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다양한 삶, 자기 앞의 생

 

책 DB에는 이 책의 작가가 로맹 가리로 되어있지만 발표당시에는 그가 필명인 '에밀 아자르'로 발표했었던 책이다.

책의 주인공 이름이 '모모'라는 걸 알고, 미하엘 엔데의 작품인 <모모>와 비교해볼까 하는 생각에서 읽기로 했다.

이 책과 미하엘 엔데의 모모는 드라마에서 등장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사실 <자기 앞의 생>을 읽어보기로 마음먹은 것도 드라마에 등장하면서 인기검색어에 오른 것을 보고 궁금해졌던 이유도 있다.

이전까지 <자기 앞의 생>의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한 작가가 필명으로 썼다는 것을 비롯해 내용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사실 이야기를 읽어보면 미하엘 엔데의 <모모>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분위기는 비슷하다고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미하엘 엔데가 그의 다른 작품들 같이 환상적인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면 로맹 가리는 현실성이 담긴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제목을 보고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인가 했더니, 결국 죽음으로 마무리 된다.

그래도 이야기가 흘러가는 동안 주인공 모모의 주위를 둘러싼 다양한 삶의 모습이 그려진다.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들. 그리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모습.

그런 모습들이 소년 모모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그렇기에 과하지 않아서 좋았던 것 같다.

다양한 삶이 나와서 다양한 생각들을 했던 것 같은데, 깔끔하게 정리를 하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

 

그리고 책 속에서 어른들은 모모를 참 독특한 아이라고 한다.

다음과 같은 모모의 생각들을 보면, 그런 것도 같다.

 

나는 아주 먼 곳, 전혀 새롭고 다른 것들로 가득 찬 곳에 가보고 싶은데, 그런 곳을 상상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공연히 그곳을 망칠 것 같아서이다. 그곳에 태양과 광대와 개들은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들은 그대로도 아주 좋으니까. 그러나 나머지는 모두 우리가 알아볼 수 없도록 그곳에 맞게 다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래봤자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사물들이 얼마나 자기 모습을 끈덕지게 고집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참 우습기까지 하다. (p.122~123)

 

그래도 이렇게 모모가 약간은 조숙하고 특별한 아이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더 흥미롭게 느껴진 것일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로맹 가리의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다. 이 작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은 많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부분들과 다른 부분들을 알아보고 싶다.

 

덧. 제목의 의미는 뭐지, 그래서? 잘 모르겠다. 그래서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별을 품은 채 행복을 만들어주는 곳, 달팽이 식당

 

예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게 되는 경우가 올해 들어 꽤 있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기억이란 그리 신용할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이제까지 정말 내 취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생각이 그동안 변해버린 걸까.

 

이제까지 읽은 오가와 이토의 책은 음식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번에 <달팽이 식당>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것.

이별을 품고 있다는 것.

<따뜻함을 드세요>라는 단편집에 실려있는 단편들은 모두 죽음이나, 그 밖에 헤어짐을 이야기 속에 담고 있다.

<트리하우스>에서도 맨 앞부분에서 주인공의 남편이 사라진다.

<달팽이 식당>에서도 주인공의 애인이 모든 물건을 가지고 사라지며, 주인공은 끝부분에서 또 다른 이별을 겪게 된다.

이러한 이별의 상실감은 음식의 따뜻함으로 채워져 간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상실감보다는 따뜻함을 크게 느꼈던 것이다.

 

달팽이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모두는 행복해진다.

그런데 그 행복을 주는 음식을 만드는 주인, 링고는 행복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약간 역설적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래서 온전히 행복해지기를 바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행복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일지도.

 

전에 읽을 때는 단순히 행복해지는 음식들...에 집중했고, 관심이 갔는데...

이번에는 주인공 링고의 심정에 집중해서 읽어가게 되었고, 조금은 우울한 느낌으로 읽어가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이 강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예전에 썼던 리뷰에서는 링고와 엄마의 이야기가 갑자기 등장한 것 같다고 적어두었다.

이번에 읽으면서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미 등장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엄마와의 어긋났던 관계를 다시 재정립할 수 있게 되는 과정들...

주인공인 링고가 '변화'를 겪는 과정들이기 때문에 필요했는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깊은 상실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계기를 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했으니까.

 

요리를 버려서는 안된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다시 요리를 시작하자.

내 주위 사람들이 기뻐할 수 있는 요리를 만들자.

먹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요리를 만들자.

먹고 나면 아주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는 요리를, 앞으로도 계속 만들자.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이곳, 달팽이 식당의 주방에서. (p.236)

 

<달팽이 식당>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변해버렸지만, 그래도 이 책을 계속해서 좋은 기억으로 남겨둘 것 같다.

그래도 역시 행복해지게 만드는 음식, 먹고 싶으니까.

