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는 그 창제 기원에 우리 배달족이 많은 기여를 했다고 전합니다. 김경일 교수의 책에 보면, 어떤 글자의 경우 그 글자가 나타내는 일이나 과업에 종사하는 민족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고 하는데요, 이를테면 오랑캐 이(夷) 자의 경우 큰 대(大)에 활 궁(弓)이 결합된 식이죠. 이 책의 저자인 박필립 목사님도 그 점을 착안하여, 한자는 본디 중국의 글자가 아닌 우리 민족의 작품이라고까지 하고 있습니다. 한자(漢字)가 아니라 한자(韓字)라는 것입니다.

그 래서 한자 공부는 중국의 문물을 익힌다는 의식 없이, 잊고 있었던 우리 고유의 전통을 다시 우리 몸에 배게 하는 작업이며, 성경과 훌륭히 결합될 수도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죠. 이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가 다 나올 수 있겠지만, 기독교 신자이면서 한자 공부에 특별한 열의를 지닌 분들에게는 아주 좋은 교재가 될 것 같아요.

표 제에 나와 있는 사자성어(四字聖語)를 보시면, 사자성어(成語)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成語라고 하면 숙어, 영어에서 말하는 idiom에 가깝죠.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건 그 뜻이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성스러운 구절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말이 딱히 있다기보다, 저자의 입장이 그러하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 싶습니다.

구 약성서 여러 권에서 발췌한 다양한 어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출처는 중국어 성경입니다. 중국어 성경은 우리처럼 줄글로 길게 되어 있는 게 아니라, 4음절씩 끊어지는 대구체입니다. 그런데 특별한 장점이 있습니다. 4자씩 끊어지기 때문에 읽기에 리듬감이 느껴져서 좋고, 오래된 경서나 고전을 읽을 때 느끼는 함축적인 깊이가 들어 있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아는 사자성어(成語)보다, 그 글자 하나하나의 씀씀이가 더 사려 깊고 권위 있습니다. 아마 저자는 이 점에 매혹되어 이 책을 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 국어 성경에서 발췌만 해서 편집한 책 아닌가? 그렇지는 않은 듯합니다. 우선 책을 펼치기만 해도 각 글자의 고대 갑골문 형태가 고스란히 나와 있으면서, 그 글자의 제자 기원을 말해 줍니다. 그 전거는 설문해자(후한의 허신)입니다. 한자에 대해 상당히 조예가 깊은 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편집으로 짜여 있습니다. 한자의 모습이 제 꼴을 갖추려면 필순에 맞는 필법이 중요한데, 이 책에는 필순도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어 한자 공부에 큰 도움을 줍니다. 책 뒷날개에 실린 저자의 서예 솜씨는 눈으로 보기만 해도 흐뭇한, 일정 경지에 이른 솜씨입니다. 이 정도 저자라면 믿을 수 있습니다.

천 마디 화려한 수사가 단 한 마디의 감탄사보다 못할 때도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백범의 유명한 말씀이 있죠. "내 소원이 무어냐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사실 이 표현은 수사법상으로만 볼 때 단순 반복에 점층법의 기교가 약간 들어간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 감동과 깨우침의 울림이란, 세상에서 가장 말 잘하는 변사, 웅변가 수천 명을 합한 것보다 더 깊고 오래갑니다. 아니, 수사법상의 수준으로만 봐도, 천재가 짐짓 소박함을 가장하고 전개하는 고도의 테크닉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말 장난을 제아무리 좋은 머리에서 빚어내어 현란하게 늘어놓는다 쳐도, 진심어린 말 한 마디에 못 미칩니다. 성인(聖人)백범의 인생은 말이 아닌 실천으로 점철되었으며, 그 실천이란 평범한 사람이 일생을 두고서도 단 한 번도 이뤄 내지 못할, 목숨을 건 애국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백 년 전에 이순신 장군이 계셔서 나라를 지켜 내셨다면, 일제 36년의 가혹한 폭정 속에서도 우리 겨레가 살아남은 건 백범께서 우뚝 이국의 상해, 그리고 중경에서 겨레를 굽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히로히토가 무조건 항복을 미국에 대해 선언했을 때, 우리의 진공 작전이 채 실행되기도 전에 이런 일이 생겼으니, 장차 겨레의 자립이 암울하다고 말씀하신 백범의 자취로부터, 시대를 몇 천 리 앞서 읽어 나가시는 혜안까지 엿보게 됩니다.

보 통 백범의 전기는 백범일지에 많이 참조의 기반을 두고 작성되는데요. 아명이 창자 수자를 쓰셨다는 사실과, 어린 시절부터 아기 접주로 동학 운동에 앞장 서신 점, 임정에 찾아 가셔서 문지기를 자청하신 일화등은 어느 책에나 공통적으로 실려 있는 일화죠. 이 책의 장점이라면, 소설의 장점을 살려 구체적으로 이야기들이 잘 연결되게 매끄러운 대화를 재구성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 책에서 처음 안 사실은, 안 도산 선생의 누이동생이신 안신호 님과 백범께서 젊은 시절 가연을 이룰 뻔하다 그러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는 점, 임정 수반 시절 광둥 사람으로 위장하시던 때 어느 처녀 뱃사공과 연분을 이루신 일 같은 것이었어요. 물론 필생의 동반자셨던 최준례 여사님의 헌신적인 봉사도 잊을 수 없겠죠. 자친 곽낙원 여사님은 아드님 못지 않은 애국 독립 운동가이셨고, 이 책에도 그 점이 잘 나와 있습니다.

