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스탠 콕스는 본디 이 방면, 그러니까 SOC구축이라든가, 시스템적 도시공학, 혹은 에너지 분야(비록 국지적이라도)의 전문가, 혹은 전문 저술가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은, 최소한 우리가 이 더운 여름 거의 끼고 살다시피하는 에어컨이라는 (아직은 고가 제품이라는 인식이 붙은) 상품에 대한 문외한으로서, 이만큼이나 많은 지식과, 나아가 환경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특정 산업을 둘러싸고 막후에서 벌어지는 정관계에서의 추악한 로비, 특정 제품의 생산과 유통, 판매에 있어 개입하는 다양한 사정과 흑막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정신적 각성을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저자에게 충분한 감사의 정을 느끼게 할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여름 전쟁", 이에는 물론 일차로 우리가 더위나기를 위해 벌이는 기후 조건과의 사투가 떠올라지는 구절입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를 할 것도 없습니다. 그나마 집에서는 전기요금 걱정에 화끈한 가동이 삼가지지만, 밥벌이를 위한 고단한 노동의 장이 되는 회사에서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는 맛에 향하는 걸음이 더 재게 되기도 합니다. 상가에서는 손님을 끌기 위해 정부의 단속 내지 권고에도 불구하고 눈치껏 에어컨을 가동합니다. 얼마 전 뉴스에도 났듯이, 외국 투숙객을 맞는 호텔에서 심야 냉방 온도 최저선을 제한하는 바람에, 비싼 돈 내고 호텔에 묵은 외국인들의 항의가 잇따르기도 했다고 그럽니다. 이건 어떻게 보면 현실과 사업의 현황을 모르는 참으로 딱한 탁상행정의 표본입니다. 호텔은 그저 최적의 쾌적한 "머묾"을 제공하는 데에 존재 의의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한여름밤을 말 그대로 잠 못 이루는 찜통으로 만들어서야 그게 어떻게 상업 시설로 기능할 수 있을까요? 얼마 전 대학 도서관 열람실에서, 취업이나 학과 공부에 여념이 없던 학생들이, 역시 최저 온도를 제한하는 학교 당국의 처사에 맞서 집단 항의를 낸 바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가뜩이나 증세 이슈로 민심을 잃고 있는 현 정부는, 새로이 블랙 아웃이라는 초유의 재해까지 자신의 임기 중에 치르는 악몽을 면하기 위해, 지금 전력예비율을 높이기 위해 여념이 없다고 합니다. 정부 뿐 아니라, 어쨌든 형식으로는 독립 기업체인 한국전력의 그 우수한 인력들이 골머리를 싸매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여름은 더위와의 전쟁일 뿐 아니라, 그로부터 파생되는 집단과 세력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치르는 파생의 전쟁으로서도 대단한 밀도와 열도를 지닌 이벤트의 시즌이기도 하죠.

스탠 콕스는 우리가 아는 이처럼의 현실에 대해, 정반대의 시각과 비전을 제시하며, "전쟁"을 색다른 각도에서 평화적으로 종결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의 주장 요체는, "에어컨을 쓰지 않고 여름 더위를 나자."는 것입니다. 에어컨이라는 게, 나를 시원하게 하고 대신 나 밖의 것(자연 환경, 식물, 혹은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을 덥게 하는 대단히 이기적인 존재라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에어컨은, 인간을 환경과 타자로부터 소외시키고, 나아가 지구 생태계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며, 에너지 고소비 사회로의 진입을 촉진하는 주범이기도 하죠. 동시에 에어컨은, 그다지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지 않고, 사치 고가품 정도로만 여겨지던 것을, 그 소비 촉진과 시장 확대를 위해, 해당 업계의 치열한 로비가 이뤄지는 상품의 대표적 예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제는 회사에서건 가정에서건,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는 것은 거의 상상이 힘든 형편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대로, 에어컨을 우리 주변에서 추방하다시피해서,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고 업자들의 부당한 이익 추구를 방지하는 쪽으로 시스템을 개편하자는 주장은, 어찌 보면 무모하게까지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 책은, 언제나 책임 있는 저자들이 그러하듯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대안이라는 것도, 치밀하게 준비되고 구체적 근거를 갖춘 것들입니다. 