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 홀리데이의 입문 책으로는 손색이 없다. 굳이 별을 깎으려 해도 깎을만한 흠이 없기 때문에 다섯개를 주었다.

여태껏 나는 뭐하고 사나 뭐 먹고 사나 시험 공부는 왜하지 이런 단조로운 고민들만 번갈아 하면서 살았다. 휴학은 후폭풍이 두려워서 생각지도 않았고, 그냥 물 흐르듯 펼쳐 있는 길을 걸으면 되는데도 세상에 나를 정형화 시키면 되는 것 같아 정신적 방황만 일 년을 했다.

그러던 와중에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겠다는 어떤 사람의 고민글이 있었고, 제목을 훑자마자 머리에 떠오른 건 "왜 이 생각을 안했지?" 였다. 충분히 자격도 되고 할 수 있는 데도 남의 일인양 미뤄왔던 것이다.

그래서 호기심 삼아 한 번 봤다. 엄마가 책을 발견하고 절대로 혼자 보낼 수 없다고 하는 통에 약간의 갈등을 겪었지만, 책은 정말로 매력적이었다. 불과 며칠 전만해도 캐나다에 대해 무지했던 나에게 지금 캐나다는 꼭 가고 싶은 나라가 됐으니 말이다.  

처음 들었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작가는 상당히 야무지다. 말로만 야무진 게 아니고 책 곳곳에서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가 절실히 느껴진다. 게으르고 융통성만 넘치는 내가 그곳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는 책의 작가에 대한 상대적인 열등감을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면 볼 수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의 작가는 뭐 처음부터 혼자 밥해 먹으며 태어났겠을까. 처음부터 영어를 잘했을까. 다 그곳에 가서 절실함과 책임감이 그녀의 야무짐을 더 돋보이게 해준 것일테다. 아직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집에서 자는 나도 내가 모르는 책임감이 있을 지도 모른다. 사람이니 있을 게 틀림없다. 그리고 영어는 정말 잘하고 싶다. 이에 캐나다 만큼 좋은 곳이 있을까. 작가가 찍은 사진을 보는 내내 군침을 다셨다.

결국 이 책으로 말미암아 가겠다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그건 일단 내 기반이 쌓인 뒤의 얘기일 거다. 성급하게 도피식으로 가지 않고, 마련할 건 다 마련해놓고 가겠다. 아마 삼년쯤 뒤의 얘기일 건데, 무언가 목적이 생겼다는 것이 나름 기쁘다. 그때되면 28살 노처녀겠지만 뭐 어때. 엄마는 스무살이나 스물 네 살이나 스물 여덟 살이나 다 똑같아 보인댔다. 

교양 서적으로 읽기에 괜찮은 과학책이다. 이 책 시리즈가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졌지만 정작 대학 졸업한 문과생은 간신히 이해한다는 게 조금 슬프지만.

원리보다는 이해 위주로, 이런 공식이 있다 또는 이런 것을 발견했다 정도로 흥미를 유발한다. 나는 과학쪽 머리가 아니라서 조금 억지로 읽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과학 인재들은 이 책을 보면서 좀 더 자세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지도 모르겠다.

흠이 있다면 간혹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거다. 1권 아인슈타인을 봤을 때도 그랬는데, 특히 그림과 글이 매치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이는 아마 그림 그리는 사람과 글 쓰는 사람이 달랐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성인인 나는 이것을 감지하고 고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오류를 오류라고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할 가능성이 있다.

사실 내용보단 파인만의 시원시원한 웃음이 매력적이다. 사실 책 자체도 짧아서 오백자를 채우기도 힘들다.

어쨌든 내 머릿속이 그나마 조금 더 찬 듯한 착각이 들어서 다행이다. 배운다는 건 지식 자체가 많아지는 게 아니라 생각이 많아지는 걸 뜻하는 것 같다. 조금씩 조금씩 읽어서 이 시리즈를 다 읽으면 나도 어느 사람 못지 않은 과학적 지식을 가질 수 있을까? 문과 대학을 나온 나는 대체 나에게 있어 전문적인 분야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 점은 이과생들이 너무 부럽다. 어쨌든 계속 읽어봐야지. 쓸 내용 없어서 마구잡이로 늘여쓴 티가 너무 난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의 매력은 사소한 복선이 많다는 거다. 가령 '마약에 엄한 국가가 있대요'라던지 '네가 생각하는 건 남도 생각해'같은 흘려서 지나가는 대화도 나중에 다 소용이 있다. 비록 소설을 두 번째 읽었을 땐 그 떡밥의 의도가 다 보인다는 게 문제지만, 처음 보는 시점에서는 그 담담하고 다소 건성인 것 같기도 한 치밀함이 좋다.

개인적으로 유전자를 바꿀 수 없다는 건 정말 싫은 말 중 하나다. 유전자에 쓰여있어 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진리인 줄 안다. 유전자가 제대로라서 행복한 사람은 머리가 엄청 좋고 얼굴이 빼어난 사람일 뿐일텐데, 자신이 가진 약점을 체념하는 식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상투적이고 주술적인 언어가 혐오스러운 거다. 개인적으로 선대의 유전자 중에 절대로 닮아선 안 될, 또 닮지도 않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작가가 그것을 완벽하진 않더라도, 희망적으로나마 뒤집어 버린 건 고마운 일이다.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 배다른 형제를 구원하는 아버지의 말은, 독자도 우는데 왜 형제는 울지 않는지 신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유전자 콤플렉스를 가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읽지 않으면 소용이 없지만.

도대체 중력삐에로라는 제목이 어떻게 나온건지 궁금했다. 어떤 이야기를 구상하면 저렇게 처음 들어보는 단어로 소설을 이끌어가나. 하지만 이사카의 관찰력과 지식과 능력은 나의 상상에서 한층 너머 있는 것 같고 멋지게 연관시켜냈다. 거창하지 않고 사소한 면에서 일상적인 얘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그의 재주는 그를 일본에서 최고로 사랑받는 작가로 격상시킬 만하다(하루키 때문에 아직은 최고가 아닌가?)

이사카의 소설은 거의 다 읽어봤다. 소망은, 예전에 한 번 읽고 어디로 갔는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던 <칠드런>을 다시 읽어보는 거다. 고2때는 꽤 인상적이었는데, 그 여운을 지금도 느낄 수 있으려나. 

나는 원하면 뭐든 할 수 있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 <칠드런>도 조만간 내 손에 들어올 걸 안다. 이사카가 좀 더 좋은 소설을 쓸거라는 것도 알고, 내가 그를 더욱 좋아할거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