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읽는 책의 매력, 여행자의 독서 두번째 이야기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인지, 아님 들은 이야기인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기억 속에 있는 이야기가 있다. 

책 속에 나온 장소에서 읽는 책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는 말.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던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책 속에 나온 장소를 찾아간 여행.

그 곳에 가져가 읽는 책.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읽고 싶어진 책은 박지원의 <열하일기>였다.

두꺼운 책이지만 중국의 그가 여행한 곳에 가서 읽으면 더 특별하게 느껴져 잘 읽힐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책의 구성은 조금 독특했다.

처음에는 여행지의 사진들이 가득하게 나온다.

그리고 그 여행지에서 겪은, 생각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생생하게 먼저 그 여행지를 접하고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 같아 좋았다.

 

사실 이 책은 여행 에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여행 에세이를 꽤 많이 읽은 편이지만 그것과 많이 달랐다.

그건 이 책이 여행과 독서를 동일선상에 두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개된 여행지들이 주는 느낌 자체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예전에 읽었던 책들의 여행지는 거의 아름다운 곳들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들을 읽으며 웃고.

이 책은 그에 비해 하나의 매뉴얼이 있다.

그건 바로 책이었다.

 

여행지와 책.

책은 여행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수단이 된다.

때문에 이 책은 진지하게 다가가는 느낌이었다.

여행은 낭만을 찾아간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꼭 그런 여행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어쩐지 눈에 들어오던 글.

 

땀과 눈물 없이 도착한 여행지는 감동과 추억을 가져다주지 않는 법이다. 슬픔과 고독, 어느 정도의 고통이 없는 여행은 진짜 여행이 아니다. (p.68)

 

여행은 독서를 부르고, 독서는 여행을 부른다는 것. 정말 맞는 말이다.

달콤하면서도 시린 사랑이야기들, 사랑은 아메리카노 어쩌면 민트초코

 

서점에서 다른 책을 보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표지 디자인이 너무 예뻤다. 그리고 제목도 마음에 들었다. 아메리카노와 민트초코라... 뭔가 특별한 느낌을 주는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제목 위에는 '달콤 쌉싸래한 다섯 가지 러브 픽션'이라고 씌여 있었다. 사랑 이야기라. 아주 끌리는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읽었다. 커피에 얽힌 사랑이야기라는 점이 뭔가 흥미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느낀 감정들은 모호함, 약간의 의문, 잔잔함.

다섯 이야기들 모두 열린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여백이 있다는 느낌이랄까. 이야기 속에서 확정지어지지 않은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어쩐지 조금 신비하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많았다. 이런 감정들이 담긴 이야기가 내가 기대한 것과 달라서 더 극대화되어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안개 속을 가는 느낌이었다. 길을 잃는 것 같은 느낌이 아니라, 그 안에 빠져드는 느낌. 그 모호함이 스며드는 듯했다. 이야기 자체는 색감과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색감이 많이 떠올랐던 것 같다. 내용이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일까. 사실 의문들이 생겨나가는데도 그냥 읽어갔다. 그 의문들을 곱씹어 보는 시간이 필요했었을까.

그래도 이런 느낌의 독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분위기에 빠져 읽어가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들은 음악은 가을방학의 '속아도 꿈결'이라는 노래였는데, 꽤나 어울렸다. 그 투명함과 청량감과 맑음이.

 

이 책은 그런 느낌이다. 모호하다고 생각하게 만들면서도, 투명하고 청량감, 맑음이 느껴진다.

달콤한 듯 보이면서도, 시린 느낌을 주는 사랑 이야기들이다.

그 다섯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첫번째 잔. stranger in paradise

두번째 잔. 제비꽃 커피와 연꽃 젤리

세번째 잔. 내사랑 모이즈...... 모카 마타리의 유혹

네번째 잔. 비 오는 날에는 킬리만자로를

+한 잔. 커피 마시기 좋은 날

 

다섯 이야기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은 네번째 잔 이야기. 약간 시린 느낌이 지속되다가 결말에서 느껴지는 단 느낌이 참 좋았다.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해피엔딩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특히 이 이야기의 주인공 마키가 그린 특별 주문 커피잔들은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면 이 이야기가 색감도 다양하게 보여주었던 것 같다.