우리 인간이 합리적인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막상 몸에 익은 편리함은 설사 아무리 해롭고 부당한 것이라도 쉽게 떨어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지닌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책의 주장하는 바가 아무리 옳다고 해도, 이것이 새로운 컨센서스를 유의미하게 도출하기끼지는 꽤 오랜 시간을 소비하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올바른 생각과 방침은 언제나 동시대인의 인식을 앞서서 달리는 선각자적 각성임은 이 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죄의 낙인". 이의 대유(代諭) 성구(成句)를 "스칼렛 레터"로 칭하게 된 건 오로지 이 작품으로부터만 비롯했습니다. 이 작품이 탄생한 후에야 비로소, 한때의 실수를 두고 평생의 수치로 그 업보를 갚아야 하는 경우를 "주홍 글씨"라 칭하게 된 거죠. 고전은 대체로 멋진 성어, 숙어를 자신의 출생 증명서처럼 달고 다니면서 존재감을 더하지만, 이 작품처럼 본체보다 "브랜드(마케팅 용어가 아닌)"가 압도적으로 유명한 경우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보통 이야기되는 바와 달리, 내용도 대단히 극적입니다. 간통의 혐의로 피소된 여인이 대중 앞에 섭니다. 소추와 판결의 과정 내내 적대 어린 방청자들의 야유를 받았으며, 그 중에서도 같은 여성으로부터 보다 강도 높은 비난과 저주의 대상이 됩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겪는 이 같은 모욕의 경험 만으로도 평생의 트라우마가 될 텐데,  그녀는 일정 기간의 수형마저 치러야 했고, 출옥 후에도 가슴에 주홍 글자를 달고 다녀야만 합니다. 징역형과 더불어 명예형, 나아가 공동체로부터의 사실상 축출이라는 사회적 매장 처분까지 받는 이런 일련의 과정은, 연약한 여성으로서는 죽음보다 더 가혹한 형벌이었을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출생시점으로부터 죄의 씨앗이라 단죄 받은 자신의 혈육과, 이런 치욕과 고통을 두 배로 하여 공유해야 함은, 이 여인의 삶을 영혼 밑바닥으로부터 갈갈이 찢어 놓을, 궁극의 수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녀 사냥은 구대륙의 가톨릭 광신의 온상 스페인 등지에서만 벌어진 일은 아니었고, 이 소설에서도 잠시 언급되듯 신대륙 신교도들 사이에서도 흔히 벌어지던 일이었죠. 본향의 종교적 억압을 피해 새로운 땅으로 이주해 온 그들이었지만, 막상 새로운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 가는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을 억압하던 낡은 세계의 지배자들 못지 않게, 혹심한 탄압을 (그들의) 소수자, 희생양들에게 가합니다. 시집살이 호되게 한 여자가 며느리한테 더없이 못되게 군다는 우리 속언처럼, 이른바 청교도들의 종교적, 사회적 편협성과 배타성은 그 무궁무진한 자연 자원과 사회 발전의 가능성을 지레 차단할 정도였고, 무엇보다 계몽주의의 이상인 자유와 관용, 공평의 정신을 가장 허무한 방식으로 배반하는 결과를 빚기 직전이었습니다. 특히 북미 대륙에서 "새로운 실험"이 처참한 실패로 끝나지 않은 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광신을 양식(良識)이 압도한 면이 컸기 때문입니다. "법의 지배", "자유경쟁" 따위의 다른 미덕(흔히 앵글로색슨 고유의 것으로 그들이 선전하곤 하는)이 이 과정에서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여튼 결과는 순리와 객관, 과학 정신과 공평 무사 이념의 승리였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주홍 글자> 같은 명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허먼 멜빌의 <백경> 따위가 구세계와 신세계의 문학적 성취를 비로소 대등한 수준에 놓았다면, 이 작품은 비로소 부분적으로 미국 문학이 세계 문자 미학의 최첨단을 밟아 보기도 한 이정표가 된 셈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이 작품의 일반적인 한국어 번역 제목이 <주홍 글씨>였습니다. "글씨"와 "글자"가 서로 어떤 뉘앙스의 변별을 가지는지는 대단히 모호한데요. 아마 "글씨"의 채택을 굳이 피하려는 입장에서는 이 단어가 "그 모양의 예쁨" 따위 의미를 필요 없이 환기하는 역작용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점도 없지 않았을 것 같네요(그냥 제 생각). 그런데 이 작품 내용에서 바로 알 수 있듯, 주인공 헤스터 여인의 자수 "솜씨"는 유난히 빼어난 기량입니다. 오히려 이 작품의 내용을 감안할 때, 그리고 오랜 시절 독자의 입에 익었다는 이점까지 더해서, 이 작품은 특별히 "주홍 글씨"로 옮겨져야 했을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 유행이랄까 어떤 관행이 확고히 정착한 결과인지, 이 호손의 작품은 비단 이 출판사 박계연교수 뿐 아니라, 민음사. 펭귄클래식코리아, 열린책들, 넥스트, 지만지, 동서문화사 등 절대 다수의 번역본이 "글자"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문예출판사 정도가 예외적으로 옛날식 "글씨"를 달고 있을 뿐이고요. 