치 하포 사건은 왜인 낭인을 완력으로 처단한 대단한 사건인데요. 많은 분들이 잊곤 하지만 백범께서는 당시 기준으로 대단히 장신이었는데다, 체구도 탄탄한 거한에 가까웠습니다. 하지 중장하고 찍은 사진을 보면 오히려 더 크게 보일 정도죠. 학식 또한 대단하셔서 당신이 남긴 문장이나 필적을 보면 우리 시대 여느 한학자를 능가하시는 수준입니다. 백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나 고정된 선입견이 빨리 시정되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같은 말을 해도 깊은 공감을 주는 화자, 저자가 있는가 하면, "그런데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같은 반감을 자아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 종철씨는 이 책에 나온 자신의 설명대로라면, 무명 개그맨 출신입니다. 젊은 시절 개그맨으로서 이름을 크게 알리지 못했는데, 지금은 각종의 자리에 섭외되어 가는 강연자로서 크게 주가를 높이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요즘 <당신은 왜 조바심을 내는가>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만, 그 책에서 말하는 내용 역시, "틀에 박힌 성공 루트란 존재하지 않고, 몇 살이 되었든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다 발휘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그건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 오종철씨는 원하던 분야, 자신의 적성과 맞는 필드에서 지금 잘나가고 있으니, 그 책에서 말하는 갖가지 좋은 예, 영국의 글래드스턴 수상, 미국의 댄 브라운 작가, 프항스의 발자크, 심지어 오스트리아의 모차르트와 같은 대열에 설 수 있는 훌륭한 성공 사례의 인생이라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오 종철씨는 무명 개그맨이기만 했던 사람은 아닙니다. 물론 읽는 독자가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이 책에서 저자인 그가 하는 말이 더 큰 공감으로 와 닿을 수 있지만, 무명 개그맨 시절에도 크고작은 여러 배역을 맡아 (그가 데뷔했던 sbs 방송국의)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경력이 있습니다. sbs AM 라디오의 진행자로도 활동했고, 그 프로그램에는 여러 후배들이 같이 나와 대단히 생동감 있고 참신한 분위기를 연출했었죠. 아쉽게도 채널 자체의 한계가 있어서 오래가지는 못했지만요. 이 책에 나와 있는 저자의 극적인 성공 사례로, EBS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 대성공의 경우는, 제가 위에 적은 그 시절보다 대략 5,6년 뒤의 일입니다. 어찌 보면 대박 같은 행운은 아무에게나 찾아 오는 게 아니라, 오종철씨처럼 두어 번의 실패(진행자)를 거친 후에 터지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이 프로그램을 맡아 대략 3개월만에 짤린다면, 프로그램 말아 먹은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커리어에 큰 지장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하고 있습니다만, 겸손의 말로 들립니다. 그는 이전에도 청취율 부진으로 중도 하차한 적이 있었지만, 같이 일했던 pd들은 그의 잠재력을 이미 알아보지 않았을까요? 맥 없고 루틴한 진행이 아니라, 진행자의 영혼이 녹아 있는 솜씨를 발휘하고, 창의력이 톡톡 튀고, 게다가 목소리까지 좋고 발음이 정확한 자질을 갖춘 사람이 흔한 건 아니니까요.

그 는 원 오브 뎀이 되지 말고, 온리 원이 되라는 말을 이 책의 핵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원 오브 뎀이긴 하나, 그 "뎀"이 한국에서 내로라 하는 엘리트 집단인 경우로, 저자분의 친형이 있습니다. 이 책에 나와 있듯, 그 형은 학력고사 시절 거의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아, 고액의 연봉을 받는 포스트에서 떠나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런 형의 존재 때문에, 오종철씨는 아마 평생을 두고 고민했을 컴플렉스 같은 게 있었을 겁니다. 그가 적성에 맞아하지도, 원치도 않았던 중앙대 토목과를 진학한 건, 오로지 형의 강권("마, 남자는 기술이 있어야 먹고 살어!")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한참 지난 후, 형이 "야, 넌 토목과에 뭐하러 갔냐?"하는 질문을 듣고, 그는 허탈감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다는 거죠. 하늘처럼 존경하던 형 본인이, 그런 동기 제공의 장본인이었다는 걸 정작 잊고 있었다니. "원 오브 뎀"의 부질없음은 이 대목에서도 재삼 확인되더라는 술회를 듣고, 저 자신도 많은 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 국은 그러나 아직까지, 조직에의 융화를 강조하는 나라입니다. 삼성에서 그렇게 인기 강사로 자주 섭외되는 분이지만, 정작 그 삼성은 우리가 잘 알듯 "관리의 삼성"아니겠습니까? 우리 조직과 사회에서 개인의 독창성이 보다 중시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온리 원"의 제창이 개그맨, 방송인 등 프리랜서의 영역에만 인정되는 관용이, 보다 넓여졌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