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유쾌한 이라부 의사의 치료법, 면장선거

누군가가 이 책을 읽고 있다고 했는데, 그러고나서 도서관에 가니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이 책을 포함한 이라부 시리즈를 워낙 재미있게 읽었기에, 오랜만에 다시 읽어볼까하는 생각으로 읽기로 했다.

그러고보면 최근에 예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이 꽤 늘었다.

이 책은 같은 시리즈의 다른 책인 인터풀, 공중그네와는 다르게 네 편의 이야기만 실려있다.

그것은 마지막에 실려있는 면장 선거가 다른 이야기들보다 분량이 많은 중편이기 때문일 것이다.

뒤의 후기 부분을 보니, 앞의 짧은 단편 셋의 주인공들은 각각 실제에 모델이 있었다.

그러나 면장선거는 가공의 장소와 인물을 소재로 만든 이야기라고 한다.

이러한 차이를 알고 보니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구단주. 이름 때문에 '나베맨'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78세의 다나베 미카오가 주인공. 그는 유명한 신문사의 대표이사회장이고 일본 프로야구 구단의 구단주이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어두운 것을 무서워하게 되고 또 밝은 조명도 무서워하게 된다. 이라부는 그것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냐고 하고, 약간 기상천외한 해결책들을 제시한다. 결국 그는 자신이 나이들었음을 인정하고, 물러나기로 결심해 생전 장례식까지 치르게 된다.

안퐁맨. 안퐁맨이라는 별명을 가진 안도 다카아키는 일종의 IT 벤처기업인 '라이브 퍼스트'를 설립해 현재 굉장히 유명해졌다. 그렇지만 히라가나를 생각해내지 못해 비서의 권유로 이라부 의사의 진료를 받게 된다. 이것은 어쩌면 효율성을 추구하는 그의 성격 탓일지도 모르겠다. 이라부는 그런 그를 데리고 옆의 유치원에 가서 같이 히라가나 단어찾기 게임을 한다. 게임에서 승부욕을 느끼며 그는 이제는 히라가나만 쓰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카리스마 직업. 시라키 가오루는 40대의 여배우이다. 젊음과 미모를 유지하는데에 대한 강박증으로 미친듯이 운동을 하고 이라부가 의미없이 던진 한마디에 바로 반응해 물구나무를 시도하기도 한다. 이제까지 읽어온 이라부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문제가 완벽히 해결되었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인물. 그녀는 결국 진짜 젊음과 자신이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이 상태를 유지하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면장선거. 도쿄도청의 직원 미야자키 료헤이는 섬으로 파견 근무를 가게 된다. 그런데 근무지에서 면장선거를 하게 되면서, 직원들은 2개의 파벌로 갈려서 서로를 비난하며 그를 서로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돈까지 건넨다. 그런 와중에 이라부가 그 섬에 가게 되고, 이라부의 아버지가 복지시설을 세울 계획이라는 것을 알게된 사람들은 서로 이라부를 끌어들여 복지 계획을 섬에 실행시키려 한다. 이러한 알력다툼을 보며 두 진영에 대해서 주인공처럼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들이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이유를 읽어가며 어쩐지 조금, 감동도 했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진심을 듣고난 이라부의 어이없는 제안. 그리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다시 부활하게 된 전통축제의 모습으로 열린 결말.

역시 이 책은 언제봐도 기분전환하기 참 좋은 시리즈다.

일단 캐릭터가 너무 유쾌하니까.

이라부 의사. 그는 정말 철없다. 그리고 조금 정신구조가 특이해보이는 신경정신과 의사.

그의 기이한 행동치료요법들. 그가 툭툭 내뱉는 말들은 정말 엉뚱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행동들을 하니 신기하게도 문제들이 해결된다.

그건 아마, '자유'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박증 같은 것들은 억압되어 있는 그 무엇들에 의해 생겼을 것인데, 그것이 뛰쳐나오도록 만든 것이니까.

