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리시한 일상 미스터리, 흐리거나 비 아니면 호우
굉장히 흡입력 있는 미스터리물이었다.
사실 한국 미스터리물은 그다지 읽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런 작품들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책 겉을 둘러싼 띠지에서는 이렇게 추천의 문구가 있었다.
"세련된 스킬로 그려내는 스타일리시 미스터리물"
정말 그렇다.
주인공은 호우. 전직은 흥신소 업계의 넘버원 셔터.
입사한지 첫날부터 멋지게 사건을 해결해냈다.
전 여자친구의 현 남자친구의 의뢰로 그 여자친구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지만,
의뢰를 실패한 후 자괴감에 빠져 폐인이 된다.
그러나 결국 그는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고, 다시 문제들을 해결해간다.
셔터를 그만두기 전의 반말을 날리는 호우도 멋졌지만, 존대를 하는 호우도 매력적이었다.
결국 그건 다 멋진 추리능력을 가졌기 때문일 것 같지만.
호우가 언급하는 어린시절의 이야기도 뭔가 귀여우면서도 멋지다.
아홉 살 무렵에 처음으로 시작했다. 어디를 가나 내가 모르는 신기한 현상이 있었고 당시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럴 때면 나는 아동 문고에서 읽은 멋있는 탐정처럼 팔짱을 끼며 손으로 턱을 괴었다. 주위의 사소한 것들을 모조리 관찰하고 탐구하여 나름대로의 해답을 내렸다. 사건 해결. 쿨하게 그 장소를 떠났다.(p.180)
주인공인 호우 외에 주요 등장인물인 사야, 고지, 비이도 다들 매력적이다.
호우의 시선에서 그들을 분석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비.
호우의 이름처럼 거세게 퍼붓는 빗줄기.
이 배경이, 이 이야기를 더욱 매력있게 만들어준다.
읽으면서 그 정경이 떠오르는 느낌.
특히 헤브닝에서 호우가 억눌려있던 자신의 추리능력을 뭔가에 홀린듯이 쏟아낼 때,
그건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의 모습과 어우러져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나저나 후기를 먼저 읽는 타입인 탓에 저자가 후기에서 말한 '범인'이야기 때문에 혼란이다.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그냥 관련이 없는 이야기인가? 아닌가?의 반복.
그리고 후기까지 읽었을 때 생긴 궁금증.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호우는 어떤 점에서 봄돌씨에게 사기를 쳤는가.
어느 부분에서 사기를 쳤을거라는 생각은 했었다.
거기에 언급된 것들 중 알고 있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머지가 궁금해서 찾아보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독자가 숨은 정보를 찾게하는 재미까지 있다니!
역시 마음에 드는 이야기.
후속, 나왔으면 좋겠다.
아직 호우의 예전 의뢰에 대한 이야기들도 궁금하고,
이제 호우와 그의 주변 사람들이 어떤 일들을 겪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미,
"실비."
실처럼 가늘게 내리는 비를 '실비'라고 한다. 인적드문 거리를 실비가 고요히 적시고 있었다.
메말랐던 아스팔트에 조금씩 어두운 자국이 번져 나갔다. 나는 해브닝의 유리문 너머로 잠시 동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빗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었다. 천장 아래의 나에게도 실비가 떨어졌다. 과거는 반복할 수 있어요. 손바닥 주름을 파고든 감촉을 느끼며 나는 블라인드의 끈을 당겼다.
"헤브닝, 셔터 내립니다." (p.364)
셔터는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