완전 미련곰탱이다. 하지만 그들은 바퀴벌레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자 마음이 편해지며 같이 지낼만 하더라고 했다한다. 이건 또 무슨 수양인가. 이 글을 적기 위해 다시 펼친 그 페이지에서 난 여전히 같은 끔찍함을 느낀다. 그럴줄 알면서도 한 권의 숱한 페이지 중에서 이 부족의 이야기를 굳이 펼치게 한 힘은 그 부족의 성품 때문인듯하다. 바퀴벌레만 빠지면 상상하는 아마존 부족의 순수한 모습이라 그랬을까? 얼핏보면 다른 부족과는 달리 연약해보이는데, 지킬 것을 지킬 수 있는 마음은 결코 연약하지 않음이라 여겨진다. 다행이 저자가 다음 번 방문을 하였을 땐 바퀴벌레는 사라졌다한다. 30년간 마을을 덮고 살던 그들과 어떻게 헤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음이 아쉽다. 모르는 것이 오히려 내 마음엔 약일까?
침략자인 유럽인들이 아마존을 약탈하고 잠식해가며 여러 부족들을 피폐하게 만든 이야기는 그들에게만이 아닌 읽고 있는 나에게도 뜨거운 아픔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공감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어린 자녀가 있고 부모님이 계시고, 이젠 좋은 일 나쁜 일 경험이 늘어나서 그런 것일까? 머리로 아는 것과 공감의 차이는 크다. 그 약탈의 역사 위에 이 세계가 서있는듯한 막연한 부끄러움이 밀려든다. 직접적이진 않더라도 나의 작은 행동이 나비효과로 그들에게 큰 해악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슈할머니의 아픈 기억들에 함께 아파한다. 여전사 부족인 야르보족의 탄생도 그런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다. 우린 아마존의 여전사 부족이라하면 아마조네스(가슴을 도려내어 없앤 여인들)를 떠올린다. 아마존 여인왕국은 1500년대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발견되고, 여전사들은 침략자들과 용맹한 전투를 벌였다한다. 엘도라도 탐험대 대장이던 스페인군 오레야나는 신화의 여전사가 있다는 기록을 본국 여왕 앞으로 보내며 남아프리카의 열대우림을 아마존, 바다 같이 큰 강을 아마존 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생명의 땅에 알맞은 이름이 생명을 잉태하고 양육하는 여인들로부터 나왔구나.
시간은 시간일 뿐, 시간이 돈이 되지는 않는게 인디오들의 삶이라한다. 잠시 생각해본다. '그런게 어떤 삶일까?' 머리로는 알겠는데 심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아마존의 삶은 '중독'이 필요 없는 삶이라한다. 무엇이든 삶과 의식에 필요한 만큼만 이용하지 목적없이 필요 이상을 취하지 않는다한다. 우리는 무엇인가 하나엔 중독된듯 살아야지만 성공할 수 있고 살아나갈 수 있는데, 그 중독의 수가 많아야지만 능력도 크다 소리를 듣는데...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중독'의 또 다른 이름들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데, 그걸 내려 놓는다는 것은 때론 삶의 도태를 의미하기도하고 세상에 부적응자란 딱지를 달게하기도 하는데 그들에겐 그런게 없다한다. 문명인들의 '가치'라는 것은 정말 무엇일까?
인간 문명의 발달 초기단계엔 다들 그러한 마음으로 살았을텐데 이런 문명으로 발달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순수의 마음을 벗어던져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했기에 아비규환의 경쟁사회가 된 것 이고 이러한 물질문명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들이 지금까지 그 마음을 유지하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마존 덕분일까? 욕심부리지 않아도 필요한 만큼 언제나 아마존이 제공해주기에 그것을 취할 수 있는 능력만 있음 되는 것이었을까? 읽는다는 것은 볼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같은 시간 다큐를 보는 것만큼의 정보를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천천히 읽으며 더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아마존의 여러부족에 관한 다양한 생활 모습이 잘 설명되어있다. 국내최고 남미 전문가이자 특히 아마존 지역에 대해선 더 잘 안다고 하는 이의 명성에 걸맞은 노하우가 묻어있는 아마존 이야기가 이 책에 숨쉬고 있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아마존에 대한 진실된 애정이 느껴지는 것이 이 책을 좀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가싶다. "나는 이제 아마존의 자연이, 아마존의 인디오들이 사라질까 두렵다. 아름다운 자유와 평화와 낙원이 사라질까 두렵다. 그렇다고 나의 이런 운명을 탓할 수는 없다. 아마존이여 영원하라! 빌고 또 빌어본다."(p343) 이 책으로 아마존 여행을 다녀온 독자의 입장에서, 인류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는 아마존의 영원을 함께 빌어본다. 아마존 인디언의 존엄성과 권리가 그들의 땅에서 잘 지켜지면 좋겠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사진 속의 그녀들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진 속의 남성에 대한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지고 있는데 사진 속 그녀들은 무방비다. 그들의 세계에서 전혀 불편함이 없다하여도 이 책은 그들의 세계가 아닌 또 다른 세계에 와있는 것이다. 그녀들이 이 땅에 서서 책 속의 자신의 모습을 보면 어떤 느낌일까?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별문제가 아니라고 할까? 그래도 도시에 꼭 꼭 갖혀사는 나는 그녀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든다. 속세의 눈으로 보지 말고 아마존의 눈으로 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난 이미 속세에 살고 있으니까. '19금'이라도 만들어서 지켜주고 싶다. 다큐 <아마존의 눈물>도 전라는 19금으로 개봉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