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단에 당첨돼서 책을 공짜로 받은 거니 좀 더 성의있고 진솔하게 적도록 하겠다. 그리고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단점->장점 순으로 나열하겠다.

일단 외국인, 그것도 영어권의 외국인이 쓴 책이다. 이 말은 무슨 말일까?

우리는 영화에서, 미국 드라마에서, 영어 문체가 그대로 남아있지만 이젠 익숙해져서 우리의 어체처럼 느껴지는 종이책에서, 라디오, 광고, 지나가다 보는 가게의 명품 가게의 잡화점 간판에서 느끼는 게 있다. 미국 여자들은 엄청 자유롭고 엄청 쿨하다는 것. 우리의 머릿속에서 영어를 쓰는 외국 여자는 기나긴 권력 투쟁의 과정 속에서 한 때 잃어버렸던 여성 권위를 되찾아 남자를 휘두르고 있는 존재들이다. 또한, 아직 외국에 나가보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는 듯 일상 생활의 모든 매체는 증명하고 있다. 영화에서, 미국드라마에서...생략.

그렇기 때문에 책을 처음 받았을 때도 반신반의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우리는 아직 '시집살이'와 '여성의 육아', '여성의 승진 제한' 등이 미덕이라는 듯이, 원래 그래왔다는 듯이 남아있는 사회며 또 아직 이를 타파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중이니까. 여성 권위가 높아졌다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아직 우리나라 남성은 여자를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고 여성은 스스로를 남자한테 보호받고 싶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런고로 너무 자유로운 외국인 여자의 시점에서 그들의 입맛에 맞게 바라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일단 글쓴이는 여자를 남성보다 우위에 있어서 그들을 마음껏 휘두르고 싶어하는 존재, 자신의 입장에 대해선 하나 고찰도 없으면서 남자의 스펙과 돈만 기대하는 존재들로 묘사해놓은 것이다. 책으로 말미암아 볼땐 미국에서 남자의 지위는 어지간히 낮아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보편적인 한국 여자라면 공감하지 못할 부분도 많다. 나는 첫 장에서 그랬다. "당신이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는....남편에게 기꺼이 요리를 해 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라고 하는데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를 위해서 요리를 안하는데, 내 일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어떻게 우리 엄마 하던 것처럼 남편에게 요리를 갖다바치라고 할 수가 있을까. 하지만 이건 문화적인 차이로 봤을 땐 꽤나 합리적인 말이었다. 지금 미국 여자들의 온상은 너무나 쿨하게 개인적이고 자유롭고 이기적인 성향으로 꽁꽁 싸매여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가지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 봤을 때 아직 그들만큼 개인적이지 않고 가정에 메여있게 될 걱정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여자들은 이런 면 정도는 불편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밖에도 공감할 수 없었던 주제로는 "당신이 결혼을 못하는 이유는 가벼운 섹스 때문이다!"인데, 이건 내가 전혀 경험할 수 없는 분야라 읽는 내내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내가 별점 네 개를 주는 것은 분명히 이 안에서도 배울 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연애를 했든 결혼을 했든 아빠가 누군지 모르는 애기가 있든 마찬가지로, 가깝게는 연애에 대한 스킬과 멀게는 인생에 대한 노하우가 묻어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돈을 많이 버는 남자는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아이와 놀아줄 시간이 없다. 여덟시에 출근해서 다섯시에 퇴근하는 직원에게 천문학적인 연봉을 줄 기업은 어디에도 없다."가 있다. 맞는 말이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남편상이 있기 마련인데, 대부분 아이하고도 잘 놀아주고, 내가 해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거나 또는 맛있게 해주고, 돈도 많이 벌면 좋고 등등을 꿈꿀 것이다. 물론 그런 남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상상으로는 무얼 못하냐는 말이다(어느 토크쇼에서 말하길 그런 남자는 설령 있다 치더라도 일찍 죽는다고 하여 웃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땐 조금 연봉은 적더라도 가족을 위해줄 사람과 타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고개를 끄덕거리게 하는 부분이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자기 자신을 사랑할 것을 촉구하고 있으며, 남자의 성향과 여자의 성향을 분명히 기술해놓고 서로 다른 시점으로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남녀의 벽을 허무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내가 가장 감명깊게 보고 인생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연애와도 결혼과도 관련된 것이 아닌, 자신의 트라우마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라는 충고였다. 나는 유치원 때 돼지같이 생긴 선생에게 학대를 받은 적이 있다. 이를 지워버리지 못하고 십칠년 동안 고스란히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데, 작가 말에 따르면 이렇게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만약 내가 그때 학대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예쁨만 받고자라 제멋대로인 성품을 가지게 됐을 수도 있고, 오히려 자기 중심적이라 다른 아이를 학대하는 돼지같은 선생이 됐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내가 그 돼지한테 학대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더 미친 선생이 나를 매일 때리거나 납치했을 수도 있는지?"

