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듯 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국어의 원리'를 읽을 때 무척 당혹스러웠다. 책을 많이 읽었다면 많이 읽었지만 과연 제대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독서를 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 그렇다. 과연 좋은 독서는 무엇인지 개인적으로 언제나 숙제이지만 확실한 것은 남았다. 내가 읽는 독서 방법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화가 나기도 한다.

  이 책, 매우 도발적이다. 단순한 글읽기를 도와주는 책 치곤 말이다. 저자 자신이 실험 대상이 되어서 하나하나 문제점을 집요하도록 파고 든다. 어쩌면 이 책의 힘이 나오는 원천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독자들은 저자와 감정이입이 되기라도 하듯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된다. 저자의 의심은 사실 저자 자신만의 의심이 아니며, 어쩌면 한국 사회 전체를 통틀어서 제기되는 문제제기인 것이다. 지금까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한 이들의 고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점이다.

  저자가 선택한 설명방법은 무척 인상적이다. . 저자는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서 독서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뻔한 이야기였는지 모르지만 과연 이것을 읽는 독자는 물론 많은 이들이 잘 알고는 있었는지 의심스러운 내용들이었다. 하긴 좋은 이론은 공리에서부터 시작하지 않는가? 데카르트의 이론이나 뉴튼의 이론도 사실 일반인이라면 뻔히 알고 있는 뻔한 사실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는 도중, 어렵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다만 내용을 구체화시키고 적용하는 데는 만만치 않은 수고를 요구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강점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좀 더 사회적인 차원에서 저자의 진정한 의도가 드러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현재 진행되는 학교 수업에 대해 이 책은 공격을 하고 있다. '학교문법'으로 지칭되는 현재의 교육방법에 대해 저자는 의문을 제기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게 해서 되겠느냐라는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단순한 문장 수준에서 모든 것을 끝내는 한국의 독서 수업에 대해 그는 거친없는 질타를 한다. 그리고 그의 질타 속에 이 책을 읽는 나 역시 질타를 당하고 있다. 그 질타 속에 과연 지금까지 책을 얼마큼 읽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이해했는가라는 질문이 들어있다. 그 대답은 결코 많지 않다로 끝난다.

  얼마큼 이 책을 소화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좋은 방법은 찾은 것 같아 위로를 받는다. 순류와 역류, 그리고 주고받음 등의 생소한 독서 방법은 새로운 만큼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지난할 것만 같다. 하지만 과거처럼 실수하는 경우는 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꿔야 한다는 것쯤은 안다. 그래서 내 독서 방법을 좀 바꿔야 할 것 같다. 이 책의 내용과 방법론은 개인적으로 충격적이었다. 앞으로 그 충격을 내 생활에 고스란히 받아들였으면 한다. 즐겁게 이 책을 읽었던 만큼.

국어의원리

 

