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왜 이제야 알아서 나는 니콜라 머그컵을 갖지 못한 걸까 싶은 책.

만화 '진격의 거인'이 유행이라고 했다. 대세를 거스를 수 없던(사실은 고시공부하기가 싫었던)나도 1권을 네이버에서 무료로 봤다. 감상은 이렇다. 음, 재밌긴 한데 피곤하다.

충분히 현실로도 피곤하다. 고시 공부는 말이 좋아 능력평가지 사실 더 열심히 해서 다른 사람을 눌럿! 이라는 거다. 고시 공부 함께해요 라는 카페는 순수하게 같이 공부하자는 목적으로 만들었을 지도 모르나 온갖 훌리와 거짓부렁 헛정보들이 떠돌고 있다. 누군가 오늘 공부 너무 열심히 했어요 열시간 했어요 하면 다들 기분나빠한다. 이게 현실인 것이고 그 현실은 진짜 피곤하다. 누가 건드리지 않아도 신경질이 난다. 아 짜증나.

그런 와중에 내가 또 주인공이 고생하는 만화를 볼 순 없었다. 나는 요즘 힐링스러운 소설이나 영화를 자꾸만 찾아나선다. 처음 시작은 꼬마 니콜라였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니콜라는 철없기만 하다. 어른들은 이 철없음에 한숨을 푹푹 쉬고 성가시다고 말할 지도 모르나 아이가 철이 들었다면 그게 어떻게 아이겠는가. 특히 고시니는 이런 아이들의 철없음 중에서도 순수함을 잘 집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동안은 살짝 비웃기도 하고 너털웃기도 하면서 생각을 줄일 수 있는 거다.

깨끗하다라는 말이 잘 맞겠다. 더 이상 싸우는 것도 신물나고 갈등 겪는 것도 세상을 꾸역꾸역 사는 것도 신물이 나는 사람들이 읽으면 꽤나 좋을 것 같다. 마음같아선 니콜라가 전집처럼 몇 십권은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아쉽다.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아까운 마음으로 읽는다.

그나저나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니콜라 머그컵을 구하고 싶다...

나는 아직 어린애이고 싶은데 세상은 왜 나보고 어른이 되라고 하는 거지?

 

한심한 질문이다. 한심한데 이 질문을 자기에게 던지지 않는 어른이 없다. 나 역시 하루에 몇 번은 던진다. 그리고 나는 어른이다. 나조차 예상하지 못한 때에, 공부에 치이고 과제에 치이고 제대로된 연애한 번 못해보고 실습 나가고 취직준비하고 고시 공부나 좀 끄적거리다가 졸업하는 순간 그걸 느꼈다.

내 어리광을 받아주는 사회는 끝났다는 걸.

 

누군가 자, 이제부터 넌 진짜 어른이야. 네가 어린이날 선물을 해달라고 해도 안 해줄 거고, 설거지도 해야되고, 자취를 하면서 밥도 네가 차려먹어야 돼. 효도도 해야되고 이제 결혼도 직장도 육아도 다 네 몫이야. 지금은 바쁘다고? 모두가 그런 걸 새삼스럽게. 라고 말해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됐다. 이젠 받아쓰기를 백 점 맞았다고 칭찬해줄 사람도,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을 벽에 걸어줄 의사를 가진 부모님도 없다. 이러니 이십대가 힘든 것이다. 삼십대나 사십대는 아직 안 돼봐서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더 힘들거다. 시간은 내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흐르니까, 내일모레 삼십 중반일 수도 있다. 정신은 이제 이십대 갓 들어왔는데. 바쁘다, 바쁘다, 요구당하는 건 많은데 할 줄 아는 건 없다, 나는 결국 아무것도 아닌가?

 

그러한 회의에 대해 약간이나마 위안을 줄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설거지 할 수 있다는 건 사람들이 다 안다. 공부를 해서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도,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것도,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것, 마음만 먹는다면 방청소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이미 증명돼있다. 더 이상 뭐가 필요한가?

 

작가 호어스트 에버스는 더 게을러지려고, 더 지저분해지려고, 나태해지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좀만 딴짓하면 도태되는 게 아닌가 싶어 무서워지는 사회에 과감하게 도태되기를 선택한다. 그렇다고 그 인생이 패배자 같거나 지루해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멋있다. 우리가 꼭 더 머릿속에 넣어두고 사람들을 더 제치고 밟아나가야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혜를 그는 소소한 삶 속에서 얻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무리해서 달려서 뭐해. 끝에서 쉬려고? 그치만 난 지금도 쉬엄쉬엄 쉬고 있는 걸. 너희들보다는 늦게 도착할 테지만 말야.

 

사실 이런 삶이 좋아보인다. 작가가 정말로 그런 삶을 살고 있는지는 만나서 깊은 대화나 좀 나눠봐야 알 일이지만, 일단 이렇게 살고싶다 마음먹고 이런 글들을 쓴다는 게 나쁘지 않은 자세같다. 사실 내 경험으로 보건대 하루 열심히 달리면 하루 쉬어야 된다. 그럴바엔 설렁설렁 이틀을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곱씹을 수록 좋은 책 같다.

서평단에 당첨돼서 받은 책.

신에 대해 그렇게까지 믿음도 없고, 죽음 뒤의 영혼은 더더욱 없다고 느끼는 뇌의학자가 급작스런 뇌사상태 이후 일주일 간 영혼으로 천국을 경험했던 수기를 적은 책이다.

그도 처음에는 이러한 임사상태 체험을 절대 믿지 않았다고 하나, 믿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고 했다. 뇌사상태의 그는 꿈을 꿀 수도, 생각이란 걸 할 수도 없는 상태였으니까.

그가 서술하는 천국의 이미지는, 사실 마치 우리들이 알고있는 천국과 비슷하다. 결코 근심걱정이 없으며 마음이 평화롭고 모든 것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다.(내 기억에 맛있는 음식은 안 나왔던 것 같다) 

작가는 자신이 천국에서 겪은 내용을 세속적인 글로 표현하는데 무척이나 한계가 있다고 했는데, 그가 이과적인 성향을 타고나서 그런지 아니면 천국의 이미지를 감히 표현할 수 없는 건지 잘 와닿진 않는다.

내가 보기엔 천국이란 아마 깨지 않는 행복한 꿈을 떠올리면 될 것 같다. 작가가 겪은 게 한낱 꿈이라는 게 아니고 천국에 있는 기분과 꿈꿀 때의 기분이 비슷할 거란 말이다. 꿈 속에선 아무리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원래 그랬다는 듯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지며, 좋은 꿈을 꿀 때의 행복은 정말 실제에서 얻게되는 행복감을 넘는다. 하지만 꿈을 깨면 오히려 그 행복감이 무력감으로 바뀌며 비참해지기까지하지 않는가. 천국에 있다는 건 그런 느낌이되, 끝나지 않는 꿈이라는 전제조건이 달려있는 것 같다. 물론 천국에 있을 땐 꿈과는 다르게 그 무엇도 세속적이거나 금전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겠지만. 

누구나 죽음을 가까이 두고 있지만 막상 진지한 고찰을 하지 않는다. 두렵기 때문이다, 죽음 자체가. 작가는 자신의 말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며 나 역시 읽으면서 그가 과장하려고 한다거나 부풀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가 겪은 일들이 실제로 천국에 대한 것이라면, 조금이나마 두려움에 대한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