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는 그들의 이야기 

 

이 책은 파스텔뮤직의 이야기다.

파스텔뮤직이 이제까지 겪어온 이야기.

파스텔뮤직의 뮤지션들이 풀어놓는 이야기.

파스텔뮤직을 아끼는 사람들의 추천 이야기.

레이블에서 일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

그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차분히 펼쳐진다.

 

책을 읽으면서 파스텔뮤직이라는 레이블과 소속된 뮤지션들의 이야기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특히 좋았던 부분은 이야기 끝에 덧붙여진 음악들 소개였다.

파스텔뮤직의 음악은 요새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이라, 이렇게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것도 좋았다.

언젠가 여기 소개된 음악들, 하나하나 다 들어봐야지,

생각했다.

 

뮤지션의 이야기들도 다 뭔가 잔잔한 느낌이었다.

역시 그들의 감성은 음악에도, 글에도 똑같이 나타나나 보다.

또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된 뮤지션들도 많이 있었다.

특히 루시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녀의 음악이 참 궁금해졌다.

그래서 들었다.

좋았다.

 

 누군가는 파스텔의 음악이 달콤하고 예쁘다고 하던데 나는 별로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 속에 흩뿌려져도 참 잘 어울리는 음악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일상이 의미 없는 시간의 연속인 것은 아니니까. 봄바람이 불어올 때의 싱그러움. 그 뒤로 사랑이 지나고 나서 다가오는 쓸쓸함이 있고, 저 마음 밑바닥까지 뚫고 내려갈 것만 같은 외로움이 있다. 일상은 그만큼 평온하지만 전혀 평화롭지 않고 삶은 무심하지만 전쟁 같은 갈등의 연속이다. 그렇게 거친 파도처럼 밀려오는 생활의 단편을 파스텔 뮤직의 음악은 담고 있다. (p.316)

 

추천사 글 중에 특히 눈에 들어왔던 글.

파스텔뮤직의 음악에 대해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읽다보니 이 말에 어쩐지 동의하게 되고 말이다...

 

인디음악을 언제부터인가 좋아하게 되었다.

들을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 박히는 노래들..

전에는 마냥 신나는 노래만 좋아했었는데, 취향이 바뀐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어쩌면 나, 취향이 바뀐만큼.. 그만큼 성장한걸까.

 

아무튼 그래서 이 책을 읽는게 참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음악을 부르는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으니까.

그들의 좋은 음악들처럼, 글도 너무나 아름다웠던 이 책.

더불어 뒤에 첨부된 부록, 미니CD...

아직 들어보지는 않았다. 이미 아는 곡도 있고 해서 조금 더 아껴두었다가...

언젠가 정말정말 음악으로 치유받고 싶을때... 그때 들어야겠다.

분명 지친 나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 차분히, 조용히 거니는 우리나라 곳곳의 골목 산책

 

예전에도 한 번 골목에 대한 여행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었다.

제목부터 골목과 관련된 에세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그 책과 달리, 이 책은 순전히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된 책이었다.

뭐랄까, 포근한 느낌이 들어서

읽어보고 싶었다.

 

막상 읽어보니 이 책은 우리나라 곳곳의 골목을 산책한 이야기였다.

우리나라에 꽤 많은 골목길이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사는 지역의 골목길이 나올 때는 괜스레 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좀 뜨끔할 때도 있었다.

재개발 이야기를 읽을 때. 골목이 사라짐을 아쉬워하는 부분을 읽을 때.

나 또한 재개발이 빨리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의 마음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뭔가 씁쓸했다.

어릴 때의 추억이 가득 어린 골목들... 그 골목들이 사라지는 건 아쉬운 일인데...

어느새 난 그런 추억보다는 재개발로 인한 경제적 이득을 더 생각하고 있는 냉정한 인간이 되어버렸나보다.

 

그런 씁쓸함은 잠시 걷어두고 계속 읽어내려간 우리나라 곳곳의 골목길 이야기는 굉장히 따스했다.

어디에나 골목에는 삶이 그대로 녹아있기 마련이니까...

골목 여행 에세이는 참 좋은 것이, 사람 이야기를 머금고 있다.

그리고 느리다.

골목에서는 차를 타고 다니기 힘드니까.

좁은 골목에서는 서로서로 사람들과 마주쳐야만 하니까.

 

그리고 많은 골목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있었다.

