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점을 주는 건 조금 가혹하긴 한 것 같지만 그래도 2점.

왜냐면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즈의 마법사의 세계관을 그대로 따와서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그 안의 정치적인 얘기가 큰 틀이 돼서 전개되는데 어느쪽에도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글 속에 작가의 정치적 견해가 들어가 있는 것도 조금 불편했고(이해도 잘 안됐을 뿐더러), 분명히 불륜인 것 같은데 아름답게 포장되는 모습이 싫었고, 초록색 여자아이에 대한 따돌림을 주제로 하면서 그 아이가 정작 따돌려지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글쎄, 내 견해는 주인공은 따돌려지는 게 아니라 독선적이고 당당하게 혼자 사는 거다. 

기대를 많이 하고 빌린 책인데, 작가가 장르에 비해 너무 어렵게 쓴 것 같다. 그렇다고 심오하고 중립적인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자기 자신의 식견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서. 웬만하면 2권을 빌려보겠다고 마음을 먹는 편인데 이번 책은 그냥 반납하고 말았다.

물론 이 스타일의 독자들도 있을 거다. 사실 우리가 모두 좋아하는 해리포터는 지나치게 대중적이고 권선징악, 우정의 소중함, 사랑의 아름다움 등 보편적인 가치를 토대로 한다면 이 책은 유니크하고 색깔 있는 구성이다. 하지만 아직 세상을 너무 좁게 살고 있는 나에겐 이 책의 좁은 범위가 힘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오즈의 마법사 책 자체는 분위기가 이렇게 무겁지가 않았는데.

너무 독설만 쓴 건가. 맨날 말할 때 마다 방패삼듯이 쓰는 말인데, 개인적인 견해니까 그냥 한 번 경험해보길 권한다.

왜 담배나 술은 되고, 대마초나 필로폰 같은 마약은 국가에서 규제하냐고 쓸데없이 불평한 적이 있다.

어디선가 들은 얘기인데 마약으로 얻을 수 있는 기쁨은 제정신에서 똥줄타면서 노력해서 성공했을 때보다 몇 배(몇 십배?)는 된다고 했다. 이러니 호기심이 가지 않겠는가. 그런데 원천봉쇄돼있으니 왠지 자유의지를 막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허용돼있으면 안할텐데, 담배처럼 말이다.

웬만한 사람이면 접근조차 하기 힘든 마약이 약간의 환상을 불어일으키는 것처럼, 항상 그에 대한 궁금증은 존재하고 있었다.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손에 집은 이 책은 궁금증을 아주 현실적으로 잘 풀어주는 것 같다. 내가 앞으로 마약에 미칠듯한 관심을 가졌을지 아닐지는 알수 없지만, 이 책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책은 우연처럼 만나지만 돌이켜보면 언젠간 읽을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기도하다.

스토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하버드 대학에 들어갔다면서 어떻게 들어간건지, 거기서의 생활이 어땠는지는 언급도 되지 않고 전혀 일말의 증거도 없이 다짜고짜 사실혼의 아내가 있었다는 설정이 튀어나온다. 허나 이런 소소한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처음들어보거나 모호했던 마약 종류가 다 튀어나온다는 거다.

지금의 난 약간 컴퓨터 중독에 빠져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끝까지 읽는데 정신 싸움을 했어야 했다. 책 읽다가 도중에 컴퓨터를 하러 가겠다는 욕망에 한 스무번은 시달린 것 같다. 하지만 꾹 참고 견뎠다. 끝까지 읽게 할 정도로 책이 매력적이었다는 게 다행이지만, 그 과정에서 전혀 정신적으로 고통스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자기 발전을 하고 싶어하는 보통의 사람으로서 당장의 쾌락을 위한 컴퓨터와 누가 봐도 옳고 건전한 길인 독서에서 독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읽자마자 다시 컴퓨터를 켰지만.

마약도 이와 비슷한 게 아닐까 생각을 했다. 요컨대 조삼모사. 마약에 중독되면 오직 관심사가 마약밖에 없어지고,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충동은 사그라진다. 앞에선 큰 쾌락을 주지만 뒤에 가선 금단현상에 전전긍긍해야하는 고통을 받는다. 그 금단현상이 얼마나 끔찍한 지 작가는 한 다섯번은 금단현상의 고통에 대해 써놓았다.

이에 비해 목표를 이루겠다는 노력은 그곳으로 갈 때까지 매우 많은 고통을 수반하고, 결국엔 단 열매를 준다. 마약이 열매가 앞선다고 치면, 성공은 나무가 뿌리부터 자라듯 열매를 맨 나중에 맺는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인생사에는 기본적으로 일정한 양의 고통이 구비되어 있고, 이를 먼저 겪느냐 나중으로 미루느냐를 선택하는 게 삶이 아닐까 싶다.(쓰고 보니 마약과 성공이 비교할만한 것인지 모르겠다) 뭐 물론 마약과 성공 둘다 움켜쥐는 사람도 있을 거고 마약도 성공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겠지. 어느쪽이냐고 묻는다면 마약을 안하고 성공하고 싶다. 그리고 컴퓨터도 끊고 싶다.

