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답을 바라고 보면 안된다.

카프카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왜 아버지는 카프카에게 그런 저주섞인 예언을 했는지, 사에키씨는 정말로 카프카의 어머니인지, 그렇다면 왜 떠났는지, 나카타는 왜 그림자가 다른 사람의 반만큼 희미한지, 거머리가 느닷없이 쏟아지는 이유는 뭔지, 대체 나카타와 카프카는 한 사람인지. 이 모든 걸 어떤 하나의 결론을 바라고 보면 안 된다. 미완결된 문제의 개수보다 해결된 문제의 개수를 헤아리는 게 빠르다. 어쩌면 해결된 문제의 수를 세기 위한 손가락은 단 하나도 접히지 않을 지 모른다.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 잘 표현한 작품인 것 같다. 이 세상에 온전하게 알 수 잇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삶에 정답이라고 하는 것이 없을 뿐더러, 확신이라는 단어는 과학의 세계에서도 추상적인 것일 뿐이다. 나는 지하철에서 마주 앉거나 어깨를 맞닿게 앉은 모든 이들이 결코 나와 관계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벽에 기대서 낄낄대는 여고생은 어쩌면 태아인 나를 받아들였던 간호사의 딸일 수도 있고, 엄지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의 화면을 훑고 있는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는 마른 몸매가 나의 아빠와 닮았다. 그리고 내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습과 똑같다. 전혀 몰랐던 친척일 수도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지만, 아직 반증하지 못했으니 유효하다. 게다가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 백 명을 잡고 "우리 다리가 걷는 근육의 메카니즘을 알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백 명 다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거나 확신하지 못한다. 거의 확신한다는 쪽이 맞다고 볼 것이다. 앞에서 말했던 것과 같이 확신이라는 건 과학에서도 믿지 못하는 단어이다. 그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먹으면 배출하는 것을 알고, 더우면 땀을 흘리는 것을 알고, 눈이 나쁘면 안경을 맞추러 안과나 안경점에 가고 일을 하면 피곤하여 잠을 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사람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진위형으로 OX로 답할 수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객관식 시험 문제는 우리의 삶에서 보면 색다르기도 한 기회이다. 좀처럼 겪을 수 없는 '정답'을 제시해주니까.

소년은 성장하고, 호시노 청년도 성장한다. 사에키는 소년을 만남으로써 완전하게 한 세계에 정착하고, 나카타는 죽어버린다. 솔직히 이 소설에서는 카프카와 누구를 대입해도 그럭저럭 이야기가 맞아떨어진다. 완전히 읽는 이의 마음에 맡겨버린 소설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네가 찾고 싶은 것은 난해한 이 소설에서 알아서 찾아라. 그게 무라카미의 철학인건가. 어찌됐든 상관없는 해석을 요하는, 추리소설과 비슷한(그러나 결코 진상은 알 수 없는)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은 고동치지 않았다. 오히려 깊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분위기인 우물 안에서처럼,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가 반사되는 것인지 연신 웅웅대는 그 안에서 어떠한 감정의 변화도 없이 나는 읽어나갔다. 그리고 이 소설에만큼은 평가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평가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대중적이고도 한편으로는 대중을 넘는다. 워낙 열린 결말인데도 깜깜한 상태서 읽어서 그런지 되레 하나의 답을 본 느낌이다. 책의 표지를 덮듯 우물의 뚜껑을 닫았다.

 

안타깝게 서평에서 책의 줄거리가 다 나와있어서 결말을 알아버린 듯하다. 하지만 겨우 스포 조금 당했다고 해서 이 책의 매력을 꺾을 수는 없겠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상실의 시대>로 읽어봤다. 찬사에 찬사를 모는 서평과 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 소설 목록에 있기에 굉장한 경쟁률을 뚫고 도서관에서 빌렸다.