  철학자들, 지적 유희를 즐기는 사람들 같다. 그래서일까? 그들이 이야기하는 단어는 어느 순간 평범한 일상의 언어적 특성을 탈피하면서 보다 고차원적인 의미를 지닌 어휘가 된다. The way란 말이 어느 순간 방법이 되는 그런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중국어인 道가 이젠 길을 의미하는 단어로서의 흔적을 거의 찾기 힘들 게 됐다. 동서양의 공통점을 찾는 좋은 사례이긴 하겠지만 사실 공부 좀 덜 한 이들에게 이런 단어의 변화는 고역일 뿐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단순히 글자 하나의 폭넓어진 상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철학자들이 사용하는 단어와 문장, 그리고 그들의 사유를 의미하는 책들은 어렵기 그지 없게 됐다.
  철학자들의 책임이 아니라 하더라도, 시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나, 그리고 이후의 시공간을 점유한 이들에게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어려운 것은 어떻든 불행이다. 삶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는 장이 될 철학자들과의 대화와 그들의 책을 읽는 독서의 시간이 어느 순간 고역이 된다는 것은 말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우아해도 그것을 접근해서 이해하는 자들에게나 올 축복일 뿐이다. 평범이란 단어 뒤에 숨은 우둔함을 지닌 자들에겐 그냥 지나쳐버릴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철학자들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억지로 읽어야만 할 책임감의 소산일 수는 있지만 확실한 것은 고통의 순간일 뿐이며,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괜한 짓을 한다는 느낌, 어쩌면 괜한 푸념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의 잘못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이다. 철학자들과 일반인들 사이에 벌어져있는 간극을 메워야 할 사람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풍부한 내용과 첨예한 논리로 엄청난 내용을 담은 그런 책들은 보는 이들에게도 고역이겠지만 그것을 일반인들에게 알기 쉽게 풀어준다는 것 역시 고통이다. 어떤 사명감일지, 아니면 어려운 가정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꽤나 힘든 일이다. 철학의 고전은 분명 가치는 있지만 현대어로 풀어나간다는 것은 번역자든, 아니면 길라잡이 책을 쓰는 이에게는 노력만큼의 결과물이 잘 나온다는 것도 힘들고, 또한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요원한 상황이다.
  그래서 이 책, 참 고맙다. ‘로베르트 짐머’란 원저자에게도, 그리고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이동희에게도 말이다. 개인적인 문제이긴 해도 과거의 고전을 읽을 기회도 있었고, 실제로도 읽었다. 그러나 철학 책들은 확실히 경험과 나이를 요구하나 보다. 둔재인 자들에겐 더욱 그렇다. 도통 알 수 없는 내용들을 어떤 의무감으로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읽긴 읽었다. 하지만 그냥 시간을 때운 어느 한심한 독자일 뿐이다. 이 책을 읽는다고 능력이 향상되지도 않을 것이며, 괴상한 의무감으로 남들에게 아는 체나 하려는 얄팍한 수준이 갑작스레 높아질 리는 없다. 하지만 이 책에서 풀어낸 주옥 같은 해석은 적지 않은 개인적인 물음에 적절한 답변들을 제공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위대한 사상가들의 매력적인 단면들을 이 책은 예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이 책은 충격이었고, 이 책의 독자라는 사실을 감사하게 했다. 플라톤이 밝힌 국가의 역할은 왜 그가 기능주의적인 국가 구성을 시도했는지 이해하게 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접해본 이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후의 정신과 이성 간의 치열한 논쟁을 고민했던 철학자들의 면면들은 그들의 위대함의 이유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로 칸트와 쇼펜하우어, 그리고 칼 마르크스에 대한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도통 모르기만 한 이들의 사유에 대해 이 책은 적지만 뛰어난 분석을 통해 보는 이들이 이들을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어리석은 이에게 그들의 이야기가 무엇이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 책의 부제엔 ‘길잡이’란 단어가 있다. 아마도 고전을 읽기 전에 미리 알아둬야 할 내용을 정리하는 정도로 책의 위치와 가치를 세웠던 것 같다. 하지만 위대한 고전을 다 읽고 그래서 남겨야 할 내용들은 바로 이 책이 담고 있는 것들이란 생각이 든다. 시작이라고 적었던 것들이 어쩌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얻어야 할 내용의 정수들이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철학의 깊이를 더하고 싶은 이들에겐 최적의 안내서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몰랐던 이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고, 또한 꼭 알아야만 했는데 몰랐었던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려줬다. 이 책은 색다른 내용을 담은 것은 아님에도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리고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다만 좀 아쉽다면 좀 더 많은 철학자들을 담아 내지 못한 것일 뿐이다. 괜한 투정을 부리게 하는 책이다.

서양철학

 