인간의 의지보다 강한 물질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게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여러모로 마약에 대한 낭설을 정리하는 계기도 됐다. 무조건 중독되는 것만은 아니며, 오히려 담배보다 약한 마약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마약이 마약으로서의 모습을 갖추는 데 상당한 집념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보고 놀랐다.

희한하게도 마약이 주는 즐거움, 쾌감에 대한 묘사는 거의 나와있지 않다. 그저 삶의 방식이라고 했다. 밥을 안 먹으면 죽듯, 마약을 안하면 살 수가 없기에 마약을 하는 거라고 했다. 단지 쾌감을 위해서라고 여겼는데, 죽을 것 같아서 하는 거라니. 세상엔 정말 내가 알수도 느낄수도 없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신기함을 느낀다.

자서전 비슷한 자신의 작품 소개집.

상상력에 놀라고, 미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에 놀라고, 사람의 인생이 어디로 튈 지 모른다는 데 놀랐다.

앤서니 브라운은 매우 유명하지만, 오히려 나는 그의 책을 읽은 적이 없다. 사실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가 그의 책인 줄 알고 흥미가 돋아 이 책을 빌린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아쉬움을 느꼈다. 어른이 되기 전에 그의 책을 읽었더라면 더욱 많은 생각과 이해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어른이 된 나는 그가 제공하는 부가 설명만을 들을 뿐이었다. 상상력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주어진 사실을 그냥 이해해버린다. 어떻게 보면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더 순종적이고, 때론 멍청하다.

나는 초등교사가 될 공부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특성에 따른 교수방법을 배우고 있으려면 의구심이 드는 때가 되게 많았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앎의 즐거움을 알 수 있도록 구체적인 조작을 많이 시키라고 할 때면, 나는 어릴 때 기억이 나는 것이다. 교사가 나에게 무리한 것을 시켜서 오히려 흥미를 잃었던 때를. 오직 나만이 태어났을 때부터 쓸데없이 비판적이어서 선생님 말씀은 죽어도 듣지 않고 이걸 대체 왜하는지 툴툴대며 살아왔을 수도 있으나, 이런 것을 당연하다고 하도 주입당하다 보니까 이제는 정말로 그래야만 하는 걸로 보인다.

가끔 인터넷에 보이는 논쟁 중에 정답이 있지 않는가? 조금 극단적인 예지만 "게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정말 나쁘고, 시대에 뒤떨어지고, 짜증나는 거다."라는 정답. 이곳의 익명성을 빌어 말해보는 건데, 동성애자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건 당연한 거고 그들의 취향에 대해 억지로 바꿔야할 의무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들이 이해가 안 되는 사람도 당연히 있을 거다. 나는 냉면에 겨자를 안 뿌려먹으니 뿌려먹는 사람이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 탓할 생각도 왜 겨자를 먹냐며 겨자통을 빼앗을 생각도 없다. 그저 그런 거다. 하지만 요즘들어 이런 사람들이 너무 저격당하는 것 같아서 솔직히 불편한 마음도 있었다. 물론 동성애자를 혐오하면서 욕을 지껄인다든지 하는 상식 밖의 인간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만, 그저 이해만 못하고 있을 사람들의 생각을 비난해가며 급하게 뜯어고칠 이유도 없는 것같다.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제발 비난이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은 동성애가 나쁘지 않다는 것도 잘 아니까 바뀐다면 서서히 바뀌겠지.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거 같다. 사회의 흐름에 이끌려서 주어지는 정보와 그 때의 여론에 휩쓸려 그게 내 의견인 줄 아는 것. 내가 지금 그 상태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술작품을 읽는 삼십초 동안 캡션만 바라본다"는 앤서니의 말에 공감하고 또 뜨끔한 지금 조금은 슬프다.

좀 많이 돌아온 느낌은 나지만, 앤서니 브라운의 책을 읽는 어린이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누구의 눈에는 그게 무지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생명으로서의 본능을 더 많이 가지고 있고, 이에 따라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걸지도. 십 몇년 전에 아기 용이 나오는 게임을 하는데, 어떤 마법사가 빨간 물체를 들고 있었다. 나는 당연한 듯 그것을 딸기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게임 영상을 다시 찾아본 결과 알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용->용의 알 이라는 너무도 논리적인 설명에 굉장한 실망감을 느꼈다. 가끔은 그런 상상력을 가지고 싶은데, 지금의 나는 형편없게도 언제나 이성적이고 싶어하며, 틀에 가두고 싶어한다.

이 책을 보며 상상력 연습을 많이 해보기로 했다. 요즘 배우고 있는 scamper기법이 적절할 것 같다. 가끔 자기 전에나 시간이 남아돌 때 한 사물을 내 눈으로 보고 바꿔가며 다시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고 싶다.

다섯 개의 독서감상문을 내리 쓰는 거라서 글이 되게 두서가 없다. 저기 동성애자 부분이 굉장히 논란이 되고 비난 받을 거 같아 초조하긴 하지만 한 번쯤은 해보고 싶던 말이기도 하니, 더 이상 나에 대한 변호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특히 한 아이가 윌리라는 책의 등장인물에게 보냈다는 편지의 이 부분이 마음에 쏙 들었다. "넌 몸집이 크거나 강할 필요가 없어. 어디로 가는지 앞만 잘 보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