역자 박계연 교수는 역주를 통해 특별히 강조하길, "이 작품 어디서도 예컨대 A가 간부(姦婦) adulteress의 앞글자라든가 하는 설명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발표 당시에는 이런 특이한 명예형벌의 존재가 보편적으로 알려진 일이었기에 설명이 불필요했겠고, 작가 호손 자신의 계몽적 스탠스와 종교적 관용의 입장에서는 더군다나, 작품 내외적으로 이 부당한 인간 모독의 혹형에 대한 최종적 부인을 행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 아니었겠나 짐작합니다. 초등학생 때 이 작품을 처음 읽은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현대적이고 충실한 한국어판으로 다시 만난 이 작품에서, 저는 작가 호손이 참으로 안온하고 관대한 마음을 지닌 인간이었음을 실감했습니다. 작품 서두에서도 잠시 언급되는 세일럼의 악행이라든가, 혹은 "거짓 예언자" 히빈스 부인의 사례를 통해, 그는 종교적 근본주의에 대한 강한 회의와 우려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극적인 결말은, 그 예전 광신의 물결에 희생되었던 "마녀들"에 대한 최종적인 사면장 발부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농담이지만, 이 책 앞날개에도 소개되어 있듯 그는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와 대학 동기이자 일생을 통한 친우이기도 했으니, 굳이 필요했다면 누구에게라도 법적 사면을 내어 줄 힘이 있었다고도 하겠어요)

이런 흐뭇한 주제의식과는 또 별개로, 이 작품은 전례 없는 개성과 캐릭터의 창출에도 성공한 편입니다. 헤스터는 빼어난 미모와 자유로운 정신, 기상의 소유자이지만, 일종의 사랑이랄까 아니면 인격적 자존, 소신을 지키기 위해 제 존재를 희생하면서까지 침묵과 절제를 시도하는 동양적 인종(忍從)의 모습까지 띠고 있습니다. 그 딸 펄Pearl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 이는 그녀의 핏줄에 흐르는 타고난 기상과는 아주 큰 대조를 이루는 선택입니다. 자기 부정을 통해 자신을 가장 극렬히 반대하는 이들에게까지 존재를 긍인시키고 마는 무서운 모습이기도 합니다. 딤즈데일 목사는 어떻습니까? 젊고 매혹적인 외모에, 설교자로서 으뜸으로 치는 덕목인 깊고 풍부한 목소리까지 지닌, 그야말로 하늘로부터 선택 받은 자질의 소유자입니다. 흔히 이야기되듯, 가장 고결한 가면을 쓰고 가장 추악한 비행을 저지른" 자의 대명사로 운위되기엔, 그 기질과 신경이 너무도 섬세한 사람입니다. 악인은 신경이 강해야 태연하게 제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는데, 딤즈데일은 단 한 번의 실수로 제 목숨을 앗을 마음의 병을 스스로 얻기까지 했으니, 웬만큼 "악'의 의미를 변형한다 해도 이 사람을 포섭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성 독자들의 지탄을 한몸에 받을 것만 같은 칠링워스 "마법사"는 그럼 어떨까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이 자야말로 사이코패스의 범주에 들기 딱 좋을 것 같네요. 아니면 소시오패스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쌓아 온 학식과 기술(의학 분야의)을, 오로지 자신이 점 찍은 먹이의 영혼을 파멸시키는 데 동원합니다. 