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이라는 게 봇물처럼 유행을 탄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은 아마 그 선두주자에, 마이너한 장르로서 있었는지도 모른다.

크리스티의 소설은 한 탐정과 한 할머니가 유명하나(사실 이름이 기억이 안남), 내가 본 가장 충격의 소설은 '나'가 범인인 것이었다. 지금이야 알고보니 화자가 범인인 소설이 많을 지는 모르나 그때는 내가 본 최초의 방식이었고 그게 정말 신선하고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비오는 날 누워서 추리소설 읽는 것만큼의 행복은 아직 못 찾은 것 같다. 비가오면 찌뿌둥둥해지는 몸뚱이를 가누질 못하는데, 이때 가장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결말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읽어가면서 내가 기억을 못할 뿐 과거에 한 번쯤 읽어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행동을 세세하게 살펴봤는데, 그러는 와중에 "이 소설이 만약 끝부분을 내지 않았다면 과연 독자들이 추리할 수 있을 정도로 증거가 많은가?"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추리 소설은 무엇보다 독자와 작가의 싸움이 두드러진댔다. 작은 실마리로도 여기저기 추측해대는 독자를 다루기 위해 적절한 정보만을 공개하고, 그리고 그 시선을 책의 마무리 부분까지 끌고갈 작가의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여기저기서 보이는 여러 증거들은 있었으나 끝부분에서 포와로 탐정이 술술술술 정답을 내기 때문에 잘 연관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 탓으로 돌리고 싶은 것이 아니라(애거서 크리스티는 감히 함부로 흠집내고 싶지 않은 작가다) 그냥 추리 소설의 전문가에게 묻고 싶은 거다. 비약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 요즘 뜬금없는 비약이 있는 추리 소설은 너무도 많으니까. 어떤 책에선 섬에서 살인이 자꾸 일어나는데, 요트나 보트같은 것을 아무리 찾아도 없는 걸 봐서 내부의 소행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알고보니 외부인이 자꾸 헤엄쳐서 죽이러 오는 거였다. 그때는 나름 신선한 반전이라고 생각해서 아 그렇구나 하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웃기다. 어쨌든 그런 비약이, 내가 최고봉이라고 칭할만한 크리스티 여사의 책에도 있는 걸까 궁금하다.

이제 장마도 다가오니까, 도서관에서 크리스티 소설을 많이 쟁여놔야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비오는 날의 즐거움을 주신 애거서 크리스티가 존경스럽고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

충격과 공포의 결말이다. 인터넷 검색해보니 이런 결말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구나 싶었다. 하지만 내 입장으론 슬픈 결말은 정말로 싫다. 결말 자체가 뜬금없다거나 말도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좀 더 행복하게 그려줬으면 좋았을텐데.

캣니스의 도발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수동적인 모습에 도대체 어떻게 끝나나 싶어 책장을 자꾸 빠르게 넘기게 되었다. 캣니스는 주동자가 아닌 이미 형성돼 있던 반란군의 얼굴마담으로서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며, 두 남자 사이에서도 갈팡질팡한다. 이건 부럽다.

어쨌든 몇 장이 지나가 있으면 누가 죽고, 또 몇 분 지나면 누가 죽고, 이름도 모르거나 알았더라도 존재없었던 캐릭터는 가차없고, 또 작가와 사람들이 나름 아꼈을 캐릭터도 많이 죽는다. 개인적으로 피닉과 프림의 죽음은 화가 날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었고, 일단 죽은 지도 몰랐다가 나중에 언급하기에 "뭐야, 죽었다고?"하면서 되돌아왔어야 했다. 이제 행복을 찾은 것 같은 피닉의 갑작스러운 희생은 이야기에 큰 전개를 했다기보단 공허한 여운감으로 결말에 대한 실망을 부추기는 데 작용했던 것 같다. 모두 공감하지는 못할 것 같지만 다수는 공감할 것 같은 내 의견은, 피닉은 죽이지 말았어야 했던 거다.