 

우주를 그리는 날은 일주일에 단 하루였고 평소에는 주로 꽃그림을 그렸다. 마키는 우주 그림을 그리는 날을 고대했다. 우주 그림이란 한마디로 천체 그림이다. 마키는 우주를 그릴 때마다 배경 색을 미묘하게 바꾸어 어떤 잔에는 보라색을 칠하고 다른 잔에는 남색을 칠했다. 우주를 그려넣은 커피 잔은 신비한 색조를 띠었다. 마치 그곳에 작은 우주가 존재하는 것처럼. (p.93~94)

 

이 이야기에서 마키가 자신의 블로그에 이야기하는 커피와 음악들은 듣고 싶었었다. 그녀가 그 블로그 활동을 하다가 알게된 '아키라'라는 인물과의 교류도 인상적이었다. 이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도자기 잔에 그림을 그리던 마키는 유리잔에도 그림을 그리게되는데, 그 부분을 읽어가면서 유리의 투명한 느낌이 함께 전이되는 기분이 들어서 더 즐겁게 읽어갈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의문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로 제목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왜 많은 다른 음료 중 민트 초코였던 걸까? 아메리카노는 누구나 마시는 약간은 흔한 커피다. 하지만 민트 초코는 호불호가 꽤 갈리는 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민트 초코가 달콤한가? 그러고보니 민트 초코를 마신 적이 별로 없다. 다시 한 번 마셔봐야겠다. 아무튼 제목과 표지 색깔 덕분인지 이 책을 읽으며 생각났던 음료와 관련해서 떠오르던 색감들. 블랙. 민트. 초콜렛.

 

마지막으로, 표지 디자인이 정말 깔끔하고 예쁘다. 깔끔하면서도 특색있는 표지. 그리고 책의 내부 디자인도 예뻤다. 특히 목차 부분이 가장 좋았다. 디자인이 커피라는 주제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한된 분량에서 미스터리를 완성하라! 4페이지 미스터리

서점에 갔다가 눈에 띄었던 책. 미스터리 코너를 돌고 있는데,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어디선가 소개를 읽었던 기억이 났다. 꽤 흥미를 자극하는 책이었기에 결국 읽게 되었다.

이 <4페이지 미스터리>는 방식 면에서 특이한 책이다. 분량 제한. 이 책에 실린 60편의 미스터리는 모두 짧은 단편이다. 원고지 10매. 페이지로 4페이지에 불과하다. 그런데 각양 각색의 미스터리들이 제한된 분량에서 펼쳐진다. 그런 점에서 예전에 읽었던 <한페이지에 죽음하나>라는 책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글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일종의 제약을 두는 것도 참 흥미로운 글쓰기 방식이다.

 

이 책을 읽으면 작가의 능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분량에 맞춰 미스터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정말  힘들텐데도, 다 다른 미스터리를 60편이나 만들어냈다. 섬뜩한 내용의 미스터리도 있었고, 일상적인 미스터리도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다양한 방향으로 미스터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도 짧은 분량 안에 이야기를 담아 내야 한다는 제약 때문인지 서술 트릭이 많았다. 열린 결말도 많았고. 그래도 이야기들은 대부분 짜임새 있었다.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트릭은 두 사람 사이에 전화 통화가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제 3자가 도청하고 있었음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 인물은 앞쪽의 대화에서 등장했던 인물. 이런 식으로도 서술 트릭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등장인물을 등장시키는 방식도 다양했다. 특히 등장인물의 회상이나 대화 속에서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이 많았다. 또한, 앞에서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이야기하지 않아 나중에 반전이 이뤄지는 형식의 단편도 많았다. 이렇게 각 미스터리가 짧은 분량이었기 때문에, 더 독특한 트릭들이 많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줄이고 줄이면서 여러 갈래로 이야기 방향이 뻗어나가게 되었다. 매력적인 서술 방식(트릭을 포함해서)을 많이 접하게 되어 좋았다.

 

사실 이 책은 끝까지 한 번에 읽기 보다는 뒤에 실려있던 번역자의 말처럼, 각 에피소드들을 두고두고 조금씩 읽어가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꾸역꾸역 읽어갔었다. 그냥 읽던건 마치고 싶기도 했고, 위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서술방식이 흥미로워서 다음 서술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까 궁금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