이 과정에서 복수의 현실적 실행에 불필요한 감정이나 동기의 발현은 일절 억누릅니다. 간악한 지성까지 동원한다는 점에서 악마라 칭해 마땅합니다. 최소한 (다소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개입하는) 작가의 설정상으로는, 이 묘한 삼각애정관계, 아니, 삼각 대결 구도에서 그가 맡은 역은 철저한 악역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다 읽고 난 후, 과연 독자들은 이 닥터 칠링워스에 대해 그런 철저한 단죄를 내리고 싶은 기분인가요? 최소한 전 아니었습니다. 우선 작가 호손의 테크닉이, 현대의 눈으로 아직 미숙했던 탓도 있지만, 작가의 개입으로야 악마의 화신에 다름 없다고는 하나, 그가 "전처" 헤스터에게 건네는, 비록 냉정하고 적대 어린 기조로나마 딱히 부당한 언사나 대우가 있었던가요? 그는 여튼 배신당한 남편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늙고 추악한 용모로, 어린 신부와 미스매치를 이뤘다고 해도 그게 죄는 아니죠. 겁탈이나 매매혼이 아닌 이상에야. 또, 딤즈데일 목사에 대한 그의 태도 역시, 최소한 상식적으로나 법률적으로나, 심지어 물리적 의미로는, 무서운 복수도 아무것도 아닌 단지 충직하고 유능한 의사의 봉사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의사가 혹여 양심상 "이 환자에게는 더 이상의 연명이 오히려 형벌이며, 인격적 존엄사가 최상의 선택이다."라고 단정을 내린다면, 그건 의사로서의 처신이 아닌, 초월적 인간, 아무에게도 책임지지 않는 절대적 판관의 처신이자, 월권입니다. 그는 한 사람의 의사로서, 명의로서, 그저 더없이 성실한 직분을 수행했을 뿐입니다. 단지 환자 딤즈데일의 지극히 특수한 개인적 상황 때문에, 이것이 궁극의 모욕이자 형벌, 복수로 기능했을 뿐이죠. 딤즈데일은 이를 두고, (우리 한국식 표현대로라면)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는 것입니다. ^^ 본디 악마란 유능하고, 논리적으로 틀린 곳 하나 없는 달변을 구사하는 게 보통이지만, 이 칠링워스는 우리 시대 캐릭터 닥터 한니발처럼 똑똑하지만, 그보다 훨씬 자기 절제적 성품이며 합리적 취향을 가졌습니다. 제가 보기엔 능력도 당대의 시대 한계를 감안할 때 더 뛰어나 보입니다. 칠링워스를 두고 호손은 마치 정신이상 연쇄살인마를 방불케 하는 요란한 단죄를 내리지만, 우리가 보기엔 "아니 뭘 그렇게까지나요?" 같은 의문이 자연스레 나올 정도입니다. 우리 시대가 그만큼 타락한 탓일까요?

미국 대륙의 지난 역사, 혹은 각별히 "흑역사"에 능통한 필립 마이어가, 아주 임자를 만난 듯 제 솜씨를 마구 펼치고 있는 재미 있는 이야기책입니다. 처음에는 작가가 혹시 작정이라도 하고, 사실에 기반한 암울한 리얼리즘을 구현하지나 않을까 걱정했습니다만, 독자가 아무 마음의 준비나 긴장 없이 읽어 내려가도, 그 소설적 재미에 물씬 빠져 들 수 있는 서사더군요. 

제목도 참 대담합니다. 일체 부가 설명 없는 "더 선", "아들"입니다. 아들이라니, 우리들 중 태초의 인간이 아닌 바에야, 대체 그 누가 아들 아닌 자가 있습니까? 진화론의 입장을 따르자면, 태초의 인간이라 한들 그 어느 돌연변이 파충류를 제 아비로 두었을 테고, 가장 저열한 단계의 단세포 생물이라고 해도 코아세르베이트를 그 육친으로 두었을 텝니다. 종교의 입장에 따르더라도, 최초의 인간은 신을 그 부친으로 둔 사실에 그 존엄의 기반이 자리합니다. 그저 저렇게 아들이라고만 하면, 대체 얼마나 많은 의미가 그 안에 포섭될 수 있는 걸까요?

