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잘 살고 싶다고 외치지만, 사는 것은 매순간 고된 가시밭 길을 걷는 것처럼 여겨진다. 언제쯤 꽃밭을 거닐게 될까? 그 순간을 꿈꾸며 오늘도 한 발자국 내딛어보는 사람들에게 '조금만 더 힘을 내' 라고 말해주고 싶다. 살고 싶다, 잘 살고 있다, 살아있기를 잘했다라고 말하게 될 그날이 분명히 찾아올 것이기에.
이 책의 줄거리인 즉, 이등병 시절 유격 훈련을 받다 오른쪽 무릎을 다친 이필립, 그는 자대와 군 병원을 오가느라 제때 진급하지 못했지요. 남들은 제일 힘든 시간을 편히 지냈으니 부럽다고도 하지만, 그 간극은 무능력자 부적응자로 자신을 깎아내리게 만듭니다. 그러던 찰나 의문의 남자로부터 제안을 하나 받아요. 병장으로서 남은 시간 편한 군생활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국군광주통합병원(광통)에 입원했던 한 친구의 자살 사건을 조사라하는 것이지요. [무엇이 숨겨져있던 것인지 결말은 책으로 확인하세요]
성경에 너는 뜨겁든지 차갑든지 하란 말이 있다. 그렇지 않고 미지근하면 하나님이 너를 토해낼 거란 말이다. 군대에 이런 말이 있다. 너는 제대할 정도로 아프든지 건강하든지 하라. 아니면 끝없는 후송의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p11
군생활의 비애를 맛보지 못한 저도 뉴스를 통해 듣는 소식들이 있지요. 어지간히 아프지 않고서는 입원하기도 어렵고, 얼토당토 않은 약만 처방 받다가 사망하는 이도 더러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요. 그들 내의 위계 질서와 숨어있는 권력의 힘이 인간을 얼마나 이기적이게 만드는지 말입니다. 똘똘뭉쳐 멀쩡한 사람 하나 망가뜨리기도 하는 그 무시무시한 군대라는 공간을 이 책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거 같아요.
군대 안의 이야기, 더욱이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면들과 추악한 인간상에 고개를 흔들기도 하지만 그리 무겁기만 한 내용은 아니에요. 작가의 문체가 가벼움과 진중함을 잘 오가던 가운데 꽤나 마음에 들었던 비유적인 표현은 '알맹이가 탈영해버린 튀김옷' 이었답니다. 재미난 표현들도 더해져있고, 가보지 못한 군대라는 공간을 실감스럽게 표현해낸 거 같아요.
광통병원으로 오며 그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가운데, 군의관의 회진 장면을 표현하는 부분이 진짜인지 모르겠으나 재미있기도 하고 짠했어요. 누군가는 전역을 하고, 누군가는 성치 않은 몸으로 자대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군의관의 퇴원 명령을 기관총에 난사당했다-라고 표현하더군요. 겉으로 드러나보이지 않는 상처로 인해 자대에 복귀해서조차 마음 편히 쉴 수 없음이 안타까웠더랍니다.
저항하지 못하는 상대를 때리는 것만큼 비열한 짓은 없다. 군대의 온갖 불합리는 힘을 가질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힘이 주어지는 데서 나온다. 가끔 선의를 갖고, 그 선의를 세우는 방식에서도 현명함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 변화를 일으켰지만 그가 사라지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p54
각설하고 군대 내에서의 폭력, 이를 묵인하고 방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여린 사람들은 상처 받고 휘청입니다. 소리내어 말하지 못한 외침들이 결국 다른 곳으로 화살을 날리게 되는 것 아닐까요. 군대라는 공간의 특수성에서 권력을 지닌 이들의 부정한 행태와, 뜬소문에 사건을 덮으려는 방식들이 사뭇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직접 나서서 선의를 행하지 않더라도 잘못된 것을 제대로 보려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겉잡을 수없는 산불이 되겠지요. 살고 싶다는 그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말고,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 필요해요. 따뜻한 눈빛, 진심어린 위로가 필요한 세상이 아닌가 합니다. 어디선가 홀로 가슴을 쥐어짜며 삶을 져버리고 싶은 사람들을 향해 '그럼에도 살아보렴, 이 모든 것들도 지나간단다' 라고 말해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