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소설을 여러 번 읽는 것 만큼 좋은 것은 없다. 그것도 여러 번역본을 비교해 가면서 읽는다는 것은 신선한 일이다. 사람마다 문체가 조금씩 다르고, 재수가 없으면 내용마저 달라지는 것이 번역본들이다. 개츠비는 수많은 번역본이 있는 책이다. 그런데 이 번역본을 읽으면서 전에 읽었던 개츠비들은 다 가짜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느껴지는 것이 달랐다. 표현방법이라든가 어구들에서 차이가 느껴지더라. (단지 내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처음 읽을 때는 이게 왜 명작이고, 여러 저명한 기관들에서 추천하는 책인지 몰랐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맛이 더 돋구어지는 책 같다. 개츠비와 닉을 제외하면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겉멋에 취한 사람들이다. 개츠비는 동부에 큰 저택을 구매하여 매일 성대한 파티를 연다. 여러 저명인사가 모여들고, 부자들이 모여든다. 모두 공연과 술에 취하고, 사교를 위한 수다의 장을 가진다. 하지만 이 파티의 주최자인 개츠비가 어떻게 생긴지도,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자기들끼리 루머만을 만들어 낼 뿐이다.

 

  반면 개츠비는 술도 마시지 않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짓도 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은 오직 단 한 명의 사랑하는 사람인 데이지에게만 가 있다. 그녀의 관심을 가지기 위해 파티를 연 것이고, 그녀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자 그는 파티를 그만두고, 이미 결혼한 그녀의 마음을 다시 돌려받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마지막까지 그는 데이지를 위해 희생한다. 데이지의 남편인 톰은 데이지와 개츠비 사이의 교감을 눈치채고 개츠비를 확실한 증거를 가지지도 않은 채, 모함하여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하지만 데이지와 톰은 개츠비의 장례식에 오기는커녕, 종적을 감추어 버린다.

 

"그 인간들은 썩어 빠진 무리예요. 당신 한 사람이 그 빌어먹을 인간들을 모두 합쳐 놓은 것만큼이나 훌륭합니다." 나는 잔디밭 너머로 소리쳤다.p.217

  개츠비를 읽을 때마다 속물들의 인간성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개츠비의 사랑에 대한 모습도. 일단 속물들을 먼저 말해보자면, 그들은 파티에서 흥청망청 놀고먹기만 한다. 화려함에 매료되어 감사와 겸손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그들은 유명 인사들과 함께하는 자리에 속하게 되면서 마치 자신의 격도 한층 높아졌다는 생각을 한다. 파티를 주최한 사람에 대해서는 온갖 말도 안 되는 헛소문만 퍼뜨리면서 말이다. 그에 비해 개츠비의 목적은 하나다. 자신의 사랑을 돌려받는 것.

 

"나 같으면 그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는 않을 겁니다. 과거는 반복할 수 없지 않습니까." 내가 불쑥 말했다.

"과거를 반복할 수 없다고요? 아뇨, 반복할 수 있고말고요!" 그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p.159

  물론 그의 사랑의 모습이 정상적이라고 보기 힘들 수도 있다. 이미 결혼한 여자이고, 그 여자가 자신을 떠나, 다른 남자의 품에서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데이지는 어떠했는가. 그녀는 개츠비에게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이용해 톰의 질투심을 부추기고, 그의 부를 이용하며, 마지막에는 그의 목숨까지 가져간다.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어요." 갑자기 그가 말했다.

바로 그것이었다. 전에는 그걸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데이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서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끝없는 매력, 그 딸랑거리는 소리, 그 심벌즈 같은 노랫소리가.... p.172

  이런 데이지였지만 개츠비는 데이지를 한순간이라도 증오했을까?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맹목적인 사랑을 하는 개츠비와 Snob들은 너무나도 비교된다.

 

 

 

  읽을수록 왜 개츠비가 위대한지 느껴진다. 유명한 책인 만큼 많은 서평이 있는데, 최근에 읽은 것 중에는 개츠비가 원래는 흑인이고, 이 책이 인종에 대해서 쓴 책일 수도 있다는 글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영화화되면서 개츠비가 당연히 백인으로만 기억되게 되었다는 글이었는데... 주소는 까먹었고 꽤 재미있게 읽은 글이 있었다. 궁금하면 찾아보숑.