이런 식으로 다른 시나리오를 구상하면 그나마 꽉 막혀있던 마음이 풀릴 수도 있다는 거다. 이것 말고도 책은 여러가지 부분에서 나를 각성시키는 역할을 했다.

고로 아무리 전형적인 한국적 여자라 하던들 읽어봐서 손해일 건 없다. 문체가 어렵지도 않아서 가볍게 읽을 수도 있지만 시간을 가볍게 버리는 것만은 아니다. 깊이 생각하며 읽고 자신에게 필요없는 부분은 불쾌해하지 않고 넘겨버린다면 이 책은 나름 독자를 더욱 당당한 여자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자가 결혼을 못하는 이유도 써주었음 좋겠다. 여자나 남자나 자기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성찰할 필요는 마찮가지니까. 

귀여워서 만점!

일단 영화 니콜라를 보고 너무 감명받아서 시름시름 떠올리다 내친김에 도서관에 달려가서 책을 빌려왔다. 시리즈가 꽤 많은 것 같은데 고작 두 권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전 권을 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영화하고는 사실 조금 다른 분위기다. 영화에서 니콜라와 친구들이 둘도 없는 친구 행색을 한다면 책에서는 오늘의 친구가 이 분 뒤엔 적이고 그렇다. 싸우는 것도 그 조그만 애들이 뺨 때리고 정강이를 걷어차고 난리가 난다. 글에서도 난리가 나지만 그림에서는 더 난리가 난다. 그래서 너무 귀엽다. 게다가 나는 타지 여행 중에 프랑스 가족을 만났는데, 형이 동생 뺨 때리는 걸 보고 조금 놀랐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까 뺨 때리는 장면이 너무 많아서 프랑스 문화가 그런가 웃긴 편견을 가질 뻔했다. 허나 사실이 아닌 듯하다. 프랑스 형제는 진심으로 싸우느라 싸대기를 날렸던 거고 이 책은 그냥 귀엽게 투닥투닥 거릴 뿐이다!

영화에서는 니콜라, 알세스트, 뤼피스, 외드, 조프루아, 아냥, 클로테르를 중심으로 이 일곱 명 이후론 어떤 아역도 대사 하나 맡지 못했는데, 책에서는 그냥 하나의 시끄러운 반이다. 각각 그 개성을 가지고 있고 필요하면 튀어나왔다가 앙앙 울다가 시끌벅적하게 웃었다가 나동그라졌다가 오합지졸들이다. 정말이지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시대가 삭막하리만큼 이런 '힐링스러운' 책들의 중요성은 앞으로도 늘어날 것 같다. 나도 인물의 갈등과 복선을 만드느라 머리털 쥐어짜기보다는 이런 소설을 한 번 끄적여봐야겠다.

전 권으로도 모자라 지금 DVD까지 주문할 판이다.

최근 꼬마 니콜라라는 영화를 보고 매우 감명받았다. 갈등없이도 이렇게 얘기가 귀엽고 발랄하고 집중력있게 흘러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친구들과, 가족들과,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매일 뒤틀리고 맞물려 살아가는 형국에 이러한 형식의 영화는 정말 큰 '치유'를 해줬다. 이른바 힐링 영화인 것이다. 비슷한 걸로는 최근에 읽었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 있다.