이 소설의 주인공 소년이 만약 그 지칭하는 바 "아들"이라면, 제 생각에는 그 해석이 이럴 것 같습니다.
1) 그는 어느 소심한 구세계 이민자의 아들로 물리적 세팅이 일단 이뤄진 존재입니다. 이런 신분과 관계의 의미에서, 그는 사실 누구의 아들이라기보다, 누구의 동생으로서의 정체성과 개성이 더 강합니다. 신대륙 미국의 개척 이민들이 일반적으로 지녔다고 인식되던 전형과는 크게 달리, 이 가정은 정신의 활기도 부족하고 스스로에 부여하는 정당성도 약한 편입니다. 게다가  현학적이고 신경질적인데다 자기 존중감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형은, (아마 나르시즘의 한 발현이겠지만) 끔찍하게도, 제 친누이와 불건전한 감정의 교류를 행하기까지 합니다. 이는 청교도적 주류의 분위기에 완전히 반하는 삶의 방식으로, 이들은 그들과 대립을 이루는 토착민(이른바 인디언) 집단이나, 백인 문명 사회 그 어느 편과도 화합과 안정적 소속을 못 이루는 낙오자의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인공 소년은 이런 배경 탓에, 일찍부터 제 소속집단과의 유리를 예비하고 있었습니다. 이 집안은 그 정신의 활력 침체도로 보아 구대륙으로 회귀해야 어울리는 이들이었으며, 실제로 소설에서 병든 구세계 질서를 상징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아무튼 이런 맥락에서 소년은 그 활력과 건강성을 잃어가는 소위 "문명 세계"의 아들입니다. 

2) 그는 뜻하지 않은 납치 사건을 통해, 인디언 전사 코만치 종족의 아들로 거듭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소년은 물론 특유의 자존과, 유전적 혹은 문화적 학습을 통해 존재에 밴 정체성을 쉽게 잃으려 들지 않습니다만, 이상하게도 전사적 기풍과 미덕을 찬양하는 그들(코만치) 특유의 분위기가 부여한 공평한 기회를 잘 살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신분 상승"(코만치적 개념은 전혀 아닙니다만 일단 그런 천박한 해석을 해 보겠습니다)을 이뤄 냅니다. 대접을 잘 받는데다 물리적 생존의 편의까지 제공된 길을 뭐하러 굳이 외면하겠습니까? 소년은 이제 이 코만치 집단의 질서와 구조에 제 몸을 흔쾌히 맡깁니다. 그가 이뤄 낸 놀라운, 전사로서의 성취는, 종족 중 가장 힘세고 부유한 가문의 상속자로부터,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정평이 난 아내(이름은 "일하기싫어:라고 하는군요)를 하루 밤 제공받는 특혜 중 특혜를 제공 받기에 이릅니다! (읽으면서 정말 부러웠습니다) 혹시 읽으면서 독자들이 "과연 인디언놈들은 제 아내를 물건 취급하는 야만인들이군!" 같은 선입견을 굳힐까봐, 작가는 이런저런 배경 설명도 곁들이면서 완충 장치를 마련합니다. 작가가 실감 내게 그려내고 있는 모습은, 인디언들이야말로 오픈 마인드를 지닌 호쾌한 장부들이자, 온갖 경로로 유입된 "트기'들을 차별 없이 맞아 들이는 오픈된 민주주의의 구현자들이라는 겁니다. 민주주의의 창시자들이라는 서구 백인들이 무색하게도 말이죠.

이 작품이 우리 마음을 더욱 흐뭇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그러면서도 지난 역사의 어두운 구석에 대한 냉철한 성찰 작용까지 돕는 이유는 돕는 이유는, 바로 작가의 여러 세대를 넘나드는 대서사시적 구성의 미덕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마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를 연상하게 하는, 3세대를 오가며 미국 현대사의 중요한 시점을 두루 터치하는 시도와도 유사합니다. <더 선>은 <더 갓파더>와 함께, 소설로 묘파한 미국 현대사 서술의 모범으로 꼽힐 만한 멋진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