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사와 아키오님의 책 분위기가 어렴풋하게 느껴져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 작은 것들을 아끼고 섬세한 감정으로 어루만진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잔잔한 일상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듯 한 이 책은, 보관가게 안의 소식과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앞을 볼 수 없는 가게 주인과 소중한 보관품들이 들려주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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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각자 보관해주길 바라는 물건이 있나 봐요. 가족에게 보여주기 싫은 것이나 잠시라도 멀찌감치 떨어지고 싶은 그런 거요. 버릴 결심이 서지 않는 물건에 집행유예 기간을 주는 것처럼 맡아달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버릴 결심이 서면 가지러 오지 않으면 됩니다. 버렸다는 죄책감 없이 끝나거든요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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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물건을 버릴지 간직해야 할지 고민이라면 이곳에 맡겨보아요. 하루 100엔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맡아준답니다. 혹시 잊어버리지 않을까, 내 은밀한 생활들을 엿보지 않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건 주인이 물건을 볼 수 없기에 안심해도 된답니다.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들여다보고, 이를 정성껏 보관하는 가게, 뭐가 특별할까 싶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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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곳은 눈에 띄는 장소도 아니고, 옛 시절의 모습 그대로 가구들이 자리해 있어요. 가게 안에서의 주인의 움직임은 불을 환히 켜고 움직이는 듯 자연스럽거든요.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자각할 수 없을만큼요. 각설하고, 이 곳에 물건을 맡기는 이들 저마다의 사연이 있기 마련이지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잠시라도 잊고 싶은 것들을 훌훌 털어버립니다. 잘 들어주는 이 곳 주인으로 하여금 마음의 평화도 얻어가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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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가게 주인은 눈이 보이지 않는 만큼 소중한 것만 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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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화자가 사람에만 그치지 않고 사물의 입장에서 저마다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해요. 포렴, 진열장, 자전거, 고양이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시선에서 본 상황들이 참 재미나게 표현되는 듯 했어요. 동식물의 감정을 헤아리려고는 하지만 오래된 물건들이 말을 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지 못했던터라 신선하기도 했어요. 무심코 쓰는 물건들이 실은 나를 지켜보고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미소 지어지기도 해요. [지금 제 곁에 핸드폰은 '게임 좀 그만해, 뜨거워서 못살겠네' 라고 말할거 같기도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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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100엔 보관가게는 물건을 사랑했던 마음,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공간이 아니었을까 해요. ​가치있는 것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을 키워주기도 하고 말이지요. 따뜻함을 안겨주는 이 책, 옅은 미소를 띠게 만드는 보관가게를 찾고 싶어진달까요. 간직과 비움 사이에 고민하고 있는 물건을 넌지시 건내주고 싶어져요. 뚜렷한 해결책을 얻으려하기 보다는 그 순간의 내 마음을 확실하게 깨닫기 위해서- 따뜻한 문체를 물씬 느낀 오야마 준코의 책, 다음이 기다려져요.

 

  뉴스를 떠들석하게하는 중동 호흡기 증후군 메르스와 관련하여 왜 이 책이 생각났는지 모르겠어요. 진실 은폐, 호기심과 불안, 교묘한 선동 등이 연관되어 떠올랐지 말입니다. 한 달 전 책장을 덮고 무어라 쓸 수 없었던 글이 조금씩 정리가 되어 리뷰를 남겨요. 미야베 미유키님의 에도 시대를 바탕으로 한 픽션, 바보 호와 주변 사람들의 가슴 뭉클한 미스터리 이야기 <외딴집 上,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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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인 즉, 막부의 중신 '가가'님이 마루미 번에 유배를 오며 벌어지는 각종 괴이한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그의 악행(정신 이상으로 아내와 자식, 신하를 죽였다는 소문)을 방불케 하는 일들이 번에 저주를 가져오지는 않을지 모두들 두려움에 떨게 되지요. 병의 부정함과 재앙을 걱정하는 가운데, 마을 안에서는 이를 이용해 각자의 '불온한 목적'을 이루려는 움직이도 나타납니다.

 

  마른 폭포 저택에 칩거중인 '가가'님이 섣불리 목숨을 끊으면 더욱 나쁜 존재가 되어 쇼군 가에 재앙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하여 이를 지키고자 하는데, 죄인이 유폐된 저택에 하녀로 살게 된 천애고아인 소녀 '호'만이 '가가'의 소문이 아닌 진짜 실체를 보게 되지요. 외딴집- 그 곳에서 바라본 날조된 정보와, 은폐를 통한 지배와 복종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무서워하면 무서운 것을 보거나 듣게 되는 법이야. -p87 외딴집 上