끝부분에 가서 캣니스의 정신적 혼란과 나약한 모습은 극에 달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 게, 열 몇 살 짜리 애가 반란군의 맨 앞에 서서 강인하게 다 쓸어버리는 모습은 허구성이 너무 짙고, 뻔한 전개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나타나지 않는 일에 대한 해소를 하고자 보는 것이 소설인데, 조금 뻔하더라도 그런 쪽으로 몰고 나가는 게 더 기뻤을 것 같다. 소설가는 참 어려울 것 같다. 결말을 참신하게 하면 마음에 안 들어하는 사람들이 많고, 해피엔딩이면 진부하다고 싫어하고. 해리포터는 결말이 무조건 볼드모트가 죽고 평화가 찾아오는 해피엔딩이 전제되어 있었지만, 모킹제이인 경우 작가가 정말로 많이 고심했을 것이다. 나라면 어떻게 마무리 지었을까. 이미 반란군을 개입할 생각을 해낼 역량도 되지 않았으니 결말은 더더욱 상상도 안된다.

'보쿠라노'라는 애니메이션에서 무려 열 네명 정도의 아이가 하루에 하나씩 죽는데, 그 트라우마가 꽤 오래갔다. 삶은 무엇이고 나는 왜 사는지에 관해 우울증에 빠져 매일 이 애니메이션을 떠올렸던 거다. 인생에 있어 불필요한 건 아니지만 약간 생활을 처지게 하는 면은 분명 있었는데, 모킹제이가 비슷한 역할을 했다. 하다못해 마지막이라도 캣니스가 행복한 모습을 보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마지막 부분, "너는 나를 사랑해. 진짜야, 가짜야?" 이 부분에선 단시 빨리 끝내버리는 것이 아닌 피타와 캣니스의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를 추측할 수 있어 먹먹하기도 했다.

수잔 콜린스는 작가로서의 역량은 매우 훌륭한 것 같다. 보는 내내 다음 장면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게 했으며, 도서관에서 누가 빌려갈세라 씻지도 않고 뛰어가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다음 소설에서는 좀 더 행복한 이야기로 만나길 기대해본다. 이런 작가들은 계속 글을 써내릴 의무가 있다. 그게 인류의 정신을 풍족하고 행복하게 하니까.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이 많이 느껴진다.

어차피 한글로 번역한 글이라도, 나라마다 스타일이라는 것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영국, 가장 유명한 해리포터만 보더라도 상황이 여유롭게 진행되는 문체고, 독자를 긴박하게 하기보단 편안하고 호기심많게 만드는 반면, 미국 소설은 대부분 긴박하고 정신없고 흡인력이 뛰어나다. 아마 미국이라는 국가는 청동기 시대부터 꾸준히 쌓아온 산물이 아닌, 인권과 경제력, 기본 생활권 등 인간의 조건을 다 갖춘 이들이 급하게 세운 나라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문화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다는 게 또 대단하다.

헝거게임도 하루만에 다 봤는데, 캣칭파이어도 불과 이틀도 안 돼서 다 본 것 같다. 다음날 바로 마지막 편인 모킹제이를 봤는데, 결말에 비하면 캣칭 파이어는 아직까지 재밌고 설렌다.

캣니스가 다시 헝거게임에 참여하는 부분에서는 개인에 대한 국가의 횡포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스노우 대통령이 캣니스를 찾아와 "키스하는 거 봤다네."라고 말할 땐 한 나라의 수장이 저렇게 소심한 걸로 늘어져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횡포가 이상하다고 느껴진 건 어린 아이를 바치는 헝거게임 때도 마찬가진데, 사실 생각해보면 로마시대 때 인기 스포츠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죽고 죽이는 것. 결코 오지 않았거나 오지 않을 공상을 이야기 한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에 뿌리박고 태어난 나는 이 공감되지 않는 사건에 이질감을 느끼고 보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여러 인물이 다수로 등장한다. 그리고 많이 죽는다. 나중에 가서도 언급하겠지만 이 작가의 단점이라고 하나, 아니면 아쉬운 점은 등장인물을 매우 매력적으로 잘 그려놓고, 나중에 너무도 쉽게 죽여버린다는 거다. 무조건적인 해피엔딩과 악당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죽지 않는 그런 결말을 원하는 나에겐 한 며칠 동안 트라우마가 될만한 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캣니스가 동맹이 생기고 추상적이었던 반역이라는 실체가 까뒤집어질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모킹제이에서.

 

아, 그리고 매일 뭔가 비판을 해온 특성상 일단 꼬투리부터 잡은 것 같은데, 횡포에 대한 의구심 빼고는 손에서 떼질 못할 정도로 읽기가 재밌고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가 다소 우울한 이 이야길 쓰며 얼마나 우울했을지 새삼 느껴지기도 하고, 닮고 싶은 부분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