이라부 의사에게 타인의 시선과 평가 따위는 관계없다.

주변에 신경쓰는 태도들이 억눌림을 만들고 몸을 긴장상태로 만든다는 것일까.

하지만 이라부처럼 행동하는 건 역시 너무 위험부담이 크다.

작가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는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

 

요 근래 들어서 가장 오랜 기간 읽은 책이었다.

지난 금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읽었다. 자그마치 4일.

좋은 글들이 많아서, 천천히, 쉬엄쉬엄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은희경 작가님이 연재 소설을 쓰던 기간 동안 쓴 원고 뒤에 쓰던 글들과, 트위터에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글 속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소설을 쓸 때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글들이었다.

그리고 꽤 신선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작가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느낌.

그리고 작가가 쓴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그러고보니 '은희경'이라는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그녀의 책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작품의 일부를 읽고 느꼈던 것들이나, 그저 들어서 알고 있었던 모습이었던 걸까.

그동안 이 작가, 그리고 작품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은.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작가의 에세이를 읽어보기로 했다.

소설을 읽는 것과, 에세이를 읽으면서 느끼게 되었던 그 갭이, 굉장히 좋은 것 같아서.

 

다시 <생각의 일요일들>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책을 읽으면서 적어두고 싶은 글이 꽤 있었다.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도 좋았고, 여행에서의 이야기도 좋았고, 일상적인 생각들도 좋았다.

그런 글들을 몇 개 적어두었지만, 너무 길어서 적지 못한 글도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힙합에 관한 글.

'끄덕끄덕 힙합'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은희경 작가의 지인이 힙합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을 정리한 내용이었다.

작가가 쓴 글은 아니지만, 굉장히 흥미로웠던 글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오페라와의 비교를 통해 힙합을 이야기한 글이었다.

오페라의 레치타티보를 랩이라 하고, 아리아를 피처링한 멜로디로 대입하면 형식면에서 닮아 보인다는 것.

그렇지만 오페라가 아리아를 위해 존재한다면 힙합은 랩 자체가 음악의 존재 이유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

또 인상적이었던 내용이, 힙합이 이전의 음악들과 구분되는 또다른 점이 '나를 이야기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나'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토해내는 것. '멜로디를 버리는' 일종의 직접화법으로 이야기하는 것.

이전까지 생각해보지 않은 내용들이라서 신선했고, 또 묘하게 설득되는 느낌이었다.

 

위에서 길게 이야기한 힙합 이야기 말고도, 좋은 글들이 많았다.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생각들.

또 이게 연재하면서 함께 쓰여진 글들이라, 딱딱한 느낌이 아니라 부드러운 존댓말이라서 더 좋았다.

그렇게 몇몇 구절들을 노트에 적어두었다.

그 중에 하나로 리뷰를 마무리.

 

글을 쓸 때 장소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건 당연한 일.

무엇에 대해 어떤 식으로 말할지는 미리 정해져 있지만 디테일은 그때그때 포착되는 생각과 장면들이 그대로 옮겨지기도 하니까요. (p.186)

 

사실 요새 글을 쓸때마다 멍해지는 기분이 자꾸 들어서 글이 잘 안써졌다.

그래서 이 글에 공감이 갔던 것 같다.

이 책을 막 읽었을 때만 해도, 이런 느낌의 리뷰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에 대한 느낌이 밝고, 명랑하다는 생각들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뷰도 그런 것들에 대한 글들로 채워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지 하루하루 계속해서 달라지는 상황들에, 모든 것들이 영향을 받는 것 같다.

파란만장한 직장여성의 일주일, 참을 수 없는 월요일

 

책이 잘 읽히지 않는 시기에는 익숙한 책을 찾게 된다.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이 책을 떠올린 것은...

이 책이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 그래서 기억 한 구석에 남아 있는 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바타 요시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고양이 탐정 쇼타로 시리즈를 통해서였다.

