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만화책이 아닌 소설을 읽었는데, 굉장히 길고 아스트랄한 소설이었다. 다른 여타 소설과는 비교 불가할 정도로 많은 인물이 나오고, 많은 변화가 담겨있는 소설이다. 제목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것에 끌려서 읽은 소설이었는데, 정말 백년의 역사가 담긴 소설이다.

  책의 가장 첫 페이지에는 한 가문의 계보도가 그려져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부엔디아 가문의 계보도를 집시 노인 멜키아데스가 양피지에 기록한 것이라고 쓰여있다. 그렇다. 이 책은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를 쭉 읊고 있는 것이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부터 이 가문의 끝을 맺는 돼지 꼬리 달린 아이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나'까지의 역사가 펼쳐진다.

  줄거리라 함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그의 부인 우르슬라 이구아란이 마콘도라는 도시를 세우고, 번영시키게 된다. 그리고 많은 자식을 낳는데, 그 자식들의 이야기와 자식들 덕분에 마콘도가 부흥하고, 시간이 지나서 외부 세력들이 들어오고, 안팎으로 쇠락하는 마콘도와 부엔디아 가문을 그린 이야기다.

참신한 이야기꾼

  이제까지 읽은 장편소설은 한 인물이 이야기를 끌고 가곤 했는데, 이 책에는 정말 많은 인물이 각자의 캐릭터를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모두 부엔디아 가문의 자식이고 아내인데, 그 개성이 참 뚜렷하다. 아르카디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과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을 가진 자손들이 비슷한 성격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모든 캐릭터는 각자의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여성 인물들은 그 캐릭터가 더 돋보인다. 예로 우르슬라 이구아란은 현명하며 리더십도 있는 여장부인 반면, 레베카는 흙을 먹는 것을 즐기는 조금은 괴기스러운 캐릭터이고, 아마란타는 레베카를 질투하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고 자신의 정조를 지키며 다른 가족을 돌보는 여자로 그려진다. 그 외에도 레메디오스, 미인 레메디오스, 레메, 페르난다 등 수많은 여성 인물들이 나오는데, 각각의 캐릭터를 심어줬다는 것이 대단하게 보였다.

  읽다 보면 이게 판타지 소설인가 싶을 정도로 비현실성이 짙다. 책 표지에는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이라고 쓰여있던데, 읽다 보니 이해가 가더라. 마술적이다. 정말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마콘도에서라면 이건 현실적이라고 생각될 것 같다. 마콘도라는 배경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도시다 보니. 마콘도가 세워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외부의 세력이 들어오게 된다. 외국인들이 들어오고, 종교가 들어오며, 기차나 자동차도 들어온다. 하지만 마콘도에서의 마술적인 모습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부엔디아 가는 바뀌는 문물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점이나 멜키아데스가 남긴 책들을 보며 마술적인 분위기는 계속 이어진다. 현실세계와 비현실적인 요소가 적절히 섞여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게 참신했다.

부엔디아 가문은 왜 망하는가?

  책의 마지막에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와 아마란타 우르술라가 따지고 보니 근친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돼지 꼬리 달린 아이를 낳게 된다. 이미 마콘도는 무너질 만큼 무너져 버린 상태였다. 과거 부엔디아 가문은 모사꾼들의 협잡으로 그 역사조차 부정되어 버렸다.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지식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는데, 결국 소설의 초반에 등장하여 끝까지 신비한 인물이었던 집시 멜키아데스의 양피지에 쓰여 있던 것이 결국은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였다는 것을 끝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부엔디아 가문은 그들이 세운 도시 마콘도를 세웠고, 외부 세력의 자연스러운 유입이 되면서 처음 도시의 모습을 조금씩 잃어갔다. 외부인들이 들어오면서 평화로웠던 마콘도에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따르게 하려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들은 부엔디아 가문과 부딪치며 자유파와 보수파라는 세력을 만들고 싸우게 된다. 애초에 외부 세력이 들어오지 않았으면 마콘도는 평화롭게 살지 않았을까? (중략)

  그리고 부엔디아 가문의 피로 인해서도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아르카디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생각이 짧은 대신 육체적인 힘이 강했고,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생각이 깊은 대신 소심했다. 이 두 요소를 두루 갖춘 사람이 없었던 것이 이 가문이 망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읽는 내내 솔직히 재미있지는 않았는데, 뭔가 계속 읽게 되는 힘이 있는 책이었다. 특별한 중심 내용도 없고,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강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다음 세대를 보면서 이 가문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읽게 된 것 같다.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본 듯한 느낌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나름 내려본 결론은 백년 동안 부엔디아 가문은 마콘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의 가문 또한 가문 내에서 근친혼으로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하여 결국 부엔디아가 혼자만 남아버려서 백년 동안의 고독이 아닐까 싶다.

  강력히 추천하지는 않는다.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고군분투하는 부분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는데, 혁명군의 의지를 달성하는 게 아닌 전쟁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불쌍했다. 20년 동안의 전쟁이 모두 허망하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그의 노년은 더 측은했다.  

길바닥에서 설교를 하기에 지친 니카노르 신부는 세상에서 가장 큰 성당을 짓기로 결심했고, 성당에다 실물 크기의 석고상들을 세우고 옆에는 색 유리창을 달아서, 이 신앙의 전당에서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한 사람들이 로마에서도 찾아오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p.90 (종교의 허세가 드러나는 대목, 마콘도의 순수성이 사라지는 시작)   "싸우는 이유를 알고 있다니 자넨 참 행복한 사람이야." 그는 말했다. "그런데 내 얘기를 한다면 말이야, 난 그저 자존심 때문에 전쟁을 하고 있다는 걸 이제 와서야 겨우 깨닫게 되었어." p.152   "사람은 꼭 죽어야 할 때 죽는 것이 아니라 죽을 수 있을 때에 죽는다고 말입니다." p.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