  ‘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고 돈 키호테의 어리석은 열정의 여행지를 따라가는 에세이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읽으면 읽을수록 확실히 무너졌다. 이 책은 어느 지역의 올레길을 걸으면서 느낀 감회를 서술한 책이 아니다. 시작부터 이미 책의 내용은 결정됐고, 저자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된 돈 키호테가 있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돈 키호테가 아니다. 웃기는 인물이 아닌, 열정적인 인간이란 점이다.
  개인적으로, 아니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자신의 가치관과 일치하지 않은 독자에겐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닌 작업들을 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초지일관하게 갖고 책을 저술한 저자의 노력은 나름 의미는 있겠지만 기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겐 좀 힘든 노역이 될 수 있다. 또한 페미니즘적 가치관, 혹은 여성적 가치관을 갖고 남성을 비판하는 장면들이 상당수 드러날 때, 과연 그런 생각들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 많이 들었다. 저자의 작품이었던 ‘먼 그대’에서 헌신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결국 착한 여자가 나쁜 남자에게 고생하는 장면들을 생각한다면 무책임한 남성 캐릭터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도 됐다. 사실 나쁜 여자들도 많은 세상이고 보면 편협하다는 판단도 할 수 있다. 종교와 페미니즘적 사고로 인해 이 책은 확실히 보편적인 감성을 이끌어서 감동을 주는 그런 책은 아니다. 아마도 과도할 만큼의 특정한 독자층에 한정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독자가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아마도 저자의 확고한 인식이나 가치관에 방해 받고 싶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법도 하다.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이 책에 나타나는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를 본다면 좀 더 의미 있는 여행 에세이가 될 수 있다. 어떻게든 관광수입을 위해 어떻게든 돈 키호테와 연결시키려는 마을이나 도시의 노력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늘날까지 잊혀지지 않은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매력은 대단한 것이다. 400년이 지났음에도 잊혀지지 않다는 것은 현대적인 매력이 있단 의미다. 또한 먼 동아시아에서부터의 여행객도 어떻든 돈 키호테와 관련된 낭만을 꿈꿀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고, 또한 그런 방식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돈 키호테의 매력은 비현실적인 광기에 따른 우둔함이다. 이미 사라진 과거의 퇴영적인 세계 속에 갇혀서 자신만의 고집을 피우는, 한 노인의 비극의 이야기가 중심이라고 생각되는 그런 소설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런 비현실적인 캐릭터에 산초 판사라는 매우 현실적인 캐릭터를 서로 여행 동반자로 연결시키면서 돈 키호테의 비현실적인 세계를 어쩌면 조롱하게 하는 게 이 소설의 구성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소설, 돈 키호테를 ‘의미의 세계가 사실의 세계를 재창조하고, 사실의 세계 뒤에 가려진 의미가 드러나 이 둘이 서로 호환하고 있는 유일한 길이… 돈 키호테의 길’이란 것으로 재해석한다. 자신의 가치관을 갖고 세상의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자신의 삶을 살아간 이로 돈 키호테는 보다 긍정적인 인물로 화한다.
  아마도 이 책에서 느끼는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실에 대한 좌절에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로 넘치고 있는 오늘날, 이런 맹목적인 주장이 비현실적이고, 동시에 과도한 폭력성을 수반할 수 있지만 현실을 타개하고 좀 더 나은 것을 만들기 위해선 어쩌면 필요악인지 모른다. 예수의 이름으로 자행된 십자군 전쟁의 폭력성처럼 위험은 수반되지만 그래도 도전적인 생각으로 볼 수 있다면 중요한 해결방안일 것이다. 편안한 힐링은 사실 사태의 해결엔 그다지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다. 난관은 난관이고, 그 난관을 헤쳐나가는 모습은 어쩌면 광적인 그 무엇을 요구하는지 모르겠다.
  21세기에 돈 키호테는 존재한다. 무수히 많은 종교 신자들이 그걸 증명한다. 하지만 과도한 맹신으로 폭력성도 서슴지 않은 종교인이 무수히 많은 고통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종교에 대한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도 된다. 하긴 종교만 그런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비현실적인 맥락을 멋대로 만들어 상대에게 강요할 때, 폭력이 되며,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단두대가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소설 속 돈 키호테와 책 속의 여행지에서의 돈 키호테는 맹목도 있지만 사랑도 있었고 책임의식도 있었다. 힘겨운 삶 속에서 아내와 자식들의 생계를 위해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버틴 가부장이 되거나 자식 공부를 위해 돈 버는 기계로 전락되면서도 군소리 없이 살고 있는 기러기 아빠들의 모습은 맹목적인 가족에 대한 사랑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희생인 것이다. 맹목과 사랑 사이의 어려운 줄타기는 분명 힘들지만 돈 키호테처럼 그렇게 하는 이들이 많이 있고, 그래서 현실은 뭔가 좋은 쪽으로 개선될 여지가 있을 것이다. 어떻든 돈 키호테는 지금도 필요하다.

돈키호테, 스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