근데 그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뭐라할지, 인간의 어두운 내면에 대해서 너무 극단적으로 쪼아붙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울은 한 없이 빠질 수록 우울하다. 이 주제로 남녀간의 사랑과 죽음을 표현한 것이 깊이는 있었으나 싱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찬사했을 땐 고개를 조금 갸우뚱하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은 흡인력과 작품성을 고루 갖추어 감탄을 자아냈다. 이래서 작가구나, 싶기도 하고 하늘이 내린 작가구나, 싶기도 했다. 내가 평생 써도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자괴감과 존경심이 저절로 몰려왔다. 

구성이 몹시 특이하고 소재도 몹시 특이하다. 사실 진짜 주인공 카프카의 시점보다는 원인불명의 의식불명으로 바보가 돼버린 나카타 씨의 시선이 훨씬 순수하고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고양이와 얘기하는 재주는 사실 판타지 문학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소재이지만 결코 유치하지 않고 감미롭다고 할 수 있겠다.

완전히 달라보이는 두 이야기에서 접점이 보이고, 나중에 이 둘이 어떻게 결합돼어갈지 궁금하기만 하다. 내일 빌리러 갈 건데, 내일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다. 소설을 쓰라는 계시 비슷한 것을 받았다는데, 부럽다. 나는 나 스스로 정하고 벌써부터 한계를 느끼는데 타고난 사람들은 뭘 해도 타고나는구나. 그치만 내 삶에도 방식이 있으니 나는 곧잘 만족한다.

어쨌든 2권을 빨리 읽고 싶다. 매번 노벨상에 거론된다는 이유를 알만큼 삶에 대한 견고한 고뇌와 견해, 지식이 엿보인다.

초보자를 위한 책이다. 그림을 그리는데 대한 직접적인 기술을 설명해준다기보다는 작가 경험을 토대로 자잘한 팁들을 많이 준다. 나는 아직 그림그리는 사람 중에서도 초초초초보에 속하지만, 작가의 생각과 내 생각이 어느정도로 똑같은 점도 있는 것 같아 읽다말고 우쭐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초보땐 간단하게 그리다가 중수땐 화려하고 색감있고 기교넘치게 그리다가, 말년에 가서는 다시 소박해지고 간단해진다는 게 그림 발전의 단계라는 것. 그래서 아이들은 전시회에 가면 가끔 나도 그리겠다. 라는 말을 한다. 사실 그때 작가가 겪었을 고뇌와 고생이 떠올라 배알이 뒤틀리곤 하지만 그 아이들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일주일에 오백장씩 스케치하라는 건 상당히 좋은 팁같다. 세상에 시간이 어떻게 그리 나냐고 묻겠지만, 하루에 칠십장이면 뭐, 정말 맘만 먹는다면 그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일년만 하면 실력이 죽죽 늘지 않을까? 사실 취직을 하면 일년까지 그림에 몰두할 여유는 없고, 시험 끝나고 꼭 한 두달 간 폐인처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다니며 스케치를 하는 것도 누구나의 로망이지만 정작 실현하는 사람은 얼마없다. 빠르게 그리는 연습이 안 돼있어서이다. 나도 영화를 틀어놓고 멈춤을 시키며 그리면 오분 내로 그리지만, 텔레비전 방송을 틀어놓고 그리는 건 너무 빨라서 아직까진 잡지 못한다.

실패하지 않으면 안정적인 중수라고 했다. 나는 거의 실패하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초보중에서도 생초보다. 하지만 계속 그려나가야겠다. 사실 그림을 그리는 건 재밌으나, 이걸 통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잘 모른다. 만화를 그리고 싶은 건지, 정밀 묘사를 하고 싶은 건지, 풍경화를 그리고 싶은 건지, 사실주읜지 초현실주읜지 이것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앞으로 내가 그림을 그려가며 정하는 거겠지. 아직 무엇인지 모른다는 게 두근두근하다. 이십 년 뒤 내 그림은 어떨까. 그때는 안정적인 중수가 돼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