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마지막 7권이 나왔을 땐,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사실 중학생 2학년짜리는 5권 불사조 기사단부터 이해하지 못했다. 마법사들의 정부인 마법부의 모순을, 그러니까 정치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받아들이기엔 너무 무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집의 해리포터 시리즈는 4권까지는 너덜너덜하고 5권부터는 비교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4권까지의 내용은 꿰뚫고 있었으나 5권부터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그냥 사람들이 마구죽는다는 것, 스네이프의 비밀, 볼드모트의 최후 정도만 알 뿐이었다.
하지만 24살 하고 7개월 먹은 나는 10년동안 성장한 것이 단지 머리통의 크기만은 아닌 것을 증명하듯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고, 바로 어제 모든 시리즈를 다 탐독했다. 그리고 오늘 하루종일 환상에 젖어서 공부를 못했다. 중고 서점에 가서 이 책을 집어온 것도 해리포터의 여운을 조금 더 느끼고 싶었고, 마법사의 세계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제부터 자꾸만 울고 싶은 기분을 참아야 했다. 첫째, 론 위즐리가 너무 멋있어보인다는 것. 둘째, 결말이 너무도 완벽하고 감동적이라는 것, 셋째, 나는 1권 마법사의 돌이 나오는 10살 꼬마에서 무려 14살이나 더 먹었기 때문에 호그와트가 정말로 나를 데려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린 까닭이었다. 더 이상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부엉이가 날아오기를 바랄 수가 없는 사실이 나를 너무 슬프게 했다. 마법부에 대해 이해하는 순간부터 나는 마법세계에 들어갈 수 없는 몸이 된거다.
사실 이 책 자체는 여느 동화집과 다를 게 없다. 딱히 교훈에 대한 감흥은 안온단 말이다. 이건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게 아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단 한번도 백설공주나, 흥부와 놀부같은(왜 떠올리려니까 옛날동화가 뭐 있는지 생각이 안날까?) 권선징악 동화를 보면서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없다. 흥부의 답답스러움과 백설공주의 숏 컷 머리에 약간 짜증을 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하니까 어린 게 감수성이 지금보다 더 없었다. 이 책도 그렇다. 해리포터와 깊숙이 연관된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별개의 동화책을 펼친 기분이다. 하지만 조앤 롤링은 이미 이런 반응을 알고 있었다는 듯, 덤블도어의 해석을 달아둘 뿐만 아니라, 책 앞에 헤르미온느가 룬 문자로 된 이야기를 번역했다고까지 적어놓았다. 독자들의 마음을 끄는 떡밥을 마련한 거다. 하지만 여기서 그녀의 얍삽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상냥함이 느껴진다. 조앤 롤링 작가는 해리포터를 그리워하는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너무 좋다.
나는 작가가 이 소설이 허구라고 밝히는, 예를 들어 해리의 생일과 자신의 생일이 일치한다거나 소설의 플롯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모조리 고친다거나 하는 얘기들을 할 때마다 헉한다. 그녀가 그려낸 마법 세계는 너무도 정교하기 때문에 나는(모두는) 이를 어느순간부터 진짜로 믿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을 어른이라는 이유로 굳이 깨뜨리고 싶지 않다.
엄마가 매일 물어본다. 도대체 해리포터가 뭔데 전세계 4억명이 넘는 팬층을 가지고 있냐고. 매트릭스,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영화도 허구 투성인데, 왜 그런 영화는 관심이 없냐고. 거기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보니 답은 이것인 것 같다. 매트릭스같은, 마이너리티 리포트같은 세계가 정말 있으면 삶이 얼마나 피곤하겠냐. 하지만 마법세계는 제발 정말로 있었으면 좋겠고, 내가 속하고 싶은 세계란 말이다. 조앤 롤링은 그렇게 4억명을 꿈꾸게 만들었다. 글을 쓰면서 그녀 자신도 꿈을 꾼 것 같다. 프레드가 죽을 때 작가도 많이 울었다고 했다. 나도 언젠간 내 소설에 감정이입하며 눈물 흘릴 수 있을까?
현실로 돌아오기까지 며칠은 걸릴거 같다. 나는 이걸 올리고 다시 해리포터 책을 집으러 갈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