다양한 곳의 벽화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탁구공만한 인형장식이라던가, 설치미술 작품이라던가, 아니면 예쁜 글씨체의 간판도 좋았다.

 

언젠가 갈 수 있게 될까? 그 골목길들을...

너무 늦게 가버리면 다 사라지고 반듯한 시멘트길로 날 맞이하는 것은 아닐까...

조금 불안하기도 하다. 골목의 현실이란 그런 거니까. 언제 재개발 될지 모르는 운명...

 

마을의 풍경은 삶이란 여지없이 피곤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자주 골목을 다니면서 체득한 절대적인 진리였다. 피곤하지 않은 삶은 삶이 아니었다. 낡은 지붕, 허물어질 것만 같은 담, 모퉁이마다 버려져 있는 쓰레기, 삶은 결국 이런 것으로 이루어져 있고 비참함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서히 좋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오늘 밤 잠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태극도마을을 뒤덮은 휘황한 저녁 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p.299)

 

이 책에서 좋았던 글귀가 꽤 많아서 수첩에 한자한자 적어두었다.

그중 가장 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어울리는 이야기.

피곤하지 않은 삶은 삶이 아니라는 말이... 마음에 깊이깊이 담겨졌다.

골목의 삶은 어쩐지 피곤해보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우리는 하루하루 삶을 살아내가니깐...

그런 삶의 모습들이 켜켜이 쌓인 공간... 골목... 삶의 내음이 느껴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곳이 아닐까.

 

♬ 이별은 흐트러지지 않게, 왈츠처럼 가볍고 우아하게

 

이별의 왈츠.
일단, 책 제목에서 끌렸다.
그리고 이어 눈에 들어온 표지 그림.
새까만 그림자 같은 나무에 걸려있는 희디 흰 초생달.
게다가 그 그림을 그린 화가는 내가 좋아하는 화가, 르네 마그리트.
이 책,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받았다.
조심히 열어 찬찬히 이야기를 읽어간다.
온천도시의 간호사 루제나와 트럼펫 주자 클리마의 에피소드로 시작된 이야기는 점점 주변으로 퍼져간다.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를 만든, 부유한 미국인 베르틀레프.
그리고 그가 클리마에게 낙태위원회 인물이라며 소개한 슈크레타 의사.
그 슈크레타 의사의 친구이자 오랜만에 조국에 돌아온 야쿠프.
야쿠프의 피후견인 같은 존재인 올가.
올가는 루제나가 일하는 온천에서 치료를 받는다.
루제나가 일하는 온천에까지 찾아오게 되는, 루제나를 사랑하는, 혹은 집착하는 남자 프란티셰크.
프란티셰크는 클리마와 루제나의 관계를 의심하며, 그들의 뒤를 쫓는다.
남편의 부정을 의심하며 온천도시까지 오게된 클리마의 부인, 카밀라.

 

이 주요인물들은 서로서로 얽키설키 엮어진 우연한 만남을 가지게 된다.
클리마와 루제나, 야쿠프와 올가, 프란티셰크와 루제나, 슈크레타와 야쿠프.
이렇게 묶이는 아주 직접적 연결고리가 있는 만남들도 있지만, 정말 의외의 연결이 이뤄지기도 한다.
루제나와 야쿠프, 야쿠프와 카밀라, 카밀라와 루제나, 루제나와 베르틀레프.
이러한 의외의 조합은 그렇게 만난 그들이 변화하는 계기를 만든다.

 

단단히 얽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던 이야기는, 한 사건으로 인해 툭 끊어진다.
연한 파란색 알약 하나. 그것이 모든 관계를 바꿔낸다.
누군가의 죽음.
우습게도 그 죽음은 순간적으로는 주목 받지만, 일상을 방해하지 못한다.
죽음이 일어났음에도 너무나 차분히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에 놀랐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유지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차분하고 부드럽게 읽히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불륜, 낙태문제에 대한 밀고 당김, 억압된 자유...
그런 내용들이 녹아있지만, 자극적이지 않았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이 책이 처음이었는데, 첫 시작이 나쁘지 않다.

 

그리고 다시 제목, 이별의 왈츠.
제목과 내용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며 이 제목을 이 글에 붙였던 걸까.
뭐, 작가의 생각은 모르겠지만,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책 속의 이별은 흐트러진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왈츠의 이미지처럼, 우아하면서도 깔끔한 그런 모습의 이별들이었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까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