  처음에 제목을 '서른 한 살 노처녀'라고 하려다가 책 속의 은수가 처량해 보일까 봐 그냥 여자로 썼다. 예전에 같은 제목의 최강희와 이선균이 나오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해피엔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본 건 아니고 어쩌다 마지막 회만 봤었다.) 서른 한 살의 결혼 안 한 여자. 사회에서 고운 시선으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왜 결혼을 안 하는지 오지랖도 넓은 사람들이 구시렁거릴 것이고, 집에서는 평생 혼자 살 거냐고 구박이나 당할 것이며, 자기 자신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의 오은수도 그렇다.

 

  추려보자면 세 가지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첫째는 은수의 남자들. 오은수 주위에는 세 명의 남자가 있다. 하지만 모두 결혼을 하기에는 무언가 결격사유가 하나씩 있는 남자. 태오는 어리고, 영수는 불타오르는 뜨거운 맛이 없고, 유준은 백수다. 세 남자에게는 각자의 장점이 있지만, 은수는 결혼이라는 문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한다. 둘째는 회사. 사회생활을 하는 애환이 가득 들어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하면서 회사생활을 하기는 힘들다는 점. 언제나 사직서를 던져버리고 나오고 싶지만 그다음이 걱정돼서 쉽게 그런 결정을 하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사람 사이의 문제들까지 정글에 던져진 어린 양의 모습이 나온다. 셋째는 가족. 은수에게는 부모님과 오빠가 하나 있다. 문제는 어머니가 '김포아줌마'로 둔갑한 남자와 오랜 시간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는 점이다. 가부장적이고 독선적인 아버지의 밑에서 힘들었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 사실을 공연히 알려서 집안을 시끄럽게 하고 싶지 않은 게 은수의 심정. 나중에 가서 오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어머니라는 나무에 너무 기대만 왔던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더라.

 

  책 읽으면서 여자들이 정말 이럴까 싶기도 하더라. 그냥 재미로 읽어볼 만한 책. 재미있음.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사실 여자들이 짐작하는 것 만큼 남자들이 육체에 그렇게 집착하는 건 아니야. 아, 육체에'만' 집착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야."   "그럼 어떤 남자는 책을 맨 뒷장부터 읽기도 한단 말이지? 맨 앞까지?"   "그런 여자가 있다면 그런 남자도 있지 않을까. 글쎄, 남자나 여자나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비슷할 것 같아. 연애란 게 결국엔 이 거친 세상에서 마음 붙일 데를 찾는 거 아니겠어? 체온을 나누고 싶고 기대고 싶고 소통하고 싶고. 지향점이 같다면, 몸이 좀 앞서 나가는 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데?" p.110     "전도유망한 사업가에다가, 별로 효자도 아닌 것 같다고 하고, 인물도 멀쩡하다면,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네? 결혼 상대자로 더할 나위가 없긴 하다." p.259 (효자가 아닌 것이 결혼 상대자로 더할 나위 없다는 생각은 처음 해봤다. 이해가 되기는 한다.)     "나도 알아요. 남들 눈에는 요상해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어떻게 남자하고 여자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순수하게 친구로 지낼 수 있느냐고, 헛소리 집어치우라고들 할 거예요. 그런 사람들을 일일이 다 이해시키지는 못하지만 이 세상엔 꼭 집어서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그런 사이도 있거든. 그저 마음을 나누는 사이, 그 사람이 거기 있는 것만으로 의지가 되는 사이, 욕심내지 않는 사이. 그런 관곌 꼭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하나?" p.343   나는 엄마의 팔을 잡아끌었다. 가족이 누군가의 희생을 동력 삼아 이루어지는 관계라면, 희생자는 언제나 엄마의 역할이었다. 그렇다면 엄마를 그 안에 꽁꽁 얽매는 것이 나의 역할인가. p.348

달콤한나의도시, 정이현, 오은수

 

 

 

 

 

 

 

 

유배지에서보낸편지, 정약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