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한 건지 그저 운이 좋은 건지 헷갈리는... 웬수같은 이웃집 탐정
히가시가와 도쿠야를 처음에 알게 된 것은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시리즈' 때문이었다.
희극적인 캐릭터들의 모습과, 잘 짜여져있는 미스터리가 매력적이어서, 그의 다른 작품도 궁금했다.
그래서 읽은 것이 고등학교 탐정부가 주인공인 작품과(학교 이름이 시리즈 명인데 어려워서 잘 기억이 안난다) 우카이 탐정이 주인공인 '이카가와 시 시리즈'였다. 둘다 재미있어서 후속작도 자꾸 찾아서 읽게 되었다.
얼마전 서점에 갔다가 또 다른 탐정과 조수가 등장하는 신작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어 조만간 읽을 계획이다.
아무튼, 지금까지 읽은 세가지 시리즈는 비슷하면서도 각각의 다른 매력이 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이카가와 시 시리즈'. 무엇보다도 주인공인 우카이 탐정의 캐릭터가 굉장히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그는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시리즈'의 가자마쓰리 경부의 허술한 면과 집사 가게야마의 날카로운 추리력을 동시에 소유한 인물이다. 물론 그 추리력이 발휘되지 않을 때도 많지만.
이번에 읽은 <웬수같은 이웃집 탐정>은 단편집이다.
평소 미스터리 단편집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일단 표지부터가 무척 유머스럽다. 도도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오징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눈사람. 테이블 위에는 날카로워보이는 촛대와 카메라, 필름 등이 놓여져 있다. 거세게 문을 박차고 들어온 듯한 여자의 옆에는 소화기가 보인다.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는데, 읽고나니 이런 소품들이 단편 속에서 비교적 비중있게 등장했기에 흥미롭게 보인다.
책에 실린 단편은 모두 다섯편. 각각 하나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첫번째 단편. 죽음에 이르는 전력 질주의 수수께끼.
어떤 남자가 건물 벽에 정면으로 부딪혀 쓰러진다. 목격자의 말로는 그가 스스로 전속력으로 건물 벽을 향해 달렸다는데. 그 속력 때문에 부딪힐 때의 충격으로 건물이 크게 흔들릴 정도였다. 어째서 그가 그렇게 달려야만 했는지 사정을 풀어내는 내용. 결론은 뭐, 인과응보랄까. 트릭이 기상천외한 면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두번째 단편. 탐정이 찍은 사진.
누군가가 살해된 현장을 발견하는 모습으로 시작되는 단편. 그러나 우카이 탐정은 처음에는 그 살인사건과 초반부터 연관되지는 않았다. 불륜 증거를 잡아달라고 의뢰한 여성. 우카이는 불륜 증거를 사진으로 찍어 그녀에게 건넸는데, 얼마 후 그녀의 남편이 살해되고 우카이의 의뢰인은 용의자가 된다. 그녀의 남편이 살해당한 이유는 우카이가 찍은 사진 속에서 찾을 수 있는데. 과연 탐정이 찍은 사진의 비밀은?
책에 실린 단편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의뢰인이 자신이 용의자가 된 상황을 이야기할 때, 살해현장 발견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우카이와 아케미가 말하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또한 특히 마지막 부분이 정말 좋았다. 범인이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차단하는 느낌. 탐정의 빈곤함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보시다시피 제 카메라는 15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필름식 카메라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디지털 조작을 할 수 없는 물건이죠. 그래도 정 의심스러우시면 전문가에게 물어보시든가요."
우카이는 이렇게 말하고 양복 주머니에서 가늘고 긴 갈색 물건을 꺼내 테이블 위로 던졌다.
그것은 그날 탐정이 찍은 사진.
눈 위의 범인이 찍힌 필름이었다. (p.119)
이어지는 세번째 단편은 이카가미 일족 살인사건.
오징어업으로 유명했던 수산 도시인 이카가와 시에 있는 오징어신 신사에는 두 개의 신사가 있다. 거꾸로 사당과 오징어님 사당. 그 중 거꾸로 사당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간 우카이 일행. 하지만 그곳은 아주 깨끗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간 사당에서는 다시 시체가 나타나 있었다. 시체 뿐 아니라 피가 가득했던 것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트릭은 어떻게 된걸까, 그리고 범인은 누구인가. 사실 트릭 자체는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그러나 범인은 약간 의외의 인물. 이 단편은 독특하게 우카이 탐정이 추리한 것이 아니라 오징어 캐릭터가 추리를 해서 더 우스운 이야기였다.
네번째 단편. 죽은 사람은 한숨을 내뱉지 않는다.
오컬트에 빠진 중학생이 죽은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덩어리진 빛을 보게 된다. 죽은 남자의 어머니의 의뢰를 받아 그의 죽음을 조사하던 우카이 탐정은 그 중학생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고 그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다섯번째 단편. 204호실은 불타고 있는가?
사귀고 있는 남자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 같다며 조사를 의뢰한 여성. 그 의뢰를 받아들여 조사에 착수한 우카이 탐정 일행은 감시하고 있던 집에서 불이 나는 장면을 목격하고 갔다가 죽은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이 단편은 일종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면이 있다.
또 단편들에서 우카이 탐정이 이전에 해결했던 사건들에 대한 언급이 잠깐씩 등장하는데, 이미 읽었던 작품들이라 그 내용을 떠올리며 이번 책을 더 즐겁게 읽어갈 수 있었다.
이 우카이라는 남자는 타고난 경솔함 때문인지 높은 곳에서 자주 떨어지는 타입의 인간이다. 예전에 눈 쌓인 경사면을 구른 적도 있고, 해변의 계단을 굴러떨어진 적도 있으며, 절벽에서 태평양 바다에 빠진 적도 있다. (p.11)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 이카가와 시에 눈이 온 날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큰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에는 하나미 거리의 보석 도둑, 젠츠지가의 교환살인이 눈 오는 날에 일어났다. (p.65)
"당신은 혹시, 그 유명한 사립탐정 우카이 모리오 씨가 아닌가요? 젠츠지가의 교환살인이랑 크레센트 장의 사체유기사건, 양쪽을 혼자서 멋지게 해결한 전설의 명탐정!" (p.193)
이렇게 전작들과의 연결성을 보여주는 것도 꽤나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이 때문에 전작을 다시 읽고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이 단편집 전체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 곳이었다. 네번째 단편에서 등장하는 부분.
우카이는 천천히 자동차를 출발시키며 들뜬 어조로 조수석의 아케미에게 말을 걸었다.
"어때, 아케미 씨. 여기에서 내 평판은 상승세잖아. 아무래도 내 활약은 '이카가와 시 시리즈'가 아니라 '봉구라야마 산 시리즈'로 써 내려가야 할 것 같은데......"
"뭐?! 시리즈라니, 무슨 소리야?"
기분이 좋아진 탐정 옆에서 아케미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p.194~195)
주인공 우카이 탐정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 이카가와 시이기 때문에 '이카가와 시 시리즈'에 속하는데, 등장인물인 우카이가 그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셜록홈즈 시리즈나 아르센 뤼팽 시리즈와는 달리 작품 속에 그의 일대기를 써내려가는 전담 작가도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약간 메타픽션 같은 느낌도 있고, 또 아케미의 대사를 통해 우카이 탐정의 현 실정을 냉정하게 보여주면서 웃음을 주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재미를 주는 책이라 좋았다.
아무튼 여전히 매력적인 탐정 우카이. 또 다른 그의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