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면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할 것인가 생각해봅니다. 더 사랑해주지 못해 아쉬웠던 것들에 눈이 갈테죠. 또한 한없이 베풀지 못한 것, 따스한 말 한마디 건내주지 못한 안타까움이 자리할 같아요. 후회와 미련으로 남지 않기 위해 바지런히 무엇인가를 할 것만 같은 제게 이 책은 마지막으로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해요.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 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마지막 순간을 앞둔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더불어 호스피스 의사로서의 저자가 본 삶에 대한 시선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8년에 이르는 시간동안 900명이 넘는 환자들을 지켜보며 임종 선언을 해왔더라지요. 숱하게 지켜본 '죽음'이지만 이를 무엇으로 정의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이 책은 죽음 직전에 일어나는 삶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줌과 동시에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시간들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들이 남긴 이야기가 단지 상투적이기만 한 사생활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각박하게 사느라 잃어버렸던 삶의 진정한 가치관, 이를테면 사랑, 우정, 배려, 용서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끄집어내주었다. [...] 환자들은 오랜 투병 생활 때문에 많은 펀치를 맞아 지쳐버린 복서처럼 만신창이가 된 채 입원을 하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인생 이야기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우리의 일상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보게 해준다. -p63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강을 건너가는 것이 '죽음' 이겠지요. 예측불가능한 순간들이지만, 언제든 떠나간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한편으론 준비를 해야 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막연하게 보내버린다면 그 헛헛함을 무엇으로도 채우기 어려울테니까요. 녹록치 않게 살아온 세월을 이야기하고, 가슴 속 상처를 보다듬는 일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요. 책을 덮고나서야 먼 미래라고 생각했지만 또 급작스럽게 가까워질 수도 있는 생과 사의 문제가 와닿기 시작하더군요.
내일 도사리고 있는 재앙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살아감 속에 죽어감의 흔적을 묻히는 것이다. 내일이라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오늘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심코 거칠게 한 말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지도 않을 비겁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너무 많이는 양보하지 말자. -p163
저자의 이력이 남다르달까요. 13년 동안 전업주부로 생활해오다 서른아홉이란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 호스피스 완화의료 센터장으로 일하기까지 매 순간의 결단과 선택이 멋져보였습니다. '엄숙한 죽음을 맞이하러 오는 무채색의 장소'에서 '아프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환한 장소'로 탈바꿈 시킨 노력에 박수를 보내게 돼요. 저 역시 호스피스 병동이라 하면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떠올리지만 그 곳만의 밝은 빛이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느껴요. 돌봄을 받고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며 가족들의 상실감을 보다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다는 점에 있어 더 나은 병실과 시스템들이 이뤄지면 좋겠더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현대 의학의 진수는 수명을 늘리거나 사람을 영원히 살리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아프면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p216 라는 말에 공감해요. 남아 있는 사람에게 병으로 고통받게 하는 것보다는 그 사람이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들어주고 마지막 여행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돕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