  자신의 이익(책에서는 번의 이익이라고 해야 할 거 같네요)을 위해 진실을 숨기고 거짓으로 일관하는 사람들. 부풀려진 소문은 무성하게 번져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이르게 되는데 지금의 상황도 이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요. 눈 가리고 아웅해도 분수가 있지, 이미 사실을 알고 있는 특정 권력층들은 자기 잇속 챙기기에 바빠 사건을 쉬쉬하는 형태가 분노를 자아내요.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랄도, 슬픔이나 괴로움이 지나친 나머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강하게 생각하면 보이지 않게 되고 말지요. 마음이 주인을 속일 때도 있어요." -p107 외딴집 上  

 

  지배층이 정보 장악력을 바탕으로 하여 나쁜 일들을 숨기고, 불안 심리를 조장하는 것에 씁쓸하더군요. '마루미 번의 안좋은 일들이 생기는 것은 모두 가가님 탓이다' 그를 원인 제공자로 몰고 가며 두려워하게 되는 사람들, 날이 갈수록 마을의 혼란스러움만 가중되어가요. 소문의 실체를 찾아나서기보다 뜬소문을 믿는 것을 선택한 다수의 사람들 -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아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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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 지식의 말은 조만간 너를 해하게 될 것이다. 다치는 것이 너 자신이라면 그것도 교훈으로 살릴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는 마라. -p190 외딴집下

 

  등장인물과 여러 상황들 속에서 할 말이 무수히도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사람,사물)사건을 바라보고, 부글부글 끓다가 이내 사그라드는 냄비처럼 소문에 좌우되어서는 안 될 것-임을 느껴요. 현실에서도 속보가 와전되어 오해가 생기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책이 출간되기 전, 이 문장을 보고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슬픔에 익숙해진 소녀와 늘 외로웠던 소년' 마치 지금의 저와 남자친구를 이야기 하는 것 같았거든요. '너무 일찍 만났기에 너무 일찍 헤어져야 했던 두 아이의 운명. 그리고 7년 후. 자신의 삶을 채우는 유일한 존재를 지키기 위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짓말이 시작됩니다.' -라니 내용이 궁금해졌어요. 지난 날의 내 삶에 비춘 스토리가 지나가며, 은연중에 그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책을 바랬는지도 모르겠어요. 생각했던 그림들과는 사뭇 다른 전개에 재미를 많이 못 느꼈지만, 소년과 소녀의 애틋한 마음들과 성장을 엿볼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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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살의 바츨라프와 레나는 러시아 이민자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만나게 됩니다. 친구를 가져보지 못해 외로운 아이와,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 채 옮겨 다니며 자란 두 아이의 만남은 어디로 가게 될까요? 함께여서 슬픔과 외로움을 견뎌낼 수 있었던 두 아이는 자신들만의 비밀을 하나 갖게 됩니다. 서커스를 통해 마술쇼에 매력에 빠져들고, 마술사와 조수로서 멋진 꿈을 꾸기로 말입니다. 연습에 매진하는 가운데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하는 둘의 관계, 그럼에도 해바라기처럼 소녀를 바라보는 소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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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던 어느 날, 레나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해요. 바츨라프는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부모님에게 여쭤보지 않아요. 비밀을 캐내는 일이 부모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알기에 고통스럽지만 견뎌냅니다. 그렇게 7년 후, 열일곱 살이 된 바츨라프 앞에 레나가 나타나요. 두 사람의 감격적인 해후도 잠시, 레나는 말합니다. '낳아준 부모님을 찾고 싶다' 라구요. 소년은 소녀가 사라지던 날을 비롯하여 사건의 진실에 가까이 가게 되고, 이를 소녀에게 말해줍니다. [진실 그대로일까요? 따뜻하게 각색해서 일까요? 당연히 후자겠지요. 소녀를 사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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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의 유일한 친구로서 훗날의 헌신적인 사랑을 터득하기까지 돌이켜보면 참 예쁜 연애가 아닐까 합니다. 모든 것을 끌어 안고 해바라기같은 사랑을 한 소년소녀를 보면 미소짓게 만들어요. 오랜시간 떨어져 있었음에도 자석처럼 끌릴 수밖에 없는 두 아이, 그들만이 공유하고 있는 마술이라는 특성이 꽤나 기억에 남을 수밖에요.

 

  이 책은 자각하지 못한 특수한 얼룩들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생각해보게 해요. 바츨라프의 집과 상반되는 레나의 가정환경을 엿보며, 때론 방관하고 이를 덮어주는 어른들의 행동을 통해 '보고도 못본 척' 눈감는 일의 어리석음을 꼬집기도 해요. 억척스러운 바츨라프의 엄마 라시아의 행동과, 레나의 이모를 통해 가정에서의 교육환경이 미치는 부분들을 살펴보게 되는 듯 합니다.

 

  십대의 심리 변화와 성장 과정을 드러냄과 동시에, 이민자들의 생활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이 책이 마냥 달콤짭짤하지는 않았어요. 그럼에도 섬세하고 직시해야 할 문제점들을 돌아보게하는 성장소설이 아니었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