단조로워 보였지만 섬뜩했다, 오후 네시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들 무슨 불편이 있을 것인가? 그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면 혐오감에 사로잡힐 테니까. (p.9)

 

소설의 시작부분으로 나도 리뷰를 시작한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나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이 소설을 끝까지 다 읽기로 결심했다.

그만큼 처음부터 너무나 인상적인 책이었다.

뭔가 깊은 심리를 다루는 내용일까? 궁금해졌다.

 

첫부분에서 받은 느낌이 너무 강해서였는지, 이어지는 이야기는 너무나 잔잔하게만 느껴졌다.

은퇴한 나이든 부부는 시골의 아름다운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그 집 곁에는 이웃집이 하나 있을 뿐. 거의 인적이 드물어 자연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또, 그 집을 처음 본 순간 그들은 그 집이 '우리집'이라는 확신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만족스러웠다. 오후 네 시가 되기 전까지는.

 

오후 네시. 방문객이 찾아온다.

그는 이웃집에 사는 남자. 베르나르댕 씨.

그들은 뜻밖의 손님을 반갑게 맞아 대접한다.

그런데 이 남자, 좀 이상하다.

그렇소. 아니오. 좋소. 어떤 이야깃거리를 꺼내고 시종일관 단답형 대답을 고집한다.

그렇게 자꾸 이 부부를 당황스럽게 하던 남자는 오후 여섯시가 되자 일어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부부는 안도했지만, 그건 다음날 오후 네시에 들리는 문 두드리는 소리로 인해 깨어졌다.

 

이후 이웃집 남자는 매일 오후 네시부터 여섯시까지, 매일같이 이 부부의 집을 발견한다.

이 부부, 에밀 아젤과 쥘리에트는 점점 그 남자가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그의 방문을 피하려 애를 쓴다.

하지만 그 시도는 번번히 그들에게 상처만 남길 뿐이었다.

 

그렇게 소설은 단조롭지만, 전혀 단조롭게 보이지 않는 사건으로 느껴지게 된다.

사실 이웃집 사람의 방문이 끔찍하고 두려운 일이 될거라는 생각은 보통 들지 않는다.

하지만 오후 네시를 읽어가다보면, 나 또한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정말 혼란에 빠져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에밀과 쥘리에트는 견딜 수 없게 되자 나름 즐겨보기로 한다.

마치 게임을 하듯이, 그들은 팔라메르 베르나르댕이 말을 더욱 더 많이 하도록 유도하려 한다.

에밀은 현학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쥘리에트는 무구함으로 그를 대한다.

하지만 실패했다. 적어도 에밀은 그렇게 느꼈다. 오히려 그것은 그에게 죄책감을 지우는 결과를 낳았다.

 

이 이웃집 사람의 침투로 인해서, 에밀과 쥘리에트의 견고했던 관계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부터 서로를 운명으로 느끼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함께했던 두 사람.

하지만 이웃에 대한 반응은 점점 서로 달라지고, 그들은 각각 타인이 되어 버린다.

특히 이웃집 남자의 부인 베르나데트를 알게 되었을 때, 에밀과 쥘리에트가 했던 그녀에 대한 생각들은 서로 달랐다.

점점, 차이를 느끼게 되는 부부.

그리고 에밀은 그걸 점점 견디기 힘들어하고, 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마치 이 소설은 단조로운 선율이 반복되지만 사실은 조금씩 변화가 있어서, 결국 모두 뒤바뀌어 버리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일상의 작은 균열이 얼마나 크게 다가오는지를 느끼게 해준 그런 소설.

책 읽기 전에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무 괜찮았다.

읽는게 어렵지는 않았다. 묘하게 빠져드는 느낌. 잔잔하고, 또 약간은 반복적이라 더 이입이 잘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전혀 심심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들을 그동안 많이 들을 수 있었는지 알 것 같다.

예전부터 읽으려고 했었는데 그동안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빠져 손을 안 댄 것을 조금 후회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좋았다. 특히 글을 여는 처음과, 글을 마무리하는 끝 부분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그래서 리뷰의 처음과 끝을, 이 소설의 처음과 끝부분을 인용하기로 한 것이다.

 

결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하나의 인간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계속해서 변해버리니까. 그 안에는 하나로 규정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내재되어 있으니까.

끝까지 여운을 남기는 소설.

나의 흰색은 녹아 버렸고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두 달 전 여기 앉아 있었을 때,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었다. 아무런 삶의 흔적도 남기지 않은, 그리스어와 라틴 어를 가르쳐 온 일개 교사라는 것을.

지금 나는 눈을 바라본다. 눈 역시 흔적을 남기지 않고 녹으리라. 하지만 이제 나는 눈이 규정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더이상 알지 못한다. (p.184)