아마도 이 책은 혼란스럽던(세상은 언제나 혼란스러웠으나) 19세기 미국의 힐링소설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책없는 톰 소여라는 꼬마가 세상을 아주 제멋대로 살아가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적어도 괄괄한 성격 탓 때문인 표면적인 갈등을 겪지는 않는다. 인디언 조의 살인 사건은 어쩌다 마주쳐버린 비극이지 톰 소여의 성격으로 말미암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렇게 제멋대로 살아가는 방식에 미국인들과 현대의 독자들은 큰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듯하다. 카타르시스란 갈등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주로 겪게 되는 것이지만, 나같이 소설 속 갈등이 크면 읽는 중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사람들에겐 딱 적당한 수준의 소설이다. 오히려 인디언 조의 내용이 없었으면 더 만족스럽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작가가 일부러 코믹하게끔 표현한 부분이 마음에 드는 것이 너무 많아 표시해놓은 부분도 많다. 이 감상문에서는 그런 것 위주로 적도록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코믹이 사실은 어른을 화자로 내세워 아이들을 낮잡아봄으로써 아이들 수준에서의 공감대는 얻기가 조금 힘들다는 사실을 서평을 통해 알게되었다. 하긴 나도 어릴 적 갖고 있던 <톰 소여의 모험>보다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더 너덜너덜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적어도 그의 삶과 생각을 얕보는 화자의 주관이 들어가지 않았음을 처음 깨달았다. 조만간 이 책도 빌려 읽어야지.

그리고 그 시대 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나, 인디언을 일반적으로 잔인하게만 묘사해놓은 부분, 흑인에 대한 부당한 처우가 당연시되는 부분은 아쉬웠다. 하지만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부분, 그 시대 사람들은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니 내가 여기서 작가의 사상이니 그 시대의 문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비판을 늘어놓을 이유 또한 없는 것이다.

사실 독서를 하며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간다기 보다는, 이미 성인이 된 시점에서 어린 아이의 보잘것 없어보이는 생각과(하지만 그 시기의 어린이에겐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철없음을 폭소하며 보는 쪽이 더 알맞다 하겠다. 이는 아까도 말했다시피 화자가 어른이기 때문이고, 작가 자신인 탓일지도 모른다.

고전치고는 절대 딱딱하려 하지 않고, 무언가 억지로 가르침을 주지 않고, 신성함만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굉장히 좋았고, 금세 읽을 수 있었다.

 

주옥같은 구절이 너무 많아 나열식으로 서술하되 간간이 사족을 붙이겠다.

 

1. 이 정도면 톰이 걸려들어서 자기도 모르게 죄를 털어놓기를 바라면서. 단순한 성격의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녀도 스스로 음험하고 비밀스러운 계략을 찾아내는 귀신같은 재주가 있다고 믿는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2. 톰은 모범 어린이가 아니었지만 모범 어린이가 어떤 아이인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를 죽도록 미워했다.

 

3. 그 후에는 전사자를 헤아리고 포로를 교환하고 의견 불일치를 본 조건에 대해 협정을 맺었다. - 정말 전쟁이 끝난 후 이런 절차가 있는 것 같아 괜히 감명깊었던 구절이다.

 

4. 그러고 나자 메리는 지난 2년 동안 줄곧 일요일에만 입어온 톰의 옷(이 옷은 그냥 '다른 옷'이라고 불렸는데 이것으로 톰의 옷이 도합 몇 벌인지 알 수 있다.)을 꺼내왔다.

 

5. 아이들이 잠잠해지자 톰은 공부에 열중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면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읽기 시잔에 자기 순서가 되었을 때 톰은 큰 실수를 저질렀고, 지리 시간이 되자 호수는 산으로, 산은 강으로, 강은 대륙으로 바꾸는 바람에 창세기 이전의 혼돈이 다시 오고 말았다.- 작가의 재치가 정말....대단한 것 같아 표시해놨다.

 

6. 어떤 주문을 외면서 공깃돌 한 개를 묻고 2주일을 그대로 두었다가 다시 같은 주문을 외면서 그 자리를 파면 이전에 잃어버렸던 공깃돌이 아무리 멀리 흩어져 있더라도 모두 한자리에 돌아와 있는다는 미신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분명하고도 명백한 실패였다. 탄탄하던 신앙이 뿌리에서부터 흔들렸다.

 

7. 실제로 그는 뭇 시선을 한 몸에 받았고, 지나갈 때 자기를 두고 하는 말이나 시선을 애써 모르는 척했지만, 실은 그걸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8. 톰은 매를 맞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지만 하나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왜냐면 까불다가 자기도 모르게 철자법 책에 잉크를 쏟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생님한테 자기가 안 했다고 우긴 건 다들 그러니까 예의 상 원칙을 지키느라 한 것뿐이었다.-이거 엄청 웃겼다. 알프레도라는 애가 톰을 물먹이려고 일부러 잉크를 그의 책에 엎질러 선생님께 혼난 상황.

 

고전이나 외국책의 어투나 문체는 다 그게그거고 똑같은 줄 알았는데, 확실히 작가의 개성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갈등이 불분명하고 대체로 평화로운 소설을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