때문에 그녀가 쓴 워킹걸 스토리들인 <워킹걸워즈>와 <참을 수 없는 월요일>이 처음에 조금 낯설기도 했다.

그래도 읽어가다보니 두 작품 모두 재미있었지만, <참을 수 없는 월요일>이 더 재미있었다.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이 더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낙하산 인사. 약간의 소심함(?). 특이한 취미(N게이지용 150분의1 크기의 주택모형 만들기). 평범한 외모.

뭐 그런 것들이.

 

이 책은 일종의 연작단편집이다.

총 여섯 개의 단편과 에필로그로 이뤄져있는데, 각각의 부제에는 요일이 언급된다.

 

첫번째_참을 수 없는 월요일

두번째_모두에게 비밀인 화요일

세번째_눈물 나게 외로운 수요일

네번째_달콤 쌉쌀한 목요일

다섯번째_그래도 기쁜 금요일

여섯번째_목숨 겁니다. 주말입니다!

에필로그_또다시, 참을 수 없는 월요일

 

부제들이 재미있었다. 각각 그 요일마다 느낄법한 감정들로 그 요일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각 단편마다, 직장에 관한 생각들이 나왔다. 특히 맨 처음 단편인 월요일에서 나온 생각들이 인상적이었다.

낙하산으로 들어왔지만 정년까지 이 회사에 다니고 싶기 때문에 불만이 있어도 윗사람의 비위를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모토로 끝까지 회사에 '들러붙어 주겠다'라고 말하기도 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회사에 다닌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 죽은 사람처럼 산다는 것인지 고민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어났던 다양한 사건들. 물론 평범한 직장여성에게 생길법한 일이라기엔 약간은 과장된 면이 있기도 했다.

정말 파란만장한 직장인의 일주일. 그래도 일상적인 회사생활과 동료관계 등이 나타나는 모습이 꽤 있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또 인상적이었던 것. 주인공이 만드는 주택모형. 어떤 것인지 잘 몰라서 더 궁금하고, 알고 싶어진다. 미니어처 같은 것일까? 가지고 싶고, 만들어보고 싶고 그렇다.

사실 이 책을 이번을 포함해 서너번 정도 읽었다. 그런데 학생 때 읽었을 때와, 취업 준비 중에 읽었을 때, 그리고 어디에 소속된 상태에서 읽을 때의 느낌이 조금씩 달랐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험이 생기고 그래서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 구절은 그대로.

결국은 변하고 싶어했지만 변하지 않았다. 나도, 나를 둘러싼 세상도.

 

그런 거 전부 짜증난다. 귀찮다. 체질에 안 맞다.

나라는 사람은 그런 게 어울리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이렇게 경비정산서를 노려보며 계산기를 두들기다가 퇴근시간이 되면 냉큼 퇴근해서 편의점에 들러 적당한 저녁거리를 사서 집으로 뛰어 들어가서 모형을 만드는, 오타쿠스럽긴 하지만 평범한 직장여성의 생활이 딱 맞다.

그럼 안돼? 쇼코처럼 열심히 일해서 출세하지 않으면 이상해? 미팅에 목숨 걸고 돈 많은 결혼상대를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켜지 않는 게 이상해?

괜찮잖아. 이런 나지만 나름대로 즐겁게, 나름대로 필사적으로 여기 살아있다. 그걸로 충분하잖아. (p.332~333)

 

덧. 그러고보니 이제까지 읽을 때 전혀 깨닫지 못했던 것을 인상깊은 구절을 쓰다가 문득 깨달았다. 쇼코. 저자 시바타 요시키의 다른 작품 <워킹걸 워즈>에서의 주인공 이름이다. 그러고보니 이 책에서 쇼코에 대한 언급이 "일류라고 불리는 종합음악회사에 다니는 사촌언니 쇼코"로 되어 있다. 게다가 기획 일을 하고 있는 듯하고.<워킹걸 워즈>의 주인공 쇼코도 그렇다. 연결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던 것이 실은 연결되어 있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